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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성분도 특허 가능?…'알쏭달쏭' 제약업계의 특허 세계

신약 개발 기간 평균 15년…고부가가치 제약산업 특성 탓에 특허 민감
신약 개발자 특허권 독점 연장 전략, 제너릭 업계 반대 입장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자체 특허 강화 추세…상반기 18건 특허 등재

 
 
이재우 특허심판원장(왼쪽)이 지난 6월 18일 오후 충남 예산군 보령제약을 방문해 이삼수 대표이사(왼쪽 두 번째), 신상수 공장장과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다국적 제약사뿐 아니라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특허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 신약개발은 막대한 자금과 오랜 기간 투자를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업계의 특허권은 R&D(연구개발) 자금을 의 회수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식재산권은 일정한 기술을 공개함으로써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그에 대한 상응하는 보상으로 일정기간 독점권을 갖게 된다. 제약업계에서 특허의 중요성은 매우 높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신물질 탐색부터 신약이 탄생하기까지 성공확률은 1만분의 1로 매우 낮고, 신약 개발 기간은 평균 15년 정도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매출액 대비 20~30%의 높은 영업이익 창출이 가능하다. 
 

신약개발 단계별로 특허 등재 가능   

신약개발 과정은 크게 탐색 단계와 개발 단계로 구분된다. 단계별로 연구성과물을 특허로 보호할 수 있다. 등재 신청을 받은 의약품에 관한 특허권은 약사법 시행규칙 제30조 2, 제3항에 따라 ▶물질 ▶조성물 ▶제형 ▶의약적 용도(의약용도)로 나뉜다.
 
우선 기초 탐색, 원천기술 연구 과정은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신약후보 물질을 발굴하게 된다. 신약후보 물질로 최초의 원천특허인 물질특허를 출원할 수 있다. 향후 제품 출시 후 핵심적인 시장 보호 수단으로 작용하게 된다. 물질특허란 의약품에 포함된 성분에 관한 특허이다. 염과 수화물을 포함하는 용매화물, 이성질체, 무정형, 결정다형 등 중성분에 관한 특허가 이에 포함될 수 있다. 주성분의 제조에 사용되는 원료물질은 특허에 등재될 수 없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해 물질특허를 등재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동화약품이 한약재인 쥐꼬리망초에서 추출한 코로나19 치료제 물질인 ‘DW2008S’의 경우 2상 단계의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동화약품은 이 물질과 관련해 2건의 특허 등록을 마쳤다.
 
조성물 특허란 의약품의 주성분을 조합한 복합제 또는 의약품과 첨가제의 조합을 통한 처방에 관한 특허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되고, 허가된 원료 약품 및 분량이어야 한다. 
 
제형 특허란 의약품의 의약적 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한 주사용, 경구 등 제형(제제)의 특수성에 관한 특허이다. 새로운 제형에는 경피흡수제, 서방성제제, 이식정 등이 포함될 수 있지만 수액백, 스텐트 등의 의료기기는 포함되지 않는다.  
 
임상기간(임상 1상·2상·3상 시험) 동안에 최초 신약후보물질의 적응증과 달리 부작용을 나타낼 경우 새로운 용도로 특허출원이 가능하다. 이에 대한 연구성과물은 최초 물질특허와 더불어 새로운 용도특허 바탕으로 신약으로 개발을 통해 시장의 독점력을 지속할 수 있다. 
 
용도 특허란 의약품의 효능·효과, 용법·용량, 약기기전 등에 관련된 특허다. 동일한 의약품에 효능효과를 추가하거나, 의약품이 발휘하는 새로운 효능 효과, 용법용량으로 따로 허가된 경우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전립선 치료제를 발모제로 개발한 경우(피나스테리드 제제)가 이에 해당한다.
 
