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전기차 왜 이래?” 급제동 걸렸다
[전기차 캐즘]①
급성장 후 찾아온 국내 전기차 시장 침체기
수입차 테슬라 필두로 성장...국산차만 부진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무섭게 타오르던 국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동력이 사라졌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연초부터 부진에 빠진 것이다. 친환경 차로 불리며 너도나도 전기차를 구매하던 시기가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캐즘’(Chasm·급격한 성장세 이후 정체기)이 도래했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당분간 고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열심히 달리던 국산 전기차 급제동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기차 시장(수입차 및 상용차 포함)은 전년 동기(15만7906대) 대비 0.1% 증가한 15만8009대로 집계됐다.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던 국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 폭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지난 2022년 전기차 시장 성장률은 38.3%였다.
당시 업계는 국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 정체를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글로벌 시장 상황이 여전히 좋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완성차 업체가 수출한 전기차는 전년 동기(22만507대) 대비 57.3% 증가한 34만6880대였다.
세계 시장의 흐름도 나쁘지 않았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포함)의 규모는 1407만3000대로 집계됐다. 시장 성장률은 23.3%포인트(p) 줄었지만, 여전히 33.6%로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시장의 예상과 달랐다. 올해부터 신차 수요가 급격히 줄었다. 올해 1분기(1~3월) 내수 시장의 전기차 등록 대수는 전년 동기(3만6024대) 대비 29.3% 감소한 2만5461대로 집계됐다.
이런 시장 침체는 국내 완성차 업계에 곧바로 타격을 줬다. 올해 1분기 국내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판매 대수(내수 기준)는 전년 동기(3만982대) 대비 51.4% 감소한 1만5055대에 불과했다.
국내 1~2위 완성차 업체인 현대자동차와 기아도 다를 것 없었다. 올해 1분기 현대차의 전기차 판매 대수(상용차 포함)는 전년 동기(1만7044대) 대비 59.5% 감소한 6906대였다. 같은 기간 기아의 전기차 판매 대수는 전년 동기(1만3938대) 대비 54.9% 줄어든 6279대로 나타났다.
내수 시장에서만의 문제로 보기도 어렵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올해 1분기 전기차 수출 대수는 전년 동기(9만1450대) 대비 10.7% 감소한 8만1631대에 머물렀다. 해외에서도 국내 완성차 업체가 고전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콧대 높던 제조사 돈 풀었다
반면 수입차는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규 등록된 수입 전기차는 전년 동기(4854대) 대비 110.8% 늘어난 1만237대로 집계됐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과 달리 성장세를 보였다. 이쯤 되면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는 ‘전기차 캐즘’은 국내 완성차 업체에만 해당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수입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는 ‘중국산 테슬라’로 불리는 리튬인산철(LFP) 모델의 유입이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면서 “여기서 주목할 점은 비싼 전기차 가격에 거부감을 느끼던 수요자들이 가성비 좋은 차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테슬라라는 브랜드가 보장하는 상품성에 기존보다 낮아진 가격까지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올해 1분기 수입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를 이끈 것은 6012대가 팔린 테슬라의 모델 Y다. 이 기간 전체 수입 전기차 판매 대수의 58.7%를 차지했다. 테슬라 모델 Y는 상품성과 합리적 가격을 갖춘 차로 평가받는다.
한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요소를 모두 갖춘 것이다. 딜로이트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 91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국내 소비자들은 차량 브랜드 선택 시 차량 성능(55%), 품질(51%), 가격(49%)을 가장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과 다른 전개에 전기차 집중 전략을 펼치던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유인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지난 2월 전기차 구매 고객에게 인기 가전을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펼쳤다. 이후에는 전기차 구매 시 최대 300만원 할인, 충전기 설치 비용 지원 등을 제공 중이다. 기아도 전기차 구매를 촉진하기 위한 할인 정책을 현대차와 유사하게 펼치고 있다. KG모빌리티(KGM)는 수십만 원 상당의 휴대용 충전 케이블 지원, 최저 3%대 저금리 할부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연초 예상과 달리 재고 물량이 꽤 쌓여 있는 상황”이라면서 “일부 업체는 대량 생산 방식에서 선주문 후생산 방식으로 변경한 것으로 안다. 당분간 전기차 수요 증진을 위한 프로모션은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