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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의 길은 제재 아닌 평화 협상”

“북한 비핵화의 길은 제재 아닌 평화 협상”

장기적으로 상호 선의의 조치와 인내심 있는 노력으로 종전 선언과 북미 관계 정상화 선행돼야지난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단하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땅을 밟았다. 지금까지 미국의 어느 현직 대통령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거기서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반갑게 악수한 뒤 그와 함께 다시 분계선을 넘어 남측 땅으로 건너와 문재인 대통령과 합류했다. 그다음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남측에 있는 자유의 집에서 김 위원장과 머리를 맞대고 약 50분에 걸쳐 비공개 대화를 나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군사분계선 이북으로 안내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사진:YONHAP
이 역사적인 회동은 사전에 계획된 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떠나는 길에 띄운 단 한 건의 트윗으로 이뤄졌다. 그는 그 트윗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중국 시 주석과의 만남을 포함해 아주 중요한 회담을 몇 차례 한 뒤 나는 곧 일본을 떠나 문 대통령과 함께 한국으로 향할 것이다. 그곳에 있는 동안 만약 북한의 김 위원장이 이 트윗을 본다면 DMZ에서 그를 만나 악수하고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트윗 하나로 교착된 북미 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전 세계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또 두 정상은 북한 비핵화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미국 측에서 그 협상을 주도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회동을 마치고 DMZ를 떠나면서 “우리는 산을 옮겼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회동은 아주 좋았고 아주 강렬했다. ... 하지만 속도보다는 일을 똑바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6월 열린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은 북미 관계의 물꼬를 튼 성과를 올렸지만 국내외에서 완전히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회담은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만나서 대화하면 통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서로를 위협하는 설전을 벌이며 군사적인 도발과 그에 대한 대응으로 맞섰다. 그러나 이번 회동으로 양국 사이에서 고위급 신뢰가 확고히 구축된 듯이 보이는 만큼 이제는 70년 전 시작된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기 위한 외교 노력에 전력을 쏟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그 외교적인 노력은 반드시 믿을 만하고 지속 가능해야 한다.나는 2015년 미국 여권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노벨평화상 수상자 2명이 포함된 30명의 여성 평화운동가들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행사로 북측에서 출발해 DMZ를 넘어 남측으로 건너갔다. 그 이래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를 포함해 세계 각계각층의 여성 지도자들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의견을 나눴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이제 트럼프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서 올바로 알아야 할 사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했다고 7월 1일 보도했다. / 사진:NEWSIS
얼마 전 나는 미국·한국 정부의 고위 관리와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인사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나는 우리 단체의 여성 네트워크가 평화 프로세스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설명했다. 여성이 참여하면 좀 더 지속적인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 만남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공개적으로는 북미 대화 중단의 책임을 서로 탓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모두 외교적인 돌파구를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돌파구를 어떻게 열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점은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을 초래한 소위 ‘볼턴의 리비아 모델’을 논의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하는 리비아식 비핵화 과정으로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 방식을 가리킨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앞서 즉각적이고 완전하며 일방적인 핵무장 해제를 요구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북한의 핵무기와 핵폭탄 연료를 미국으로 이전하라는 직설적인 요구가 담긴 종이 한장을 건넸다”고 확인했다. 그 요구에 대해 북한은 핵 프로그램의 심장부인 영변 핵시설을 해체하고 핵·미사일 실험을 공식 중단하는 조치로 대북 제재의 일부를 해제 받는 단계적인 거래를 제시했다. 서로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결국 협상은 결렬됐고, 그때부터 양국 관계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서 교환된 ‘멋지고 아름다운’ 친서 외교에 의존해 겨우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사랑의 편지’로는 70년에 걸친 전쟁을 끝낼 수 없다. 또 시간을 끌면 끌수록 양측 모두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지난 4월 김 위원장은 북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올해 말까지 미국의 용단을 기다리겠다”며 미국 측의 ‘새로운 셈법’을 촉구했다. 우리 모두는 그 시한이 지나면 북한이 도발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내가 만난 트럼프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2020년 미국 대선의 강풍이 불면” 외교적 돌파구를 열기는 아예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그만큼 시간이 촉박하다는 뜻이었다.좋은 소식은 현재로선 이번 북미 정상 회동이 있는 동안 볼턴 보좌관이 몽골에 파견됐다는 사실과 함께 잠정적이긴 하지만 ‘볼턴의 리비아 모델’보다 좀 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접근법을 선호하는 듯하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6월 30일 미확인 보도를 통해 트럼프 정부가 북한에 좀 더 유연한 자세를 보이기로 합의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기존 핵무기(20~60기로 추정된다)를 유지하되 핵물질 생산과 실험을 동결하도록 하는 중간 단계의 거래를 의미한다(그러나 볼턴 보좌관과 미국 국무부는 트럼프 정부에서 핵 동결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협상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잠시 북측 땅을 밟은 뒤 판문점 남측에 있는 자유의 집에서 김 위원장과 비공개 대화를 나눴다. / 사진:NEWSIS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볼턴의 리비아 모델’을 완전히 포기한다고 해도 북한 비핵화를 위한 협상 과정에서 직면할 3가지 어려운 현실이 있다.

