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저출산 대책은] 워라밸 이뤄주고 출산·육아 돈 걱정 없게
[유럽의 저출산 대책은] 워라밸 이뤄주고 출산·육아 돈 걱정 없게
영국·프랑스·독일 ‘출산’ 넘어 ‘포괄적 가정 정책’ … 보육도 국가가 적극 뒷받침 “1980년대 일본도 머지 않아 저출산·고령화 사회가 닥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구 변화의 거대한 흐름을 도무지 막을 방법이 없었다.” 사카기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대장성 차관은 10년 전만 해도 인구 감소는 불가항력적인 문제로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카기바라 전 차관은 1990년대 ‘미스터 엔’으로 불리며 일본의 경제·통화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최전선에서 이를 추진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5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는 달라진 생각을 펼쳤다. “젊은층 감소는 국가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준다. 복지 등 출산 장려책을 통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국 정부가 정책 역량을 발휘하면 저출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사카기바라 전 차관의 생각이 변한 것은 2000년대 이후 국가 정책을 통해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사례가 속속 나와서다.
2000년 출산율이 1.66명으로 떨어졌던 영국은 2015년 1.87명으로 올랐고, 같은 기간 프랑스는 1.88명에서 1.97명으로 늘었다. 유럽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독일도 1.35명에서 1.47명으로 증가했다. 이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출산율 증가치 0.05명보다도 증가폭이 크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가장 먼저 산업화를 시작한 나라들이 모범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보면 출산율 하락과 고령화는 공급·생산성 감소로 이어진다. 시차를 두고 총수요가 줄어들며, 결국엔 전체 경제 규모가 쪼그라들게 된다. 최근 일본의 경우 일자리가 남아돌지만 일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경제성장률을 더욱 높일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다. 젊은 인구가 줄면 사회 전체적으로 활력이 감퇴돼 기술·제도 혁신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연금과 의료보험 등의 사회적 부담도 늘어난다. 경제, 나아가 사회 전체가 늙는 셈이다.
유럽 주요국들은 이런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일찌감치 해결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현재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 등 지역을 제외한 대다수 나라들도 저출산 문제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출산율 하락을 어떻게 방어하고 반등시키느냐가 인구 정책의 첫 번째 고민이다. 출산율을 끌어올린 나라들의 성공 비결은 뭘까. 이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마스터키는 없다. 출산자녀 수에 따른 감세 혜택 및 육아수당 지원부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휴가 제도 등 여러 층위별로 전방위 지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출산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 이런 문제 해결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1970년 2.3명으로 유럽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경제난에 따른 여성 경제활동인구 증가 등의 이유로 1990년 출산율은 1.71명으로 떨어졌다. 유럽에서 첫 인구 감소 국가도 프랑스다. 출산율이 감소하기 시작한 1970년대 말 대통령 직속 ‘인구 및 가족정책 고등위원회’를 설치해 출산율을 올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족정책 예산에 연 1200억 유로(약 157조원)를 쏟아 붓고 있다. 프랑스는 일하는 여성이 출산했을 경우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등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여성이 출산 후 1년 간 휴가를 다녀와도 돌아올 일자리를 보장하는 한편, 1년에 36일의 유급 휴가를 준다. 또 여성고용 촉진 정책을 추구하는 한편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을 병행해 임금 차별을 두지 않는다.
프랑스 정부의 금전 지원도 촘촘하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모든 의료비용을 100% 환급해주는 것은 물론 불임치료까지 100% 보험에서 부담한다. 임신 5개월부터 아이가 만 3세가 될 때까지 매달 지원금을 주고, 2명 이상의 자녀를 가진 경우 특별 수당도 준다. 주거세 등 각종 세금공제 혜택도 준다. 탁아소·유치원도 모두 정부가 비용을 댄다. 출산에 소요되는 비용을 없애고, 육아에 대한 부담을 줄여 출산율을 끌어올렸다. 아동이 질병을 앓거나 사고 등으로 장애가 발생해 부모가 일을 그만두고 보살펴야 하는 경우에도 가족수당을 지급한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지원 규모가 약간 다르지만, 사실상 무차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가 결혼을 꺼리는 점을 고려해 비혼 커플에도 법적 부부와 동일한 양육 혜택을 제공한다. 2016년 기준 프랑스의 혼외출산율은 59.7%나 된다. 프랑스 공교육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학비가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출산부터 육아, 학업까지 모두 국가가 책임지는 셈이다. 사카기바라 전 차관도 저출산 문제에 가장 잘 대응하고 있는 나라로 프랑스를 꼽았다.
