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공중보건의 길 찾다
순례길에서 공중보건의 길 찾다
약 200만 명 모인 올해 이슬람 행사 하지에 보건 관계자 2만5000명 밀착 모니터 … 분쟁 지역 전염병 창궐에 대처하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각광 받아 이슬람 최고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일대에서 이뤄진 연례 이슬람 성지순례(하지)가 지난 8월 21일 마무리됐다. 하지는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집단 모임 중 하나다. 지난 7월 초부터 전 세계의 무슬림이 하지를 위해 사우디에 속속 도착했다. 180개국에서 모여드는 순례자는 이 행사가 절정에 달했을 때 약 200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와 함께 그들의 건강 상태를 모니터하기 위해 보건 관계자도 약 2만5000명이 따라붙었다.
근년 들어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정치 불안과 전쟁, 집단 이주가 늘면서 전염병 집단 발생도 크게 증가했다. 레바논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의 라샤 라슬란 교수는 지난해 학술지 ‘공중보건의 새로운 지평(Frontiers in Public Health)’에 발표된 글에서 “전쟁과 전쟁이 남긴 혼돈은 전염병의 증가와 근절됐던 질병의 재등장에 최적인 조건을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시리아에선 7년째 지속되는 내전으로 공중보건 시스템이 붕괴했다. 병원과 진료소가 파괴됐고, 의료진이 피난을 떠났으며, 항생제와 항염제 같은 약과 심지어 정맥주사용 수액도 동났다. 어린이 예방접종 프로그램이 중단되고 상하수 처리시스템이 고장나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어지면서 결핵과 리슈만편모충증·광견병·간염·장바이러스·이질·식중독·상기도감염·독감(인플루엔자) 등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다.
시리아·이라크·남수단 등지에선 소아마비와 홍역 등 한때 근절됐거나 거의 퇴치됐으며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병들이 다시 창궐하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최근 예멘과 소말리아에선 현대 사상 최악의 콜레라 유행이 발생했다.
이런 전쟁에 취약한 환경으로 흔치 않은 질병까지 유행한다. 포격과 공습으로 파괴된 마을은 해충과 집 없는 동물의 온상이 되면서 리슈만편모충증·광견병·옴 같은 희귀 질병의 전염이 늘어났다. 음식과 식수 오염으로 브루셀라병·톡소플라스마병·뇌수막염·리스테리아병 같은 질병도 증가 추세다.
최근 전쟁의 특징은 구호단체들이 피해 심한 지역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피해 지역의 공중보건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사우디의 보건부 부장관을 지낸 지아드 메미시는 최근 영국 의학 전문지 랜싯에 공동으로 기고한 글에서 “전쟁 지역의 공중보건 시스템은 와해되기 쉬워 인파가 대규모로 모이는 성지순례 같은 행사가 원스톱 표준감시와 공중보건 관리에 매우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메미시 전 부장관은 ‘군중 의학(mass medicinie)’의 선구자로 알려졌다. 그는 2012년 WHO 군중의학협력 센터를 창설했고 이슬람 성지 메카가 위치한 사우디가 그 분야를 이끌어왔다. 수년 동안 사우디 정부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WHO 등 공중보건 기관들의 기술적 지원을 받았다. 메미시 전 부장관은 사우디가 하지 동안 공중보건을 위해 대규모 인력과 자금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약 2만5000명의 보건 종사자들은 하지 동안 사우디 동부에 파견돼 병든 순례자를 치료하고 역학 자료를 수집했으며 일부의 경우 생물학적인 샘플도 채취했다. 건강검진 전문가, 간호사, 공중보건 전문가, 의사는 사우디의 13개 육상, 공중, 해상 입국장에 검문소를 설치했다. 그들은 순례자의 예방접종 이력을 조사하고, 필요한 경우 예방 약제와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하지 동안 훈련 받은 의료진으로 구성된 이동 감시팀은 순례자 임시 캠프를 샅샅이 둘러보며 전염병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동안 메카와 메디나에 있는 병원 외에도 약 25곳의 임시 병원과 진료소가 문을 열어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병상 5000개 이상을 제공했다.메미시 전 부장관은 이런 통합된 노력을 통해 하지에 참석하는 순례자의 약 60%에 해당하는 사람의 생생한 역학 데이터가 수집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 데이터는 곧바로 지휘센터에 보내져 실시간 감시와 데이터 분석에 활용된다. 수집된 모든 데이터는 투명하게 발표되고 WHO를 포함해 전 세계 보건계와 공유한다.
이런 데이터는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진행 중인 인도주의적 개입과 국제 보건안보를 위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새롭게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병원균의 정보를 파악해 세계의 보건계가 치명적인 전염병 창궐을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 국가에서 어떤 종류의 질병이 유행하는지 알면 그에 맞춰 보건 종사자들은 적합한 의약품을 확보하고 환자를 좀 더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과거 이런 순례 기간의 집중 연구는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병원균을 파악하고 질병 전파 패턴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순례자들이 귀국하고 나면 사우디 보건부가 지속적으로 그들의 상태를 관찰할 수 없어 특정 질병이 순례 과정에서 전염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공중보건 연구자들은 순례자, 특히 그들 중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이 전염병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는 점을 인정한다. 수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이고 밀접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질병감시 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만 한계도 있다고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학의 야라 아시 교수가 지적했다(그는 분쟁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연구를 많이 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중병을 앓는 병자와 고령자, 극빈자 등)은 순례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순례 중 나타나는 역학적 패턴이 분쟁 지역 인구 전체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확히 반영할 수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럼에도 순례자들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면 분쟁 지역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메미시 전 부장관은 “하지는 아주 잘 조직되고 체계적인 연례 모임”이라며 “분쟁 지역과 도달하기 어려운 국가에서 공중보건과 관련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는 데 이보다 더 나은 계기는 없다”고 말했다.
