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이 사라진다(2) 지방 백화점의 위기] 향토백화점 꿰찼지만… ‘촌티’ 못 벗고 임대사업자 전락
[백화점이 사라진다(2) 지방 백화점의 위기] 향토백화점 꿰찼지만… ‘촌티’ 못 벗고 임대사업자 전락
지방 큰손 ‘부·대·울(부산·대구·울산)’도 역신장… ‘3대 명품’ 점포·MD 특화 점포 위주로 재편 2000년대 초. 지방에 뿌리를 둔 향토백화점들이 불황과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무너졌다. 사라진 향토백화점 자리는 고스란히 힘 있는 백화점들의 지방 공략으로 이어졌다. 세원백화점 부산점과 미도파백화점 춘천점은 ‘롯데백화점’으로, 마산의 성안백화점은 ‘신세계백화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울산에 있던 주리원백화점과 송원백화점 광주점은 현대백화점에 경영권을 넘겼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마저 ‘빅3’ 업체들의 거대한 유통망 아래 놓이게 된 순간. 향토백화점은 ‘고급’옷을 입고 새롭게 재편됐다.
몸집이 커진 기쁨도 잠시, 반짝이던 지방백화점들의 호황기는 이제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익성과 외형 성장이 반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 덩달아 빅3 백화점 업체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공격적인 M&A와 내부 리모델링 등 지방 상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다. 실제 지난해 대부분의 지방백화점 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 ‘지방의 꽃’이라 불리던 ‘부·대·울(부산·대구·울산)’마저 지난해엔 역성장한 모습이다. 백화점업계에 따르면 2020년 서울을 제외한 45개 백화점 점포 중 매출이 전년보다 늘어난 곳은 신세계 센텀시티, 신세계 광주, 현대 판교, 롯데 인천터미널 등 4곳뿐. 대부분 점포는 평균 -10%대 역신장을 보였다. 가장 큰 타격을 본 곳은 지방 백화점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롯데. 67개 백화점 중 매출 2000억원에 못 미치는 점포 21개 중 절반 이상인 13개 점포를 롯데백화점이 보유하고 있다. 그만큼 소규모의 지방백화점이 많다는 방증이다.
나머지 백화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매출 최하위 점포 모두 지방백화점이 차지했다. 울산 동구에 위치한 현대백화점은 15개 점포 중 매출이 가장 낮았고, 5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는 갤러리아백화점도 진주점 매출이 가장 낮았다. 진주점 매출은 2019년도 대비 -14.8% 신장하면서 역신장률도 가장 높았다.
마산은 지방백화점의 무덤으로 전락했다. 신세계백화점 마산점과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나란히 각사 꼴찌를 차지했다. 신세계 마산점은 전년 대비 -11.7% 하락한 1300억원대 매출을 보였고, 롯데백화점은 -20.9% 떨어지면서 724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다. 인근 상권이 죽으면서 소비심리가 악화한 영향이 컸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기존 백화점을 새롭게 변신시키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 마산을 대표하던 대우백화점은 롯데백화점에 인수된 후 ‘간판 만 바뀐 것 아니냐’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오히려 식품관은 대우백화점이 더 좋았다거나 ‘롯데’에 기대했던 입점 브랜드도 기존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고객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이는 지방 백화점들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다. 향토백화점들을 인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지방 상권 공략에 나섰지만, 기존의 사업방식과 크게 달라지지 못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인수된 후에도 브랜드 유치·마케팅·매장구성 및 상품 기획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역량이 발휘되지 못했다”며 “경기가 좋을 땐 너도나도 잘되지만, 위기가 왔을 땐 도심 내 주요 점포에 더욱 자원을 집중하다 보니 지방점포는 점점 더 관리가 소홀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지방백화점은 기존 향토백화점처럼 임대료만 받아 매출을 내는 구조”라고 귀띔했다.