프랑스는 1960년대에도 출산율을 대폭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사한 남성들을 대신해 여성들이 대거 경제활동을 시작했는데,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프랑스 정부는 국가 재건 차원으로 가족보건부 산하 국립인구문제연구소(INED) 등 기관을 주축으로 출산 장려 정책을 펼쳐 1960년 2.83명을 회복했다. 스웨덴은 남녀의 성적 평등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출산율 저하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성별 분업을 없애 여성의 부담을 낮추고 있다. 복지정책으로 육아를 할 수 있는 양호한 여건을 만들어 가정과 일의 양립을 지원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출산 이후 480일 간 유급 휴가를 쓸 수 있으며, 12세 이하 아동이 병에 걸려 돌봄이 필요한 경우 최대 연 120일 간의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다. 또 여성의 지속적인 노동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1974년 ‘부모휴가제도’를 도입해 남성도 자녀 출산·육아를 위한 유급휴가를 쓸 수 있다. 또 ‘아빠의 달’을 도입해 출산휴가 중 2개월은 의무적으로 남성이 휴가를 내야 한다. 이를 통해 남녀 간 임금·고용 차별을 해소하고 있다. 또 육아·재교육을 위해 근로자가 업무 시간을 선택할 수 있음은 물론 시간제 근로 전환도 가능하다. 시간제 근무자 중 희망자는 전일제로 복귀할 수도 있다. 물론 정부의 금전 지원도 있다. 주거 안정을 위해 자녀 수에 따라 월 600~1200크로나(약 8만~16만원)의 임대료를 지원한다. 16세 이하 자녀에게 매달 950크로나를 주는 자녀수당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복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영국도 출산율 끌어올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프랑스·스웨덴처럼 임산부를 위한 출산 전후 의료 혜택을 모두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산후우울증 등 정신치료까지 관리해준다. 영국 출산 장려책의 특징은 공교육 확대를 통해 부모의 육아 부담을 낮춰주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전역에 설치된 보육센터에서 아동을 보살피는 종일제 교육·보호 통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최근 재정 문제로 더 이상 확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영국의 출산율 상승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방과후·휴일·방학 등 부모가 돌보기 어려운 시간에 제공하는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도 주목할만하다. 부모의 가정과 일 병행을 지원하고 있다. 재원은 복권사업으로 조성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또 경제활동으로 바쁜 부모와 자녀 간에 애착형성을 위해 영유아 돌봄 및 교육을 지원하는 ‘슈어스타트’ 제도도 도입했다. 독일은 출산·육아는 사적 영역으로 취급해 금전·세제 지원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규모는 크다. 출산 직후부터 만 18세가 될 때까지 둘째 아이부터 194유로(약 24만원)의 돈을 매달 지원한다. 셋째는 200유로, 넷째는 225유로를 준다. 만 18세 이후 학업을 지속하거나 직업을 구하지 못한 경우 25세까지 지원한다. 한국은 자녀 수에 따른 지원금이 지방자치단체마다 제각각이다. 서울 용산·서대문·마포·영등포·강동구의 경우 첫째 자녀에 각각 10만원을 지급하고, 세 자녀 이상의 경우 마포·영등포·강남구는 300만~500만원을 준다. 독일은 다달이 지급하는 데 비해 한국은 일회성 지원이다. 독일의 경우 연봉 6만 유로 이상인 경우는 육아수당 대신 세금 혜택만 받을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8 근로임금과세(Taxing wages)’ 보고서를 보면, 독일의 무자녀 외벌이 가구 실질세부담률은 49.7%(지난해 평균임금 기준)다. 두 자녀 외벌의 가구의 경우는 34.5%. 15.2%포인트의 세금 감면 혜택이 있는 셈이다. 같은 조건을 가정했을 때 미국은 10.9% 포인트, 프랑스 8.2%포인트, 영국 4.8%포인트의 차이가 있다. 한국도 출산 장려를 위해 ‘자녀장려세제’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효성은 높지 않다. 무자녀 외벌이 가구의 실질세부담률은 22.6%며, 두 자녀 외벌이는 20.4%다. 격차가 2.2%포인트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은 9.8%포인트. 한국은 저소득층에만 집중된 데 비해 독일의 세제 지원은 보편적이다.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스웨덴·영국 등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나라들은 단지 단기적 출산율 증가가 아닌, 포괄적인 가족 정책으로 출산 문제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또 부모가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 규모가 크고 대상이 폭넓으며, 정책의 연속성도 높다. 김종훈 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장은 “국민들도 인구절벽의 심각성을 알지만 삶의 질을 포기하면서까지 출산을 바라지는 않는다”며 “저출산 대책은 청년 일자리와 주거 대책으로 이어지는 장기 사안이다. 현재 5년 단위의 저출산 대책을 다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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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출산율이 1.66명으로 떨어졌던 영국은 2015년 1.87명으로 올랐고, 같은 기간 프랑스는 1.88명에서 1.97명으로 늘었다. 유럽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독일도 1.35명에서 1.47명으로 증가했다. 이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출산율 증가치 0.05명보다도 증가폭이 크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가장 먼저 산업화를 시작한 나라들이 모범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보면 출산율 하락과 고령화는 공급·생산성 감소로 이어진다. 시차를 두고 총수요가 줄어들며, 결국엔 전체 경제 규모가 쪼그라들게 된다. 최근 일본의 경우 일자리가 남아돌지만 일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경제성장률을 더욱 높일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다. 젊은 인구가 줄면 사회 전체적으로 활력이 감퇴돼 기술·제도 혁신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연금과 의료보험 등의 사회적 부담도 늘어난다. 경제, 나아가 사회 전체가 늙는 셈이다.
