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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미국 대선이 남긴 숙제] 트럼프는 떠나도 트럼피즘(트럼프의 정치 방식) 남아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미국 대선이 남긴 숙제] 트럼프는 떠나도 트럼피즘(트럼프의 정치 방식) 남아

“국익이냐 청산이냐” 바이든 정권의 녹록지 않은 트럼프 지우기 고뇌

무장 경찰들이 11월 7일 미국 오레곤 주 의사당 앞에서 시위대와 맞서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트럼프는 패배했지만 트럼피즘(트럼프의 정책과 정치 방식)은 여전히 공화당 내에서 불씨가 남아 타고 있다.”
- 워싱턴 포스트(WP)



“트럼프는 졌지만 그의 유산은 의회의 공화당원들과 함께 계속 살아있을 것이다.”
- CNN



“트럼프가 대선 패배를 인정하길 거부하는 것은 제프리 다머(17명을 살해하고 시간한 뒤 토막 내고 인육도 일부 먹은 미국 살인마)가 장애인 주차구역에 불법 주차해 규정을 위반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백악관에서 벌인 악행은 장부에 가득할 정도다.”
- 미국 CBS 방송 ‘레이트 쇼’ 진행자인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



“트럼피즘은 위험할 정도로 분열된 국가에서 계속 잘 유지될 것이다.”
- 영국 일간지 가디언, ‘도널드 트럼프의 마니교적(세상이 선과 악, 빛과 어둠 등 대립 요소로 구성됐다고 여기는 중세 페르시아 마니교의 믿음) 세계의 앞으로의 효과’라는 기사 제목에서.



‘트럼프 없는 트럼피즘: 민주당원들은 패배한 트럼프의 계속되는 행동에 대항해야 할 것이다.”
- CNN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의 고립을 불러왔을 뿐이다.”
- 전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 데이비드 샤피로, CNN에 출연해 트럼피즘의 외교적 효과를 평가하며.



“트럼피즘은 미국에서 만성병으로 자리 잡은 생활습관 질환이다.”
- 워싱턴 포스트(WP)



“도널드 트럼프는 패배했지만, 트럼피즘은 지금 우리 앞에 머물고 있을 수 있다.”
- 제프 리 카바서비스 미국 워싱턴의 니스카넨 센터 정치연구 소장. 영국 가디언 기고에서.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실패가 현실이 되면서 그가 지난 4년간 보여준 정책과 정치 방식을 가리키는 트럼피즘의 운명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위의 내용은 11월 3일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현직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를 누르고 당선하자 영어권 각 언론이 트럼피즘과 관련해 보도하거나 언론인·방송인·지식인이 발언한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11월 3일 미국 대선 후 미국 노스라스베이거스 한 선거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바이든 앞에 놓인 트럼피즘 청산
트럼프는 집권 뒤 ’오바마 빼고 모두(All but Obama)‘를 모토로 전임 버락 오바다 대통령에 남긴 정치적 업적과 유산을 지우는 데 골몰했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누른 조 바이든 당선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바이든과 민주당 지지자의 상당수는 트럼프에 반감을 보여왔다. 이 때문에 바이든이 ‘오바마 빼고 모두(All but Obama)’를 외치며 전임자가 재임 중 쌓거나 보여준 트럼피즘에서 완전히 벗어나려고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할 경우 방향만 반대일 뿐 트럼프의 방식을 그대로 추종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정적이나 경쟁자와 싸우면서 상대의 싸움 방식이나 기술을 배우며 그를 추종하게 되는 행동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독재와 싸우면서 독재자의 냉혹한 정치 기법을 익히는 것이나 진배없다.