전 점포가 지방에 있는 애경그룹의 AK플라자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한 해 백화점 67개 점포 가운데 매출이 20% 이상 역성장한 점포는 11곳. AK플라자는 -11.8%의 분당점을 제외한 수원점(-21.6%), 평택점(-22%), 원주점(-21.7%) 등 전 점포가 -20%대 역성장을 보였다.
특히 평택점과 원주점의 매출 타격은 심각했다. 평택점 매출은 2019년 1920억원에서 지난해 1497억원으로 줄었고. 원주점 매출은 1436억원에서 1124억원으로 웬만한 지방 마트보다 적은 규모로 감소했다. 평택점과 원주점 모두 도시 내 경쟁자가 없는 독자 점포로 인근 상권 소비자를 모두 끌어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도시 자체 소비력과 상징성이 저하되면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다. 두 지점 매출은 전국 58위(평택), 62위(원주)로 최하위권이다. 지방백화점이라고 모두 장사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상권 종결자’로 등장한 신세계 센텀시티와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지난해 지방백화점 중에서도 매출 재미를 톡톡히 봤다. 판교점 매출은 지난해 9.4% 오르면서 백화점 전체 성장률 1위를 기록했고, ‘샤넬, 에르메스, 루이비통’ 3대 명품 브랜드를 모두 보유한 센텀시티는 지난해 7.5% 매출이 올라 전체 신장률 중 3위에 랭크됐다.
상권을 단숨에 장악한 이들의 등장으로 주변에 있던 백화점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AK분당점과 신세계백화점 경기점, 롯데백화점 분당점 등 분당라인 3형제는 ‘판교점’ 등장으로 나란히 -10%대 역성장을 보였다. 세계 최대 규모·브랜드 파워를 보유한 센텀시티 앞에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과 현대백화점 부산점도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롯데 부산 본점은 -7.8% 역성장했고 현대 부산점도 매출이 -12.2% 꺾였다.
대구에선 빅3 백화점들의 명품브랜드 유치를 놓고 ‘대구대첩’이 일었다. 승기를 잡은 것은 신세계 대구점. 현대백화점 대구점에 있던 샤넬과 에르메스 등을 잇달아 유치하는 데 성공하면서 명품 3사를 모두 품는 지역 백화점으로 자리매김했다. 명품 유입 효과로 신세계 대구점은 지난해 -1% 성장률을 보였고 경쟁에서 밀린 현대백화점 대구점은 -6.4% 역성장했다. 이 대열에도 끼지 못한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23.9% 역신장하면서 가장 크게 위축됐다.
업계에선 지방에 위치한 백화점이 몇몇 경쟁력 있는 점포를 제외하곤 연쇄적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온라인 쇼핑 트렌드와 명품 위주의 고급화로 인한 중소형 점포가 소외되면서 그 현상은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방 중에서도 명품 라인업이 됐거나 강한 MD력을 자랑하는 등 몇몇 점포 외에는 경쟁력을 갖기 힘들 것”이라며 “지방에는 또 교외형 아울렛 등이 많이 생겨나는 추세라 이곳으로의 고객 유출도 생기기 때문에 소규모의 경쟁력 없는 점포들은 연쇄 폐점 위기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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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이 커진 기쁨도 잠시, 반짝이던 지방백화점들의 호황기는 이제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익성과 외형 성장이 반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 덩달아 빅3 백화점 업체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공격적인 M&A와 내부 리모델링 등 지방 상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다. 실제 지난해 대부분의 지방백화점 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깝다. ‘지방의 꽃’이라 불리던 ‘부·대·울(부산·대구·울산)’마저 지난해엔 역성장한 모습이다.
45개 점포 90%는 매출 ‘뚝’… 롯데 직격탄
나머지 백화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매출 최하위 점포 모두 지방백화점이 차지했다. 울산 동구에 위치한 현대백화점은 15개 점포 중 매출이 가장 낮았고, 5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는 갤러리아백화점도 진주점 매출이 가장 낮았다. 진주점 매출은 2019년도 대비 -14.8% 신장하면서 역신장률도 가장 높았다.
