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가 만난 사람(34) 테드 킴 RVN 대표] 동대문시장 살려 K패션 동력 삼아야
[이필재가 만난 사람(34) 테드 킴 RVN 대표] 동대문시장 살려 K패션 동력 삼아야
‘니트 왕국’ 건설이 꿈... 앤클라인 디자인 부문 부사장 출신 “동대문을 살려야 합니다. 동대문시장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속된 말로 ‘시장 것들’이 아닙니다. 동대문은 한국이 강한 ‘빨리 빨리’ 문화의 본산 격으로, 이 시대의 트렌드를 재빨리 소화해 시장에 내놓아요. 유니클로, 자라, H&M 등에 앞서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상품화 시스템을 갖췄고 옷 만드는 솜씨도 빼어나죠. 디자인은 순수미술(파인 아트)이 아니에요. 패션 디자이너가 가방끈 길다고 디자인 잘하는 거 아닙니다.”
앤클라인 뉴욕의 디자인 부문 부사장(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인 테드 킴 RVN 대표는 “중국·일본·동남아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동대문에 글로벌 시장 진출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동대문 상인들은 한국이 어렵던 시절 외화를 벌어들여 국부 창출에 이바지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해 브랜드화에 도전하면 K패션도 K팝, K뷰티처럼 글로벌 시장을 노릴 수 있어요. 그러자면 패션 분야 종사자들도 학벌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는 “새로 진출하려는 해외 시장을 잘 아는 사람이 구원투수로 나서 동대문의 상품화 시스템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동대문시장을 찾아 옷을 산다고 했다. 동대문의 팬으로서 이런 좋은 시스템을 갖춘 동대문이 왜 한국을 못 벗어나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안타까움에서 이번에 지인의 도움으로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만났다고 귀띔했다. “내수 시장도 안 좋지만,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직격탄을 맞은 후 최근 한일 무역 갈등을 겪으면서 동대문 점포의 3분의 1이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옷은 만들어야 하니 사채를 쓰고, 그렇게 만든 옷이 안 팔려 자살자가 속출한다고 합니다. 저의 단골 숍도 9월 중 문을 닫아요.”
동대문에서도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가 나올 수 있다는 건가요? 아니 동대문 자체가 브랜드가 될 수도 있다고 보나요?
“가능성이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과 브랜드화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나서야겠죠. 발상을 바꾸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영입하듯이 외국에서 전문가를 영입할 수도 있어요.”
그는 “옷은 빨리 빨리 잘 만들지만 이렇다 할 브랜드가 없는 게 동대문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잠재력은 있지만 애초에 카피로 시작해 카피에 의존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자질이 뛰어날 뿐더러 우수한 인재가 많습니다. 이들이 온라인 플랫폼 마케팅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다음 세대’ 동대문을 알려야 합니다.”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동대문 디자이너를 시장 것들이라고 폄하한다는 건가요?
“패션은 계속 바뀝니다. 말하자면 시장에서 벌이는 격투기 경기 같은 겁니다. 출신 학교가 중요하지 않죠. 단적으로 패션 디자이너는 의사나 변호사가 아닙니다. 미국도 패션 스쿨들이 격투기를 가르치지 않아 문제입니다. 저의 모교인 미국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어요. 교수들이 시장의 흐름을 못 따라가는 겁니다. 흔히 패션이라고 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른바 하이엔드 패션은 소수의 상류층을 겨냥한 거예요.”
한국의 조치원 출신인 그는 중학교 때 미국 유학을 떠나 1996년 파슨스를 수석 졸업했다. 뉴욕의 파슨스는 이서현 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배상민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등이 나온 학교다. 그가 ‘나를 디자이너로 다시 낳아 주신 어머니’라고 말하는 ‘뉴욕의 샤넬’ 도나 카란도 파슨스 출신이다. 킴 대표는 파슨스 총장과도 만나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나 카란의 시니어 디자이너를 거쳐 마이클 코어스의 헤드 디자이너를 지냈다. 앤클라인에 영입돼 3년간 부사장을 지낸 후 2011년 자신의 브랜드 RVN을 론칭했다. 앤클라인 재직 당시 그가 디자인한 옷을 퍼스트 레이디 시절 미셸 오바마가 입었다. 재클린 케네디가 입은 앤클라인은 오랜 침묵 끝에 오바마가 입으면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바바라 월터스 등의 셀러브리티들이 오바마를 따랐다. 이 브랜드가 그를 영입한 목적이기도 했다.
