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36) 흔들리기 쉬운 리더의 마음관리(2)] 당신의 회복탄력성은 어떤가요?
[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36) 흔들리기 쉬운 리더의 마음관리(2)] 당신의 회복탄력성은 어떤가요?
불안은 공격성 키워… 하소연·업무분산·휴식으로 ‘압박’ 벗어나야 요즘 애완견을 키우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개에게 물리는 사람들도 늘었다. 어느 쪽에 잘못이 있을까? 무는 개의 잘못일까, 물리는 사람의 잘못일까?
말도 안 되는 질문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영국 리버풀 대학 연구팀이 개를 키우고 있는 사람과 키우고 있지 않는 사람 694명을 대상으로 연구해 보니 유난히 개에게 잘 물리는 사람이 있었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일수록 개에 더 많이 물렸다. 이유가 있었다.
개들의 세상에서는 힘이 전부다. 그러니 상대가 공격적으로 나올 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싸우든가 도망가든가. 하지만 도망쳐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막다른 골목 상황에서는 먼저 공격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 까닭이다. 개들이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을 잘 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녀석들은 이런 행동을 공격의 전조로 여긴다. 그래서 미리 공격한다. 다른 많은 연구에 의하면 주인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성향이 있으면 개도 그렇게 된다. 불안에 전염된다.
우리가 여기서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불안이 당사자를 공격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공격성향이 강해질수록 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변한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소 닭 보듯 하는 사이가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구성원들의 행동이 소극적, 수동적이 되기 마련인데 이게 또 리더에게는 공격성향을 높이는 재료가 된다. 리더와 구성원, 조직 모두에게 손해다. 불안을 처리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요즘처럼 경기가 바닥이 되면 불안이 한 번씩 마음을 확 휘젓는 일이 많아진다.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 끝에 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한없이 졸아드는 마음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을 때도 있다. 먹구름 같은 불길한 생각들이 스멀스멀 가슴을 꽉 채워 답답해진다. 그렇게 나날이 한숨만 늘게 된다. 잠도 설친다. 문득 잠에서 깨면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다시 잠들 수가 없다. “이거 영업 3팀에서 해보는 게 어때?” 며칠 전 사장이 던진 말 한 마디가 바윗돌처럼 가슴을 짓누른다. 지금 하는 일만으로도 버거운데 그 어려운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가 싶다. “일단 해보라”고 하니 들고 나오긴 했는데 암담하다. 과장들에게 말했더니 다들 한숨만 쉰다. 왜 하필 나에게 맡겼을까? 나가라는 건가? 여기서 나가면 뭘 하지? 며칠 전 본 매출 수치가 하루 종일 뇌리를 맴돈다. 아무리 경기가 안 좋다 해도 너무 떨어진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대책이 안 선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몰라 미칠 것 같다.
이럴 땐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좋다. 일어나서 좀 더 넓은 곳으로, 가능하면 탁 트인 전망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런 곳에 시선을 두는 게 좋다. 눈이 탁 트이면 숨이 트이고 마음도 트인다. 눈이 넓어지면서 마음도 넓어진다. 우리는 정신이 몸을 움직인다고만 생각하지만 최근 뇌과학 연구에서 나타나듯 몸도 정신을 움직인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자연경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로가 해소된다. 회복 속도도 빨라진다. 숲이나 공원 같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말할 필요도 없다. 긴장을 완화시켜 주고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 우울함을 가시게 한다. 도파민을 통해 가벼운 흥분이 일어나기도 한다. 식물이 자기보호를 위해 만든 피톤치드는 원래 세균을 죽이는 용도이지만 우리 마음의 세균 같은 불안에도 효과가 있다. 숲 속을 산책하면서 눈길을 끄는 나뭇잎이나 새의 깃털, 나뭇조각 같은 걸 줍거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자신도 모르게 기분전환이 된다. 일명 ‘채집 황홀’이라는 행동이다.