게다가 트럼프가 워낙 강하게 대못을 박아놓는 바람에 이를 뒤집기가 쉽지 않은 트럼피즘도 있다. 중국에 대한 거부감과 압박 정책, 그리고 미·중 무역전쟁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이 집권해도 반중(反中) 정책은 트럼프가 세워둔 기조는 유지하면서 방식만 바꿀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권이 바뀌면 조타수의 방향타 전환으로 곧바로 바뀔 수 있는 것과, 지도자와 정권이 교체돼도 청산이 쉽지 않은 정책과 태도가 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바이든 당선이 확실해지자 ‘트럼프의 악행’ 이라는 제목으로 그를 파괴하고 앞으로 바이든이 복구해야 할 과제 20가지를 정리했다. 공직으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 것, 법무부 조사에 개입한 것, 임명권 남용, 동맹 모독, 군대를 정치화하고 법관을 공격한 것, 외교와 대외 정책을 정치화한 것, 사면권 남용, 위기의 시기(코로나19 확산)에 국가를 분열시킨 것, 어느 대통령보다 허위사실을 더 많이 발언한 것 등이다. 이는 물론 더욱 성숙한 개인이 훌륭한 인성과 성격을 내세워 풀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대통령을 다른 사람이 맡아도 바꾸기 쉽지 않은 트럼피즘이 적지 않다. 트럼피즘은 정책으로만 보면 통상에선 무거운 관세를 앞세운 보호무역주의, 환경에서는 파리환경협약 탈퇴와 발전소와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의 완화, 세제 분야에선 법인과 중산층에 대한 감세를 들 수 있다. 국제관계에서는 세계경찰로서의 미국의 책임을 회피하고, 동맹국에 대해 방위비 부담을 늘리고 주둔 미군에 대한 방위비 분담을 확대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 가운데 세제는 바이든 정권이 법인세로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을 주장하고 있어 이른 시일 안에 트럼피즘 청산이 이뤄질 수 있다. 바이든은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 복귀 등을 공약해 실무 준비가 한창이다. 미국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바이든의 공약에 유럽 각국은 환호했다.
 바이든 정책, 미·중 무역전쟁 2라운드 예고
하지만 대중 포위라는 트럼피즘은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미국의 국익과 관련이 크기 때문이다. 단순한 대중 무역적자를 넘어 중국이 고속성장을 위해 벌여온 환율 조작, 지적재사권 침해와 도용, 그리고 산업스파이 행위는 누가 대통령이 돼도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공정한 무역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정권과 무관하게 미국이 추진하는 핵심 대중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관세를 엄청난 속도로 갑작스럽게 인상하는 등 과정과 절차를 무시한 무리한 압박수단을 채용하지 않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압박의 고삐는 늦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은 자유무역이라는 용어 대신 ‘공정무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 구체적인 차이는 정권 초의 정책 수행으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피즘을 대대적으로 폐기하거나 버리기 쉽지 않은 이유도 상당하다. 대부분 정치적인 이유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두터운 지지층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는 대통령 선출을 결정하는 선거인단 확보에선 패배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예상보다 고득점을 했다. 지지자 숫자와 지지율에서 2016년 대선보다 오히려 선전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과반인 270명을 넘는 304명의 선거인단을 얻어 227명 확보에 그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누르고 당선했다. 미국 대선은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50개 주와 수도 워싱턴DC 가운데 선거인단을 주와 연방하원의원 선거구에 따라 나누는 네브래스카와 메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은 일반투표에서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선거인단 전부를 차지하는 승자독식제를 채택하고 있다. 당시 트럼프는 30개 주와 메인주 1개 선거구의 선거인단을 가져갔다. 클린턴은 20개 주와 워싱턴DV의 선거인단을 얻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6298만4828표를 득표해 46.1%의 득표율을 획득했다. 클린턴은 트럼프보다 많은 6585만3514표를 얻어 48.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20년 선거에서 트럼프는 2016년 당시와 달리 선거인단과 득표수 모두에서 바이든에 뒤졌다. 하지만 2020년의 득표수는 2016년보다 많았고, 득표율도 오히려 높아졌다.
 트럼프 득표율 상승, 더욱 커진 정치 입지
사진:REUTERS=연합뉴스
당선의 관건인 선거인단 확보에서 트럼프는 전체 투표의 96%를 개표한 13일 현재 217명을 확보해 279명을 얻은 바이든에 뒤져 패배했다. 득표에서 트럼프는 7238만2328표를 얻어 7765만3570표를 얻은 바이든보다 뒤지고 득표율에서도 47.4%로 50.8%의 바이든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 대선보다 939만6500표를 더 얻었다. 득표율도 1.3%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역대 공화당 대선 후보 중에서 최다 기록이다.

물론 1억6000만명 이상이 투표해 등록 유권자 대비 66.9%라는 120년 만의 최다 투표율이 한몫을 한 점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지난 대선 때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는 사실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참패를 당한 것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패배를 당했다는 이야기다. 트럼프는 이러한 수치를 통해 자신이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인 위력을 지닌 인물로 치장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 데이터가 그의 정치적 경쟁력을 입증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트럼프가 일부 주에서 우편투표를 비합리적으로 운영해 자신의 표를 강탈해 갔다고 주장하는 정치적 근거가 되고 있다. 538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바이든이 이미 절반을 넘는 279명을 확보했음에도 트럼프가 승복을 하지 않고, 바이든에 대해 “가짜 승리”라고 비난하며 소송전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11월 13일 현재 트럼프 진영은 쇠락한 공업지대인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과 남부의 조지아에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공정한 개표인지를 확인하는 감시단이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했다든지, 투표일 이후에 도착한 유편투표를 무효화해줄 것을 요구한다든지, 근소한 격차 등이 이유다.