- 제스 크레이그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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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 들어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정치 불안과 전쟁, 집단 이주가 늘면서 전염병 집단 발생도 크게 증가했다. 레바논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의 라샤 라슬란 교수는 지난해 학술지 ‘공중보건의 새로운 지평(Frontiers in Public Health)’에 발표된 글에서 “전쟁과 전쟁이 남긴 혼돈은 전염병의 증가와 근절됐던 질병의 재등장에 최적인 조건을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시리아에선 7년째 지속되는 내전으로 공중보건 시스템이 붕괴했다. 병원과 진료소가 파괴됐고, 의료진이 피난을 떠났으며, 항생제와 항염제 같은 약과 심지어 정맥주사용 수액도 동났다. 어린이 예방접종 프로그램이 중단되고 상하수 처리시스템이 고장나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어지면서 결핵과 리슈만편모충증·광견병·간염·장바이러스·이질·식중독·상기도감염·독감(인플루엔자) 등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다.
시리아·이라크·남수단 등지에선 소아마비와 홍역 등 한때 근절됐거나 거의 퇴치됐으며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병들이 다시 창궐하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최근 예멘과 소말리아에선 현대 사상 최악의 콜레라 유행이 발생했다.
이런 전쟁에 취약한 환경으로 흔치 않은 질병까지 유행한다. 포격과 공습으로 파괴된 마을은 해충과 집 없는 동물의 온상이 되면서 리슈만편모충증·광견병·옴 같은 희귀 질병의 전염이 늘어났다. 음식과 식수 오염으로 브루셀라병·톡소플라스마병·뇌수막염·리스테리아병 같은 질병도 증가 추세다.
최근 전쟁의 특징은 구호단체들이 피해 심한 지역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피해 지역의 공중보건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사우디의 보건부 부장관을 지낸 지아드 메미시는 최근 영국 의학 전문지 랜싯에 공동으로 기고한 글에서 “전쟁 지역의 공중보건 시스템은 와해되기 쉬워 인파가 대규모로 모이는 성지순례 같은 행사가 원스톱 표준감시와 공중보건 관리에 매우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메미시 전 부장관은 ‘군중 의학(mass medicinie)’의 선구자로 알려졌다. 그는 2012년 WHO 군중의학협력 센터를 창설했고 이슬람 성지 메카가 위치한 사우디가 그 분야를 이끌어왔다. 수년 동안 사우디 정부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WHO 등 공중보건 기관들의 기술적 지원을 받았다. 메미시 전 부장관은 사우디가 하지 동안 공중보건을 위해 대규모 인력과 자금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약 2만5000명의 보건 종사자들은 하지 동안 사우디 동부에 파견돼 병든 순례자를 치료하고 역학 자료를 수집했으며 일부의 경우 생물학적인 샘플도 채취했다. 건강검진 전문가, 간호사, 공중보건 전문가, 의사는 사우디의 13개 육상, 공중, 해상 입국장에 검문소를 설치했다. 그들은 순례자의 예방접종 이력을 조사하고, 필요한 경우 예방 약제와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하지 동안 훈련 받은 의료진으로 구성된 이동 감시팀은 순례자 임시 캠프를 샅샅이 둘러보며 전염병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동안 메카와 메디나에 있는 병원 외에도 약 25곳의 임시 병원과 진료소가 문을 열어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병상 5000개 이상을 제공했다.메미시 전 부장관은 이런 통합된 노력을 통해 하지에 참석하는 순례자의 약 60%에 해당하는 사람의 생생한 역학 데이터가 수집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 데이터는 곧바로 지휘센터에 보내져 실시간 감시와 데이터 분석에 활용된다. 수집된 모든 데이터는 투명하게 발표되고 WHO를 포함해 전 세계 보건계와 공유한다.
이런 데이터는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진행 중인 인도주의적 개입과 국제 보건안보를 위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새롭게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병원균의 정보를 파악해 세계의 보건계가 치명적인 전염병 창궐을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 국가에서 어떤 종류의 질병이 유행하는지 알면 그에 맞춰 보건 종사자들은 적합한 의약품을 확보하고 환자를 좀 더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과거 이런 순례 기간의 집중 연구는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병원균을 파악하고 질병 전파 패턴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순례자들이 귀국하고 나면 사우디 보건부가 지속적으로 그들의 상태를 관찰할 수 없어 특정 질병이 순례 과정에서 전염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공중보건 연구자들은 순례자, 특히 그들 중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이 전염병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는 점을 인정한다. 수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이고 밀접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질병감시 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만 한계도 있다고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학의 야라 아시 교수가 지적했다(그는 분쟁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연구를 많이 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중병을 앓는 병자와 고령자, 극빈자 등)은 순례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순례 중 나타나는 역학적 패턴이 분쟁 지역 인구 전체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확히 반영할 수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럼에도 순례자들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면 분쟁 지역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메미시 전 부장관은 “하지는 아주 잘 조직되고 체계적인 연례 모임”이라며 “분쟁 지역과 도달하기 어려운 국가에서 공중보건과 관련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는 데 이보다 더 나은 계기는 없다”고 말했다.
- 제스 크레이그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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