(에마 미첼, [야생의 위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싶거나 마음이 어지럽다 싶을 때 혼자 조용한 곳에 앉아 자신의 숨소리를 들어보라. 예상 외로 숨이 거칠고 불규칙적일 것이다. 이럴 때에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가능하면 코로 숨 쉬는 게 좋다. 호흡에는 흉식 호흡과 복식 호흡이 있다. 흉식 호흡은 가슴으로 숨 쉬는 것이고 복식 호흡은 배로 숨 쉬는 것인데, 복식으로 호흡하면 숨(산소)을 더 깊게 들이마실 수 있어 정신을 맑게 할 수 있고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자꾸 불안 수치를 높이는 상황을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불안을 부채질하는 상황 안에 있으면 그 안에서 헤매게 되고 결국 매몰될 수 있다. 미로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오게 되면 불안을 야기하는 상황은 상황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가 된다. 왜 획기적인 아이디어들이 산책이나 샤워, 드라이브를 하는 도중 떠오를까? 상황을 벗어날수록 그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작은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상황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라면 마음만이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휴가 때 찍은 사진이나 가족사진,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들을 옆에 두고 거기로 시선을 옮기는 것이다. 눈을 감고 즐거웠던 경험을 떠올리거나 명상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읽으면 마음이 진정되는 책들을 가까운 곳에 비치해 놓는 것도 좋다. 헝클어지고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이 된다.(화를 냈을 때도 마찬가지다. 해야 할 말만 간단히 하고 빨리 그곳을 벗어나는 게 좋다.) 물론 이런 것들로 불안을 없앨 수는 없다. 단기적인 처방인 까닭이다. 좀 더 좋은 건 마음 어딘가에 있는 불안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다.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큰 소리를 내며 할 수 있는 격한 운동이다. 어느 정도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다. 누누이 말해온 것처럼 고민이나 불안은 마음에서 꺼내기만 해도 상당 부분 사라진다. 하소연을 하면 마음이 개운해지듯 불안을 털어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문제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한단 말인가? 리더들이 조직(구성원)에게 절대 보이면 안 되는 것들이 초라한 모습, 자신 없어 하는 모습, 불안한 모습인데 말이다.(리더를 따르려는 마음이 사라진다. 능력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친구나 배우자들이라 해도 어느 이상은 힘들다. ‘또 그 얘기?’라는 표정을 자기들도 모르게 짓는다.
그래서 필요한 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가능하면 일찌감치 이런 사람을 만들어 두는 게 좋다. 한 대기업 임원은 나이 40세가 넘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우연하게 얼굴 정도만 아는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마음이 가더라는 것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옛 상사에게서 들은 얘기가 있어 곧바로 다가가지 않고 3년 넘게 정성을 기울였다. 혹여나 마음을 다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업종은 달라도 조직을 이끄는 일이라는 게 비슷해서 그런지 서로 잘 통했다. 가끔 만나 술 한 잔하며 수다 떨고 잡담하는 것으로 하소연했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CEO까지 무난하게 올라갔다.(아마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이런 대화 파트너 역할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무슨 말을 해도 지겨워하지 않고 다 받아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운동을 하고 친한 이와 얘기를 나눈다 해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스스로 꺼내는 것이다. 어렵지 않다. 마음이 심란해지면 혼자 조용한 곳에 앉아 A4 용지 같은 백지에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을 써보는 것이다. 솔직하고 자세하게 쓸수록 좋다. 두 가지 효과를 볼 수 있다. 일단 다 꺼내면 마음과 머리가 홀가분해진다. 또 꺼내 놓으면 사안이 명확해진다. 그리 대단한 게 아닌데 괜히 끙끙거리면서 불안을 키워왔다는 걸 알 때가 많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개념화라고 한다. 공부가 그렇듯 개념을 알면 처리가 한결 쉬워진다. 어렵지는 않지만 귀찮은 게 흠이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꺼내보는 방법도 있다.
