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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에 발목 잡힌 북한 경제 어디로] ‘체제 유지+경제 발전’ 이룬 싱가포르 모델에 무게?

[이념에 발목 잡힌 북한 경제 어디로] ‘체제 유지+경제 발전’ 이룬 싱가포르 모델에 무게?

일당우위제도에 국가자본주의 체제…북한도 법과 제도, 경제 체계 신속한 정비 절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6월 11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시내를 참관했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 동남부의 마리나베이에 있는 초대형 식물원 가든바이더베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전망대, 에스플러네이드와 관광명소 머라이언 파크의 연결지점 등을 방문했다. / 사진:연합뉴스복합리조트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겼다. 가장 큰 의미는 은둔 국가였던 북한이 드디어 바깥세계로 나오게 됐다는 데 있어 보인다. 북한 최고 지도자가 중국과 소련·러시아 이외의 나라를 방문한 것은 1965년 김일성 주석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이래 53년 만에 처음이다. 김 주석은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반둥회의(Bandung Conference) 1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해 중국·라오스·캄보디아를 비롯한 아시아·아프리카의 30여개 나라의 정부수반과 회담했다. 지금 세계는 당시와 너무나도 다르다. 글로벌 사회가 커다란 변혁을 겪는 동안 북한은 은둔하며 자신만의 고치 속에 갇혀있었던 셈이다.

눈여겨볼 점은 김일성 주석의 손자인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이 제공한 비행기를 타고 갔다는 사실이다. 김 위원장은 6월 10일 출입문 옆에 중국 국기인 대형 오성홍기가 선명한 에어차이나 여객기를 타고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이 장면은 다음날 북한 노동신문 1면(출발장면)과 2면(도착장면)에 사진과 함께 상세히 보도됐다. 노동신문 1면 사진에 김 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오성홍기가 커다랗게 보이는 중국 여객기에 오르는 사진이 게재됐다. 2면에는 알파벳으로 에어차이나, 간자체 한자로 적힌 중국국제항공(中国国际航空) 표식이 선명한 여객기에서 김 위원장이 내리는 사진들이 게재됐다.
 53년 만의 해외 방문
이날 평양 순안 공항에선 두 대의 에어차이나 비행기와 김 위원장의 전용기인 참매 1호(1993년 단종된 소련제 IL-62M 기종)가 1시간 정도 간격으로 이륙했다. 이들 비행기는 평양-베이징 항공로와 베이징-싱가포르 항로를 차례로 비행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난해 최장 1만㎞ 정도를 날아갈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륙간탄도탄(ICBM)급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며 전 세계를 위협하면서도 최고지도자를 평양과 싱가포르 간 4500㎞ 거리를 안전하게 이동시킬 수단은 없는 북한의 실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1988년 설립된 에어차이나는 중국의 국영·국책 항공사로서 중국 항공사 중 유일하게 기체에 오성홍기를 표시한다.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을 허브로 삼는다. 항공기 동체에 간자체로 적힌 중국국제항공(中国国际航空)이란 항공사 명칭 붓글씨는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사인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이 써준 것이다. 게다가 에어차이나는 붉은 봉황 세 마리가 VIP라는 알파벳을 형상화하고 있는 로고를 기체의 꼬리날개에 그려 넣고 있다. 항공사가 모든 승객을 VIP로 모시겠다는 고객 제일주의의 자세를 보여주기 위한 로고다. 개혁·개방으로 고객 마인드가 정착한 중국을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를 오가는 길에 이용한 에어차이나의 보잉 747 기종은 미의 보잉사가 제작한 기종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 위원장의 비행기 여행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김 위원장의 6·12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 경제위기 탈출을 위한 대외 개방과 내부 개혁을 시작하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경제개발만큼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고스란히 유지하는 ‘체제 유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를 위해 중국·베트남·싱가포르·쿠바 등 다양한 국가의 체제전환과 경제개발 모델을 이미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는 공산당 일당독재체를 확실히 유지하면서도 외자 유치로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 모델에 가장 신경을 써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에 중국을 두 차례 다녀오고 싱가포르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다른 모델도 새롭게 모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관광과 해외 송금으로 경제 활력을 얻고 있는 쿠바 모델도 참조할 수 있어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이번 싱가포르 방문에서 체제유지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룬 싱가포르 모델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 전날인 6월 11일 심야에 가든스바이더베이 식물원(북한에선 화초원으로 표현), 마리나베이샌즈 복합리조트(IR) 지붕 위에 위치한 스카이공원, 싱가포르항 등을 둘러봤다. 한결 같이 전 세계 관광객과 달러를 끌어 모으는 싱가포르의 관광 명소다. 게다가 싱가포르의 발전상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인데도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 시찰에 나섰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한가하게 야경 구경에 나선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회담 전날 한가하게 야경 구경?
북한 노동신문이 6월 12일 이런 사실을 1면 전면에 15장의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했다는 점도 싱가포르 모델에 무게를 실어준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귀국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라며 “오늘 참관을 통해 싱가포르의 경제적 잠재력과 발전상을 알게 되었고 귀국에 대한 훌륭한 인상을 가지게 됐다”라고 말했다. 의례적인 수준을 넘어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의 경제 발전 모델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사실 싱가포르는 서방 국가로 통하고 개방경제로 명성이 높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독특한 모델이다. 놀라운 사실은 싱가포르가 국부 리콴유(李光耀, 1923~2015년) 초대 총리 이후 인권·복지를 앞세운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거부하고 권위주의 통치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세계적 수준의 경제적 번영을 이뤘다는 사실은 더욱 놀랄 일이다. 싱가포르는 개방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2018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명목금액 기준으로 세계 8위인 6만1766달러에 이른다. 구매력 기준(PPP)으로는 9만8014달러로 세계 3위다. 중동 산유국 카타르(12만4927달러)와 유럽의 강소국 룩셈부르크(10만9192달러)에 뒤졌다.

