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도와 무슬림은 “똑같이 투쟁하고 기도한다”
기독교도와 무슬림은 “똑같이 투쟁하고 기도한다”
노트르담 대성당과 알아크사 모스크의 화재는 양측에 서로 협력할 좋은 기회 될 수 있어 지난 4월 15일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큰 불길에 휩싸이면서 첨탑이 무너지고 지붕이 심하게 파손되는 순간 세계는 처참한 심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에 전력을 기울이는 동안 그곳에서 약 4800㎞ 떨어진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모스크도 실화에 의한 화재가 났다.
알아크사 모스크 화재는 큰 피해 없이 조기에 진압돼 언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은 지 984년 된 이슬람 모스크와 856년 전 건설된 가톨릭 성당의 비극적인 화재는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두 성지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기독교도와 무슬림에게 공동의 인류애를 깊이 성찰하고 성지 복구 과정에서 서로 도울 기회를 줄 수 있다.
노트르담은 아마도 로마의 성베드로대성당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가톨릭 성당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알아크사는 메카의 알마스지드 알하람, 메디나의 알마스지드 안나바위에 이어 이슬람에서 세 번째로 성스러운 모스크다. 다행히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소중한 기독교 성물 중 가시 면류관과 성 십자가 조각은 화재에서 살아남았다. 예루살렘 성전산[무슬림은 ‘하람 알샤리프(신성한 안식처)’라고 부른다]에 세워진 알아크사 모스크는 화재로 이동식 경비 부스 하나만 소실됐을 뿐 다른 피해는 없었다.
이 두 화재는 건물 자체와 그 구조를 초월하는 의미를 가졌다. 알아크사 모스크와 노트르담 대성당은 기독교도와 무슬림에게 각각의 역사에서 도전과 희망을 상징한다. 노트르담은 유럽 대륙에서 기독교의 상징으로 파리 대주교가 미사를 집전하는 곳이다. 알아크사는 무슬림이 이슬람을 창시한 선지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밤에 천마 부라크를 타고 날아와 승천했다고 믿는 곳이다.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슬람 사원은 아니라고 해도 성지 예루살렘에서 이슬람 신앙의 영원한 상징을 표방한다. 노트르담은 수 세기 동안 외국 세력, 혁명 세력, 세속 세력이 차지하려고 다퉜던 가톨릭 성당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에 따르도록 가톨릭 교회에 압력을 가했다. 1163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초석을 놓은 이래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요한 역사의 증인이었다. 1431년 영국 왕 헨리 6세의 프랑스 왕 즉위식이 이곳에서 거행됐고, 1540년대엔 위그노 교도가 이곳을 공격해 조각상들을 파괴했으며, 1790년대엔 프랑스 혁명 세력 중 반기독교주의자들이 이곳에 침입해 각종 보물을 약탈한 뒤 노트르담을 ‘이성 숭배의 성전’으로 재봉헌했다. 그다음 노트르담은 나치즘과 제2차 세계대전도 목격했다. 그뿐이 아니다. 1804년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곳에서 황제로 즉위하고 대관식을 가졌다. 1909년엔 교황 비오 10세가 프랑스와 영국 간 백년 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 다르크를 이곳에서 시복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 격동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굳건히 버텼다. 노트르담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프랑스인의 인내와 국가적인 포부만이 아니라 인류애와 기독교 세계 전체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알아크사 모스크도 무슬림에게 그에 맞먹는 상징과 연관성을 지닌다. 이 모스크는 매일 5차례 알라에게 기도를 올리는 장소만이 아니다. 노트르담처럼 알아크사도 종교적 긴장과 전쟁, 점령이라는 복잡하고 치열한 역사를 거쳤다. 이슬람 제2대 정통 칼리프인 우마르 이븐알카타브가 옛 비잔틴 건물터에 건설한 알아크사 모스크는 그 후 유대교와 기독교의 연속성과 완성을 상징했다. 하지만 우마이야부터 아바스, 시아파 파티마까지 여러 무슬림 왕조가 이슬람 제국 초기에 알아크사를 장악했다.