그가 차린 회사 RVN은 레볼루션을 뜻한다. RVN은 니트 웨어를 만든다. 그는 RVN을 세계 최고의 니트 브랜드로 만드는 꿈을 꾼다. 오프라 윈프리, 팝스타 비욘세, 테일러 스위프트, 케이티 페리, 할리우드 스타 기네스 펠트로 등이 RVN을 입는다. 비욘세는 그가 제공하지도 않은 RVN 레깅스를 입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케이티 페리는 “RVN은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브랜드’라고 말한다. 그는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축적한 자신의 경험을 니트로 재현한다. “니트가 RVN을 통해 거듭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니트는 매력적인 소재일뿐더러 가능성이 거의 무한합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하나가 된 세계가 앞으로 니트를 입게 만들 겁니다.”
그는 “TV가 대세 플랫폼의 자리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내줬고,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이 결합한 덕에 이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처럼 혁신의 혁명을 좋아하는 사람이 기술의 진보 덕에 혁명을 도모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겁니다. 콜라보를 통해 RVN의 콘셉트를 가구·자동차 디자인으로도 확장할 수 있어요.”
파슨스 입학 전 그는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했었다. MTV에서 도나 카란의 패션쇼를 보고 패션 디자인의 세계에 매료돼 산업 디자이너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기수를 전격 선회했다. 그가 니트 옷을 만들 때 사용하는 기계엔 5000개의 바늘이 달렸다. 이런 기계가 전 세계에 깔려 있다. 한국에도 2500대가량 있다고 한다. 자신이 짠 프로그램을 현지에 보내면 실을 조달해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RVN 옷을 만들 수 있다. 디자인과 사이즈도 지정할 수 있다. 자동화로 인건비의 비중은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니트 옷은 다른 소재와 달리 재단·봉제 공정이 필요없다.
니트의 특성이 뭔가요? 니트는 겨울옷 아닌가요?
“무엇보다 편합니다. 니트는 옷감부터 디자인해 디자이너가 옷감에 갇히지 않습니다. 니트 직조 기술의 발달로 얼마든지 창조적인 디자인이 가능하죠. 속옷, 양말, 점퍼, 가방, 신발도 디자인할 수 있어요. 당연히 여름옷, 투명한 옷도 만들 수 있습니다. 니트는 새로운 기술 덕에 거의 새로운 소재로 거듭났습니다.”
RVN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뭔가요?
“뉴욕적인 겁니다. 빌딩 숲에 둘러싸인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을 연상하면 됩니다. 모던하고 혁신적·개성적이죠. 한마디로 아메리칸 팝인데, 소리로 표현하면 우렁차다고 할 수 있어요. RVN을 장차 K팝을 포함해 전세계 팝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키우고 싶습니다. 내년엔 한국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RVN은 미국의 주요 백화점에 거의 다 들어가 있다. 대중적인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바이어들은 대부분 아는 니트 전문 브랜드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니트와 만난 건 작은아버지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운영하는 니트 공장에서다. 작은아버지는 20년 넘게 자바에 니트 옷을 공급했다. 니트 디자이너가 자기 공장이 있다는 건 독보적인 강점이다.
한국의 디자이너 후배들에게 뭐라고 조언하겠습니까?
“두려워 말고 도전해야 합니다. 저는 조치원 복숭아밭 태생인데 중학생 때 꿈을 좇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어요. 끊임없이 도전한 덕에 아무 백도 없이 도나 카란에게 발탁됐고, 역시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마이클 코어스에게서 러브콜을 받았죠. 그러자면 패션에 미쳐야 합니다. 디자이너뿐 아니라 패션계의 성공한 사람은 모두 미친 사람들이죠. 자는 시간 빼고 패션만 생각합니다. 단 재능은 필수입니다. 패션 디자인은 타고난 DNA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어요.”
