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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기술로 미래 가꾸는 핀란드] 스마트 시티로 기후변화에 대응, 바이오매스로 ‘바이오경제’ 열어

[친환경 기술로 미래 가꾸는 핀란드] 스마트 시티로 기후변화에 대응, 바이오매스로 ‘바이오경제’ 열어

재생에너지 테스트베드 역할하는 칼라사타마 개발…“석유로 만드는 모든 것 나무 대체” 상용화 활발
핀란드 스마트 에너지 관련 이노베이션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는 ‘칼라사타마’에서 어린이들이 놀고 있다. / 사진:Riku Pihlanto
헬싱키 인근의 도시 칼라사타마에서는 운전기사가 없는 무인버스가 시범 운행 중이다. 시민들은 시내 모든 교통수단을 연결하는 휨(Whim)이라는 애플리케이션(앱)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가장 빠른 수단과 최단 경로를 안내받을 수 있다. 교통비는 클릭 한 번으로 결제할 수 있다. 미래 도시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칼라사타마는 핀란드어로 ‘고깃배 항구’라는 뜻이다. 지명처럼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낙후된 어촌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0년 헬싱키시가 도심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이곳에 ‘스마트 시티’를 조성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분당신도시의 10분의 1 크기인 이 작은 도시는 개발 8년 만에 사물인터넷(IoT)과 자율주행차, 스마트그리드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총동원된 스마트 시티로 거듭나게 됐다. 공공도서관과 폐기물처리장을 비롯해 주민들이 거주하는 임대주택에 필요한 전력도 태양열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 도시 하나가 스마트 에너지 관련 이노베이션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주민 카이사 스필링은 “겨울 난방철을 앞두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중요한데 재생에너지 사용만으로도 공공시설은 물론 가정에서도 매년 불편함 없이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비중 높이는 EU 목표 이미 달성
핀란드에서는 최대 자원인 나무를 활용한 바이오매스 기술이 발달했다. 팹틱은 나무 섬유로 만든 쇼핑백을 개발했다. / 사진:Paptic 제공
핀란드가 칼라사타마와 같은 스마트 시티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배경 중 하나는 온실가스를 감축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최종 에너지 소비량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2020년 38%로 늘린다는 유럽연합(EU)의 목표를 핀란드는 이미 2016년(39%)에 달성했다. 궁극적으로는 이 비중을 50%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에너지 업계도 온실가스 감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협회인 핀란드에너지(Finnish Energy)에 따르면 핀란드의 태양광 발전용량은 매년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이 없는 풍력사업에 대한 첫 투자 결정도 앞두고 있다. 야리 코스타마 핀란드에너지 에너지생산국장은 “기후변화 정책과 재생에너지 기술 발전, 디지털화가 환경에 도움될 뿐 아니라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헬싱키시가 소유한 발전회사인 헬렌(Helen)은 하나사아리 지역의 석탄화력발전소를 2024년에 폐쇄하기로 했다. 헬싱키에 지역냉난방을 위해 대규모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는 헬렌은 버리는 물의 폐열 등을 활용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있다.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석탄 사용량을 줄이는 대신 남은 에너지를 활용할 방안을 강구한 결과다.

국토의 75%가 숲인 핀란드에선 나무가 가장 큰 자원이다. 목재를 자원으로 활용한 생물연료(바이오매스) 분야도 앞으로 핀란드의 주요 수출 품목으로 꼽힐만큼 기술력이 뛰어나다. 주로 건강·식품·환경과 관련된 제품으로 알려진 바이오산업은 세계 각국에서 미래 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떠오르는 분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30년경 바이오경제 규모가 IT산업에 버금갈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바이오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가 연간 9.9% 속도로 성장해 2024년 7752억 달러(약 875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바이오산업은 크게 레드바이오(의약), 그린바이오(농업), 화이트바이오(화학) 분야로 나뉜다. 국내에선 레드바이오 분야가 주로 알려졌지만, 앞으로는 화이트바이오가 바이오경제의 핵심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화이트바이오는 소재·연료 등 전통적인 화석연료 기반의 화학제품을 바이오공정을 통해 생산해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저감하는 데 기여하는 기술을 말한다. 선진국에서는 연구·개발(R&D) 지원뿐 아니라 탄소배출권 거래제, 친환경 바이오제품 인증제도 및 우선구매제도, 세제지원 등 적극적인 제도적 지원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2년 바이오화학 육성 전략을 펼치며 화이트바이오 지원 정책을 펼치며 최근 사업화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유거성 연구원은 “최근 기술 발전으로 화이트바이오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경제성이 향상되고 있는 추세”라면서도 “국내에서는 아직 화이트바이오에 대한 정부 투자 규모가 작은데다 선진국에 비해 정책 지원도 한정적이어서 기업이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에서는 VTT 주도로 바이오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주력한다. 대표적인 것이 화학제품 대신 나무를 사용한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플라스틱 대신 나무로 식품 포장용 랩과 화장품 용기부터 단열재, 원단, 3D프린팅 원료 등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기술 검증을 끝내고 상용화를 시작해 제품 생산에 이르렀다. 피아 퀸투스 VTT 기술매니저는 “석유로 만드는 모든 것을 나무로 만들자는 생각”이라며 “단 무분별한 산림 훼손을 막기 위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중심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무로 만든 가방·용기 생산
나무칩 등 친환경 원료로 만든 화장품 용기는 본격적인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 사진:Sulapac 제공
핀란드 바이오매스 기업인 술라팩(Sulapac)은 나무칩 등을 원료를 사용해 화장품 용기를 만든다. 지난해 유럽의 대표 포장재 관련 시상식에서 나무 용기로 수상한 후 상용화에 들어갔다. 핀란드 ‘국민화장품’ 브랜드로 불리는 루메네(Lumene)를 비롯해 다양한 화장품·뷰티 브랜드와 협업 중이다. 또 다른 회사인 팹틱(Paptic)은 나무 섬유를 사용해 비닐봉지와 종이백의 장점을 살린 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해 지난 여름부터 생산에 돌입했다. 나무 섬유로 만든 쇼핑백은 일반 종이백보다 부드러우면서도 잘 찢어지지 않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 밖에 바이오매스 원료를 활용한 벽타일, 인테리어 소재부터 나노셀룰로스 기술을 활용한 자동차 소재까지 수많은 스타트업이 바이오경제 분야에서 탄생하고 있다. 주한핀란드무역대표부의 김윤미 대표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인 이니스프리가 제주도를 콘셉트로 하고 있는데 VTT의 바이오매스 기술을 활용하면 제주도 특산물인 감귤 껍질에서 원료를 추출해서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등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가능하다”며 “국내에서도 바이오매스 소재에 대한 니즈가 생기면 관련 기술력을 갖춘 핀란드 기업과 협업할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에스포·칼라사타마(핀란드)=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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