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스토어 규제, 여의도·워싱턴 한 마음? [한세희 테크&라이프]
한국 ‘세계 최초 앱 장터 규제’ 법제화 수순
‘구글 갑질 방지법’ 제정… 애플·구글 기본 전략 흔들릴 수 있어
애플과 구글의 발목을 잡을 법안 하나가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구글 갑질 방지법’이라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다. 8월 24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면 25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수 있다.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이라 통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정책이 세계 최대 테크 기업 애플과 구글의 핵심 비즈니스에 타격을 가하는 일이 과연 벌어질까?
구글 갑질 방지법 통과되나
핵심은 앱 장터 자체 결제 수단만을 쓰도록 강요하지 못 한다는 점이다.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는 모바일 앱의 유료 서비스나 게임 아이템을 앱에서 살 수 있는 ‘앱 내 결제(IAP, In-App Purchase)’ 수단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모바일 앱 판매 수익의 30%를 떼어 가는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한다. 사용자는 쉽게 결제하고 구매 내역을 관리할 수 있지만, 개발사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30%의 세금을 뜯긴다는 불만이 컸다.
애플 앱스토어에서는 줄곧 애플의 앱 내 결제만 쓸 수 있었지만, 후발 주자 구글은 외부 결제 수단을 눈감아 주는 유화 정책을 쓰고 있었다. 외부 웹페이지에서 앱 개발사가 선택한 결제 수단을 이용, 낮은 수수료로 결제할 수 있다. 게임 앱만 구글 앱 내 결제 사용이 의무였다.
그러다 지난해 7월 구글이 앱 내 결제를 모든 콘텐트 앱에 의무 적용하려 한다는 계획이 알려졌다. 국내 IT 업계는 격렬히 반발했다. 앱 개발사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가격이 올라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웹툰, 웹소설 작가 등 콘텐트 앱을 무대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도 타격을 받는다. 음악, 웹툰, e북 등 게임 이외 분야에도 구글 앱 내 결제가 적용돼 30%의 수수료를 떼면 수수료 부담이 7818억원에서 1조 2924억원으로 뛸 것으로 한국모바일산업협회는 추산했다.
정부 부처는 실태 조사에 나섰고, 의원들은 앱 내 결제를 강제하지 못 하게 하는 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가 나오고 야당 국민의힘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법안 통과는 계속 시간을 끌었다. 디지털 기술 기반 시장에 법으로 개입하려는 시도, 특히 해외 기업에 대한 규제는 대체로 성공한 적이 없다는 점도 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그래도 어차피 피해를 볼 건 외국 기업들 밖에 없으니 국회는 마음 놓고 법안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지금 국회가 규제를 시도하는 상황에는 과거와는 다른 점이 있다. 유럽은 물론, 글로벌 빅 테크 기업의 본진 미국에서도 이들 대형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는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등 대형 플랫폼 기업의 힘을 제약하기 위한 각종 법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주 미국 상원에선 모바일 앱 유통에 대한 구글과 애플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되었다. ‘앱 장터 개방법 (OpenAppMarketAct)’이라는 이름의 이 법은 앱 장터가 ▶자체 결제 수단만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개발사가 앱 장터 고객들에게 자사 홈페이지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 하게 하는 행위 ▶스마트폰에 다른 앱 장터 설치를 막는 행위 ▶외부 앱에 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경쟁 앱을 만드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도 앱 장터 규제 시도
지금까지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옹호하는 경향이 강했던 미국도 규제로 선회하면 세계 주요 국가들이 대부분 대형 플랫폼 기업을 견제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유럽연합이 앱스토어 관련 반경쟁 행위를 이유로 애플 기소를 앞두고 있으며, 호주 경쟁 당국도 최근 앱 유통 플랫폼에 대한 애플과 구글의 영향력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도 통상 분쟁에 대한 우려를 덜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구글 갑질 방지법’이 통과되면 한국은 세계 최초로 앱 장터 규제를 법제화하는 나라가 된다.
이 법이 통과되면 모바일 운용체계(OS)와 앱 생태계에 대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해 가는 애플과 구글의 기본 전략의 한 축이 흔들린다. 지난 한 해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에서 853억달러, 약 100조원 가까운 앱 내 결제가 발생했다. 두 회사의 수수료 수익은 15조~30조원으로 추산된다.
애플과 구글은 앱스토어와 플레이 스토어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악성 소프트웨어의 확산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항변한다. 엄격히 관리되는 자체 앱 장터를 통해 사용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모바일 기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앱 생태계의 관리와 유지에 비용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또 소규모 개발사로서는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가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십여 년 전 앱 생태계가 처음 싹을 틔우던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변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애플과 구글이 앱 유통을 지배하는 위치를 굳힌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특히 이들이 OS와 앱 장터를 통제하는 절대적 지위를 남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타일이란 회사 사레를 보자. 물건에 붙여 두었다가 잃어버렸을 때 휴대폰 앱으로 찾을 수 있는 동전 크기의 무선 기기를 만드는 회사다. 이 회사는 아이폰의 초정밀 무선 기술 UWB에 접근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리고 애플은 얼마 전 UWB를 활용해 분실한 물건을 찾을 수 있는 에어태그를 내놓았다.
애플과 구글이 앱 장터라는 혁신을 일군 대가를 충분히 받았는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이제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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