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내각 부양책 활력 잃은 일본 경제 살릴까?
[2022 경제대예측 - 세계 경제 어디로③] NO 70%
2022년 일본 경제는 완만한 성장이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2022년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플러스(+)3.2%로 제시했다. 일본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보급 효과가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세로는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힘든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태를 떠나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최근까지 장기침체에 머무르고 있다. ▶인구고령화·인구감소 ▶디플레이션(물가하락) 발생 ▶수출경쟁력 저하 등으로 소비와 투자가 장기간 크게 위축됐다.
한국은행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GDP(기간 중 연평균 기준)는 ▶1981~1991년 4.5% ▶1992~2002년 1.0% ▶2003~2007년 1.7% ▶2008~2011년 마이너스(-)0.6% ▶2012~2019년 1.1%로 내리막길을 탔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무려 -4.8% 후퇴했다.
사상 최대 규모(577조원) 경기부양책 통할까
2021년 일본 경제는 GDP 상승이 예상되고 있지만 장기간 이어진 침체를 극복하기에는 터무니없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일본의 2021년 GDP 성장률을 3.4%, 규모는 534조 엔(약 4조6800억 달러) 수준에 머물러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GDP 546조 엔(4조7800억 달러)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떻게든 2022년에는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55조7000억 엔(약 577조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2021년 11월 19일 각의 결정했으며, 이를 통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을 발표했다.
재정지출은 국가와 지방의 지출에 국가대출금인 재정 투·융자금을 더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4월 4월 아베 신조 당시 내각이 내놓은 48조4000억 엔이 최대였다. 이번 재정지출 중 국비는 43조7000억 엔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2022년 GDP가 5.6%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구체적 예산 투입은 ▶의료 제공 체제의 확충과 매출 감소 사업자·저소측층 지원 등 코로나19 대책에 22조1000억 엔 ▶백신 개발 지원 등 다음 위기의 대비에 9조2000억 엔 ▶개인 지원금이나 반도체 산업 지원 등 ‘새로운 자본주의’ 관련 사업에 19조8000억 엔 ▶재해 대비 등 공공사업에 4조6000억 엔 등으로 구성된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성장기반 확충보다는 일시적인 경기부양 효과 정책을 펼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경기부양 정책을 통해 코로나19 재유행 등 대내외적 불확실성에 대처함으로써 2022년 여름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도 대비하는 차원에서 대규모 부양책 시행 의지는 확고하다. 경기부양 정책은 일본경제는 미국 및 중국 경제 등 대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재발하지 않을 경우 2022년 상반기에 플러스 성장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강의교수는 ‘2%대의 완만한 성장세 예상되는 일본경제’ KDI 보고서를 통해 “2022년 한 해 일본경제는 코로나19의 재확산 공포가 남아 있는 가운데, 기시다 신정부의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2021년과 비슷한 2%대의 완만한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며 “다만 중국 등 해외 관광객에 의한 소비수요는 2022년에도 크게 기대하기가 어려워 본격적인 소비회복은 2023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새롭게 정립하는 가시다의 경제안보 전략
기시다 총리가 추진하는 주요 경제안보 전략은 ▶글로벌 공급망 강화 ▶인공지능·양자 등 차세대 기술 육성 ▶국제 질서 유지·강화 등이다. 우선 글로벌 공급망 강화는 반도체, 대용량 전지, 광물자원(희토류) 등 이른바 ‘중요 물자’나 그 원재료들의 일본 내 제조기반을 강화하는 것이다. 일본에 생산 시설을 지으면 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을 법안에 명시할 예정이다.
대표적인 사업이 반도체다. 일본 반도체는 1980년대 후반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경쟁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대만 등에 밀려 경쟁력을 잃었다. 그로 인해 전체 수요의 60% 이상을 대만·중국 등에서 수입하는 중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주요 해외 반도체 업체의 국내 투자 유치에 나섰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에스엠시(TSMC)가 2021년 10월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초기 설비 투자액이 약 8000억 엔(8조4000억원)에 이르는데, 이 중 절반인 4000억 엔을 일본 정부가 보조할 방침이다.
차세대 기술 육성과 관련해선 5000억 엔(5조2000억원) 규모의 경제안보 관련 기금을 별도로 만들어 지원할 계획이다. 중국 등을 염두에 두고 기밀유출 부분도 정비된다. 통신이나 에너지와 같은 주요 인프라는 중요한 설비를 새롭게 도입할 때 정부가 사전에 심사하는 제도를 마련하기로 했다. 중국 등 안보 측면에서 위협이 되는 국가의 제품이 포함돼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특허 비공개는 안보와 관련한 기밀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특허출원을 할 때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 방침이다.
국제 질서 유지·강화는 핵심 안보동맹인 미국 등과 협력을 공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미·일은 경제 전반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과의 통상 문제, 환경, 공급망, 탈탄소, 디지털 경제 등 폭넓은 분야에 대해 협의하는 새 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잃어버린 30년’, 부채 비율 14%→258% 급증
일본 경제는 90년대 버블(거품)이 꺼진 이후 30년 가까이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져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21년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0.1% 상승했다. 이는 한국 3.2%·미국 6.2%·독일 4.5%·중국 1.5% 등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일본 물가가 30년 동안 오르지 않는 사이 다른 나라의 물가는 꾸준히 오른 결과 일본의 상대적 빈곤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 결과 일본 경제에 악순환을 불러왔다. 기업들은 이익이 늘어나지 않으니 임금을 못 올리고, 임금이 안 오르니 소비도 늘지 않는 상황이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개인소비는 2000년 이후 20년 동안 58조 엔 줄었다. GDP의 10%를 넘는 규모다.
근로자의 임금 정체도 심각하다. OECD에 따르면 일본의 급여 수준은 1997년을 100으로 봤을 때 2020년에는 90.3으로 떨어졌다. 한국은 158, 미국과 영국은 각각 122와 130이었다. 한국인의 급여가 23년 동안 58% 늘어날 때 일본은 반대로 10% 감소한 것이다.
생산단가는 오르는데 판매 가격을 쉽게 올리지 못하는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1년 10월 기업이 원재료를 조달하는 물가 수준을 보여주는 기업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8.0% 뛰었다. 1981년 이후 40년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반면 9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0.1%였다. 9월 기준 기업의 원자재값은 51% 뛰었는데 최종 완제품 가격은 2.9% 오르는 데 그쳤다. 비용이 기록적으로 올랐지만 기업들이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일본 경제 정체의 늪에 빠트린 생산인구 감소
2021년에는 출생아 숫자가 처음으로 80만명을 밑돌 가능성이 높아 인구 감소세가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2050년 생산인구 비중이 48%까지 줄어들고 2054년 전체 인구가 1억명을 밑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생산인구 감소의 충격을 완화하려면 1인당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로 지적된다. 2020년 일본인 근로자 1명이 1시간 동안 생산한 부가가치는 48.1달러(약 5만6676원)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 꼴찌다. OECD 평균(54.0%)보다도 5달러 이상 낮았다.
차완용 기자 cha.wanyong@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