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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경제의 성공에 숨어있는 두 가지 힌트 [김국현 IT 사회학]

넷플릭스·스포티파이…단품 구매의 심리적 허들 해결해 성공
대세가 된 클라우드…대규모 설비투자 대신 유연한 운영비 지출 내세워
끈끈한 고객 접점 형성이 성공 요인…네이버·카카오 등 거대 플랫폼도 도전

 
 
프로젝트 엑스클라우드 시범 서비스 장면. [사진 MS]
 
지난 5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소상공인 구독경제 추진 방안과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판매와 물류 플랫폼용 바우처 방식으로 지원하는 등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에게 새로운 활로를 제공하려는 시도다.
 
구독경제란 최신 트렌드로 취급되고 있지만, 정기 구독이란 말만큼이나 오래된 개념이다. 장사에서는 기존 고객의 반복 구매, 즉 단골의 확보가 중요하다. 특히 신규 고객 발굴이나 시장 개척이 쉽지 않거나 고비용인 분야일수록 더욱더 그렇다. 따라서 단품 판매보다 정기 배송을 할 수만 있다면야 예측할 수 있고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좋은 줄 알지만 하고 싶어도 못했던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구독경제가 하나의 흐름이 된 데에는 계기가 있다.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 등 디지털 재화 쪽에서 단품 구매에 뒤따르게 되는 심리적 허들을 치워 버려 성공한 사례가 속출한 것. 재화 하나하나를 선별하여 구매할 때 인지적 리소스가 소진되니 스트레스가 된다. 하지만 수긍 가능한 가격에 그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면 소비자는 움직인다. 어차피 영화 보고 음악 듣는 생활이라면 개별 품목이 마음에 들지 말지 생각할 필요 없이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다. 
 
‘아니면 말고’의 자유는 디지털 재화가 아닌 실물 재화에서는 좀처럼 흉내 내기 힘들다. 영화나 음악이야 잠깐 보다가 넘길 수 있지만, 이미 배송된 실물의 경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고객에게는 쓰레기이고 공급자에겐 손실일 뿐이다. 무형재화에서의 성공 모델을 유형재화에서 재연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그 한계비용, 즉 생산물 한 단위 추가 생산에 드는 비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클라우드가 작금의 대세가 된 배경에는 대규모 설비투자(CAPEX) 대신 유연한 운영비(OPEX) 지출이 합리적이라는 경영상 판단이 있었다. 서버를 잘 못 사거나 사놓고 쓰지 않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클라우드란 구독할만하다. 유형재화를 무형재화로 성공적으로 변환하여 새로운 시대의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 셈이다. 즉 디지털에서 구독경제가 뜨게 된 이유는 이처럼 소비자에게 자유를 줬다는 점이 크다.
 
문제는 다시 우리 경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물 재화의 경제다. 구독경제의 성공 사례만 주목받고 있지만 시도해 보고 조용히 접은 서비스들은 수도 없다. 정기배송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한다면 좀처럼 지속하기 어려운 모델이라서다.
 
실물재화의 경우 구독경제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정기배송이나 리스·렌탈과 사실상 동일한 방식으로 추진되곤 한다. 안타깝게도 디지털 재화에서 볼 수 있는 소비자 입장의 스트레스 없는 자유 대신 공급자 입장의 구속 욕구가 두드러진다.
 
기간 동안 마음껏 빌려 쓰시라고 해도, 중간 유통이 사라져서 더 싸게 계속 받으실 수 있다고 해도 소비자는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소비자가 나눗셈 계산을 해보기 시작하면 위험 신호다. 가격이 결정적 차별화가 되는 사업 양식은 지속 가능할 리 없다. 판촉에 잠시 속을 수는 있지만 결국 소비자는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을 머지않아 깨닫기 때문이다. 구독 모델에서 실패한 기업은 대개 이 덫에 걸린다.
 
오히려 ‘약간 비싼 것 같지만, 다소 부담되지만, 그래도 구독하는 편이 여러모로 득이 되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느낌 중 하나가 바로 스트레스를 덜어 주는 자유였다. 잘못 골라도 괜찮을 자유, 다양하게 겪어볼 수 있는 자유. 그 자유에는 웃돈이 붙을 수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비결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선망이다.
 

선망이 만드는 충성도 높은 고객 접점을

디지털 재화에서도 구독경제의 성공사례는 모두 충성도가 높은 경우였다. 어도비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구독 모델 이행 성공이 이에 속한다. 포토샵도 오피스도 이미 자신의 커리어와 일체가 되어 버린 경우라면, 혹은 기업 운영에 필수 재화가 된 경우라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전에는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선뜻 살 수 없었던 이들도 이제 한 달만 써볼 수 있다. 포토샵이나 오피스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면, 구독경제 덕에 문턱이 훨씬 낮아진다.
 
구독경제의 성공 사례인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충성도를 위해서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화제가 되는 기분, 다른 데서는 못 보는 가입자만의 특전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넷플릭스 보는 사람’끼리만의 이야깃거리를 양산한다.
 
선망이 소유하기가 아니라 체험하기와 함께하기에서 나오는 시대답다. 정기 구독의 약어가 되어 쓰이고 있지만, 구독(購讀)은 사전적으로는 ‘사 읽음’으로 순화될 수 있는 단어다. 한편 영어의 ‘subscription’은 정기 구독이라는 용례 이외에도 ‘subscribe to an opinion, a campaign,’처럼 기부, 후원하거나 찬동한다는 의미가 명시적으로 쓰이는데, 여기에 힌트가 있다.
 
기여와 응원의 대상이 될 수만 있다면 구독경제는 궤도에 오른다. 선망이 우월감을 부르고, 더 나아가 소속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구독경제는 완성된다. 하지만 선망도 충성심도 갑자기 생길 리 없다.
 
가상재화를 다루는 후발주자들은 방법을 찾았다. 프리(Free) 티어를 두고 프리미엄(FREE-mium) 모델로 공략하는 방법을 쓴다. 일단 써보게 하고 그 매력에 반하게 하는 것이다. 줌과 같은 스타트업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이 이미 있었음에도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하다. 무료 플랜이 가능하다는 점은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운 디지털의 특성 탓이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네이버 제1데이터센터 '각'의 네이버 클라우드는 2만 개 기관과 기업에서 이용 중이다. [사진 네이버]
실물재화에게도 방법은 있다. 오히려 실물이 더 강한 고객 접점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하드웨어를 팔고 소프트웨어를 구독하게끔 하는 식이다. 피트니스계의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펠로톤은 운동 기구를 팔고 콘텐츠를 유료 송출한다.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회원들은 공동체에 속했다는 소속감마 그 서비스를 통해 맛봤고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는 테슬라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게임 콘솔식 사업 방식이다.  
 
구독 경제의 핵심은 이처럼 강렬한 선망에 기반을 둔 끈끈한 고객 접점을 형성하는 데 있다. 중요한 건 팬을 만드는 일이다. 이미 네이버·카카오 및 이동통신 3사처럼 고객 접점을 장악 중인 거대 플랫폼이 모두 구독 경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자유를 주고 그 과정에서 팬이 되는 구독경제의 얼개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구독경제 플랫폼에 입점하는 방식으로는 유통망만 바뀔 뿐이다.  
 
오히려 재주만 부리는 곰이 되어 대형 플랫폼의 팬만 늘려주고 말 수도 있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김국현 IT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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