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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사이저가 이어준 부자관계

신시사이저가 이어준 부자관계

인디록 밴드 도도스의 리드 싱어 메릭 롱, 새 솔로 앨범에 세상 떠난 아버지와의 관계 반추하는 노래 담아
메릭 롱은 최근 ‘팬(FAN)’이라는 예명으로 새 솔로 앨범 ‘Barton’s Den’을 발표했다. / 사진:PINTEREST.COM
메릭 롱은 13년 동안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 인디록 듀오 도도스(맹렬한 타악기와 어쿠스틱 기타의 인터플레이가 특징이다)의 리드 싱어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5년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롱은 밴드 활동을 중단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아카이 AX60과 리얼리스틱 콘서트메이트 MG-1 등 오래된 신서사이저 몇 대를 물려받았다. “의무감 같은 게 느껴졌다”고 롱은 말했다. “세상을 떠난 누군가에게 속했던 물건을 물려받으면 ‘이걸 없애버릴까, 아니면 새로운 취미를 시작해 볼까?’ 하는 갈등이 생긴다.”

롱은 칩거하며 지난날을 돌이켜 보는 동안(그 사이에 첫 아이도 태어났다) 그 악기들로 작곡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껄끄러웠던 부자관계에 대한 후회를 표현하는 노래들이다. 롱에게 그 악기들은 아버지와 자신을 이어주는 다리처럼 느껴졌다. 그의 아버지는 제약회사에 다니면서 ‘비밀스러운’ 취미로 음악 활동을 했다.

이 노래들은 롱이 ‘팬(FAN)’이라는 예명으로 발표한 새 솔로 앨범 ‘Barton’s Den’에 실렸다. 이 앨범은 슬픔과 소통의 단절에 관한 기이하고 으스스한 명상이다. 펑크록 밴드 데보와 메탈 밴드 고르고로스,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화장실의 환풍기 등 다양한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롱이 새 앨범에 수록된 모든 노래에 숨겨진 이야기를 털어놨다.
롱(왼쪽)은 인디록 듀오 도도스의 리드싱어로 잘 알려졌지만 2015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작곡에 몰두했다. / 사진:YOUTUBE.COM


1. ‘BOB1’


이 노래의 제목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겼다. 이름이 밥이었던 롱의 아버지를 일컫기도 하고 그룹 데보를 의미하기도 한다. 데보의 리드 기타리스트 밥 마더스보는 밴드 동료 밥 케세일(‘밥 2’)과 구분하기 위해 ‘밥 1’으로 불렸다. 밝은 분위기의 신시사이저 사운드(데보를 연상시키는 또 다른 대목이다)와 롱이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칩거하는 동안 녹음한 기타 연주가 혼합됐다. “프랑켄슈타인 같은 곡”이라고 롱은 말했다. 가사는 아버지와의 껄끄러웠던 관계를 묘사한다.



2. ‘FIRE’


공격적인 기타 연주가 폭발적으로 이어지는 빠른 템포의 긴장감 넘치는 곡이다. “오프닝 비트는 데보의 마더스보가 영화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OST에서 했던 방식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롱은 말했다. 이 노래는 롱이 코르그 MS-20 신시사이저로 만든 곡 중 하나다. 처음에 그는 이 실험적인 음악을 앨범에 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아내에게 그 곡을 들려주면서 ‘제법 노래처럼 들린다’는 느낌이 들었고 ‘음반에 넣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3. ‘INTRO OF LIGHT’


이 곡의 밝은 에너지는 아버지가 된 기쁨에서 비롯됐다. “2년 전 딸이 태어났는데 이 앨범의 보컬은 모두 그 애가 생후 8개월이 됐을 때 포틀랜드에서 녹음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 곡을 쓸 때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쳤다. 내겐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부모가 된 후 현실에 발을 디디게 됐다. 가사를 쓸 때 마치 가족에게 ‘내가 지켜줄게. 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는 심정이었다”



4. ‘WHAT A MISTAKE’


이 곡에서 롱은 아버지의 병이 깊어졌을 때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터놓고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던 심정을 노래한다. ‘우린 기회를 놓쳐버렸다/이제 난 컴퓨터에 대고 이야기한다(The chances slipped between us/Now I talk to a computer).’ “아버지는 내 곁에 있었지만 우린 전혀 소통하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롱은 그의 신시사이저로 노래를 작곡하면서 “그 불통의 관계를 지속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롱은 또 신시사이저 사용 시 기술적 주의사항에 관해 아버지가 손으로 쓴 노트도 물려받았다. “알아보기 힘든 글씨였지만 난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아버지와 대화를 계속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었다. 멋진 일이지만 슬픈 기분도 들었다.”



