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치유에서 예방·관리로 패러다임 이동... 소비자 중심 서비스로 이전·확대

사스, 메르스에 이어 최근 코로나19까지 겪으면서 생활 속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국가 보건의료 체계와 국내 헬스케어 산업의 변화를 촉구하는데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보건의료와 정보통신(IT)의 융·복합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들이 문턱을 낮출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헬스케어 시장 수요는 크게 병원·환자·보험사·제약제조사로 구성된다. 지금까지는 병원과 의사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지만 향후 환자와 제조사로 이전, 확대될 예정이다. 보건의료 기술이 나노·로보틱스·빅데이터·사물인터넷·이동통신·인공지능·클라우드 등 디지털 혁신기술과 만나면서 모바일 스마트 서비스, 소비자 중심 서비스로 확대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손잡은 헬스케어 사업은 기존 의료서비스를 바꿔놓고 있다. 가장 큰 변화가 빅데이터 중심의 재편이다. 진료·처방·투약·계산 등 현재 병원에서 제공하는 대부분의 의료서비스는 디지털로 기록돼 빅데이터로 저장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병원은 전자건강기록(EHR)과 병원정보시스템(HIS)을 도입해 방대한 양의 환자·임상 데이터를 누적하고 있다. 그 결과 병원에는 진료·임상 정보를, 환자에겐 식단·운동 같은 건강관리법을, 제약·제조사엔 신약·의료기 개발 방향을, 보험사엔 효율적인 보험료 관리방안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고 있다.

특히 이미지·영상·글을 융합한 디지털 빅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 기술이 수많은 논문과 약물을 검색해 의료진이 최적의 치료방안을 찾도록 도와준다. 이 기술은 최근 암 진료에 일부 활용되고 있으며, 앞으로 신경·호흡·소화 질환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빅데이터는 의약품과 의료기기 분야에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제약사들은 유전자 빅데이터로 임상연구 절차와 유효 물질 발견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아내고 제어하는 기술에 활용해 항암 표적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모바일 웨어러블 기기가 등장하고 있다. 이 기기들은 이용자의 수면시간·칼로리·활동량·혈압·심전도 등을 정기적으로 측정하고, 이용자 선택에 따라 관련 의료기관에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심장질환 조기 진단과 당뇨환자 혈당 관리에 활용되면서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해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의 신속한 제품 출시를 촉진하기 위해 규제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의료 분야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른 개인정보 보안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데도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이 성장하고 있는 배경은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 있다. 노인층의 노년기 질환과 만성질환이 늘어나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주요국가들의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2030년 총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일본이 31.8%로 가장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어 한국 24.3%, 영국 21.9%, 미국 19.7%, 중국 16.2% 순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한국의 노인인구 성장세가 가장 가파르다. 1970년에 3.1%였던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2010년 11%를 찍은 뒤 영국, 미국, 중국을 추월할 정도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16년 약 960억 달러에서 연평균 20% 넘게 성장하고 있으며 2020년엔 약 206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맞춰 헬스케어 산업의 패러다임도 단순한 치료·치유에서 벗어나 질환 예방·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헬스케어 산업계에선 이 같은 변화를 4P로 함축하고 있다. 4P는 Preventive(예방), Predictive(예측), Personalized(개인맞춤), Participatory(참여)를 의미한다.

미국 주요 병원들은 구글·애플 등 IT 거인들과 손잡고 의료 서비스를 개선해가고 있다. 국내 산업은 2022년에 10조원을 넘을 전망이며 정부도 3년 전부터 국가혁신성장동력에 헬스케어와 바이오헬스를 포함시켜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풀지 못한 규제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 원격진료만 해도 오래 전에 기술 개발과 도입 논의가 이뤄졌지만 규제 때문에 코로나19 사태에도 제한적으로 적용하는데 그쳤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 서비스의 안전성 확보와 규제 선진화를 동시에 양립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의료계와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개선이 시급한 규제는 국정현안에 상정하면서 개선방안을 찾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에서 최근 활발한 성장을 보이는 분야는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시장이다. 글로벌 신흥기술 리서치기업인 테크나비오(TechNavio) 조사에 따르면 AR·VR 시장 규모는 2018년 10억804만 달러에서 연평균 28.15% 증가해 2023년엔 34억8456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같은 기간 하드웨어는 6억6662만 달러에서 23억1662만 달러로, 소프트웨어는 3억4142만 달러에서 11억6794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기준 AR·VR 세계 시장의 용도별 증가 추이를 보면 환자 치료관리가 가장 많고, 의료 연수·교육, 피트니스 관리, 약국 관리, 수술 순이 될 전망이다.

이종훈 리즈벨클리닉 원장(국제미용성형학회 정회원)은 “해외에서 다양한 스마트 헬스케어 기기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규제에 부딪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며 “기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민감한 개인질환 정보 보안과 정보 유출시 불이익 파장 등에 대한 방안 마련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을 피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홈트레이닝(Home Training)이 인기다. 덩달아 홈트레이닝과 관련된 앱 내려 받기, 온라인 쇼핑몰의 운동기구 판매도 늘고 있다. 홈트레이닝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 등 동영상 서비스를 타고 2년 전에 등장했다. 당시엔 늘어나는 1인 가구를 겨냥한 ‘집에서 나홀로 즐기기 운동’이었다. 피트니스센터를 오가는 시간, 값비싼 전문가 코칭 비용, 잦은 야근으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선납 회원권 등을 절감하려는 목적도 다분했다. 이번엔 코로나19 탓이다. 실내에서 다른 사람과 호흡하고 운동시설을 함께 이용하기가 꺼림칙해서다. 혁신적인 정보통신기술(ICT)로 일대일 온라인 코칭을 제공하는 전문 앱과 사이트가 많아진 점도 이들을 유혹했다. 쇼핑에 이어 운동도 온 디맨드(on-demand, 언제 어디서나 주문 즉시 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인 셈이다.

과거 일방적인 동영상과 달리 요즘 스타트업이 내놓는 홈트레이닝 강좌는 재미난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해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대표적인 해외 스타트업 홈트레이닝인 펠로톤, 토날, 미러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대규모 투자까지 받아 몸값 비싼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펠로톤은 터치스크린을 통해 뉴욕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코칭을 보며 실내용 바이크 운동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전문가가 일대일 코칭을 해줘 동기를 불어넣어준다. 토날은 벽에 설치한 화면과 운동기구로 전문가 강좌를 보며 운동하는 서비스다. 개인 훈련 시스템 기능을 내장해 맞춤형 운동코스와 운동방법을 안내해준다. 미러는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한 거울 콘셉트 화면을 통해 자신의 모습과 전문가의 동작을 보면서 배우는 홈트레이닝 서비스다. 미러와 연동된 앱은 요가·복싱 등 20여개 종목을 전문가 코칭과 함께 수준별로 제공한다.

국내에도 투자자들의 사랑을 받은 스타트업 홈트레이닝이 있다. 모두의 트레이닝, 라이크핏, 운동닥터, 12PT 등이다. 이들은 온라인 운동 플랫폼과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운동 단계에 맞춰 적합한 개인 맞춤형 운동과 식단을 제공한다. 이 밖에도 유튜브와 구글플레이에도 다양한 전문가 운동 강좌를 담은 무료 동영상과 앱이 많이 올라있다.

-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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