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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첫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변화? 그 나물에 그 밥 …

[문재인 정부 첫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변화? 그 나물에 그 밥 …

전문가 “돈만 쓰고 문제 해결 비전 없어”… 2040세대 “현실과 동떨어져”



문재인 정부의 첫 저출산 대책이 나왔다. 정부가 출산율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고 ‘2040세대 삶의 질’ 개선으로 정책 방향을 바꾼 것이 특징이다. 출생아 수 급감은 장시간 노동 및 고용·주거 불안, 성 불평등에서 비롯한다는 진단에 따른 변화다. 그러나 이번 대책의 구체적 내용은 지난 정부가 내놓은 출산·양육지원 정책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생각과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뜻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현실과는 동떨어진 대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5일 서울시 구로구의 한 행복주택에 입주한 신혼이면서 맞벌이 교사 부부인 우재완·이진경씨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부는 신혼부부의 주거비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신혼희망타운을 2022년까지 총 10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 사진:연합뉴스
“기존 생각과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6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간담회를 주재하면서 “심각한 인구 위기 상황을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 지금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주문했다. 대통령은 또 “여성이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면서도 자신의 일과 삶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백화점식 저출산 대책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였다. 위원회는 이날 여성들이 일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여성의 삶’에 집중하는 정책적 패러다임 전환이 절박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그로부터 반년여 만인 7월 5일 문재인 정부는 일과 생활의 균형, 차별 해소 등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둔 첫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에서 눈에 띄는 건 합계출산율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저출산 대책은 출산율을 ‘언제까지 얼마만큼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도 출산율·출생아 수라는 목표에 집착해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일과 삶의 균형’으로 저출산 대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일과 생활의 균형과 모든 출생에 차별이 없는 지원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출산·보육 중심의 단편적인 대책에 머물렀던 지난 정부에 비해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크게 보면 기존 대책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이번 대책의 당사자인 2040세대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신혼희망타운 10만 가구 공급
이번 저출산 대책은 크게 ‘주거 지원’과 ‘출산·육아 지원’으로 나뉜다. 정부는 신혼부부 등을 위해 싼 값에 주택을 공급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2040세대를 위해 다양한 출산·양육 지원을 하기로 했다. 우선 주거 지원은 파격적이다. 이른바 ‘신혼희망타운’이라 이름 붙인 아파트를 신혼부부에게 주변 시세보다 20~30% 저렴하게 공급하는 게 골자다. 이명박 정부가 도입했던 보금자리주택과 유사하다. 보금자리주택은 무주택 서민을 위한 값싼 분양 아파트로, 가격이 주변 시세의 절반 수준이었다. 신혼희망타운은 서울 위례신도시, 평택 고덕신도시 등지에서 나온다. 2022년까지 총 10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여기에 주택구입 자금을 연 1.3% 고정금리로 최대 4억원까지 최장 30년 간 빌려준다. 생애 처음으로 집을 사는 신혼부부에게는 취득세 50%를 감면해 준다. 대상은 결혼 7년차 이내 신혼부부나 1년 내 혼인신고 예정인 예비부부다. 결혼하지 않고 만 6세 이하 자녀를 혼자 키우는 ‘싱글 맘·대디’ 6만 가구에게도 신혼부부와 같은 자격을 준다.

