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CJ 부회장의 부활] 와신상담하던 ‘그녀’가 웃었다
[이미경 CJ 부회장의 부활] 와신상담하던 ‘그녀’가 웃었다
‘블랙리스트’ 올라 미국행… 영화 ‘기생충’ 수상으로 CJ 엔터사업 중심에 “땡큐~제이!(CJ그룹 이재현 회장)”
신이 난듯한 낭랑한 목소리가 지난 2월 9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 울려 퍼졌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자, 영화의 투자배급사 부회장 자격으로 무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말했다. 이 부회장은 “봉준호 감독의 모든 것이 좋다. 그의 웃음, 독특한 머리 스타일, 걸음걸이, 패션 모두 좋다. 그가 연출하는 모든 것들, 그 중에서도 그의 유머 감각을 좋아한다”며 이어서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지지해준 내 형제에게도 감사하다”고 밝혔다. 남동생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언급한 것이다.
이미경 부회장이 영화 ‘기생충’과 함께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을 올렸다. 이 부회장은 2014년 10월 당시 정부의 퇴진 압박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한동안 미국에 머물었다. 이후 돌아와 영화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하며 이전 경영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의 미디어가 주목한 자리의 중심에 섰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이 부회장은 문화산업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현재 드라마, 음악, 극장 등 미디어 산업 전반을 운영하는 CJ ENM의 엔터업계 첫 발걸음이 영화산업이었는데 이 부회장이 그 길을 열었다. 1995년 이 부회장은 이재현 회장과 함께 글로벌 애니메이션 영화사 드림웍스 투자를 위해 미국 출장에 나섰다. 드림웍스의 설립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등을 만났고 당시 CJ제일제당은 드림웍스 지분 30%를 확보해 2대 주주가 됐다. 이때 CJ제일제당의 투자금은 3억 달러였는데 이 금액은 CJ제일제당 연 매출의 20%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1998년엔 CGV를 오픈하며 영화관 사업에 진출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영화산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장본인인 셈이다. 삼성, 대우 역시 엔터 산업에 뛰어들긴 했으나 1997년 IMF 위환위기 이후 두 그룹 모두 사업을 접은 상태였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CJ의 영화산업도 큰 이윤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2018년 CJ E&M과 CJ오쇼핑이 합병해 현재의 CJ ENM이 설립되면서 영화산업 투자를 본격화했지만, 매출은 저조하다. CJ ENM은 지난 2019년 3분기에 영화 부문에서 매출 843억원, 영업이익 158억원을 거뒀다. 같은 기간 CJ ENM 전체 매출 1조1531억원의 10%도 미치지 못했다. 이화정 NH투자증권 연구원은 “CJ ENM의 사업 부문별 매출을 보면 TV 프로그램 관련 미디어가 44%, 커머스가 37%, 음악이 10%를 차지하고, 영화는 가장 낮은 9%를 나타낸다. 영화는 성공한다고 해도 일시적인 이벤트성 이윤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진한 매출 성적에도 영화사업에 지속해서 투자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이 부회장의 영화 사랑이 있다.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기도 한 이 부회장은 CJ가 수입할 영화를 국내 상영 전에 항상 미리 공수해 관람한다. CJ는 1997년 영화 ‘인샬라’ 투자 배급 이후 지금까지 320여 편의 국내 영화에 투자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CJ그룹이 엔터 산업에 투자한 누적 금액은 7조5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 부회장에겐 시련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이 부회장은 CJ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변호인’, tvN 예능 프로그램 ‘여의도 텔레토비’ 등 반정부적인 콘텐트를 만든다는 이유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특히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개봉했는데 당시 문재인 야당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며 눈물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3년 겨울 개봉해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변호인’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명한 영화이라 당시 보수 정권에겐 달가울 리 없었다. 이때 일부 보수층에선 ‘CJ는 좌파성향 기업’이라는 인식이 형성됐다.
결국 이미경 부회장은 당시 박근혜 정부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았다. 2014년 10월, 이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실제 2017년 열린 재판에서 특검은 최순실이 이 부회장을 향해 “만든 영화가 좌파라서 00년”이라고 욕설한 것을 들었다는 차은택의 진술조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CJ ENM 내부 관계자는 “미국에 머물긴 했지만 부회장 직함이 내려놓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영에 손을 뗐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 부회장의 갑작스런 미국행을 ‘타의에 의한 경영 손 놓기’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이 물러선 자리에는 최순실 측근인 차은택이 등장했다. 차씨는 CJ가 1조4000억원을 투자한 K-컬처 밸리 사업을 기획하는 등 CJ 문화사업 전반에 관여했다. 이 부회장이 미국으로 떠난 2014년 이후 CJ가 투자, 배급한 영화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애국주의를 강조한 영화가 잇따라 개봉한 것이다. 영화 ‘명량(2014년)’과 ‘국제시장(2014년)’ ‘인천상륙작전(2016년 )’이 꼽힌다. 이 부회장과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CJ ENM은 봉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2003년), ‘마더’(2009년), ‘설국열차’(2013년), ‘기생충’(2019년) 제작을 지원했다. ‘설국열차’엔 4000만 달러라는 거대한 제작비 전액을 지원했고, ‘기생충’ 제작에도 125억원을 투자했다.
