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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마사회③] 장사 죽 쑤는데 내홍까지…‘신의 직장’ 민낯

승부조작·부당거래·자살…마사회 내부 비리 폭로 잇따라
16년여 간 비리 척결 선제 노력 없이 생존 대책만 요구
근로계약·직종에 따라 노조가 5개…건건마다 대립 분쟁
측근채용·폭언 김우남 회장 해임 두고도 노·노 찬반갈등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서울경마공원 입구에 노조의 주장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하늬 기자]
 
한국마사회는 ‘신(神)도 가고 싶어 하는 직장’으로 불린다. 정규직 평균 연봉이 9000만원으로 연봉 순위가 36개 공기업 중 가장 높다. 지난해 신입사원 초임 연봉도 4273만원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서부발전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런 마사회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휴장하면서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약 4600억원의 적자로 창립 이래 첫 적자를 기록한 마사회는 온라인 마권 발매 허용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내부 갈등도 발목을 잡고 있다.  
 
마사회는 한번씩 불거지는 경마 비리와 함께 지난해 승부조작 등을 고발한 고(故) 문중원 경마 기수의 사망 사건 등을 계기로 안팎에서 논란이 꼬리를 물고 있다. 게다가 지난 4월 김우남 한국마사회 회장의 갑질 논란이 불거지면서 노조는 물론 노조 사이에서도 김 회장의 거취를 두고 대치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환골탈태하려면 내부 개혁부터 먼저 해결하라고 지적 받는 이유다.  
 

2년 한번 꼴 기수·관리사 사망으로 ‘비리 온상’ 낙인

2019년 말 고(故) 문중원 기수는 마사회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본부와 문 기수 유가족은 지난 7월 21일 오후 부산지법 서부지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중원 기수를 떠나 보낸 지 1년9개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결정된 것은 없다”며 “재판부는 관련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문 기수는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로 기수 생활에 한계를 느껴 2015년 조교사 면허를 취득했지만, 5년 동안 마방을 얻지 못했다. 그는 유서에 마사회 특정 직원과의 친분이 없으면 마방 임대가 어려운 현실을 꼬집으며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마사회 마방 임대 심사는 정성평가(사업계획 발표) 20%, 정량평가(경주마 확보 수) 80%로 이뤄져 비율로 따지면 정량평가가 높지만, 실제로는 정성평가가 마방 임대 당락을 결정했다는 의혹이다.  
 
검찰 수사 결과, 지난 2018년 당시 한국마사회 경마처장 A씨는 친한 조교사들에게 특혜를 준 것으로 밝혀졌다. 면접 자료를 미리 검토해준 후 이듬해 개업 심사에 심사위원으로 직접 참여한 것은 물론이고, 선발 심사 후에는 조교사들과 함께 채점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혜로 얼룩진 조교사 개업 심사는 논란 끝에 지난해 말 결국 폐지됐다.  
 
이는 마사회의 구조적 고용 문제와 연관 있다. 마사회는 경마의 시행주체일 뿐이며, 마주·조교사·기수·말관리사는 마사회 직원이 아니다. 하지만 마사회법의 권한으로 경마 관계자들은 마사회의 통제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마사회가 보호장치 없이 조교사 면허를 취소하거나 마사를 회수할 때 경마 관계자들의 일자리도 함께 없어진다. 일자리 관련 심사에 마사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마사회가 기수, 말 관리사 등을 포함한 경마 관계자들의 노동 조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005년 부산 경마공원 개장 후 한국마사회에서 일하다 숨진 마필관리사만 모두 8명이다. 기수만 따져도 문 기수를 포함해 4명이나 된다. [이코노미스트]가 후속조치에 대해 질의하자 마사회 측은 “7월 초 관련 인사 조치가 있었고, 문 기수 사망 사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라며 “승자 독식 형태였던 상금 구조를 개편하고, 협회도 신설하는 등 과도한 경쟁을 막는 시스템을 구축해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기수·관리사들의 내부 비리 폭로와 사망, 김우남 한국마사회장의 갑질 논란 등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마사회는 2020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윤리경영·안전관리 미흡 등의 영향으로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았다. 전년도 C등급에 이어 2단계나 더 하락한 평가다. 권익위의 청렴도 평가에서도 3등급, 부패방지시책평가에선 4등급 등 줄줄이 낮은 평가를 받았다.  
 