그는 마이클 코어스에게 스카웃돼 3개월 만에 수석 디자이너로 승진했다. 도나 카란 문하에서 쌓은 드레스 디자이너로서의 실력을 인정한 코어스는 휴가를 떠나면서 그에게 드레스 세 벌의 디자인을 주문했다. 그는 300가지 디자인을 했고 열 벌의 드레스를 만들어 마네킹에 입혔다. 마이클 코어스는 시계, 핸드백, 액세서리 등의 디자이너 제품으로 유명한 미국의 고급 패션 브랜드이다. 앤클라인 시절엔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려 사무실에 침대를 들여놓았다. “미국 패션계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중시합니다. 하나를 보고 열에 대해 판단하는 거죠. 마이클 코어스의 한 부사장은 허드렛일 하는 리셉셔니스트 출신인데 디자이너들을 찾아다니면서 ‘당신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뭐냐’고 묻고 다녔어요.”
자신의 브랜드 RVN을 시작한 후 그는 ‘스웨트숍’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당시 자신이 일한 환경이 노동자들의 땀을 짜내는 곳과 다름없었다는 것이다. 찌는 주말에 혼자서 팬티만 입고 일하면서 보는 사람이 없어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니트가 소재인 스웨터란 말의 어근이 땀(스웨트)이다. “비전을 펼쳐 어느 정도 브랜드 파워가 생길 때까지는 투자를 받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직접 태그 달고 포장하고 배달 일까지 했습니다. 그때 허드렛일 하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알게 됐죠. 투자를 일찍 받으면 투자자에게 종속되기 십상이죠. 경비 집행에도 제약이 따라 자칫 시장 상황에 찌들기 쉽습니다.”
창업 후 6년 간 그렇게 일하느라 건강을 해쳐 몸이 망가졌다. 그 덕에 가족의 중요성도 알게 됐다. 당초 그에게 창업을 부추긴 건 마케팅을 전공한 여동생이었다. 온라인 사업을 벌이며 트레이드 쇼를 하다 보니 오빠만큼 재능 있는 디자이너를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앤클라인에서 왕이 부럽지 않은 대접 받으면서 현실에 안주할 때 동생이 엉덩이를 걷어찬 셈이죠.”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패션계 진출을 포기해야겠군요?
“디자이너 말고, 세일즈, 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일할 수도 있죠.” 그의 영감의 원천은 세상의 모든 것이다. 건설 현장을 지나다 녹슨 철판을 보고 자연의 녹에서 영감을 얻는 식이다.
디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미의 세계를 매체라는 캔버스에 표현하는 거죠. 공간이 매체가 되면 인테리어 디자인, 자동차로 표현하면 자동차 디자인, 선택한 캔버스가 옷감과 옷이면 패션 디자인이 되는 거죠. 그래서 천부적인 디자이너는 모든 것을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재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스트라디 바리우스로 연주하는 격이죠. 니트로 할 수 있는 표현도 거의 무궁무진합니다. 장차 니트 같지 않은 니트 제품을 만들 겁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앤클라인 뉴욕의 디자인 부문 부사장(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인 테드 킴 RVN 대표는 “중국·일본·동남아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동대문에 글로벌 시장 진출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동대문 상인들은 한국이 어렵던 시절 외화를 벌어들여 국부 창출에 이바지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해 브랜드화에 도전하면 K패션도 K팝, K뷰티처럼 글로벌 시장을 노릴 수 있어요. 그러자면 패션 분야 종사자들도 학벌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는 “새로 진출하려는 해외 시장을 잘 아는 사람이 구원투수로 나서 동대문의 상품화 시스템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동대문시장을 찾아 옷을 산다고 했다. 동대문의 팬으로서 이런 좋은 시스템을 갖춘 동대문이 왜 한국을 못 벗어나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안타까움에서 이번에 지인의 도움으로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만났다고 귀띔했다. “내수 시장도 안 좋지만,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직격탄을 맞은 후 최근 한일 무역 갈등을 겪으면서 동대문 점포의 3분의 1이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옷은 만들어야 하니 사채를 쓰고, 그렇게 만든 옷이 안 팔려 자살자가 속출한다고 합니다. 저의 단골 숍도 9월 중 문을 닫아요.”
동대문에서도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가 나올 수 있다는 건가요? 아니 동대문 자체가 브랜드가 될 수도 있다고 보나요?
“가능성이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과 브랜드화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나서야겠죠. 발상을 바꾸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영입하듯이 외국에서 전문가를 영입할 수도 있어요.”