첫째, 제재로 북한의 비핵화를 강제할 수는 없다. 지난 6월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이 보여줬듯이 북한의 경제 상황이 제재로 인해 한계에 이르기 전에 중국이 나서서 도와줄 것이다. 또 제재는 무고한 민간인에게 피해를 준다. 구호단체들 사이에는 제재 때문에 북한의 가장 취약한 주민에게 의약품과 식량, 물자를 공급하려는 노력이 방해받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또 지난 5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은 북한 식량 안보 평가 보고서에서 “인구의 40%가 식량 지원이 절실한 상태”라며 “인도주의적 조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제재는 취사와 난방, 트랙터 가동에 필요한 석유의 수입을 가로막아 북한 민간경제에 큰 타격을 준다. 또 대부분 여성인 수많은 인력을 고용하는 섬유 부문 같은 산업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미시간주에 정착한 탈북 여성 에스더 리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민주당 대선 주자 중 한 명이다)과 한국 여성 의원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북한 주민에게 역효과를 낸다며 “북한 주민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제재가 아니라 외부 세계 사람들과의 더 많은 교류”라고 강조했다.둘째, 평화 협상은 김 위원장과 북한 정부에 주는 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보를 증진할 수 있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결정이다. 지난해 북한 미사일이 하와이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잘못된 경보로 큰 소동이 벌어졌을 때 나와 내 가족이 겪은 공포를 생각하면 평화 협상은 개인적으로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본다. 한국에 사는 나의 친척들은 북한의 핵폭탄 때문에 끊임없이 그런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후 북한은 미국·한국과 대화하면서 400일이 넘도록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았다. 그에 따라 한반도에 사는 8000만 인구와 그 지역의 미군 기지에 주둔하는 미군과 그 가족은 불안을 크게 덜 수 있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지난 6월 5일 영변 우라늄농축공장에서 활동이 계속된다고 밝혔다. / 사진:YONHAP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평화 협상이 비핵화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이다. 이란·리비아·이라크의 선례를 볼 때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면 완전히 파멸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은 절대 일방적으로 핵무장을 해제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전쟁 때 미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4명 중 1명이 목숨을 잃었고, 도시의 80%가 파괴된 일을 겪은 기억이 북한의 그런 입장을 더 확고히 만들지 모른다.

핵위기의 근본 원인이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지속되는 전쟁 상태라는 사실을 이제는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53년 서명된 정전협정을 공식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만 전쟁은 완전히 종식된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 정책’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거듭 선언했다. 한국의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종전 선언이나 불가침 조약의 형태로 북한 체제를 보장해주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돈이 전혀 들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거기에다 나는 그런 조치가 동북아와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고 덧붙이고 싶다.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려면 평화와 관계 정상화가 선행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장기적으로 상호 선의의 조치와 인내심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의 약속을 위해 먼저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그랜드 바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크리스틴 안



※ [필자는 한반도 평화 운동을 벌이는 ‘위민 크로스 DMZ(Women Cross DMZ)’의 사무국장이며 ‘한반도 전쟁종식과 평화를 위한 여성행동(Korea Peace Now! Women Mobilizing to End the War)’의 국제 조정관이다. 이 글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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