이처럼 싱가포르는 중국과 더불어 체제 유지와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성공 모델이다. 바로 김 위원장이 굳이 싱가포르 시찰에 나선 이유일 것이다. 체제 유지 측면에서 싱가포르는 김 위원장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싱가포르는 우선 정치적으로 ‘일당우위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유리한 선거제방식 등을 바탕으로 집권당이 사실상 의회를 독점하는 독특한 제도다. 리 초대 총리가 1965년 독립부터 90년까지 장기 집권했으며, 2004년부터 15년째 장기 집권 중인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그의 아들이라는 점도 김 위원장의 눈에는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서구식 개인주의를 배격하고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워 국민에게 공동체에 대한 복종을 요구한다. 서구에선 이를 ‘권위주의 사회체제’로 본다.

싱가포르는 시장경제와 대외개방을 바탕으로 발전했지만 국가가 대기업을 소유하는 독특한 시스템 때문에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평가된다. 외국 기업이 진출하고 투자하는 것은 자유지만 알짜 기업과 산업은 정부가 좌우한다. 지난 1974년 싱가포르 정부가 100% 투자해 설립한 국영 투자회사 테마섹 홀딩스가 대부분의 대기업을 장악하고 있다. 테마섹은 이동통신업체 싱텔을 비롯해 전력·항만·지하철 등 대부분의 기간산업은 물론 싱가포르항공·DBS은행(개발은행)·해황항운·래플스호텔 등 지명도가 있는 대부분의 대기업을 소유한다. 신문·방송 등 모든 언론사도 테마섹 소유다. 2017년 97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공룡기업 테마섹의 최고경영자는 리셴룽 총리의 부인인 호칭(何晶)이다. 싱가포르라는 나라를 국부 리콴유의 아들과 며느리가 세습·가족 통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싱가포르에선 이들이 실력으로 자리에 올랐을 뿐 물려준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상이 어떠하든지 간에 김 위원장으로선 개방 이후에서 국유기업을 모두 손아귀에 쥘 수 있는 방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시찰한 곳 중에서 마리나베이 샌즈 복합리조트는 특히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트럼프 지지자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샌즈그룹의 셸든 아델슨 회장이 총액 80억 달러를 투자하고 한국의 쌍룡건설이 지은 시설로 싱가포르의 새로운 랜드마크 노릇을 한다. 쇼핑·음식·레저에 카지노를 더한 가족 중심의 대규모 리조트로 전시회장·회의장으로도 쓸 수 있는 싱가포르의 명물이다.

김 위원장이 그동안 마식령 스키장이나 갈마반도 리조트 등을 건설하며 관광에 관심을 쏟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싱가포르에서 직접 살펴본 복합리조트를 유치해 중국의 카지노 관광객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시절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수도권에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도 이용할 수 있는 복합리조트’ 건설을 타진했다가 거절당했던 아델슨 회장이 북한에 투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델슨 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중국의 마카오에 대규모 복합리조트를 지어 도시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은 거물이다. 이를 바탕으로 마카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1만4430달러에 이른다. 중국의 특별자치구이기 때문에 국가별 순위에선 빠지지만 카타르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한다.

