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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

[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

군중심리와 ‘토끼와 개구리’…시장서 한 발 떨어지고 분산투자해야



어느 날 토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토끼 한 마리가 불쌍한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독수리나 늑대처럼 무서운 짐승들의 먹이가 되기만 했어.” 다른 토끼들도 맞장구를 쳤다. “어디 그뿐인가? 여우나 뱀 같은 짐승들도 틈만 있으면 우리의 새끼들을 잡아먹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 “이 세상에서 우리처럼 불쌍하고 힘없는 짐승은 없을 거야. 우리는 하찮은 벌레보다도 못해.” “그래 이대로 살다간 우리 모두 결국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어.” 토끼들은 제각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결국 토끼들은 날마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가슴을 졸이며 살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것이 더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흥분한 토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수를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호숫가에 살고 있던 개구리들은 느닷없이 몰려오는 토끼들의 요란한 발소리를 듣고 너무 놀라 일제히 풍덩풍덩 물속으로 뛰어들어 몸을 숨겼다. 그러자 제일 앞에서 뛰어가던 토끼 한 마리가 이 광경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잠깐만 기다리게. 쓸데 없이 우리의 목숨을 끊는 일을 그만두자고. 이리 와서 이 개구리들을 좀 보게. 여기에 우리보다 더 힘없고 겁이 많은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네.”
장-레옹 제롬 ‘튤립 바보’, 1882년. 네덜란드 하를럼의 성 바보 교회 앞 튤립 꽃밭. 이곳은 1637년 튤립 거품이 처음 꺼진 곳이다.
힘 센 동물들에 둘러싸인 토끼들이 자살을 생각하게 된 것은 군중심리 때문이다. 토끼 한 마리가 부추긴 불안감이 주변으로 번지면서 엄청난 힘이 만들어지고, 이는 토끼 전체를 비정상적 집단 행동으로 내몰았다. 군중심리는 공포 속에서 자라나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고 결국 파국을 부른다. 군중심리란 다수에게서 영향을 받아 자신의 태도나 믿음, 감정, 행동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개개인은 제각각이지만 군중 안에 속하게 되면 절제력을 잃고 생각 없는 인형처럼 자기 의견을 잃어버린다. 집단의 생각이 개인의 생각을 점령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군중심리가 원인이 된 투기 사건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 광풍이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튤립 투기 열풍이 불었는데, 그 열풍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튤립 구근 하나가 호화 주택 세 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에 이르렀다. 결국 거품이 꺼지면서 수많은 사람을 알거지로 만들었다. 이 튤립 투기 사건은 돈 앞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 금융시장의 제도는 당시에 비하면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돈에 대한 갈망과 그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변하지 않았다. 17세기와 21세기 투기의 차이점은 그 대상이 튤립 구근에서 주식, 부동산, 상품과 통화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군중심리 따르면 비싸게 사서 싸게 팔게 돼
주식시장은 잠시라도 방심을 허용치 않는 위험한 곳이다. 투자 손실은 일상사고, 어렵게 쌓은 공든 탑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기도 한다. 개인은 혼자선 이런 위험한 바다를 헤쳐나갈 수 없다. 집단의 힘을 빌리고 싶어 한다. 위험이 닥쳐도 여러 사람이 함께 있으면 안정감이 생긴다. 위험이 언제 어느 곳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선 남들을 따라 행동하는 게 살아남는 방법일 수 있다. 그래서 개인은 집단이 가진 정보에 영향을 받는다. 집단이 답을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단에 의지하는 투자 방식은 아주 위험하다. 이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주식 값이 싼 것은 공급자가 수요자보다 많을 때다. 군중심리를 좇게 되면 주가가 쌀 때엔 사지 못한다. 반대로 주가가 오르는 건 주식을 사려는 사람이 많을 때인데, 대중을 따르는 사람은 그제야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비싸게 산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돈을 버는데, 늘 거꾸로 투자한다며 한숨짓는 개인이 많은 이유다. 군중심리를 따르다간 손해를 본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래서 투자의 고수들은 군중심리를 가장 경계한다.

국내 유수의 자산운용사인 에셋플러스는 한국 자본주의의 메카 여의도에 없다. 여의도와는 한참 떨어진 경기도 판교에 둥지를 틀고 있다. 회사 설립 당시 아예 제주도에 본사를 세우려고 부지까지 매입했지만 직원들의 출·퇴근과 고객관리 등의 문제가 있어 판교로 선회했다. 가치투자로 이름을 떨쳤던 메리츠자산운용도 전통 한옥들이 들어찬 서울 북촌에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 본사는 뉴욕 월스트리트와 한참 떨어진 네브라스카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 오마하에 있다. 이들 회사의 공통점은 군중심리에 맞서는 역발상이다. 대한민국에서 날고 긴다는 투자 전문가들이 모여 있고 시장의 심장이 펄떡거리며 날마다 새로운 정보가 흘러다니는 곳을 그들은 의도적으로 등진 것이다. 그리고 더 낳은 투자성과로 그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아무리 고수라 해도 한 곳에 몰려 있으면 분위기에 휩쓸릴 위험이 커진다. 냉정해야 할 투자 판단이 흔들리고 자기도 모르게 군중심리에 젖어들게 된다. 같은 생각, 믿음, 심지어 감정마저도 주변 사람들과 동일시하면서 집단적 행동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야구장에 가본 사람은 흥분한 군중 속에서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람들과 섞여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며 껑충껑충 뛰게 된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데 같은 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천편일률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다. 결국 투자에 있어선 뭉치지지 말고 흩어져야 사는 것이다.
 증시는 절대 경제이론대로 움직이지 않아
일반투자자들도 의식적으로 시장에서 한 걸음 멀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틈만 나면 펀드 수익률을 계산하고 주가를 들여다보거나 증권사의 시황보고서를 읽는 사람치고 투자에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집단적 심리에 휘말려 판단력이 흐려진다. 투자 성과를 자주 확인하는 사람은 보유 종목의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수시로 목격하게 된다. 이익을 보면 더 오를 것 같아 흥분하고 손실이 나면 더 떨어질까 불안해 한다. 그래서 주가를 자주 들여다 보는 사람은 조급증의 포로가 된다. 이것이 크게 번지면 비 이성적 과열이나 투매를 부르기도 한다. 모두를 실패자로 만드는 게임이다.

증시는 절대 경제이론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주가는 인간 행동의 결정체이고, 시장은 우연이 지배하는 곳으로 보는 것이 옳다. 아무리 뛰어난 투자자라도 우연한 사건 앞에선 바람 앞의 등불이다. 만약 우연이 개인투자자들의 집단 광기와 만나면 그건 파국을 뜻한다. 1987년 10월 뉴욕증시가 폭락한 검은 월요일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투자자들의 비이성적 투매가 주가 낙폭을 깊게 했다.

증시에서 우연의 공격을 피할 수 없어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있다. 그건 분산이다. 특정 자산에 투자금을 집중시키면 쉽게 위험의 먹잇감이 된다. 우선 시간 분산이다. 투자를 시작할 때 한꺼번에 사지 말고 순차적으로 사는 것이다. 매달 일정 금액을 불입하는 적립식 투자가 그것이다. 적립하는 과정에서 매입 단가가 낮아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위험도 누그러든다. 다음은 투자 대상의 분산이다. 한두 군데 자산에만 편중시키지 말고 이리저리 흩어놓으란 뜻이다. 주식을 사도 여러 종목에 나누어 투자해야 한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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