5. ‘GORGOROTH’


이 노래는 비디오 게임 사운드트랙처럼 들리는 빠른 레트로 신스 사운드로 시작한다. “도도스의 노래에 넣으려 했던 복잡한 사운드”라고 롱은 설명했다. “이제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깨달았다.” 제목은 노르웨이 블랙 메탈 밴드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 음악이 롱에게 그 밴드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원래는 세션 파일 제목으로 나중에 바꿀 생각이었지만 그대로 뒀다(‘Barton’s Den’의 수록곡 중 다수는 임시로 붙였던 제목이 최종적으로 굳어졌다).



6. ‘SINCE I FOUND YOU’


이 앨범에서 가장 느리고 명상적인 곡이다. 롱은 아버지의 유령을 향해 말하는 주문 같은 후렴구를 반복한다. ‘당신이 떠나고 난 뒤에야/당신을 제대로 알게 됐어요(It’s since you’ve gone/That I’ve found you).’ ‘Barton’s Den’에 실린 노래 대다수가 그렇듯이 이 곡도 한밤중에 녹음했다. “집에 어린 아이가 있으니 밤잠을 설치기 일쑤고 음악 작업할 시간도 내기 어렵다”고 롱은 말했다. 그는 원래 이 후렴구가 노래에 넣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한 친구의 격려로 마음을 바꿨다. “그 일을 계기로 생각이 자유로워졌다”고 그는 말했다. “노래에 꼭 특정 구조나 코드 변환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7. ‘ISN’T LOVE’


“신시사이저를 빼면 도도스의 노래라고 해도 좋을 만한 곡”이라고 롱은 말했다. 이 노래는 추진력 있는 리듬과 빠른 템포가 전형적인 도도스의 음악을 떠올린다. 코러스에서는 ‘preoccupation(몰두·심취)!’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MGMT의 스마트폰 중독에 관한 노래 ‘TSLAMP’처럼 롱이 자신의 테크놀로지 의존성을 들여다 본 곡이다. “딸이 태어난 뒤 내가 틈날 때마다 인터넷에 매달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놀랐다”고 롱은 말했다. “아이 주변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얼마나 스마트폰에 중독됐는지를 알게 됐다. 아이가 잠이 들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직행하니 말이다.”



8. ‘BOB2’


롱의 새로운 예명 ‘팬’은 고장 난 환풍기(fan)에서 나는 털털거리는 소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노래엔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약 2분 30초 동안 흐른다. “한 멕시코 식당의 화장실에 갔을 때 변기 바로 위쪽에 달린 고장 난 환풍기가 털털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고 롱은 말했다. 그는 그 소리를 아이폰에 녹음했다. “내가 쓸 수 있는 리듬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말을 이었다. “불규칙하고 반복적이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리듬감이 있었다. 그 소리를 노래 속에 넣어 효과를 내는 건 일종의 도전이었다.” 롱이 그 식당 측에 그곳 화장실에서 노래의 영감을 얻었다고 이야기할까? “이야기해도 별로 신경 안 쓸 듯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 후로도 그곳에 몇 번 갔었는데 고장 난 환풍기가 여전히 털털거리며 돌고 있었다.”



9. ‘VELOUR’


앨범 마지막에서 두 번째 곡인 이 노래 제목의 출처는 뜻밖이다. 롱이 좋아하는 TV 프로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시즌 9에서 우승한 드래그 퀸(여장남자) 사샤 벨로어다. 롱은 벨로어가 휘트니 휴스턴의 ‘So Emotional’을 립싱크하는 장면을 보고 감명 받았다. 그래서 그 느낌을 노래에 담고자 했다. ‘Velour’는 이 앨범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리듬감이 넘치는 곡이다. 폴리바이닐 레코드의 세스 허바드 이사는 롱에게 이 노래를 앨범에 넣으라고 독려했다. 롱은 “이 앨범은 일렉트로닉 음반이지만 클럽 음악처럼 들리는 건 원치 않았다”면서 “하지만 결국 댄스곡을 딱 하나만 넣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10. ‘OMD’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마지막 곡은 1980년 대 신스팝 밴드 OMD에서 영감을 얻었다. “20대 시절 그 밴드의 진가를 알았다”고 롱은 말했다.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구자인 그들은 늘 내 마음 가까이 있었다.” 곡 전체를 흐르는 맥박 같은 신시사이저 사운드는 OMD의 1983년 앨범 ‘Dazzle Ships’에 수록된 ‘Of All the Things We’ve Made’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 곡은 거의 전부 롱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첫 번째 악기인 아카이 AX60 신시사이저로 만들었다. “알고 보니 인기가 높은 신시사이저는 아니지만 내겐 정말 특별한 악기”라고 롱은 말했다. 그는 이 앨범을 만들고 나서 뜻밖에도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내 음악 인생과 작곡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고 그는 말했다. “이제 더는 그에 관한 노래를 쓸 필요가 없다.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일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 잭 숀펠드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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