11세기 들어 중앙아시아의 수니파인 셀주크 투르크족이 알아크사를 점령했다가 서유럽에서 침공한 십자군에 다시 빼앗겼다. 16세기 초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9대 술탄 셀림 1세가 예루살렘을 침공해 맘루크 왕조를 정복했고, 그때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이곳을 장악했다. 그 후 예루살렘은 대영제국의 관할로 넘어갔다. 현재 알아크사는 이스라엘 점령지에 속한다. 그 때문에 팔레스타인 무슬림과 더 넓게 움마(이슬람권 전체)에 극심한 긴장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알아크사의 화재는 노트르담보다 피해가 훨씬 작았지만, 노트르담이 불타는 장면을 지켜본 전 세계 기독교도의 감정과 비슷한 정서를 모든 무슬림에게 불러일으켰다. 두 성지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다양성, 그리고 인류 공동의 선과 악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문명이 충돌한 격전지로서 혁명의 영광, 민족국가와 제국의 등장, 억압받는 민중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을 상징한다.
노트르담 대성당과 알아크사 모스크의 화재는 기독교도와 무슬림에게 신앙의 중요성만이 아니라 이전 시대의 업적을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 중요한 점은 기독교도와 무슬림이 각각 자신들의 성지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서로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일지 모른다.
기독교도와 무슬림은 유일신 신앙이나 세계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예배 장소에서 기도할 수 있는 특권보다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들은 갈등의 시대를 맞은 많은 인간이 그러하듯이 똑같이 투쟁하고, 비통해하며, 소원하고, 기도한다.
- 크레이그 컨시다인
※ [필자는 아일랜드-이탈리아계 미국인 가톨릭 신자로서 라이스대학 사회학 교수다. 저서로는 ‘미국의 이슬람 현황 탐구(Islam in America: Exploring the Issues)’ ‘미국의 무슬림: 파키스탄 교민사회 고찰(Muslims in America: Examining the Facts and Islam, Race, and Pluralism in the Pakistani Diaspora)’이 있다. 이 글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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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크사 모스크 화재는 큰 피해 없이 조기에 진압돼 언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은 지 984년 된 이슬람 모스크와 856년 전 건설된 가톨릭 성당의 비극적인 화재는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두 성지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기독교도와 무슬림에게 공동의 인류애를 깊이 성찰하고 성지 복구 과정에서 서로 도울 기회를 줄 수 있다.
노트르담은 아마도 로마의 성베드로대성당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가톨릭 성당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알아크사는 메카의 알마스지드 알하람, 메디나의 알마스지드 안나바위에 이어 이슬람에서 세 번째로 성스러운 모스크다. 다행히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소중한 기독교 성물 중 가시 면류관과 성 십자가 조각은 화재에서 살아남았다. 예루살렘 성전산[무슬림은 ‘하람 알샤리프(신성한 안식처)’라고 부른다]에 세워진 알아크사 모스크는 화재로 이동식 경비 부스 하나만 소실됐을 뿐 다른 피해는 없었다.