한창 잘 나가던 40, 50대 중견 리더들 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이들을 보면 이런 마음 비우기를 하지 못해 비극을 맞는 일이 많다. 쓸데없는 걸 마음에서 자꾸 꺼내고 비워 마음의 압박을 줄여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탓에 눌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예방책이다. 무엇이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알아서, 그것이 마음에 자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치료보다는 예방이 낫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가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엄마가 아이와 함께 의사를 찾았다. 그렇지 않아도 말이 어눌한 아이라 이참에 제대로 알아보는 게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세상에, 어린 아이가 치료를 받아야 하다니.’ 이렇게 생각했다면 잘못 짚었다.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엄마였다. 늦은 나이에 겨우 얻은 하나 밖에 없는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나 싶어 안달복달 했고, 그런 엄마의 분리불안 때문에 아이의 발달장애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놔두고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하나라도 잘못되지 않도록 하려 하다 보니 더 잘못된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아이는 엄마가 불안해하면 더 불안해하는데 그걸 몰랐다. 그녀는 자신이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몰랐다. 리더들도 마찬가지다. 일을 잘했으니 승진했고 그래서 리더가 된 이들은 왜 이렇게 일이 지지부진한지(복장 터진다!), 서투르고 실수하는지(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지?) 알다 가도 모를 일을 겪게 된다. 참지 못한다. 리더가 됐으니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까지 더해지면 화내는 일이 일상이 되거나 ‘내가 하고 말지’라는 수렁에 빠진다. 그렇지 않으면 일 잘 하는 사람에게 몰아줘 그를 허덕거리게 한다. 이 역시 분리불안의 일종이다.
걸으려 하는 아이가 엎어지고 깨지는 걸 지켜보고 있어야 좋은 엄마이듯 리더는 구성원이 그러는 걸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절대’ 실수하지 말아야 하고, ‘모두’ 이렇게 해야 한다는 굴레를 스스로 짊어지지 말아야 한다. 하려는 일이 잘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누구든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갈수록 알게 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정상적이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다. 언제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게 정상이다.
완벽을 지향하되 완벽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충격이 덜하고 대처할 수 있다. 가끔 게으른 이들이 리더가 되면 의외로 역할을 잘 수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 그러니까 리더가 하지 말아야 할 일에 게으르다.
우리는 보통 뭔가를 함으로써 불안을 줄이려 한다. 자꾸 일을 만든다. 성과가 아니라 일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니 날마다 바쁜데도 되는 일이 없고 성과도 없다. 당연히 갈수록 불안해진다.
능력 있는 리더가 되려면 반대로 해야 한다. 이전까지 해왔던, 자신의 손으로 성과를 내는 일에서 상당 부분 손을 떼야 한다. 손이 근질거리고 속이 터져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목젖을 치고 올라오는 뜨거운 불기둥을 참아야 한다. 대신 어떤 일을 누구에게 어떻게 시켜야 할지, 누구의 어떤 능력을 어디에 사용할지 아는 능력을 기르는데 집중해야 한다.
리더는 효과적으로 일을 시키는 사람이니 항상 궁리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잘 시킬 줄 알아야 더 많은 사람에게 일을 시킬 수 있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수많은 리더들을 봐왔지만 이런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궁리하고 애쓰고 경험한 만큼 능력이 생겨난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욕 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 잘해서 승진하고 리더가 된 이들은 칭찬에 익숙하기에 항상 칭찬(인정) 받으려 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하는 일을 다 잘 할 수는 없다. 주력해야 할 일과 덜 해도 되는 일을 구분한 다음, 주력해야 할 일에서는 인정을 받고, 덜 해도 되는 일에서는 욕먹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이스가 했다는 말 그대로다. “현명하다는 건 무엇을 무시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욕먹기로 작정한 일에서 욕을 먹으면 뒷맛은 개운치 않아도 불안하지는 않다.
서투른 부하의 능력을 키워주는 것도 그렇다. 그를 대신해 욕먹을 줄 알고, 그렇게 성장을 시켜주어야 리더다. 이렇게 먹는 욕을 귓등으로 넘길 줄 알아야 내 편, 내 사람이 만들어진다. 좋은 평판 들으려고 혼자 일 다 하고, 혼자 깨끗한 사람은 결국 혼자 남게 된다. 또 하나, 생각 이상으로 필요한 게 쉬는 능력이다. 이걸 능력이라고 한 건 위로 올라갈수록 잘 쉬는 게 분명한 능력이 되는 까닭이다. 사원 직급에서 휴식이란 단순히 일하지 않는 것일 때가 많지만 리더에게는 휴식도 일이다. 일부러 시간 내서 쉬지 않으면 쉴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지능력은 한계가 있기에 쉬어야 일할 수 있다. 인지능력을 많이 써야 하는 리더는 더 그렇다. 쉴 줄 모르는 사람은 시간이 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잠자고 놀이공원 가는 것 같은 남들이 하는 것만 한다. 그리 재미있지 않으니 그러는 동안 머리가 계속 돌아간다. 도랑에 빠진 바퀴처럼 헛돈다. 헛돌수록 더 깊이 빠지고 타이어까지 마모되듯 마음도 닳고 닳는다. 불안에 취약한 마음이 된다.