공공기관·청렴도·부패방지 평가에서 줄줄이 낙제점

이뿐만 아니라 노조 간 갈등, 김우남 회장의 거취 문제도 해결이 시급하다. 마사회에는 5개의 노조가 있다. 1노조는 공채 출신 정규직으로 구성된 약 700명, 2노조는 경마 현장 행정 보조 등의 업무를 하는 무기계약직 200명, 3노조는 마권 발매 업무를 하는 무기계약직 2000명 가량이다. 이밖에 발매소장 노조인 4노조와 한우리노조 등 모두 5개 노조가 활동 중이다.  
 
노조들은 김 회장의 행태에 대해 서로 대립하고 있다. 취임 40일 만에 직원에게 측근의 특별 채용을 지시·폭언을 해 논란을 일으킨 김 회장에 대해 1노조는 해임을 요구한 반면, 한우리노조는 해임 반대론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한우리노조는 성명서에서 “노조 모두는 김 회장을 재신임할 것”이라며 “더 이상의 경영공백과 공전을 계속해선 안 되고,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을 최우선 과제로 꼽은 김 회장의 약속이 조속히 이행돼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앞서 김 회장은 올해 2월 취임 직후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을 비서실장으로 채용할 것을 인사담당자에게 지시했다. 담당자가 상위 부처와 검토한 결과 특별전형이 불가능하다고 보고하자 김 회장은 그에게 욕설과 폭언을 했다. 이후 청와대는 김 회장에 대한 감찰을 벌였고, 경찰은 김 회장을 강요미수와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마사회 노조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검찰에 송치된 5월 24일 긴급회의를 열고 처장과 부장을 포함한 인사 담당 간부를 보임하는 발령을 상신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간부가 타 부서로 전보를 희망하지 않는다는 반대 의견을 전했지만, 김 회장은 곧이어 인사 발령을 단행했다.  
 
이에 대해 마사회 1노조는 “해당 간부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까지 한 상태에도 전보 조치를 감행한 것은 전형적인 2차 가해”라고 주장했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김 회장의 폭언과 채용 강요를 고발한 직원들의 신고자 보호신청을 접수해 조사에 착수했다. 김 회장은 마사회를 통해 “보복성 인사발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마사회는 2020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윤리경영·안전관리 미흡 등의 영향으로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았다. 전년도 C등급에 이어 2단계나 더 하락한 평가다. 권익위의 청렴도 평가에서도 3등급, 부패방지시책평가에선 4등급 등 줄줄이 낮은 평가를 받았다.  
 

농림부의 해임 결정에 김우남 마사회장 버티기

김우남 한국마사회장이 지난달 4일 취임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마사회]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6일 김 회장에 대한 ‘해임’을 건의하기로 최종 결정한 내용을 김 회장에게 통보했다. ‘수사의뢰’와 함께 ‘직무정지’ 조치 또한 예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농식품부의 최종 결정 후에도 소명·재심의 등의 기간이 주어져 김 회장의 거취에 대한 완전한 결론은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홍기복 한국마사회 제1노조 위원장은 “해임 건의 최종 결정 통보는 진작에 있었어야 할 일”이라며 “그동안 너무 신중했다. 이제라도 해임 결정이 이뤄져 다행이지만, 김 회장은 이 사항이 중대한 비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밝혔다. 김 회장이 이의를 제기하며 버티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김 회장은 22일 코로나19로 촉발된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한 첫걸음으로 기관경영평가와 재무 현황 등을 임직원들과 공유하는 주요 현안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설명회는 2020년 기관경영평가 부진 원인에 대한 분석과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언급한 김 회장의 선제적 대응 의지가 반영된 조치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감귤 도둑을 소 도둑 취급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농식품부의 해임 건의 결정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사회는 설립 이래 최대 위기다. 잇따른 장외발매소 폐쇄로 마사회의 경영실적 하락 우려도 커진 상황이다. 지난 3월 마사회 대전지사 월평동 마권 장외발매소가 폐쇄된 데 이어 지난 5월 외국인 전용 워커힐 지사도 문을 닫았다. 이에 마사회 장외 발매소는 30곳에서 27곳으로 줄었다. 그동안 마사회는 장외발매소를 줄이는 대신 온라인 마권 발매 허용을 추진해 왔으나, 김 회장의 갑질 논란 후 내홍을 겪으면서 이마저도 추진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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