이 두 화재는 건물 자체와 그 구조를 초월하는 의미를 가졌다. 알아크사 모스크와 노트르담 대성당은 기독교도와 무슬림에게 각각의 역사에서 도전과 희망을 상징한다. 노트르담은 유럽 대륙에서 기독교의 상징으로 파리 대주교가 미사를 집전하는 곳이다. 알아크사는 무슬림이 이슬람을 창시한 선지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밤에 천마 부라크를 타고 날아와 승천했다고 믿는 곳이다.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슬람 사원은 아니라고 해도 성지 예루살렘에서 이슬람 신앙의 영원한 상징을 표방한다. 노트르담은 수 세기 동안 외국 세력, 혁명 세력, 세속 세력이 차지하려고 다퉜던 가톨릭 성당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에 따르도록 가톨릭 교회에 압력을 가했다. 1163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초석을 놓은 이래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요한 역사의 증인이었다. 1431년 영국 왕 헨리 6세의 프랑스 왕 즉위식이 이곳에서 거행됐고, 1540년대엔 위그노 교도가 이곳을 공격해 조각상들을 파괴했으며, 1790년대엔 프랑스 혁명 세력 중 반기독교주의자들이 이곳에 침입해 각종 보물을 약탈한 뒤 노트르담을 ‘이성 숭배의 성전’으로 재봉헌했다. 그다음 노트르담은 나치즘과 제2차 세계대전도 목격했다. 그뿐이 아니다. 1804년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곳에서 황제로 즉위하고 대관식을 가졌다. 1909년엔 교황 비오 10세가 프랑스와 영국 간 백년 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 다르크를 이곳에서 시복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 격동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굳건히 버텼다. 노트르담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프랑스인의 인내와 국가적인 포부만이 아니라 인류애와 기독교 세계 전체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알아크사 모스크도 무슬림에게 그에 맞먹는 상징과 연관성을 지닌다. 이 모스크는 매일 5차례 알라에게 기도를 올리는 장소만이 아니다. 노트르담처럼 알아크사도 종교적 긴장과 전쟁, 점령이라는 복잡하고 치열한 역사를 거쳤다. 이슬람 제2대 정통 칼리프인 우마르 이븐알카타브가 옛 비잔틴 건물터에 건설한 알아크사 모스크는 그 후 유대교와 기독교의 연속성과 완성을 상징했다. 하지만 우마이야부터 아바스, 시아파 파티마까지 여러 무슬림 왕조가 이슬람 제국 초기에 알아크사를 장악했다.
11세기 들어 중앙아시아의 수니파인 셀주크 투르크족이 알아크사를 점령했다가 서유럽에서 침공한 십자군에 다시 빼앗겼다. 16세기 초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9대 술탄 셀림 1세가 예루살렘을 침공해 맘루크 왕조를 정복했고, 그때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이곳을 장악했다. 그 후 예루살렘은 대영제국의 관할로 넘어갔다. 현재 알아크사는 이스라엘 점령지에 속한다. 그 때문에 팔레스타인 무슬림과 더 넓게 움마(이슬람권 전체)에 극심한 긴장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알아크사의 화재는 노트르담보다 피해가 훨씬 작았지만, 노트르담이 불타는 장면을 지켜본 전 세계 기독교도의 감정과 비슷한 정서를 모든 무슬림에게 불러일으켰다. 두 성지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다양성, 그리고 인류 공동의 선과 악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문명이 충돌한 격전지로서 혁명의 영광, 민족국가와 제국의 등장, 억압받는 민중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을 상징한다.
노트르담 대성당과 알아크사 모스크의 화재는 기독교도와 무슬림에게 신앙의 중요성만이 아니라 이전 시대의 업적을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 중요한 점은 기독교도와 무슬림이 각각 자신들의 성지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서로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일지 모른다.
기독교도와 무슬림은 유일신 신앙이나 세계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예배 장소에서 기도할 수 있는 특권보다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들은 갈등의 시대를 맞은 많은 인간이 그러하듯이 똑같이 투쟁하고, 비통해하며, 소원하고, 기도한다.
- 크레이그 컨시다인
※ [필자는 아일랜드-이탈리아계 미국인 가톨릭 신자로서 라이스대학 사회학 교수다. 저서로는 ‘미국의 이슬람 현황 탐구(Islam in America: Exploring the Issues)’ ‘미국의 무슬림: 파키스탄 교민사회 고찰(Muslims in America: Examining the Facts and Islam, Race, and Pluralism in the Pakistani Diaspora)’이 있다. 이 글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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