너무 심하게 일하지 않아야 하고, 억지로라도 쉴 줄 알아야 한다. 정원 가꾸기처럼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도 휴식이 될 수 있다. 이런 걸 초보 리더 때부터 부지런히 발굴해 놔야 갈수록 지치는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다. 자연이 아니더라도 그곳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힐링이 되는, 일명 나만의 장소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월요일이 다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시간이 짧다. 회복탄력성이 좋다. 여기서 얻게 되는 느긋함으로 정도 이상으로 예민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한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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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질문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영국 리버풀 대학 연구팀이 개를 키우고 있는 사람과 키우고 있지 않는 사람 694명을 대상으로 연구해 보니 유난히 개에게 잘 물리는 사람이 있었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일수록 개에 더 많이 물렸다. 이유가 있었다.
개들의 세상에서는 힘이 전부다. 그러니 상대가 공격적으로 나올 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싸우든가 도망가든가. 하지만 도망쳐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막다른 골목 상황에서는 먼저 공격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 까닭이다. 개들이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을 잘 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녀석들은 이런 행동을 공격의 전조로 여긴다. 그래서 미리 공격한다. 다른 많은 연구에 의하면 주인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성향이 있으면 개도 그렇게 된다. 불안에 전염된다.
우리가 여기서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불안이 당사자를 공격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공격성향이 강해질수록 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변한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소 닭 보듯 하는 사이가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구성원들의 행동이 소극적, 수동적이 되기 마련인데 이게 또 리더에게는 공격성향을 높이는 재료가 된다. 리더와 구성원, 조직 모두에게 손해다. 불안을 처리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요즘처럼 경기가 바닥이 되면 불안이 한 번씩 마음을 확 휘젓는 일이 많아진다.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 끝에 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한없이 졸아드는 마음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을 때도 있다. 먹구름 같은 불길한 생각들이 스멀스멀 가슴을 꽉 채워 답답해진다. 그렇게 나날이 한숨만 늘게 된다. 잠도 설친다. 문득 잠에서 깨면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다시 잠들 수가 없다.
불안감엔 ‘탁 트인 전망’이 치료제
이럴 땐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좋다. 일어나서 좀 더 넓은 곳으로, 가능하면 탁 트인 전망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런 곳에 시선을 두는 게 좋다. 눈이 탁 트이면 숨이 트이고 마음도 트인다. 눈이 넓어지면서 마음도 넓어진다. 우리는 정신이 몸을 움직인다고만 생각하지만 최근 뇌과학 연구에서 나타나듯 몸도 정신을 움직인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자연경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로가 해소된다. 회복 속도도 빨라진다. 숲이나 공원 같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말할 필요도 없다. 긴장을 완화시켜 주고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 우울함을 가시게 한다. 도파민을 통해 가벼운 흥분이 일어나기도 한다. 식물이 자기보호를 위해 만든 피톤치드는 원래 세균을 죽이는 용도이지만 우리 마음의 세균 같은 불안에도 효과가 있다. 숲 속을 산책하면서 눈길을 끄는 나뭇잎이나 새의 깃털, 나뭇조각 같은 걸 줍거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자신도 모르게 기분전환이 된다. 일명 ‘채집 황홀’이라는 행동이다.(에마 미첼, [야생의 위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싶거나 마음이 어지럽다 싶을 때 혼자 조용한 곳에 앉아 자신의 숨소리를 들어보라. 예상 외로 숨이 거칠고 불규칙적일 것이다. 이럴 때에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가능하면 코로 숨 쉬는 게 좋다. 호흡에는 흉식 호흡과 복식 호흡이 있다. 흉식 호흡은 가슴으로 숨 쉬는 것이고 복식 호흡은 배로 숨 쉬는 것인데, 복식으로 호흡하면 숨(산소)을 더 깊게 들이마실 수 있어 정신을 맑게 할 수 있고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자꾸 불안 수치를 높이는 상황을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불안을 부채질하는 상황 안에 있으면 그 안에서 헤매게 되고 결국 매몰될 수 있다. 미로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오게 되면 불안을 야기하는 상황은 상황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가 된다. 왜 획기적인 아이디어들이 산책이나 샤워, 드라이브를 하는 도중 떠오를까? 상황을 벗어날수록 그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작은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상황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라면 마음만이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휴가 때 찍은 사진이나 가족사진,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들을 옆에 두고 거기로 시선을 옮기는 것이다. 눈을 감고 즐거웠던 경험을 떠올리거나 명상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읽으면 마음이 진정되는 책들을 가까운 곳에 비치해 놓는 것도 좋다. 헝클어지고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이 된다.(화를 냈을 때도 마찬가지다. 해야 할 말만 간단히 하고 빨리 그곳을 벗어나는 게 좋다.)