외화를 얻을 수 있는 관광 중심으로 민간경제를 활성화한 쿠바 모델도 부분적으로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민간경제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이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쿠바는 2011년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경제사회개혁방안’을 의결하고 민간경제와 관광산업을 육성해왔다. 당시 쿠바는 택시·렌트카·민박집·민영식당·이발소·청소업·수리업·건설 노동 등 관광산업 진흥과 관련이 큰 180여 분야를 우선 민간에 개방했다. 그 결과 2008년 15만 명에 불과하던 자영업자가 2015년에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해외 거주 쿠바인들의 송금이 현재 매년 35억 달러 이상, 관광객이 뿌리는 외화도 매년 30억 달러를 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21세기 글로벌 개방 경제 사회에서 다분히 이단아다. 개방해도 현재의 경제체제 아래에선 외국이 얼마나 투자할지 의문이다. 그런 실상이 가장 환히 보이는 게 북한 헌법이다. 북한 헌법을 살펴보면 오래된 이념 서적 같다는 인상이 강하다. 현실보다 구호가 앞선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라는 제3조부터 실질보다 이념을 숭상한다는 느낌이다. 북한으로선 국가 정체성를 표현한 조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생소한 내용을 본 해외 투자가들은 투자 효율과 자금 회수 가능성을 의심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와 자립적 민족경제’를 언급한 제19조로 시작하는 제2장 경제 분야 조문을 보면 더욱 그렇다. ‘생산수단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한다’는 제20조 규정은 한 세기 전 러시아 혁명 직후 볼셰비키들이 외치던 구호나 진배없다.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공유화했다가 생산성 하락으로 몰락한 과거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경제체재를 여전히 신봉하는 인상을 해외 투자가들에게 줘서 이로울 게 없다. 개인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해 경제 발전을 이룬 중국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더구나 제34조는 ‘인민경제는 계획경제’라고 규정해 국가 경제를 중앙계획체제로 관리하도록 규정했다. 과거 공산 진영의 상징이 되다시피 했던, 극심한 물자부족 사태 끝에 실패로 판명이 난 중앙경제체제를 아직도 헌법에 명문화한 나라는 북한을 비롯해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아스럽다. 중국도 이를 포기한 지 오래다. 쿠바도 그 한계를 깨닫고 경제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제33조다. ‘국가는 생산자 대중의 집체적 힘에 의거하여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관리 운영하는 사회주의 경제관리 형태인 대안의 사업체계와 농촌경리를 기업적 방법으로 지도하는 농업지도체계에 의하여 경제를 지도 관리한다’라는 내용이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1961년 12월 남포시의 대안전기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확립한 북한의 경제·경영 노선이다. 공장관리운영에 대한 최종 권한과 책임을 지배인에서 공장 당위원회로 넘긴 것이 골자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고려대 남승욱 교수는 “과거 북한을 방문했을 때 공장 당위원회가 여전히 사업소 경영을 좌우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대안의 사업체계를 헌법 조문에 넣어 헌법적 권위를 부여했다. 이를 통해 당의 지도적 역할과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보다 정치적·도덕적 자극을 앞세우는 군중노선, 중앙집권화한 계획적 관리체제를 강화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경제에서 정치 논리를 앞세워 노동자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억제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북한 경제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비슷한 것으로 김일성 주석이 1959년 평양 주변 청산리 농장을 방문해 지시한 내용이 있다. 북한에서 ‘청산리 정신’으로 부르는 농업 관리법이다. 이 역시 헌법적 권위를 가진다. 김 주석이 친히 지시하고 지도한 것이기 때문에 이 역시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이 과거 북한을 방문했던 농업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물론 북한은 법치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헌법이 얼마나 권위를 갖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법이 제대로 권위를 갖고 사회를 합리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제대로 정리해 새로운 시대를 맞을 필요는 분명히 있어 보인다. 인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해 보이는 부분이다.
 노동자의 자발성·창의성 제한적
조선중앙은행이 발행해 북한에서 사용하고 있는 화폐들. / 사진:DPRK360 제공
북한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전환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국제사회에 데뷔하면서 이제 그의 손에 북한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번영할지가 달렸다. 북한이 지금 직시할 부분은 53년 전인 1965년 김일성 주석이 반둥회의 10주년을 맞아 인도네시아를 방문할 때와 세상이 너무도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를 한번 반추해보자.