지난 2019년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대단한 모험, 많은 예술가를 지원해 준 CJ 식구에게 감사한다”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CJ는 그동안 이재현 회장이 기업의 소유권을 갖고, 방송 등 미디어 부문 경영을 이미경 부회장이 담당해 왔다. 재계 안팎에선 이번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향후 이미경 부회장의 보폭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벌써 이 부회장의 독립 시나리오도 나온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CJ ENM 주식 지분율은 0.11%에 불과하다. CJ ENM 주주구성을 보면 CJ 40.07%, 자기주식 10.47%, 이재현 회장이 1.82%이고 이 회장의 자녀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과 이경후 CJ ENM 상무가 각각 0.50%, 0.20% 순이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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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난듯한 낭랑한 목소리가 지난 2월 9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 울려 퍼졌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자, 영화의 투자배급사 부회장 자격으로 무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말했다. 이 부회장은 “봉준호 감독의 모든 것이 좋다. 그의 웃음, 독특한 머리 스타일, 걸음걸이, 패션 모두 좋다. 그가 연출하는 모든 것들, 그 중에서도 그의 유머 감각을 좋아한다”며 이어서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지지해준 내 형제에게도 감사하다”고 밝혔다. 남동생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언급한 것이다.
이미경 부회장이 영화 ‘기생충’과 함께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을 올렸다. 이 부회장은 2014년 10월 당시 정부의 퇴진 압박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한동안 미국에 머물었다. 이후 돌아와 영화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하며 이전 경영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의 미디어가 주목한 자리의 중심에 섰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이 부회장은 문화산업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현재 드라마, 음악, 극장 등 미디어 산업 전반을 운영하는 CJ ENM의 엔터업계 첫 발걸음이 영화산업이었는데 이 부회장이 그 길을 열었다. 1995년 이 부회장은 이재현 회장과 함께 글로벌 애니메이션 영화사 드림웍스 투자를 위해 미국 출장에 나섰다. 드림웍스의 설립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등을 만났고 당시 CJ제일제당은 드림웍스 지분 30%를 확보해 2대 주주가 됐다. 이때 CJ제일제당의 투자금은 3억 달러였는데 이 금액은 CJ제일제당 연 매출의 20%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드림웍스 지분 확보 후 엔터사업 지속 투자
CJ의 영화산업도 큰 이윤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2018년 CJ E&M과 CJ오쇼핑이 합병해 현재의 CJ ENM이 설립되면서 영화산업 투자를 본격화했지만, 매출은 저조하다. CJ ENM은 지난 2019년 3분기에 영화 부문에서 매출 843억원, 영업이익 158억원을 거뒀다. 같은 기간 CJ ENM 전체 매출 1조1531억원의 10%도 미치지 못했다. 이화정 NH투자증권 연구원은 “CJ ENM의 사업 부문별 매출을 보면 TV 프로그램 관련 미디어가 44%, 커머스가 37%, 음악이 10%를 차지하고, 영화는 가장 낮은 9%를 나타낸다. 영화는 성공한다고 해도 일시적인 이벤트성 이윤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진한 매출 성적에도 영화사업에 지속해서 투자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이 부회장의 영화 사랑이 있다.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기도 한 이 부회장은 CJ가 수입할 영화를 국내 상영 전에 항상 미리 공수해 관람한다. CJ는 1997년 영화 ‘인샬라’ 투자 배급 이후 지금까지 320여 편의 국내 영화에 투자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CJ그룹이 엔터 산업에 투자한 누적 금액은 7조5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 부회장에겐 시련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이 부회장은 CJ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변호인’, tvN 예능 프로그램 ‘여의도 텔레토비’ 등 반정부적인 콘텐트를 만든다는 이유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특히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개봉했는데 당시 문재인 야당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며 눈물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3년 겨울 개봉해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변호인’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명한 영화이라 당시 보수 정권에겐 달가울 리 없었다. 이때 일부 보수층에선 ‘CJ는 좌파성향 기업’이라는 인식이 형성됐다.
결국 이미경 부회장은 당시 박근혜 정부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았다. 2014년 10월, 이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실제 2017년 열린 재판에서 특검은 최순실이 이 부회장을 향해 “만든 영화가 좌파라서 00년”이라고 욕설한 것을 들었다는 차은택의 진술조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CJ ENM 내부 관계자는 “미국에 머물긴 했지만 부회장 직함이 내려놓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영에 손을 뗐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 부회장의 갑작스런 미국행을 ‘타의에 의한 경영 손 놓기’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이 물러선 자리에는 최순실 측근인 차은택이 등장했다. 차씨는 CJ가 1조4000억원을 투자한 K-컬처 밸리 사업을 기획하는 등 CJ 문화사업 전반에 관여했다. 이 부회장이 미국으로 떠난 2014년 이후 CJ가 투자, 배급한 영화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애국주의를 강조한 영화가 잇따라 개봉한 것이다. 영화 ‘명량(2014년)’과 ‘국제시장(2014년)’ ‘인천상륙작전(2016년 )’이 꼽힌다.
향후 엔터산업 분리? CJ ENM 지분율은 0.11%
지난 2019년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대단한 모험, 많은 예술가를 지원해 준 CJ 식구에게 감사한다”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CJ는 그동안 이재현 회장이 기업의 소유권을 갖고, 방송 등 미디어 부문 경영을 이미경 부회장이 담당해 왔다. 재계 안팎에선 이번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향후 이미경 부회장의 보폭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벌써 이 부회장의 독립 시나리오도 나온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CJ ENM 주식 지분율은 0.11%에 불과하다. CJ ENM 주주구성을 보면 CJ 40.07%, 자기주식 10.47%, 이재현 회장이 1.82%이고 이 회장의 자녀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과 이경후 CJ ENM 상무가 각각 0.50%, 0.20% 순이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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