그는 “옷은 빨리 빨리 잘 만들지만 이렇다 할 브랜드가 없는 게 동대문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잠재력은 있지만 애초에 카피로 시작해 카피에 의존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자질이 뛰어날 뿐더러 우수한 인재가 많습니다. 이들이 온라인 플랫폼 마케팅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다음 세대’ 동대문을 알려야 합니다.”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동대문 디자이너를 시장 것들이라고 폄하한다는 건가요?
“패션은 계속 바뀝니다. 말하자면 시장에서 벌이는 격투기 경기 같은 겁니다. 출신 학교가 중요하지 않죠. 단적으로 패션 디자이너는 의사나 변호사가 아닙니다. 미국도 패션 스쿨들이 격투기를 가르치지 않아 문제입니다. 저의 모교인 미국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어요. 교수들이 시장의 흐름을 못 따라가는 겁니다. 흔히 패션이라고 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른바 하이엔드 패션은 소수의 상류층을 겨냥한 거예요.”
한국의 조치원 출신인 그는 중학교 때 미국 유학을 떠나 1996년 파슨스를 수석 졸업했다. 뉴욕의 파슨스는 이서현 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배상민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등이 나온 학교다. 그가 ‘나를 디자이너로 다시 낳아 주신 어머니’라고 말하는 ‘뉴욕의 샤넬’ 도나 카란도 파슨스 출신이다. 킴 대표는 파슨스 총장과도 만나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고 말했다.
미셸 오바마에 앤클라인 입힌 디자이너
그가 차린 회사 RVN은 레볼루션을 뜻한다. RVN은 니트 웨어를 만든다. 그는 RVN을 세계 최고의 니트 브랜드로 만드는 꿈을 꾼다. 오프라 윈프리, 팝스타 비욘세, 테일러 스위프트, 케이티 페리, 할리우드 스타 기네스 펠트로 등이 RVN을 입는다. 비욘세는 그가 제공하지도 않은 RVN 레깅스를 입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케이티 페리는 “RVN은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브랜드’라고 말한다. 그는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축적한 자신의 경험을 니트로 재현한다. “니트가 RVN을 통해 거듭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니트는 매력적인 소재일뿐더러 가능성이 거의 무한합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하나가 된 세계가 앞으로 니트를 입게 만들 겁니다.”
그는 “TV가 대세 플랫폼의 자리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내줬고,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이 결합한 덕에 이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처럼 혁신의 혁명을 좋아하는 사람이 기술의 진보 덕에 혁명을 도모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겁니다. 콜라보를 통해 RVN의 콘셉트를 가구·자동차 디자인으로도 확장할 수 있어요.”
파슨스 입학 전 그는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했었다. MTV에서 도나 카란의 패션쇼를 보고 패션 디자인의 세계에 매료돼 산업 디자이너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기수를 전격 선회했다. 그가 니트 옷을 만들 때 사용하는 기계엔 5000개의 바늘이 달렸다. 이런 기계가 전 세계에 깔려 있다. 한국에도 2500대가량 있다고 한다. 자신이 짠 프로그램을 현지에 보내면 실을 조달해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RVN 옷을 만들 수 있다. 디자인과 사이즈도 지정할 수 있다. 자동화로 인건비의 비중은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니트 옷은 다른 소재와 달리 재단·봉제 공정이 필요없다.
니트의 특성이 뭔가요? 니트는 겨울옷 아닌가요?
“무엇보다 편합니다. 니트는 옷감부터 디자인해 디자이너가 옷감에 갇히지 않습니다. 니트 직조 기술의 발달로 얼마든지 창조적인 디자인이 가능하죠. 속옷, 양말, 점퍼, 가방, 신발도 디자인할 수 있어요. 당연히 여름옷, 투명한 옷도 만들 수 있습니다. 니트는 새로운 기술 덕에 거의 새로운 소재로 거듭났습니다.”
RVN으로 내년 한국 시장 진출
RVN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뭔가요?
“뉴욕적인 겁니다. 빌딩 숲에 둘러싸인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을 연상하면 됩니다. 모던하고 혁신적·개성적이죠. 한마디로 아메리칸 팝인데, 소리로 표현하면 우렁차다고 할 수 있어요. RVN을 장차 K팝을 포함해 전세계 팝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키우고 싶습니다. 내년엔 한국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RVN은 미국의 주요 백화점에 거의 다 들어가 있다. 대중적인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바이어들은 대부분 아는 니트 전문 브랜드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니트와 만난 건 작은아버지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운영하는 니트 공장에서다. 작은아버지는 20년 넘게 자바에 니트 옷을 공급했다. 니트 디자이너가 자기 공장이 있다는 건 독보적인 강점이다.