트럼프는 특히, 현행 우편투표 제도를 불합리한 제도라고 주장하며 이들 지역에서 일정 시기 이후에 도착한 우편 투표는 무효화하길 원한다. 이를 위해 여러 이유를 대면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역대 최다인 6548만7735표에 이르는 우편투표는 20개주에서 이뤄진 조사 결과 바이든의 민주당 지지자가 44.8%, 트럼프의 공화당 지지자가 30.5%를 차지한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트럼프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지금까지 개표 결과를 바탕으로 바이든 승리를 선언했던 대선 결과가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

일부에선 트럼프가 소승을 제기한 부정선거나 우편투표의 불합리성 관련 사건이 연방대법원으로 올라가면 현재 보수가 6, 진보가 3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에 유리한 판결이 나올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게다가 연방대법원의 연방대법관 중 3명은 트럼프가 임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에서 선거는 연방이 아닌 주의 관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수 성향이라고 해서 대통령의 당락이 달려 있는 사건에서 트럼프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낙태나 소수자 권리, 이민자 문제 등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접근법이 다른 사안에선 보수와 진보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정교한 법리 해석과 논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념적 사안이 아닌 실체적인 진실과 선거 사무의 관할권, 그리고 제도상의 문제에 대해 이념의 잣대를 갖다 댈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법관은 법과 양심, 그리고 법리 해석과 논리에 따라 재판하는 법조인이지, 이념에 좌우되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의 변호인단과 법률 조력자들은 그의 주문에 맞춰 온갖 ‘창의적인’ 법리를 개발하고 주장을 합리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는 그들이 거액을 받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거물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도 트럼프를 위해 일하고 있다. 검사 출신으로 마피아를 비롯한 조직범죄와 잡범, 그리고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인물들을 소탕하고 이를 바탕으로 뉴욕시장까지 지내며 범죄도시 뉴욕을 환골탈태한 인물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트럼프에게 절망적이다. 줄리아니가 아니라 그 어떤 거물이 맡아도 트럼프의 뜻대로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는 그야말로 실낱 같은 희망을 붙들고 있는 셈이다.
 끝나지 않을 트럼프 소송 트럼피즘 폭동
그럼에도 미국에선 두터운 지지층을 바탕으로 트럼프에 호응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오리건에선 트럼프가 개표 중단을 요구하며 제기한 소송이 기각되자 격렬한 폭동이 벌어져 주 방위군이 출동했다. 뉴욕시에선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50여 명이 체포됐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개표소 주변에서 개표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선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여 ‘주의 내외에서 약 1만 명이 부정투표를 했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선 트럼프 지지자들이 개표소 주변에 모여 정확한 개표를 요구했다.

게다가 이번 미국 대선에선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주가 많았다. 양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는 조지아가 0.1%, 펜실베이니아는 0.5%, 에리조나가 1.0%, 노스캐롤라이나가 1.4%, 네바다가 1.8%다. 펜실베이니아는 득표율 차이가 0.5%포인트 이하이거나 신청자가 있을 경우 자동 개검표하도록 하고 있다. 애리조나는 차이가 0.1% 이하일 경우 자동적으로 재검표를 하며, 신청에 의해 재검표를 하지는 않는다. 이런 제도가 있기 때문에 트럼프 진영에선 재검표에 의욕을 보이지만 그리 녹록한 상황만은 아니다.

이런 정치적 상황과 현실적인 이유까지 겹쳐 트럼피즘은 트럼프가 정권을 잃고 바이든이 집권해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상황 논리, 국민의 여론, 트럼프의 놀라운 득표력만 이유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트럼프가 만든 포퓰리즘의 물결이 미국과 전 세계에서 이미 도도히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떠나도 트럼피즘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여전히 존속하는 이유일 것이다. 지난 4년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악몽이듯, 앞으로 4년은 반대로 트럼프와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악몽이 될 수 있다. 그 악몽이 심할수록 트럼프 지지자들은 결집하고 길을 뚫어 재집권을 노릴 것이다. 이미 지역별 득표 경향에 맞춘 맞춤공약 개발, 후임 정치재목 양성, 유권자를 끌어들일 정책 개발 등 다음 선거를 위한 전략 마련이 시작됐을 것이다. 지나간 선거를 복기하고 문제를 발견해서 대책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차기 대권을 위한 정치활동의 시작이다. 트럼피즘과 이에 대한 대항과 대응은 각각 미국 정치의 주요 이념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트럼피즘은 끈질기고 생명이 길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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