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화재는 소비자의 마음에도 불을 질렀다 [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어른 아이’ 모습 보인 브랜드의 무책임
CEO의 진정한 역량은 위기 상황에 빛난다
쿠팡이 이번 물류 센터 화재 사고로 태워버린 것이 단지 덕평의 4만평 규모 건물과 1600만개의 상품뿐일까. 한국의 아마존을 표방하며 수조원의 돈을 쏟아 투자한 ‘로켓배송’의 값진 고객 경험이 만든 브랜드 자산도 하루아침에 그 연기 속에 불타 사라져 버렸다.
더불어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고객의 신뢰는 '고객의 분노'라는 불길 속에 좀처럼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고객의 불매운동은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고 그 피해 규모는 짐작할 수조차 없다.
쿠팡은 과거에도 코로나19 감염자 사태로 브랜드 위기가 있었고, 근로자가 과로로 숨지는 사태가 있었지만 유사한 사건이 다른 경쟁기업이나 다른 산업에도 있었기에 쿠팡에 국한한 특수한 문제로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당시에도 미숙한 대응이 문제가 됐지만 이번 사건처럼 쿠팡의 기업 문화가 고객들에게 분노를 산적은 없었다.
리스크만 예측하고, 대처는 미흡한 쿠팡
쿠팡이 아니라 어떤 기업에도 이런 리스크는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이 이 물류창고의 불길을 소비자의 마음으로 번지게 했을까? 이번 쿠팡의 사례를 통해 ‘브랜드 차원에서의 위기관리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살펴보자.
최근 쿠팡의 물류센터 화재 사고와 관련한 쿠팡 대응 방식은 참으로 안타깝다. 한마디로 영양 과잉으로 덩치는 어른이지만 사고 수준은 어린아이인 피터팬 신드롬이 말하는 ‘어른 아이’를 보는 기분이다.
뉴욕증권시장에 상장해 60조원에 가까운 시가총액을 평가 받는(한국시장기준 3위 규모) 기업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아마추어 같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불이 난 지 5시간 후 국민이 마주한 첫 번째 쿠팡 관련 뉴스는 진정성을 담은 사과가 아니라 ‘최고 의사 결정권자인 김범석 의장이 모든 한국에서의 직책을 그만두고 글로벌 사업을 위해 책임을 새로운 CEO에게 넘긴다’는 뉴스였다. 쿠팡의 CEO가 사고에 대한 한마디 사과나 수습책을 내놓기보다 화재 책임을 면하기 위해 모든 직책을 그만둔다는 뉴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메시지였다.
물론 이 결정은 이미 예정돼 있었고 공교롭게도 불이 난 시점에 발표된 것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쿠팡 측은 이번 결정이 화재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백보 양보해 그 말이 옳다고 해도 전 국민이 지켜보는 대형화재 사고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성숙한 태도라면 당연히 사임 발표를 사고 수습 뒤로 미루고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을 것이다.
쿠팡의 최초 사과문은 새로운 CEO 강한승 대표 명의로 사건 발생 38시간 지난 후에 나왔다. 불과 서너 달 전까지 쿠팡을 뉴욕시장에 상장하면서 한국의 아마존으로 만들었다고 언론을 통해 신화적 인물로 떠받들던 주인공 김범석 의장은 슬그머니 빠진 것이다. 더구나 이때는 현장에서 화재진압을 진두지휘하던 소방대장이 실종되어 생사확인이 불투명한 상황이었고, 화재는 역대급 규모로 번져가고 있었다.
쿠팡이 이번 사건을 얼마나 안일하게 보았는가에 대한 방증이자, 책임지지 않는 기업 문화의 민낯을 보는 순간이었다. 30시간 전에 한국에서의 모든 법적 지위를 내려놓았다고 발표했으니, 새로운 대표이사가 사과해야 하는 것은 합법적이라는 무언의 주장이 보인다.
소비자들은 생각이 달랐다. 즉각적인 불매운동으로 반응했다. SNS에는 ‘쿠팡 없이 살 수 있을까?’라는 쿠팡의 슬로건을 뒤집은 ‘쿠팡 없이도 살 수 있다’라는 글과 ‘쿠팡 탈퇴’를 인증하거나 탈퇴방법을 공유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불매운동이 시작된 6월 19일 하루에 ‘쿠팡 탈퇴’ 글만 2만 건, 트위터에서 해시태그를 단 글은 17만 건이 올라왔다.
