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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지방 부동산] 악성 중의 악성 ‘준공 후 미분양’ 수두룩

[불 꺼진 지방 부동산] 악성 중의 악성 ‘준공 후 미분양’ 수두룩

3년 반 넘게 집값 하락세 이어져… 지방 산업 붕괴와 과잉 공급 후유증
지방에 팔리지 않은 미분양 아파트 3~4채 중 하나가 악성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이다. 사진은 막바지 공사 중인 지방의 한 아파트.
경남 거제시 양정동 A아파트. 시세가 3.3㎡당 700만원대로 거제(평균 510만원)에서 비싼 편이다. 2009년 3월 입주한 이 아파트 84㎡(이하 전용면적)의 올해 평균 실거래가격이 2억5300만원이다. 10년 전 입주한 그해 평균 실거래가가 2억4353만원이었다. 10년 새 4%가량 오르는 데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제로 ‘마이너스’다. 이 아파트는 3년 전 3억7000만원으로 올랐다. 현 시세는 고점에서 40%가량 하락한 가격이다.

창원시 봉림동 B아파트 84㎡는 입주가 이뤄진 2011년 평균 실거래가가 3억5287만원이었는데, 올해 3억4408만원으로 내렸다. 이전 최고가는 2016년 4억1000만원이었다. 지난 4월 경북 포항시 초곡지구에 준공한 C아파트, 입주를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두 채 중 한 채 가까이 팔리지 않았다. 전체 553가구 중 미분양이 250가구다.

지방 주택시장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악성’ 사례들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 10월 8일 ‘지역 부동산시장 리스크 진단 및 대응방안 모색’ 세미나를 개최한 배경이다. 이 세미나는 정부와 언론·시장의 관심이 온통 서울 집값으로 쏠려 있는 가운데 지방 시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경종을 울렸다.

지방은 무시할 시장이 아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주택수와 일반가구수가 수도권보다 많다. 하지만 ‘덩치’에 비해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 주택매매거래량이 2011년 60만 가구를 넘어서며 수도권(37만여 가구)의 1.6배로 늘었으나 지난해엔 38만여 가구로 수도권(47만여 가구)의 80% 수준을 나타냈다.
 서울·지방 아파트값 격차 2.8배
주택매매거래량에 한국감정원의 평균 주택가격을 계산해보면 2011년 지방 거래금액이 전체의 40%를 차지했으나 올해(8월까지) 30% 정도로 감소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지방 시가총액이 수도권의 반 토막이고, 주택 수가 3분의 1 수준인 서울과 비슷하다. 지방과 서울 간 아파트 평균 가격 격차가 2016년 1.9배로 줄다 지금은 2.8배로 확대됐다. 서울 집값이 2014년 이후 줄곧 오르는 사이 지방 집값이 하락한 영향이다. 지방 아파트값은 2016년 초부터 45개월째 약세를 이어오고 있다. 이 기간 6.5% 내렸다. 서울은 15.1% 뛰었다.

지방 산업 붕괴와 대규모 주택 공급이 집값을 떨어뜨린 요인이다. 거제·창원·울산 등 지방 제조업이 쓰러지고 있다. 하지만 한해 15만~20만 가구이던 지방 주택 입주물량이 2013년 이후 매년 20만 가구를 넘어 지난해엔 29만8000여 가구로 30만 가구에 육박했다. 정부가 2차장기주택종합계획에서 예상한 신규 주택 수요는 17만 가구였다. 2013~18년 70만 가구가 과잉 공급된 셈이다.

지방에서도 광역시와 중·소도시 간에, 권역에 따라 주택시장 차별화가 심하다. 하지만 대부분 구체적 증상은 조금씩 달라도 병들어 있는 셈이다. 광역시보다 중소도시가, 특히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사정이 심각하다.

지방 주택시장은 지역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이슈다. 금융이라는 혈관을 통해 국내 경제 전반으로 연결돼 있다. 주택담보대출만 보더라도 7월 기준으로 전체 주택담보대출금액(618조원)의 40%인 222조가 지방에 묻혀있다. 세미나 발표자인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실장은 “주택시장 리스크가 금융 리스크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도 대부분 현재 위기가 아니더라도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일부 지방에서 거래가 늘고 가격이 오르기도 해 지방 주택경기가 나아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있다.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방 아파트값 약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하락폭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낙관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지방을 휩쓸고 있는 ‘입주 쓰나미’가 적어도 내년까지 더 몰려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9월 말 부동산 전문가 1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58%가 지방 집값이 내년 더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방 주택시장의 시름이 더 깊어진다.

정부는 판단이 좀 다르다. 이날 세미나에서 국토부 관계자는 “2010년대 초반 장기 상승 후 조정 과정으로 하향 안정세”라고 말했다. 심각성이나 문제성이 느껴지지 않는 표현이다. 대책도 갈라졌다. 허윤경 실장은 “지방에서도 상황이 더 안 좋은 미분양 관리지역의 리스크를 분담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전문가 대부분 내년 지방 집값 하락 예상
미분양 물량에 대해 일부 공공이 분양가 50% 수준에서 환매 조건부로 매입하고 보증건수 제한 완화 등을 임대주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기존 주택 소유자의 대출을 조정하는 프로그램도 제시했다. 허 실장은 “리스크가 전이되기 전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인위적 매입은 도덕적 해이를 낳고 업체의 밀어내기 분양을 유발할 수 있다”며 “미분양이 많은 곳에 임대수요가 많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임대주택 활용 효과가 미지수”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미분양관리지역을 중심으로 시행하고 있는 임차인 보호, 공급 조절 등 이외의 추가 대책 마련에 선을 그은 셈이다.

일부에선 차별적인 정부 정책을 지적한다. 지방 집값 하락세가 ‘상승 후 조정 과정’이면 서울 집값 상승세도 2010년대 초반 장기 하락 후 상승 과정으로 ‘상승 안정세’로 봐야 하는 것이냐다. 허윤경 실장은 “정부가 서울 집값 과열에만 신경 쓰지 말고 지방 냉각에도 주의를 기울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은 “주택 정책을 세워 시행하는데 1년 이상 걸리는 정책 시차가 있기 때문에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6년 7월 발간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보고서 ‘긴급진단, 지방주택건설시장-침체 원인과 연착륙 방안 모색’을 꺼냈다. 당시 정부가 ‘버블 세븐’을 말할 정도로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고 지방 집값도 상승세를 타던 때여서 “뜬금없는 보고서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2005년 말 4만5000가구이던 지방 미분양이 2006년 말 6만9000가구로, 2008년 말엔 13만8000여 가구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지방 주택시장을 강타했다.

-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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