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선택만이 아니라 그 외 다양한 방식 통해 우리 DNA는 변할 뿐 아니라 그 속도도 빨라져 하노이의 베트남 국립 자연박물관에 전시된 인간 진화 단계. 미래의 인간은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 사진:XINHUA-NEWSIS현대의학은 우리를 계속 살아 있도록 해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인간의 진화가 이제 멈출 때가 됐다고 생각하기 쉽다. 더 나은 의료가 우리의 수명을 연장시키면서 진화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 힘을 잃고, 그런 현상이 유전자를 통해 후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DNA의 진화율을 살펴보면 인간의 진화는 결코 중단되는 조짐이 없다. 어쩌면 이전보다 더 빨리 진행되는지 모른다.
진화란 한 종의 DNA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진화는 우선 자연선택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유전자 변이가 만들어낸 어떤 특성(형질)이 한 생물의 생존이나 번식에 유리한 경우 자연적으로 선택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그런 변이는 다음 세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야 해당 집단에서 그 변이의 발현 빈도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변이와 그 형질이 집단 전체에 널리 퍼진다.
전 세계의 인간 DNA 연구를 보면 최근 들어 자연선택이 달라졌고 지금도 인간 DNA가 변하는 중이라는 증거가 있다. 현대의학의 혜택으로 우리는 많은 사망원인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적절한 의료 서비스가 없는 나라에선 인간이 진화한다. 특히 유행하는 전염병의 생존자가 자신의 유전자가 지닌 병균 저항력을 후세에 전달함으로써 자연선택을 이끈다. 우리 DNA는 라사열(서아프리카 열대 우림지대에서부터 퍼진 바이러스성 급성출혈열)과 말라리아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 저항력을 더한 최근의 자연선택 증거를 보여준다. 말라리아 반응에서 비롯되는 자연선택은 이 질병이 흔한 지역에서 지금도 진행 중이다.
또 인간은 환경에 적응해간다. 높은 고도에서 생존을 가능케 해주는 유전자 변이가 티베트·에티오피아·안데스 산맥 지역의 거주자에게서 더욱 흔해졌다. 티베트의 유전자 변이 확산이 인간의 진화적인 변화 중 가장 속도가 빠를 수 있다. 지난 3000년에 걸쳐 일어났기 때문이다. 혈중 산소 함량을 증가시키는 변이 유전자의 발현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현지 주민은 더 높은 곳에서 거주하기에 더 유리해졌다. 그 결과 생존하는 어린이가 늘면서 인구가 증가한다.
적응의 또 다른 출처는 먹거리다. 이누이트(에스키모) DNA에서 발견된 증거는 지방이 풍부한 북극 지방 포유류 고기를 주식으로 삼아 생존할 수 있도록 해준 최근의 적응 상황을 보여준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대개 젖을 떼고 나면 젖당을 분해하는 효소 락타제의 생산이 중단되지만 성인이 돼서도 락타제를 생산하도록 해주는 변이가 자연선택으로 우세한 경우도 있다. 그에 따라 서북 유럽인의 80% 이상은 젖당을 소화할 수 있지만 우유를 잘 마시지 않는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선 대다수가 젖당을 소화할 수 없다. 높은 고도의 적응과 마찬가지로 우유 소화를 가능케 해주는 자연선택도 인간에게서 한 번 이상 진화했으며, 최근의 사례 중 가장 효과가 강한 자연선택으로 알려졌다.
한편 우리는 건강에 해로운 음식에도 적응한다. 현대인의 식단은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미국에서 가족 유전자 변화를 조사한 연구에서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내려주는 자연선택이 발견됐다. 그런 해로운 식단에 적응하도록 해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많은 변화에도 자연선택은 우리 유전체 중 약 8%에만 영향을 미칠 뿐이다. ‘중립진화(neutral evolution)’ 이론에 따르면 나머지 92% 유전체의 변이가 한 집단에서 해당 형질의 발현 빈도를 임의로 바꿀 수 있다. 진화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쪽(다시 말해 자연선택)으로 진행되지 않고 중립적으로(목표나 방향이 없이) 우연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연선택이 약화되면 원래 사라져야 할 변이가 말끔하게 제거되지 않아 그런 형질의 발현 빈도가 다시 늘어나면서 그쪽으로 진화율이 증가한다.
그러나 중립진화로는 일부 유전자가 다른 것보다 더 훨씬 빨리 진화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인간 DNA를 다른 종과 비교해 유전자 진화의 속도를 측정해봤다. 그 결과는 인간에게서 어느 유전자가 가장 빨리 진화하는지도 알려준다. 인간의 가장 빨리 진화하는 유전자 중 하나가 HAR1이다. 뇌 발달에 필요한 유전자다. 인간 DNA의 임의적 부분은 평균적으로 침팬지와 98% 이상 동일하다. 그러나 HAR1은 너무나 빨리 진화해 침팬지와 약 85%만 동일하다.
과학자들은 그런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며, 또 얼마나 빨리 일어나는지 알 수 있지만 빠른 진화가 특정 유전자에서만 나타나는 이유는 아직 정확히 모른다. 처음엔 그런 현상이 전적으로 자연선택의 결과로 추정됐지만 지금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정도만 확인된 상태다.
최근 들어 ‘편향된 유전자 전환’ 과정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그런 전환은 우리 DNA가 정자나 난자를 통해 전달될 때 일어난다. 우리 몸이 생식세포를 만들려면 DNA 분자를 해체해 재조합한 뒤 다시 형태를 복구해야 한다. 그러나 분자 복구는 편향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DNA 분자는 C·G·A·T라는 네 가지 염기로 구성된다. 그런데 분자 복구 과정은 A·T보다 C·G 염기의 사용을 선호한다. 왜 그런 편향이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아무튼 그 결과 C·G가 더 흔해지는 경향이 있다.
DNA의 복구 지점에서 C·G 염기가 늘어나면 우리 유전체 일부에서 아주 빠른 진화가 일어난다. 우리는 이 과정을 자연선택으로 오해하기 쉽다. 둘 다 특정 지점에서 급속한 DNA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HAR1을 포함해 인간의 가장 빨리 진화하는 유전자 중 약 5분의 1은 이런 과정의 영향을 받는다. 만약 C·G 염기의 변화가 해롭다면 자연선택은 일반적으로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선택이 약화되면 이 과정이 대부분 저지 받지 않고 진행되면서 우리 DNA의 진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
인간의 유전자 변이율도 변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 DNA에서 일어나는 변이는 정자 세포를 만드는 세포 분열 과정에서 주로 나타난다. 남성이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들의 정자에서 더 많은 변이가 일어난다. 그로 인해 유전자풀 기여도가 변한다면, 예를 들어 남성이 나이가 많아질 때까지 자녀 갖기를 늦춘다면 변이율도 달라질 것이다. 거기서 중립진화율이 정해진다.
진화가 자연선택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진화 과정이 중단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우리 유전체를 자연선택의 압력에서 해방시키면 결국은 다른 진화 과정을 받아들이게 된다. 미래의 인간은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대의학의 혜택 때문에 얄궂게도 우리 후세에겐 유전적 문제가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 로렌스 D. 허스트
※ [필자는 영국 배스대학 밀너 진화센터의 진화유전학 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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