이와 함께 결혼비용 부담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는 청년을 위해서는 임대주택·금융 지원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오는 2022년까지 청년주택 공급 규모를 27만 가구로 2만 가구 더 늘리고, 5만 명 대상이었던 대학 기숙사 입주 규모도 6만 명으로 확대했다. 청년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최고 금리 3.3%, 이자소득 50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주는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도 내놓을 예정이다. 임차보증금과 월세를 동시에 대출해주는 ‘청년 전용 보증부 월세대출’ 상품도 올해 말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이나 전셋값이 최근 몇 년 간 다락같이 오르면서 신혼부부나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은 더 커졌다”며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을 늘리고 수도권 아파트를 2억∼4억원대에 공급한다면 신혼부부나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을 다소나마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산·육아 지원책은 양육 부담은 낮추고 부모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부모의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실현에 방점이 찍혔다. 중위소득 120%(3인가구 기준 442만원)까지 지원하던 아이돌봄서비스를 중위소득 150% 가구(553만원)까지 확대하고, 저소득층의 아이돌보미 이용금액에 대한 지원도 80%에서 최대 90%까지 늘리기로 했다.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는 앞으로 최대 2년 간 임금 삭감 없이 일하는 시간을 하루 1~5시간 줄일 수 있다. 남성의 육아휴직 활성화 방안도 나왔다. 남성이 쓰는 배우자 유급출산휴가는 현행 3일에서 10일로 대폭 늘어나고, 휴가 사용기간도 출산 후 30일 이내에서 90일 이내로 늘어난다. 또 1회 분할사용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부모 동시 육아휴직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도 추진키로 했다.
 매년 약 4조원 추가 투입해야
지원 대상도 넓혔다. 그동안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보험설계사나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직과 자영업자·단기근로자는 출산휴가 90일 간 별다른 급여를 받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월 50만원씩 총 150만원의 출산지원금을 받는다. 정부는 약 5만 명의 여성이 추가로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한다. 만 1세 미만 아동의 의료비는 사실상 없어진다. 또 외래진료비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은 현재보다 66% 경감해주고, 나머지 금액은 임산부에게 일괄 지급하는 국민행복카드로 결제할 수 있도록 바꾸기로 했다. 정부의 대책 발표 직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출산 지향적인 대책에서 탈피해 삶의 질 개선에 주안점을 두고 정책 방향을 바꾼 것을 높게 평가한다”며 “기혼자 출산과 양육지원제도를 대폭 확대했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존 정부의 대책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이미 하고 있던 지원을 확대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기존의 정책을 새로 정립하려면 면밀한 분석과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차별성과 성과를 강조하다 보니 결국 큰 그림은 바꾸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도 어느 정도 이를 인정한다. 이창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기획조정관은 “자꾸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보다는 육아휴직, 근로시간 단축 등 기존에 만들어진 제도의 문턱을 낮추고 차별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재정만 투입하는 패턴이 이번에도 반복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 10년 간 약 80조원을 쏟아 부었다. 현 정부 역시 이번 저출산 대책을 시행하기 위해 매년 약 4조4200억원을 쓸 예정이다. 주거 지원(5년)에 연평균 3조5200억원, 출산·양육 지원에 약 9000억원이다.

이렇게 재정만 투입하는 대책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출생아 수는 35만7700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30만명대로 주저앉았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평균 자녀 수인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최악의 출산율 시나리오로 생각했던 1.07명보다 더욱 악화한 수치다. 이 같은 출산율 급락은 인구 감소와 노동력 고갈로 이어져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인구 감소 시기가 2026년에서 2020년대 초반으로 앞당겨질 것으로 보고 있다. 월별로는 인구 자연감소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의 출생아 수는 2만5000명으로 사망자(2만6900명)보다 적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도 지난해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는 노동력 부족 규모가 152만 명에 이른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출산율 저하 등으로 취업자 수 증가폭은 앞으로 20만 명대에서 계속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출생아 수 30만 명 붕괴’ 막는 게 목표
하지만 정부와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출생아 수 감소 속도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만큼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일단 출생아 수 감소 속도를 늦추는 것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저출산위 관계자는 “출생아 수가 30만 명 선까지 무너지면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번 대책은 발등의 불이 된 출생아 수 30만 명 붕괴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급한 불을 끄려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절박감이다. 그렇더라도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의 첫 저출산 대책이었던 만큼 2040세대는 아쉬움을 나타낸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최근 결혼한 31세 남성 이모씨는 “지원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있는 남성 육아휴직이나 배우자 출산휴가도 눈치가 보여 마음 놓고 쓸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허무한 대책”이라고 꼬집었다.

경기도 성남시에 살고 있는 직장인 이모(33)씨도 “신혼부부를 위한 아파트가 많이 생겨난다지만 정작 직장 근처의 집을 분양 받으려면 수천대 1의 경쟁을 뚫어야하고, 양육비 지원 규모도 현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며 “결혼은 하겠지만 아이는 지금보다 나은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낳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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