마산은 지방백화점의 무덤으로 전락했다. 신세계백화점 마산점과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나란히 각사 꼴찌를 차지했다. 신세계 마산점은 전년 대비 -11.7% 하락한 1300억원대 매출을 보였고, 롯데백화점은 -20.9% 떨어지면서 724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다. 인근 상권이 죽으면서 소비심리가 악화한 영향이 컸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기존 백화점을 새롭게 변신시키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 마산을 대표하던 대우백화점은 롯데백화점에 인수된 후 ‘간판 만 바뀐 것 아니냐’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오히려 식품관은 대우백화점이 더 좋았다거나 ‘롯데’에 기대했던 입점 브랜드도 기존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고객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이는 지방 백화점들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다. 향토백화점들을 인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지방 상권 공략에 나섰지만, 기존의 사업방식과 크게 달라지지 못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인수된 후에도 브랜드 유치·마케팅·매장구성 및 상품 기획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역량이 발휘되지 못했다”며 “경기가 좋을 땐 너도나도 잘되지만, 위기가 왔을 땐 도심 내 주요 점포에 더욱 자원을 집중하다 보니 지방점포는 점점 더 관리가 소홀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지방백화점은 기존 향토백화점처럼 임대료만 받아 매출을 내는 구조”라고 귀띔했다.
전 점포가 지방에 있는 애경그룹의 AK플라자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한 해 백화점 67개 점포 가운데 매출이 20% 이상 역성장한 점포는 11곳. AK플라자는 -11.8%의 분당점을 제외한 수원점(-21.6%), 평택점(-22%), 원주점(-21.7%) 등 전 점포가 -20%대 역성장을 보였다.
특히 평택점과 원주점의 매출 타격은 심각했다. 평택점 매출은 2019년 1920억원에서 지난해 1497억원으로 줄었고. 원주점 매출은 1436억원에서 1124억원으로 웬만한 지방 마트보다 적은 규모로 감소했다. 평택점과 원주점 모두 도시 내 경쟁자가 없는 독자 점포로 인근 상권 소비자를 모두 끌어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도시 자체 소비력과 상징성이 저하되면서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다. 두 지점 매출은 전국 58위(평택), 62위(원주)로 최하위권이다.
‘상권 종결자’ 등장에 분당 라인 3형제 몰락
상권을 단숨에 장악한 이들의 등장으로 주변에 있던 백화점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AK분당점과 신세계백화점 경기점, 롯데백화점 분당점 등 분당라인 3형제는 ‘판교점’ 등장으로 나란히 -10%대 역성장을 보였다. 세계 최대 규모·브랜드 파워를 보유한 센텀시티 앞에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과 현대백화점 부산점도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롯데 부산 본점은 -7.8% 역성장했고 현대 부산점도 매출이 -12.2% 꺾였다.
대구에선 빅3 백화점들의 명품브랜드 유치를 놓고 ‘대구대첩’이 일었다. 승기를 잡은 것은 신세계 대구점. 현대백화점 대구점에 있던 샤넬과 에르메스 등을 잇달아 유치하는 데 성공하면서 명품 3사를 모두 품는 지역 백화점으로 자리매김했다. 명품 유입 효과로 신세계 대구점은 지난해 -1% 성장률을 보였고 경쟁에서 밀린 현대백화점 대구점은 -6.4% 역성장했다. 이 대열에도 끼지 못한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23.9% 역신장하면서 가장 크게 위축됐다.
업계에선 지방에 위치한 백화점이 몇몇 경쟁력 있는 점포를 제외하곤 연쇄적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온라인 쇼핑 트렌드와 명품 위주의 고급화로 인한 중소형 점포가 소외되면서 그 현상은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방 중에서도 명품 라인업이 됐거나 강한 MD력을 자랑하는 등 몇몇 점포 외에는 경쟁력을 갖기 힘들 것”이라며 “지방에는 또 교외형 아울렛 등이 많이 생겨나는 추세라 이곳으로의 고객 유출도 생기기 때문에 소규모의 경쟁력 없는 점포들은 연쇄 폐점 위기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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