유럽 주요국들은 이런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일찌감치 해결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현재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 등 지역을 제외한 대다수 나라들도 저출산 문제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출산율 하락을 어떻게 방어하고 반등시키느냐가 인구 정책의 첫 번째 고민이다. 출산율을 끌어올린 나라들의 성공 비결은 뭘까. 이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마스터키는 없다. 출산자녀 수에 따른 감세 혜택 및 육아수당 지원부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휴가 제도 등 여러 층위별로 전방위 지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출산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
프랑스 연 157조원 들여 출산율 2명 회복
프랑스 정부의 금전 지원도 촘촘하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모든 의료비용을 100% 환급해주는 것은 물론 불임치료까지 100% 보험에서 부담한다. 임신 5개월부터 아이가 만 3세가 될 때까지 매달 지원금을 주고, 2명 이상의 자녀를 가진 경우 특별 수당도 준다. 주거세 등 각종 세금공제 혜택도 준다. 탁아소·유치원도 모두 정부가 비용을 댄다. 출산에 소요되는 비용을 없애고, 육아에 대한 부담을 줄여 출산율을 끌어올렸다. 아동이 질병을 앓거나 사고 등으로 장애가 발생해 부모가 일을 그만두고 보살펴야 하는 경우에도 가족수당을 지급한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지원 규모가 약간 다르지만, 사실상 무차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가 결혼을 꺼리는 점을 고려해 비혼 커플에도 법적 부부와 동일한 양육 혜택을 제공한다. 2016년 기준 프랑스의 혼외출산율은 59.7%나 된다. 프랑스 공교육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학비가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출산부터 육아, 학업까지 모두 국가가 책임지는 셈이다. 사카기바라 전 차관도 저출산 문제에 가장 잘 대응하고 있는 나라로 프랑스를 꼽았다.
프랑스는 1960년대에도 출산율을 대폭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사한 남성들을 대신해 여성들이 대거 경제활동을 시작했는데,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프랑스 정부는 국가 재건 차원으로 가족보건부 산하 국립인구문제연구소(INED) 등 기관을 주축으로 출산 장려 정책을 펼쳐 1960년 2.83명을 회복했다.
스웨덴, 남녀의 성적 평등 지향
복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영국도 출산율 끌어올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프랑스·스웨덴처럼 임산부를 위한 출산 전후 의료 혜택을 모두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산후우울증 등 정신치료까지 관리해준다. 영국 출산 장려책의 특징은 공교육 확대를 통해 부모의 육아 부담을 낮춰주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전역에 설치된 보육센터에서 아동을 보살피는 종일제 교육·보호 통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최근 재정 문제로 더 이상 확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영국의 출산율 상승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방과후·휴일·방학 등 부모가 돌보기 어려운 시간에 제공하는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도 주목할만하다. 부모의 가정과 일 병행을 지원하고 있다. 재원은 복권사업으로 조성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또 경제활동으로 바쁜 부모와 자녀 간에 애착형성을 위해 영유아 돌봄 및 교육을 지원하는 ‘슈어스타트’ 제도도 도입했다.
영국, 공교육 확대로 육아 부담 줄여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스웨덴·영국 등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나라들은 단지 단기적 출산율 증가가 아닌, 포괄적인 가족 정책으로 출산 문제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또 부모가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 규모가 크고 대상이 폭넓으며, 정책의 연속성도 높다. 김종훈 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장은 “국민들도 인구절벽의 심각성을 알지만 삶의 질을 포기하면서까지 출산을 바라지는 않는다”며 “저출산 대책은 청년 일자리와 주거 대책으로 이어지는 장기 사안이다. 현재 5년 단위의 저출산 대책을 다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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