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IT 사회학] 플랫폼의 ‘디지털 땅값(rent)’이 만든 양극화
[김국현 IT 사회학] 플랫폼의 ‘디지털 땅값(rent)’이 만든 양극화
지역간 양극화 전지구적 진행… 디지털세 등으로 상대적 박탈감 해소해야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대(rent)란 희소성 때문에 대안이 없어서 내지 않아도 될 비용을 더 내는 것이다. 지대란 비단 임대료뿐만 아니라 독점적 위치 덕에 들어오는 초과 이윤을 아우르니 의료·법률 등 각종 규제로 보호되는 직업면허나 특허권, 지적재산권 등의 혁신 산물도 포함된다.
여기에 새로운 지대가 등장하고 있다. 바로 디지털의 ‘땅값’이다. 이는 그저 은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실제로 IT업계에서는 ‘리얼 에스테이트(real estate)’라는 용어가 쓰인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은 용지 계획처럼 다 나름의 구획이 있어 가격표가 있다. 광고가격이란 그 가상 용지의 임대료를 픽셀 수만큼 쳐서 받는 값이다.
폰이나 PC 스크린 속 허상(虛像)이 무슨 값어치가 있냐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제 별로 없다. 지금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희소한 가치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들의 눈길, 즉 ‘어텐션(attention)’이라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다.
포털이 강한 이유는 모두가 PC를 켜자마자 그곳을 쳐다봤기 때문이었다. 포털 첫 화면이란 말 그대로 곧 디지털 세계로의 관문이었고, 그 입지의 땅값은 당연히 치솟았다.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새로운 화면, 그러니까 새로운 용지로 유입되었다. 첫 화면에 진열될 아이콘이 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고, 늘 떠 있는 소셜미디어나 메신저 앱 등 SNS가 포털의 입지를 대신하기도 했다.
자연물인 땅이나 규제가 만드는 이권과는 달리 디지털 세계 속 지대는 ‘신규생성’할 수 있다. 없던 지대를 현실에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정부 로비가 필수였는데 디지털에서는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파괴적 혁신으로 규제 등 기존 질서를 교란한다. 현실의 질서가 재편되니 이 혼돈은 통쾌함마저 주고 역사가 쌓아온 현실적 제약에 답답해했던 많은 신참들의 숨통을 트여주는 효과도 있다. 디지털은 새로움에 대한 희망을 보여줬고 경쟁을 촉진해 사회적 편익을 늘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새로운 진입장벽이 만들어졌다. 역사상 전례 없는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디지털 기업들의 땅이었다. 그들은 현실의 건물주들과는 달리 혁신의 대변자를 자처한다. 특히 대외 이미지에도 민감한데, 왜냐하면 그들의 지대란 두 가지의 축으로 지탱되고 있음을 알고 있어서다.
하나는 디지털에 땅을 그려낼 수 있는 기술력, 또 하나는 그 땅에 실제로 사람들의 관심을 퍼 담아 채우기 위한 신뢰다. 신뢰를 얻기 위해 그들은 최종 사용자와 제일 가까운 곳을 떠나지 않는다. 매력적인 소비자 제품을 만들어 팬을 늘리거나, 편리함을 공짜로 제공해 의존하게 한다. 하지만 소비자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변덕스러운 이들, 기업은 보험에 들 듯 자신에게 의존하는 또 다른 집단을 찾아냈다.
근래 각종 사건 사고로 밉상이 된 페이스북이지만 그들에 대한 기술자의 신뢰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앱이나 웹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의 리액트(React)를, 인공지능을 위해서는 그들의 파이토치(PyTorch)를 버릴 수 없다. 페이스북 덕에 편해졌고 또 의존하고 있으니 페이스북이 미워도 아주 밉지만은 않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의 기술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기술은 표준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플랫폼이란 생태계를 만드는 일.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그렇게 피어난 꽃에서 나온 열매가 거름이 되어 숲을 만든다. 그리고 그 숲 옆에 조성된 택지에는 가격이 붙는다. 그 숲에 의존한 다른 혁신자들도 그 택지를 함께 개발한다. 이제 그들의 기술을 쓰지 않고는 어떠한 혁신도 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혁신자들을 자신의 곁에 두는 한 일반 소비자의 신뢰를 잃는 일은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가상의 땅도 현실의 땅 위에서 산업구조는 급변하고 있지만,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쉽게 바뀔 수 있는 곳은 디지털 세계뿐이다. 디지털은 현실의 대안이 된다. 모두가 디지털에서 물건을 사고 있으니 동네 상점은 점점 장사가 안 된다. 비슷한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지역의 일감을 흡수해 버린다.
