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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환자 치료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 치료한다”

“우린 환자 치료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 치료한다”

전자의무기록(EMR), 임상 데이터를 의료진이 공유하는 본연의 역할 대신 주로 비용 청구에만 사용하면서 의사가 환자에게 전념 못해
ILLUSTRATIONS BY ALEX FINE
“병원에 가면 흔히 의사가 환자에게 등을 돌리고 컴퓨터에 몰두하는데 왜 그럴까요?” 나는 수년 동안 사람들에게 그렇게 물었다. 흔히 듣는 답은 이렇다. “내 말을 기억하려고 받아적어요.” “내게 필요한 검사를 처방하죠.” “내가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게 하려고 그래요.”

첫 번째 답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다 틀렸다. 의사가 요즘 병원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의 주된 목적은 비용 청구다. 미국에서 전자의무기록(EMR)은 한마디로 ‘금전등록기’다. EMR은 2008년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의무 관련 기록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도입했다. 좋은 아이디어였다. 환자의 진료 이력과 관련된 모든 임상 데이터를 의사와 의료 종사자에게 디지털 방식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EMR이 바로 그 목적으로만 사용된다면 정말 이상적이다.

그러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보험업계가 EMR에 끼어들어 비용 청구를 통해 의료 데이터 부분을 돈 부분과 떼어낼 수 없도록 단단히 연결시켰다. 그 핵심 기능이 진료와 치료를 코드화함으로써 비용 청구를 신속 정확히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EMR이 보편화됐다.

그 결과 컴퓨터 화면을 사이에 두고 전쟁이 벌어진다. 다른 모든 전쟁처럼 이것도 돈에 관한 싸움이다. 한쪽에선 병원 원무팀이 의사에게 EMR 화면에서 수많은 박스를 클릭하도록 강요한다. 클릭하면 거기서 또다시 수많은 박스가 튀어나온다. 그렇게 계속 클릭해야 한다. 의사의 진료와 치료에 최대한의 비용을 청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른 한쪽에선 보험회사 직원이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애쓴다.

대형 병원에서 EMR을 설치하고 유지하는 비용은 수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 비영리의료 뉴스 매체 카이저 헬스 뉴스와 미국의사협회 저널(JAMA)은 최근 EMR을 검토한 보고서에서 의료 서비스 질과 환자 안전을 개선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의료 비용은 연간 수십억 달러가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더 중요한 요소는 인적 비용이다. 이 비용은 환자와 의사 양쪽 모두의 건강을 위태롭게 한다. 미국에서 가장 널리 팔리는 EMR 시스템은 ‘에픽(EPIC)’이다. 너무 인기가 없어 그 이름만 들어도 비명을 지르는 의사도 있다.

지난해 미국의학저널에 실린 한 논문은 최근 널리 확산되는 ‘의사 탈진’ 문제를 다뤘다. 보람이 없다는 느낌, 냉소주의,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할 의욕이 없는 증상을 가리킨다. 논문 저자들은 그런 탈진 증상의 확산과 연관된 유일한 요인이 2008년 도입된 EMR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지난해 의학 잡지 STAT에 발표된 다른 논문은 “의사들이 ‘탈진’한 게 아니라 ‘도덕적 부상’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그 논문에 따르면 의사들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인 불안, 우울, 자살(하루 3명꼴로 현역 군인의 2배), 약물 남용, 은퇴 등은 부당한 전쟁에 참전함으로써 겪는 것과 비슷한 ‘도덕적 부상’이다.

대형 병원의 의사가 컴퓨터 화면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환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약 두 배에 해당한다. 그것도 종종 자택에서 밤에 컴퓨터로 작업해야 한다. 16시간 교대 근무를 하는 인턴과 레지던트는 근무 시간의 약 80%를 환자와 대면하지 않고 컴퓨터 화면 앞에서 보낸다. 병상 곁에서 ‘환자와 접촉하라’는 가르침은 옛이야기다. 레지던트는 보험을 청구하기 위해 컴퓨터 화면에 매달린다. 16시간 1회 근무 동안 평균 8000번을 클릭한다. 그들은 “우린 환자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를 치료한다”고 불평한다. 그에 따른 의사의 ‘탈진’으로 발생하는 의료업계의 피해가 연간 46억 달러에 이른다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논문도 나왔다.

그처럼 의사는 환자보다는 비용 청구에 신경 쓰도록 강요받는다. 그에 따라 환자는 갈수록 푸대접을 받는다. EMR 화면은 보기에 상당히 어지럽다. 수많은 선이 움직이며, 클릭해야 할 박스가 수없이 많다. 의사는 이런 수많은 데이터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으며 최대한 많은 질병·검사·진료·치료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래야 최대한의 비용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스 하나를 클릭하면 박스 20개가 더 나타난다. 박스 하나를 클릭할 때마다 비용이 추가된다. 과거 손으로 쓰는 처방전은 1건에 평균 15초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20개 박스로 구성된 리스트를 계속 부지런히 클릭해야 한다. 그러면서 처방 1건당 걸리는 시간이 최대 약 3분으로 늘었다. 그 결과 의사들이 환자에 집중하지 못하고 컴퓨터에 매달린다. 비유하자면 운전하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다. 실수도 불가피하게 많이 나온다. 그러면서 환자를 돌보는 데 핵심 요소인 인간적인 교감과 눈 맞춤, 접촉이 사라진다.