쿠팡은 2020년 5월 부천 물류센터에서 시작해 코로나 확진자 111명이나 나왔을 때도 그랬다.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하기보다, 해명하고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기 급급했다. 또 지난 1년간 9명의 쿠팡맨과 작업자들이 숨진 사건이 날 때마다 진정성 있는 사과보다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겨울에 핫팩 한장에 의존해 난방도 없는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근로자가 숨지자 ‘핫팩 한장이 아니라 두 장 지급했다’라고 주장하거나 ‘사망한 노동자가 근무했던 사업장은 업무 강도가 낮은 곳이다’라며 공감과 사죄가 아니라 주장과 변명을 늘어놓은 것이다.
이른바 가치소비 시대다. 요즘과 같이 최고 의사 결정권자의 퍼스널 브랜딩이 기업의 평판과 직접 연결되는 시대에는 CEO나 오너의 행동과 가치가 고객을 움직인다. 그래서 미국 어떤 플랫폼 기업의 CEO도 기업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뒤로 숨지 않는다.
기회의 순간에 자신이 빛나는 만큼 위기의 순간에도 최전방에 서서 때로는 온몸으로 비난의 화살을 받으며 위기를 관리한다. 진정, 쿠팡이 김범석 의장의 경영능력과 퍼스널 브랜딩으로 여기까지 왔다면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당당히 직접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CEO가 브랜드인 플랫폼 시대의 위기관리에서 필요한 첫 번째 덕목일 것이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CEO의 가치관
그런 측면에서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유니콘기업의 반열에 오른 ‘컬리’의 김슬아 대표가 지난해에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은 비교될 만하다.
물류센터에 확진자가 발생하자 마켓컬리는 다음날 곧바로 김 대표 명의의 홈페이지 게시문과 보도자료를 발표하고 ‘확진자가 발생한 사업장을 폐쇄했음을 알리고 방역이 불가능한 제품은 전량 폐기할 것’을 발표했다. 더불어 CEO가 나서 사고 경위를 설명하고 조치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고, 사과와 더불어 소비자의 우려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후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지속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투명하게 사태를 관리한 바 있다.
미국의 마텔이라는 세계 최대의 장난감 회사가 보여준 위기상황에서의 브랜드 관리도 참고할 만하다. 2007년 마텔은 중국에서 생산된 장난감에 기준치 이상의 납 성분 검출과 장난감에 붙어 있는 자석을 아이들이 삼킬 가능성이 제기돼 세 차례에 걸친 리콜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2000만개 제품을 리콜하는 초유의 위기를 맞은 바 있다.
60년이 넘은 이 회사는 브랜드 이미지에 결정적 타격을 받을 위기에 처했고 경쟁사는 ‘우리 제품에는 납 성분이 없다’라는 비방 광고로 마텔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해 말 엄청난 규모의 리콜과 새로운 점검시스템의 도입으로 비용과 투자는 발생했지만, 성공적인 리스크 메니지먼트로 매출은 오히려 전년 대비 15%가 증가하는 결과를 보였다.
한마디로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태도와 진정성 있는 사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이다. 우선 즉각적으로 각종 매체와 온라인 미디어에 사과 동영상을 게재하고 모든 포털 사이트에 링크를 걸어 고객이 리콜 관련 웹페이지에 쉽게 접근하도록 유도했다. 사과 동영상에는 자사의 로고를 크게 부각하여 적극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사과 메시지에도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 소비자가 기대하는 바와 그 맥락을 충분히 반영한 진정성 있는 사과를 CEO가 직접 했다.
당시 CEO인 밥 에 커트는 사과와 더불어 장난감에서의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3단계 안전진단시스템 강화를 약속하고 실천했다. 우선 장난감에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페인트를 전수 조사하고, 전 생산라인의 기습점검 강도를 강화함은 물론 임의로 하던 완제품 검수도 전 제품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메시지는 소비자들에게 전달돼 이 사건 이후 고객의 구매의향은 71%에서 76%로 늘어났으며, 신뢰도 역시 75%에서 84%로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이뿐이 아니다. 이 사건의 여파가 커지자 미 의회는 청문회를 열어 CEO를 소환했으나 오히려 신속한 위기대응에 대한 칭찬을 한 것으로 이 회사는 더 유명해졌다.
기업은 이제 소비자에게 물건을 어떻게 팔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소비자와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다른 이커머스업체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자본과 속도로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며 화려하게 고객과의 ‘인게이지먼트(engagement)’에 성공했다. 규모로는 이 나라 어떤 유통기업보다도 크고 위대하다.
그러나 쿠팡은 이번 화재 사건으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쿠팡의 고객들은 이 기업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지켜볼 것이다. 디지털 자본이 영양을 과잉 공급한 몸뚱이만 크고 머리는 미성숙한 ‘어른 아이’에게 지속적 애정을 보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대학교수다. 제일기획과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 마케팅에 관심을 가졌고,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플랫폼 기업의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다.
허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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