서버를 사서 전산실에 넣던 시절이라면 임대도 유통도 노동도 현실에서 필요했다. 하지만 클릭 몇 번으로 클라우드를 구독하는 식이라면 전부 필요 없다.
서울 집중화가 심해진 건 공업단지처럼 지역이 해온 가치 생산 공간의 역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단지가 필요 없다면 높은 분이 출근하기 쉬운 곳이 곧 일터가 된다. 소프트웨어는 어디서나 만들 수 있지만, 굳이 지방에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조차도 동·서부의 대도시권과 중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인재들은 기능을 배울 경력을 찾아 대도시로 유입된다. 타지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경력이 기다리는 미 서부. 일반 노동자의 10배도 넘는 3억~4억원의 연봉을 받는 테크 인력들, 고용주 입장에서는 그들이 생산해내는 가상의 지대가 폭등 중이니 초고액 연봉을 주고도 남는 장사다. 고직능 인력은 21세기의 지주가 되고 있지만, 자각이 없다.
디지털 지대는 지금까지와 양상이 다르다. 선대의 땅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직업면허로 보호받는 것도 아니다. 전기를 내리면 그 순간 그냥 완전히 사라질 허상. 그걸 만들어낸 것은 자신들의 기술과 열정뿐이라는 듯, 떳떳한 표정이다. 이 세계에는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지만, 가상 세계에서만큼은 나만의 땅 한 뼘 만들 수 있다는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가상의 땅은 현실의 땅값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지역간 양극화는 굳어지며, 상대적 박탈감을 지방에 가져온다. 대도시권의 기회는 점점 늘고, 지방은 그 기회를 잃어갔다. 지역 격차는 전지구적 규모다.
디지털 산업은 국경조차 없다. 하지만 법인세는 고정사업장 소재지 기준이다. 답답한 유럽을 필두로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미국 거대 디지털 기업에 대해 별도과세를 하겠다는 디지털세가 세계 곳곳에서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미국과의 통상 마찰이 우려되니 진도가 더디다.
하지만 격차 해소는 디지털 이후 세계 최대의 과제가 되고 있다. 이익공유제처럼 많이 벌었으니 좀 나누라는 정치적 수사가 등장하지만 근거와 목적이 막연하니 쉽지 않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명확한 목적이 있는 세금을 디지털에 부과해 지방 재생에 신경 쓰는 배려, 약자에 대한 온정이 필요한 때다. 소외된 모두의 손을 잡고 그들을 디지털의 세상으로 이끄는 일은, 디지털 사회의 완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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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새로운 지대가 등장하고 있다. 바로 디지털의 ‘땅값’이다. 이는 그저 은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실제로 IT업계에서는 ‘리얼 에스테이트(real estate)’라는 용어가 쓰인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은 용지 계획처럼 다 나름의 구획이 있어 가격표가 있다. 광고가격이란 그 가상 용지의 임대료를 픽셀 수만큼 쳐서 받는 값이다.
폰이나 PC 스크린 속 허상(虛像)이 무슨 값어치가 있냐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제 별로 없다. 지금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희소한 가치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들의 눈길, 즉 ‘어텐션(attention)’이라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다.
포털이 강한 이유는 모두가 PC를 켜자마자 그곳을 쳐다봤기 때문이었다. 포털 첫 화면이란 말 그대로 곧 디지털 세계로의 관문이었고, 그 입지의 땅값은 당연히 치솟았다.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새로운 화면, 그러니까 새로운 용지로 유입되었다. 첫 화면에 진열될 아이콘이 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고, 늘 떠 있는 소셜미디어나 메신저 앱 등 SNS가 포털의 입지를 대신하기도 했다.
자연물인 땅이나 규제가 만드는 이권과는 달리 디지털 세계 속 지대는 ‘신규생성’할 수 있다. 없던 지대를 현실에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정부 로비가 필수였는데 디지털에서는 그럴 필요도 없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지역의 일감 흡수
하지만 새로운 진입장벽이 만들어졌다. 역사상 전례 없는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디지털 기업들의 땅이었다. 그들은 현실의 건물주들과는 달리 혁신의 대변자를 자처한다. 특히 대외 이미지에도 민감한데, 왜냐하면 그들의 지대란 두 가지의 축으로 지탱되고 있음을 알고 있어서다.