'용도 특허'와 관련한 분쟁으로 국내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간의 사례가 있다. 2011년 3월에 CJ제일제당 및 국내 제약사는 화이자를 상대로 '통증 치료를 위한 이소부틸가바 및 그의 유도체에 관헌 특허 제491282호는 무효'라고 주장하며 특허심판원에 무효 심판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특허소송은 화이자 의약품 리리카의 통증 부분에 대한 용도 특허와 관련된 소송이었다. 리리카의 용도 특허 존속기간에는 리리카 제네릭 의약품의 경우 '간질 발작 보조제'로서만 사용 가능하고, 통증 적응증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이에 화이자는 아직 특허가 끝나지 않은 리리카의 통증 치료 적응증을 무시하고 CJ제일제당이 통증 치료제 '에이가발린'에 대한 마케팅 활동을 벌였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특허 침해 가처분 신청을 했다. 이 특허분쟁은 2012년 10월, 특허심판원이 화이자의 손을 들어주며 원고 패소 심결로 마무리됐다. 이에 화이자는 리리카의 용도 특허를 2017년 8월 14일까지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 이 판결은 국내 제약사들이 제기한 특허 무효소송에서 패소한 첫 사례다.
 
이밖에 임상4상(신약 시판 후 조사) 기간은 신약이 출시 후에 예기치 못한 새로운 부작용이 나올 수 있으므로 제네릭 의약품(복제의약품)에 대해서 허가를 해주지 않고 있어 이 기간은 실질적인 신약의 시장보호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오리지널 의약품 시장 방어 ‘에버그리닝’ 전략  

제약·바이오산업에서 다국적 제약사는 특허 주도권을 이끌어왔다.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유한 다국적 제약사를 중심으로 보다 오랫동안 독점적 위치에서 시장을 지배하려고 특허전략을 강화했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시장 방어를 위해 다국적 제약사 특허전략 중 대표적인 것이 ‘에버그리닝’ 전략이다. 에버그리닝 전략은 특허가 만료되는 오리지널 신약의 특허권을 제형변경, 적응증 추가 등을 통해 연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의약품 특허의 에버그리닝은 오리지널 제약사들이 미국에서 1984년(특허-허가 연계제도), 캐나다에서는 1993년(특허-허가 연계제도) 이래로 '블록버스터'의약품이 가능하면 장기간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 중의 하나다. 하지만 에버그리닝은 특허-허가연계 등의 특수한 제도를 바탕으로 부실특허를 이용해 시장의 지배력을 항구적으로 이용하는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에버그리닝 전략에 대해 오리지널 업체와 제네릭 업체의 입장도 차이가 난다. 오리지널 업체는 특허법에 따라 개량된 특허의 신규성과 진보성을 인정받는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제네릭 업체 쪽에서는 오리지널 업체가 개량한 정도가 극히 미미한 발명을 대상으로 실질적으로 특허 독점권을 연장해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에버그리닝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서도 적용된다. 새로운 독점권을 얻거나 현재의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회사는 기존 의약품에 종종 이차적인 특허를 출원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용도 변경된 의약품의 2차 사용 시 특허를 허가하기도 한다. 국경없는의사회 측은 "잠재적인 코로나19 치료제 중 대부분이 용도를 변경한 의약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모든 국가에서 기존 의약품에 대한 이차적인 특허 출원을 제한하고, 두 번째 의약품 용도 특허 승인을 배제함으로써 '특허 에버그리닝'을 규제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국내 제약사를 중심으로 제네릭 의약품 또는 개량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다국적 제약사의 특허전략을 극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기업들도 자체 특허를 강화하고 복제약이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에버그리닝 전략을 구사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특허 등재 비중은 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의약품특허목록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는 총 58건의 특허가 등재됐다. 58건의 특허 중 국내사가 보유한 특허는 18건으로 비중은 31%였다. 특허권을 등재한 제약사는 국내 9개사, 해외 13개사로 총 22개사였다.  
 
국내사들은 또한 특허 쪼개기 전략으로 후발의약품 진입을 견제하고 있다. 같은 제품이라도 용량별로 특허를 여러 개 등재하는 식이다. 복합제라면 조합에 따라 각기 다른 특허를 등재하기도 한다. 특허 쪼개기는 가장 보편적인 에버그리닝 전략으로 꼽힌다. 실제 국내사들의 제품 1개당 특허등재 건수를 보면 2018년 1.6건에서 2019년 2.3건, 2020년 2.8건 등으로 증가 추세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R&D 집약체로서 많은 투자비용을 들여 개발한 의약품을 특허로 보호하며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은 당연하다"면서도 "역설적으로 특허 도전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 선진입함으로써 시장 장악력을 확보하려는 전략 또한 강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특허 신규 출원이나 특허 도전 모두 제약·바이오 산업의 핵심 전략으로서 갈수록 이 분야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제약·바이오 산업이 국가 신성장동력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이승훈 기자 lee.seung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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