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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ENG 공모 철회로 ‘빨간불’ 들어온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구주매출 통해 현금 4000억원 확보 계획 보류
국내외 요인으로 연내 상장 물 건너갈 수도
올 들어 순환출자 고리 끊기 위한 시도 시작
보스턴다이내믹스 나스닥 상장으로 돌파구 찾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엔지니어링이 기업공개(IPO) 절차를 잠정 중단했다.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것이 공모 철회의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
 
당초 업계에서는 이번 IPO를 통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승계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봤지만 이번 철회로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현대엔지니어링이 아예 IPO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자금 확보가 절실한 탓이다.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 위해 실탄 절실한 정의선  

현대차그룹의 ‘최대 난제’는 지배구조 개편으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고리를 끊지 못한 기업집단이다. 현재 현대차그룹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기아→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 ▶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 ▶현대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 등 4개의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현대차의 최대주주는 현대모비스다. 향후 현대모비스가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할 경우 ‘대주주 일가→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의 단순화 지배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대주주 일가, 특히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이 중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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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이 0.32%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현대차(2.62%), 기아(1.74%) 지분율도 높지 않다. 정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의 지분율도 낮다. 낮은 지분율에도 그룹 경영권 전반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정 회장도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20년 10월 제2차 수소경제위원회에 참석한 뒤 지배구조 개편 재추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고민 중”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관건은 ‘실탄’ 확보다.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를 위해 최대한 자금을 끌어모아야 한다. 아울러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을 물려받을 경우 발생할 조 단위의 증여세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지배구조 개편 시작 첫발부터 스텝 꼬여  

시장에서는 현 상황에서 정 회장의 선택이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글로비스였다고 보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번 IPO를 통해 총 1600만주를 공모물량으로 내놓았는데 이 중 75%인 1200만주가 구주매출이었다. 구주매출은 기존 주주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주식 중 일부를 일반인들에게 공개적으로 파는 것을 말한다.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11.72%를 가진 개인 최대주주다. 이 가운데 7.27%에 해당하는 534만주를 구주매출로 내놨다. 정 명예회장이 142만주를 내놨다.  
 
현대엔지니어링의 희망 공모가 범위는 5만7900원∼7만5700원이었다. 공모가 상단 기준으로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은 각각 약 4000억원, 1000억원의 현금을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공모 흥행 저조로 상장을 보류하면서 적잖은 자금을 확보할 기회를 놓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엔지니어링 사옥. 오른쪽은 현대건설 본사. [사진 네이버지도 캡처]
 
업계에서는 올해를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첫발을 내딛는 해로 내다봤다. 공모에 앞서 정 회장 부자는 지난 5일 현대글로비스 지분 10%(375만주)를 시간외 매매로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이 운용하는 ‘프로젝트 가디언 홀딩스’에 매각했다. 당시 처분으로 정 명예회장은 4103억원, 정의선 회장은 2009억원을 각각 취득했다. 이번 매각으로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19.99%가 됐다.  
 
이번 거래의 주목적은 공정거래법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정 회장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30%. 하지만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라 총수 일가의 계열사 지분율이 20%로 강화되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분을 매각했어야 한 것이다. 하지만 매각과 동시에 60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하려는 포석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예정대로 상장됐다면 현대글로비스 지분매각 대금과 합쳐 최소 1조원 이상 현금을 확보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에 나서리라는 것이 업계의 예상이었지만 한발 물러서게 된 것이다.  
 

연내 상장 미루고 차선책 찾나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 효력은 승인 후 6개월간 유지된다.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지난해 12월 6일 현대엔지니어링의 예비심사 청구서를 승인했다. 오는 6월 6일 전에는 심사를 다시 받을 필요 없이 공모를 재추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공모 재추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당장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금리인상 예고로 한국 증시도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현대산업개발(HDC) 사태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업황이 좋지 않다. 이에 공모 흥행 가능성을 점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이 해를 넘길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분위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4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 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엔지니어링 IPO를 통한 실탄 확보가 미뤄짐에 따라 순서를 바꿔 정 회장이 현대오토에버를 활용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오토에버 지분은 7.33%다. 현대글로비스(19.99%), 현대엔지니어링(11.72%)에 이어 그룹 내 세 번째로 지분이 많은 계열사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그룹 IT 계열사인 현대오토에버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려고 노력 중이다. 지난 2020년 12월에는 현대오토에버는 계열사 현대엠엔소프트와 현대오트론을 흡수, 합병했다. 현대엠엔소프트는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 현대오트론은 차량용 임베디드 플랫폼 전문업체다. 자율주행 시대가 다가올수록 현대오토에버의 가치는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덩달아 정 회장이 보유한 지분 가치도 높아진다는 의미다.  
 
장기적으로는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이 로보틱스 분야 역량을 강화하고자 공동투자로 인수한 미국 로봇 개발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나스닥 상장도 가능하다. 지난 2020년,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8억8000만 달러)를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인수했다. 현대차가 30%, 현대모비스가 20%, 현대글로비스가 10%, 정 회장이 20%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참여를 위해 정 회장은 사재 2400억원을 투입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가 올라 나스닥 상장에 성공할 경우 지배구조 개편이 수월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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