하나는 디지털에 땅을 그려낼 수 있는 기술력, 또 하나는 그 땅에 실제로 사람들의 관심을 퍼 담아 채우기 위한 신뢰다. 신뢰를 얻기 위해 그들은 최종 사용자와 제일 가까운 곳을 떠나지 않는다. 매력적인 소비자 제품을 만들어 팬을 늘리거나, 편리함을 공짜로 제공해 의존하게 한다. 하지만 소비자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변덕스러운 이들, 기업은 보험에 들 듯 자신에게 의존하는 또 다른 집단을 찾아냈다.
근래 각종 사건 사고로 밉상이 된 페이스북이지만 그들에 대한 기술자의 신뢰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앱이나 웹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의 리액트(React)를, 인공지능을 위해서는 그들의 파이토치(PyTorch)를 버릴 수 없다. 페이스북 덕에 편해졌고 또 의존하고 있으니 페이스북이 미워도 아주 밉지만은 않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의 기술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기술은 표준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플랫폼이란 생태계를 만드는 일.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그렇게 피어난 꽃에서 나온 열매가 거름이 되어 숲을 만든다. 그리고 그 숲 옆에 조성된 택지에는 가격이 붙는다. 그 숲에 의존한 다른 혁신자들도 그 택지를 함께 개발한다. 이제 그들의 기술을 쓰지 않고는 어떠한 혁신도 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혁신자들을 자신의 곁에 두는 한 일반 소비자의 신뢰를 잃는 일은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가상의 땅도 현실의 땅 위에서 산업구조는 급변하고 있지만,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쉽게 바뀔 수 있는 곳은 디지털 세계뿐이다. 디지털은 현실의 대안이 된다. 모두가 디지털에서 물건을 사고 있으니 동네 상점은 점점 장사가 안 된다. 비슷한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지역의 일감을 흡수해 버린다.
서버를 사서 전산실에 넣던 시절이라면 임대도 유통도 노동도 현실에서 필요했다. 하지만 클릭 몇 번으로 클라우드를 구독하는 식이라면 전부 필요 없다.
서울 집중화가 심해진 건 공업단지처럼 지역이 해온 가치 생산 공간의 역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단지가 필요 없다면 높은 분이 출근하기 쉬운 곳이 곧 일터가 된다. 소프트웨어는 어디서나 만들 수 있지만, 굳이 지방에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조차도 동·서부의 대도시권과 중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인재들은 기능을 배울 경력을 찾아 대도시로 유입된다. 타지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경력이 기다리는 미 서부. 일반 노동자의 10배도 넘는 3억~4억원의 연봉을 받는 테크 인력들, 고용주 입장에서는 그들이 생산해내는 가상의 지대가 폭등 중이니 초고액 연봉을 주고도 남는 장사다. 고직능 인력은 21세기의 지주가 되고 있지만, 자각이 없다.
디지털 지대는 지금까지와 양상이 다르다. 선대의 땅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직업면허로 보호받는 것도 아니다. 전기를 내리면 그 순간 그냥 완전히 사라질 허상. 그걸 만들어낸 것은 자신들의 기술과 열정뿐이라는 듯, 떳떳한 표정이다. 이 세계에는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지만, 가상 세계에서만큼은 나만의 땅 한 뼘 만들 수 있다는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격차 해소는 디지털 이후 세계 최대 과제
디지털 산업은 국경조차 없다. 하지만 법인세는 고정사업장 소재지 기준이다. 답답한 유럽을 필두로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미국 거대 디지털 기업에 대해 별도과세를 하겠다는 디지털세가 세계 곳곳에서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미국과의 통상 마찰이 우려되니 진도가 더디다.
하지만 격차 해소는 디지털 이후 세계 최대의 과제가 되고 있다. 이익공유제처럼 많이 벌었으니 좀 나누라는 정치적 수사가 등장하지만 근거와 목적이 막연하니 쉽지 않다.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명확한 목적이 있는 세금을 디지털에 부과해 지방 재생에 신경 쓰는 배려, 약자에 대한 온정이 필요한 때다. 소외된 모두의 손을 잡고 그들을 디지털의 세상으로 이끄는 일은, 디지털 사회의 완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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