한국의 디자이너 후배들에게 뭐라고 조언하겠습니까?
“두려워 말고 도전해야 합니다. 저는 조치원 복숭아밭 태생인데 중학생 때 꿈을 좇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어요. 끊임없이 도전한 덕에 아무 백도 없이 도나 카란에게 발탁됐고, 역시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마이클 코어스에게서 러브콜을 받았죠. 그러자면 패션에 미쳐야 합니다. 디자이너뿐 아니라 패션계의 성공한 사람은 모두 미친 사람들이죠. 자는 시간 빼고 패션만 생각합니다. 단 재능은 필수입니다. 패션 디자인은 타고난 DNA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어요.”
그는 마이클 코어스에게 스카웃돼 3개월 만에 수석 디자이너로 승진했다. 도나 카란 문하에서 쌓은 드레스 디자이너로서의 실력을 인정한 코어스는 휴가를 떠나면서 그에게 드레스 세 벌의 디자인을 주문했다. 그는 300가지 디자인을 했고 열 벌의 드레스를 만들어 마네킹에 입혔다. 마이클 코어스는 시계, 핸드백, 액세서리 등의 디자이너 제품으로 유명한 미국의 고급 패션 브랜드이다. 앤클라인 시절엔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려 사무실에 침대를 들여놓았다. “미국 패션계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중시합니다. 하나를 보고 열에 대해 판단하는 거죠. 마이클 코어스의 한 부사장은 허드렛일 하는 리셉셔니스트 출신인데 디자이너들을 찾아다니면서 ‘당신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뭐냐’고 묻고 다녔어요.”
자신의 브랜드 RVN을 시작한 후 그는 ‘스웨트숍’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당시 자신이 일한 환경이 노동자들의 땀을 짜내는 곳과 다름없었다는 것이다. 찌는 주말에 혼자서 팬티만 입고 일하면서 보는 사람이 없어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니트가 소재인 스웨터란 말의 어근이 땀(스웨트)이다. “비전을 펼쳐 어느 정도 브랜드 파워가 생길 때까지는 투자를 받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직접 태그 달고 포장하고 배달 일까지 했습니다. 그때 허드렛일 하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알게 됐죠. 투자를 일찍 받으면 투자자에게 종속되기 십상이죠. 경비 집행에도 제약이 따라 자칫 시장 상황에 찌들기 쉽습니다.”
창업 후 6년 간 그렇게 일하느라 건강을 해쳐 몸이 망가졌다. 그 덕에 가족의 중요성도 알게 됐다. 당초 그에게 창업을 부추긴 건 마케팅을 전공한 여동생이었다. 온라인 사업을 벌이며 트레이드 쇼를 하다 보니 오빠만큼 재능 있는 디자이너를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앤클라인에서 왕이 부럽지 않은 대접 받으면서 현실에 안주할 때 동생이 엉덩이를 걷어찬 셈이죠.”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패션계 진출을 포기해야겠군요?
“디자이너 말고, 세일즈, 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일할 수도 있죠.”
마케팅 전공한 동생이 창업 부추겨
디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미의 세계를 매체라는 캔버스에 표현하는 거죠. 공간이 매체가 되면 인테리어 디자인, 자동차로 표현하면 자동차 디자인, 선택한 캔버스가 옷감과 옷이면 패션 디자인이 되는 거죠. 그래서 천부적인 디자이너는 모든 것을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재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스트라디 바리우스로 연주하는 격이죠. 니트로 할 수 있는 표현도 거의 무궁무진합니다. 장차 니트 같지 않은 니트 제품을 만들 겁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러 루블, 달러 대비 가치 2년여 만에 최저…은행 제재 여파
2“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3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4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
51조4000억원짜리 에메랄드, ‘저주받은’ 꼬리표 떼고 23년 만에 고향으로
6“초저가 온라인 쇼핑 관리 태만”…中 정부에 쓴소리 뱉은 생수업체 회장
7美공화당 첫 성소수자 장관 탄생?…트럼프 2기 재무 베센트는 누구
8자본시장연구원 신임 원장에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 내정
9“‘元’ 하나 잘못 보고”…中 여성, ‘1박 5만원’ 제주도 숙소에 1100만원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