반둥회의는 김 주석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기 10년 전인 1955년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하거나 건국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29개국이 참가해 반제국주의·반식민주의·민족 자결주의를 천명했다. 이 때문에 아시아·아프리카 회의(Asian·African Conference, AA회의)라고도 한다.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1889~1964년) 초대 총리,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1901~1970년) 초대 대통령,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년) 초대 총리,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1918~1970년) 2~4대 대통령 등 제3세계의 쟁쟁한 인물이 주도했다. 하지만 이 회의 이후 2차 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주도국 인도가 파키스탄과 영토 분쟁을 겪고, 이집트가 1958년 시리아와 함께 결성한 통일아랍공화국(UAR)이 1961년 9월 시리아가 탈퇴하며 무너지는 등 내우외환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둥회의를 계기로 제3 세계는 자신들의 존재를 자각하게 됐다. 사람으로 치면 자아성립기다. 미국 주도의 서방과 소련 중심의 공산권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제3세계의 존재가 국제 사회에서 선명하게 각인됐다. 아울러 동서 진영 사이의 대립을 완화하고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균형 진영(Balancing Bloc)’의 필요성이 대두 됐다.

당시 국제사회는 냉전 속에서 동서 진영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었다. 1949년에는 미국 주도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창설됐고, 1955년엔 소련이 이끄는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결성됐다. 이들 동서 진영의 집단군사동맹은 심각하게 대립했다. 1956년 헝가리에서 시민들이 개혁을 요구하고 너지 임레(1896~1958년) 총리가 바르샤바 조약기구 탈퇴를 선언하자 소련군 전차부대가 부다페스트에 진입해 사태를 무력 진압했다. 1968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프라하의 봄’ 사태가 벌어지고 개혁파인 알렉산데르 둡체크(1921~1992년) 공산당 서기가 시민 자유를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자 소련이 바르샤바 조약기구 동맹군을 이끌고 이 나라를 침공하기도 했다.

반둥회의와 헝가리 사태 등을 계기로 강대국 진영에 속하지 않거나 이에 대항하려는 나라들이 모인 국제 조직인 비동맹 운동(非同盟運動, Non-Aligned Movement, NAM)을 조직하고 1961년 9월 1~6일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1차 총회를 열었다.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브로즈티토(1892~1980년) 대통령이 반둥회의를 주도한 인도의 네루 총리,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 이집트의 대통령 가말압델 나세르와 손잡고 비동맹 운동을 시작한 셈이다. 비동맹 운동은 1979년 9월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제6차 총회에서 아바나 선언을 채택해 ‘강대국이나 진영에 대항하는 것은 물론 제국주의·식민주의·신식민주의·인종차별주의와 모든 형태의 외국 침략·점령·지배·간섭·패권과 투쟁해 비동맹 국가들의 독립·주권·영토통일·안보를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런 배경 속에서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1961년 비동맹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해보려고 반둥회의 1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한 것이다. 2012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16차 대회 당시 120개 회원국과 18개 옵서버 국가를 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990년대 소련이 무너지고 동서 냉전이 끝나면서 비동맹운동도 시들해졌다. 소련은 사라졌고 비동맹운동도 동력을 잃으면서 북한이 기댈 언덕은 거의 없다.

중국도 지정학적인 이유로 북한을 당겼다 놓았다 할 뿐 진정한 친구로 보기도 어렵다. 세계 2위 규모의 경제력을 자랑하며 일대일로를 추구하며 글로벌 전략을 구사하는 중국에 북한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형제국가라기보다 부담스러운 국가일 수밖에 없다. 이제 북한은 자신이 가진 자산을 바탕으로 홀로서기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개방경제와 내부 개혁으로 실력을 쌓아야 한다.
 국제무대에 한걸음 다가와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6·12 북·미 정상회담을 치르면서 국제무대에 한걸음 다가선 것은 이번 회담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가까이 지내면서 한국·중국·일본의 지원을 받는 것만으로는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외부 지원과 투자를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이끄는 내부 경제 시스템 구축이다. 장마당과 사무역 등 북한 내부에 이미 존재하는 민간경제 부문의 가치를 인정하고 활성화시키는 것이 절실하다. 그러기 위해선 내부적으로 법과 제도, 경제 체계 정비에 신속하게 착수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전 세계 투자 자금이 몰리게 하기 위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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