40·50대에 쓰러진 이들의 공통점 ‘압박'
두 번째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다. 누누이 말해온 것처럼 고민이나 불안은 마음에서 꺼내기만 해도 상당 부분 사라진다. 하소연을 하면 마음이 개운해지듯 불안을 털어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문제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한단 말인가? 리더들이 조직(구성원)에게 절대 보이면 안 되는 것들이 초라한 모습, 자신 없어 하는 모습, 불안한 모습인데 말이다.(리더를 따르려는 마음이 사라진다. 능력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친구나 배우자들이라 해도 어느 이상은 힘들다. ‘또 그 얘기?’라는 표정을 자기들도 모르게 짓는다.
그래서 필요한 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가능하면 일찌감치 이런 사람을 만들어 두는 게 좋다. 한 대기업 임원은 나이 40세가 넘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우연하게 얼굴 정도만 아는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마음이 가더라는 것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옛 상사에게서 들은 얘기가 있어 곧바로 다가가지 않고 3년 넘게 정성을 기울였다. 혹여나 마음을 다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업종은 달라도 조직을 이끄는 일이라는 게 비슷해서 그런지 서로 잘 통했다. 가끔 만나 술 한 잔하며 수다 떨고 잡담하는 것으로 하소연했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CEO까지 무난하게 올라갔다.(아마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이런 대화 파트너 역할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무슨 말을 해도 지겨워하지 않고 다 받아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운동을 하고 친한 이와 얘기를 나눈다 해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스스로 꺼내는 것이다. 어렵지 않다. 마음이 심란해지면 혼자 조용한 곳에 앉아 A4 용지 같은 백지에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을 써보는 것이다. 솔직하고 자세하게 쓸수록 좋다. 두 가지 효과를 볼 수 있다. 일단 다 꺼내면 마음과 머리가 홀가분해진다. 또 꺼내 놓으면 사안이 명확해진다. 그리 대단한 게 아닌데 괜히 끙끙거리면서 불안을 키워왔다는 걸 알 때가 많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개념화라고 한다. 공부가 그렇듯 개념을 알면 처리가 한결 쉬워진다. 어렵지는 않지만 귀찮은 게 흠이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꺼내보는 방법도 있다.
한창 잘 나가던 40, 50대 중견 리더들 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이들을 보면 이런 마음 비우기를 하지 못해 비극을 맞는 일이 많다. 쓸데없는 걸 마음에서 자꾸 꺼내고 비워 마음의 압박을 줄여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탓에 눌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예방책이다. 무엇이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알아서, 그것이 마음에 자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치료보다는 예방이 낫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가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엄마가 아이와 함께 의사를 찾았다. 그렇지 않아도 말이 어눌한 아이라 이참에 제대로 알아보는 게 좋겠다 싶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세상에, 어린 아이가 치료를 받아야 하다니.’ 이렇게 생각했다면 잘못 짚었다.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엄마였다. 늦은 나이에 겨우 얻은 하나 밖에 없는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나 싶어 안달복달 했고, 그런 엄마의 분리불안 때문에 아이의 발달장애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놔두고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하나라도 잘못되지 않도록 하려 하다 보니 더 잘못된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아이는 엄마가 불안해하면 더 불안해하는데 그걸 몰랐다. 그녀는 자신이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몰랐다.