환자가 고통을 겪는 동안 의사가 곁에 있으면 혜택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없이 많이 나왔다. 예를 들어 ‘나쁜 소식’을 전하는 방식이 이병률과 사망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 좋지 않은 방식을 사용하면 증상이 악화하고 사망을 앞당길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의사들은 환자와 교감할 시간이나 에너지가 없어진다. 그것이 의사의 의무인데도 말이다.

최근 나는 의과대학원생들과 병동에서 그들이 받는 훈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레지던트의 가르침이 별로 없어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요즘 환자 회진은 병실 복도를 따라 움직이는 휴대용 화면을 통해 이뤄진다. 회진할 때 의료팀이 환자의 병실 안에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회진이 끝나면 레지던트는 컴퓨터로 달려가 클릭하느라 바쁘다. 대학원생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복도에서 서성인다. 그들은 디지털 화면에 익숙한 밀레니엄 세대지만 ‘에픽’ EMR을 끔찍한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ILLUSTRATIONS BY ALEX FINE
나는 그들에게 더 나은 대안이 있는지 물었다. 대학원생 중 한 명이 “보훈 병원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왜 그런지 묻자 그는 “보훈 병원의 의무기록 시스템은 약간 투박하지만 환자의 특기 사항을 자세히 입력할 수 있고, 이해하기 쉬우며, 전 세계의 보훈 병원 시스템과 연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에픽’과 ‘보훈 병원 시스템’의 차이가 뭔지 다시 물었다. 대학원생들이 잠시 생각했다. 그중 한 명이 “비용 청구가 없다”고 말했다. “영리 병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EMR 컴퓨터에선 환자 진료와 치료가 비용 청구와 완전히 결합됐다. 따라서 환자 진료와 치료의 질을 개선하려면 결합된 그 두 부분을 분리해야 한다. 비용 청구를 시스템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의사가 EMR에서 클릭할 때는 돈이 아니라 진료와 치료가 목적이어야 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데이터를 사용해야 한다. 그 데이터는 의료진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래야 EMR의 원래 목표인 ‘정보 공유’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런 공유의 혜택은 잘 알려졌다. 예를 들어 치료 약물의 상호작용에 관한 문제를 명시해 환자가 다른 병원에 갔을 때도 의료진이 그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공지하고, 환자의 외래 병원에 영상 자료와 검사 결과를 전달하고, 가정 주치의와 전문의를 연결하고, 지방 병원의 어렵고 복잡한 수술을 감독할 수 있다. 또 의사는 비용 청구에서 해방됨으로써 환자와 교감하는 본연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다.

EMR은 이처럼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훌륭한 시스템이다. 지금도 그 원래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EMR에서 비용 청구를 제거하고 그 시스템을 순전히 의료 서비스만을 위해 사용하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메디케어(65세 이상의 건강보험 시스템)·메이케이드(저소득층의 건강보험 시스템)와 보훈 병원이라는 기존의 두 가지 시스템을 모델로 하는 진정한 국가 의료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그 비용은 미국 어디에서나 두 가지가 비슷하다. 오랜 기간에 걸쳐 미국인 각각의 건강을 조사한 종단 연구에 따르면 65세가 되면 건강 호전이 급격한 증가세를 보인다. 메디케어가 65세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메디케어 참여자는 보조 수단으로 민간 건강보험에 드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없앨 필요는 없다. 공공 건강보험 시스템을 도입한 거의 모든 다른 국가에서도 더 많은 보험 적용을 원하는 사람을 위해 그와 병행해서 시장이 주도하는 영리 민간 건강보험 시스템을 운영한다. 미국에서도 그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다. 비용 청구가 EMR과 연계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보훈 병원 시스템에서처럼 의사는 환자의 건강과 관련 있는 데이터, 검사 처방, 진단과 치료에만 클릭하면 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비용은 일괄 적용하면 된다. 보험회사와 병원 간의 비용 청구 전쟁은 이제 끝내야 한다. 이익을 위해 비이성적으로 끊임없이 클릭하는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 의사는 환자와 가족과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

이런 새로운 국가 의료 시스템을 확립하면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민간 건강보험은 자금의 33%를 행정 비용에 사용한다. 메디케어·메디케이드의 경우 그 비율은 3%에 불과하다. 그 나머지 30%(수십억 달러에 이른다)는 실질적인 의료에 사용할 수 있다. 아울러 다른 정부 지출(예를 들면 국방부의 예산은 700조 달러다)의 적은 일부라도 떼어내 의료 서비스에 사용할 수 있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극장에서 누군가 쓰러졌을 때 “여기 보험회사 임원 있습니까?”라는 다급한 목소리를 들어봤는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와 간호사, 병원과 의료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과 기관은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필수적인 인력이다. 그들이 없으면 의료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과 환자가 거대한 연대를 결성하고, 그 힘으로 미국의 의료 서비스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의사는 환자를 돌보는 데 전념할 수 있다. 환자를 위해, 또 의사 자신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너무 이상적이라고?

내가 바라는 건 오로지 온전한 정신의 분별력뿐이다.

- 새뮤얼 솀



※ [필자는 의학박사로 뉴욕대학 의과대학원의 의료인문학 교수이며, 베스트셀러 ‘하우스 오브 갓(The House of God)’의 저자다. 이 글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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