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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열국지 재발견(24) 명장들의 수난] 왕의 의심에 결국 비참한 최후 맞아

[김준태의 열국지 재발견(24) 명장들의 수난] 왕의 의심에 결국 비참한 최후 맞아

목숨 바쳐 나라 지켰지만 이간질에 시달려… 탁월한 장수 사라진 후 나라도 망해
사진:일러스트 김회룡
[천자문]에 ‘기전파목(起翦頗牧) 용군최정(用軍最精)’이라는 구절이 있다. 백기(白起)·왕전(王翦)·염파(廉頗)·이목(李牧)이 군대를 가장 정예롭게 잘 통솔했다는 뜻이다. 전국시대 말기 동시대에 활동했던 이들 네 장군은 자신들의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고 눈부신 무공을 세웠다. 하지만 왕의 의심과 권력자들의 질시에 시달려야 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왕의 의심과 권력자들의 질시
먼저 염파는 조나라의 백전노장이다. 인상여와 문경지교(22회 ‘인상여의 양보’편 참고)를 맺은 그는 진나라의 침략을 번번이 격퇴하며 국가안보를 책임졌다. 염파는 견고한 수비로 진에 대항했는데 그가 있는 한 조나라의 국경을 뚫을 수 없다고 판단한 진나라는 이간책을 펼쳤다. 염파는 싸울 뜻이 없으니 곧 무너질 것이며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장수는 조괄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깜짝 놀란 조나라 임금은 염파를 해임하고 조괄을 전선에 내보냈는데, 조괄의 군대는 이내 진나라에게 참패한다. 이후 염파는 재기용되었지만 그에 대한 임금의 의심은 지워지지 않았다. 자신의 판단착오를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결국 염파는 그를 믿지 못한 임금에게 또 다시 파면되는 좌절을 맛본다. 성격이 다혈질이었던 염파는 당시 크게 반발했는데 그로 인해 위나라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망명 시절 염파는 종종 “조나라의 군사를 지휘하고 싶다”라고 중얼거리며 슬퍼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고 염파는 이국땅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다음으로 이목도 조나라의 장군이다. 탁월한 지략으로 흉노족 10만 기병을 괴멸시켰고 조나라의 영토를 넓히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진나라의 대대적인 침입을 막아내며 진나라 사령관 환의를 전사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목이다. 그러자 진나라는 이목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다. 조나라 재상 곽개에게 막대한 뇌물을 주며 이목이 진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허위정보를 흘린 것이다. 곽개는 이 정보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목이 장차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리라는 생각에 왕에게 거듭 이목을 모함했다. 아연실색한 조나라 임금이 급히 전방에 나가 있던 그를 소환하자 이목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나는 진나라 군대와 생사를 걸고 겨루는 중이오. 우리 조나라가 망하느냐 존속하느냐가 여기에 달려 있는데 어찌 내가 자리를 뜰 수 있단 말이오? 비록 왕명이 중하다고는 하나 그리할 수 없소.” 하지만 조나라 임금은 그의 충성심을 믿지 않았고 이목은 끝내 체포되어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목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나라는 멸망하고 조나라 임금은 진나라의 포로로 붙잡혔는데, 이 때 임금은 “이목이 살아있었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라며 한탄했다고 전해 진다.

이어서 살펴 볼 백기는 진나라를 대표하는 명장이다. “적의 상황을 잘 헤아리고 변화에 맞추어 무궁하고 기발한 계책을 냄으로써 그 명성이 천하를 떨게 했던” 백기는 한나라·위나라·조나라·초나라를 공격해 크고 작은 성 수백 개를 빼앗아 진나라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는 매우 잔혹했던 것 같다. 사마천의 [사기]를 기준으로 하면 소양왕 14년(기원전 293년) 한나라와 위나라를 쳐서 24만 명을 잡아 죽였고, 소양왕 34년 삼진(三晉: 위나라·조나라·한나라)의 장수와 군사 13만 명을 처형하였으며 조나라 군대 2만 명을 황하에 수장시켰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양왕 43년(기원전 264년)에는 한나라 군사 5만 명의 목을 베었고 소양왕 47년에는 조나라로부터 사로잡은 포로 40만 명을 구덩이에 묻어 죽이는 참극을 벌인다. 이 숫자가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백기가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가혹하게 마구 죽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백기는 고집스러운 성품이었기 때문에 조정의 통제도 잘 받지 않았다. 천하통일을 위해서는 천하 민심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판단한 진나라 대신들은 백기의 학살을 견제하고자 했지만 그는 후환의 싹을 제거해야 한다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백기는 진나라의 실력자이자 재상 범저와도 갈등했는데 두 사람이 강 대 강으로 충돌하면서 군권을 잃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어떤 기록에서는 백기가 공을 세워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까 두려워했던 범저가 백기의 앞을 계속 가로막았다고도 한다.

이후 백기는 다시 지휘관으로 출전하라는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소신의 말을 듣지 않아서 어떻게 됐습니까?”라는 그의 발언으로 볼 때 자신을 파면한 왕에게 불만을 가졌던 것 같다. 가뜩이나 전공만 믿고 오만불손하다는 의심을 사고 있던 터에 이렇게 행동했으니 왕은 크게 격노한다. 결국 백기는 일반 병졸로 강등되고 유배형에 처해졌는데 여기에 모함이 더해지며 자결을 명받았다. 백기는 자신의 충심을 토로했지만 왕은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지막 인물 왕전의 경우는 어땠을까? 젊은 시절부터 수많은 전장에서 활약한 왕전은 진나라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조나라와 연나라를 차례로 멸망시켰다. 그 후 연로한 나이를 이유로 은퇴했지만 초나라 정벌에 나섰던 이신이 참패하면서 다시 진시황의 부름을 받는다. 왕전은 진나라의 전 병력을 동원해 초나라 공격에 나섰는데 이 때 이상한 모습을 보인다. 진시황에게 좋은 집과 정원, 기름진 논밭을 내려달라고 거듭 청원한 것이다. 진군을 시작한 후에도 몇 번이나 사람을 보내 약속을 잊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본 참모들이 너무 지나치지 않으냐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왕은 본래 포악해 다른 사람을 믿지 않소. 그런데 지금 진나라 군사를 모두 나에게 맡겼소. 내가 자손을 위한 재산을 축적하겠다며 많은 논밭·정원·연못을 요청하는 것은 내게 다른 뜻이 없음을 보이기 위함이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왕은 계속 나를 의심할 것이오.” 왕전 역시 진시황의 끊임없는 의심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 네 장군이 놓여있던 상황은 각각 다르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왕이 장군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왕조시대에 군대를 지휘하는 인물은 언제나 의심의 대상이 된다. 군과 백성들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와 같은 명망에다 강력한 무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왕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나라 임금들이 이간질에 쉽게 넘어가 염파와 이목을 버린 것은 그래서이다. 백기의 항명에 왕이 쉽게 발끈하고, 왕전이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탐욕스러운 행세를 해야 했던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의구심 떨치기 위해 탐욕스러운 행세까지
무릇 나라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던 장군들이 사라지면 그것이 곧 나라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주는 분명한 교훈이다. 따라서 군주는 왕권을 지키기 위해 의심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의심이 맞는 것인지 늘 반성해야 한다. 장군이 있어 나라에 보탬이 된다면 의심만으로 절대 그를 끌어내려서는 안 된다. 염파와 이목이 사라진 조나라가 이내 멸망했고, 백기와 왕전을 의심하던 진나라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장군들의 투항으로 쇠락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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