욕먹을 줄도 알아야 한다
걸으려 하는 아이가 엎어지고 깨지는 걸 지켜보고 있어야 좋은 엄마이듯 리더는 구성원이 그러는 걸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절대’ 실수하지 말아야 하고, ‘모두’ 이렇게 해야 한다는 굴레를 스스로 짊어지지 말아야 한다. 하려는 일이 잘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누구든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갈수록 알게 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정상적이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다. 언제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게 정상이다.
완벽을 지향하되 완벽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충격이 덜하고 대처할 수 있다. 가끔 게으른 이들이 리더가 되면 의외로 역할을 잘 수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 그러니까 리더가 하지 말아야 할 일에 게으르다.
우리는 보통 뭔가를 함으로써 불안을 줄이려 한다. 자꾸 일을 만든다. 성과가 아니라 일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니 날마다 바쁜데도 되는 일이 없고 성과도 없다. 당연히 갈수록 불안해진다.
능력 있는 리더가 되려면 반대로 해야 한다. 이전까지 해왔던, 자신의 손으로 성과를 내는 일에서 상당 부분 손을 떼야 한다. 손이 근질거리고 속이 터져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목젖을 치고 올라오는 뜨거운 불기둥을 참아야 한다. 대신 어떤 일을 누구에게 어떻게 시켜야 할지, 누구의 어떤 능력을 어디에 사용할지 아는 능력을 기르는데 집중해야 한다.
리더는 효과적으로 일을 시키는 사람이니 항상 궁리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잘 시킬 줄 알아야 더 많은 사람에게 일을 시킬 수 있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수많은 리더들을 봐왔지만 이런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궁리하고 애쓰고 경험한 만큼 능력이 생겨난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욕 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 잘해서 승진하고 리더가 된 이들은 칭찬에 익숙하기에 항상 칭찬(인정) 받으려 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하는 일을 다 잘 할 수는 없다. 주력해야 할 일과 덜 해도 되는 일을 구분한 다음, 주력해야 할 일에서는 인정을 받고, 덜 해도 되는 일에서는 욕먹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이스가 했다는 말 그대로다. “현명하다는 건 무엇을 무시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욕먹기로 작정한 일에서 욕을 먹으면 뒷맛은 개운치 않아도 불안하지는 않다.
서투른 부하의 능력을 키워주는 것도 그렇다. 그를 대신해 욕먹을 줄 알고, 그렇게 성장을 시켜주어야 리더다. 이렇게 먹는 욕을 귓등으로 넘길 줄 알아야 내 편, 내 사람이 만들어진다. 좋은 평판 들으려고 혼자 일 다 하고, 혼자 깨끗한 사람은 결국 혼자 남게 된다.
쉬는 것도 리더의 능력이다
인간의 인지능력은 한계가 있기에 쉬어야 일할 수 있다. 인지능력을 많이 써야 하는 리더는 더 그렇다. 쉴 줄 모르는 사람은 시간이 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잠자고 놀이공원 가는 것 같은 남들이 하는 것만 한다. 그리 재미있지 않으니 그러는 동안 머리가 계속 돌아간다. 도랑에 빠진 바퀴처럼 헛돈다. 헛돌수록 더 깊이 빠지고 타이어까지 마모되듯 마음도 닳고 닳는다. 불안에 취약한 마음이 된다.
너무 심하게 일하지 않아야 하고, 억지로라도 쉴 줄 알아야 한다. 정원 가꾸기처럼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도 휴식이 될 수 있다. 이런 걸 초보 리더 때부터 부지런히 발굴해 놔야 갈수록 지치는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다. 자연이 아니더라도 그곳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힐링이 되는, 일명 나만의 장소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월요일이 다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시간이 짧다. 회복탄력성이 좋다. 여기서 얻게 되는 느긋함으로 정도 이상으로 예민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한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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