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만 비건인구 잡아라”…레스토랑, 화장품도 ‘비건 열풍’ 잇는다
한국채식연합, 올해 국내 채식인구 250만명 전망
비건 레스토랑 선보인 농심·풀무원…화장품도 속속
비건은 트렌드 아닌 문화…진정성 있는 비건 내세워야
최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 사이에서 동물과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채식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시장 대응에 나선 유통가에서는 뜨거운 ‘비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식품업체들은 비건 레스토랑을 선보이고 뷰티업계는 동물성 성분을 포함하지 않는 화장품을 내놓고 있다.
비건 레스토랑으로 맞붙는 농심·풀무원…맛없다는 편견 깬다
특히 농심은 비건 관련 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기업으로 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지난 5월 27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을 오픈했다. 농심 포리스트 키친은 코스 요리로 다양한 비건 메뉴를 선보이는 비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으로 저녁 코스에는 10가지, 점심엔 7가지 요리가 제공된다. 이 중 3가지 요리에 대체육이 사용되고 각 메뉴마다 스토리를 입혔다는 설명이다. 가격은 점심 코스가 5만5000원, 저녁 코스는 7만7000원이다.
농심에 따르면 포리스트 키친은 ‘프리미엄’에 중점을 맞춘 비건 레스토랑으로, 기존에 대부분의 비건 레스토랑이 햄버거나 파스타 등을 제공하는 캐주얼 레스토랑이었다는 것과 차별화를 뒀다. 비건 푸드도 고급스러운 요리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채식주의에 대한 인식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 레스토랑을 열었다는 설명이다.
농심 관계자는 “최근 2040세대 사이에서 파인 다이닝과 오마카세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는 비용이 들더라도 색다른 경험을 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포리스트 키친은 프리미엄 다이닝을 맛보면서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소비까지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농심은 지난해 말 비건 브랜드 ‘베지가든’을 론칭하면서 비건 식품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던 바 있다. 베지가든은 식물성 대체육 제조기술을 간편식품에 접목한 브랜드로, 식물성 다짐육과 카레, 소스·양념류 등 40종의 제품을 갖췄다. 포리스트 키친의 일부 메뉴에도 베지가든의 대체육 베이스가 사용된다.
풀무원은 농심보다 먼저 비건 전문 레스토랑을 선보였다. 풀무원은 지난 5월 2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지하 1층에 기존에 운영하던 ‘자연은 맛있다’를 폐점하고 같은 자리에 ‘플랜튜드’ 레스토랑을 열었다. 플랜튜드의 메뉴는 식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대체육을 활용한 13종으로 구성됐다.
대표 메뉴 중 하나인 ‘플랜트 소이불고기 덮밥’은 풀무원이 자체 연구개발한 식물성 대체육인 직화불고기를 사용해 만들었다. 식물성 대체육은 콩에서 추출한 ‘식물성조직단백’ 소재를 가공해 동물성 고기와 유사한 맛과 질감을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이우봉 풀무원 대표는 “비건 음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한 끼를 제공하기 위해 ‘플랜튜드’를 오픈하게 됐다”며 “풀무원만의 노하우를 살려 지속가능한 비건을 실천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확장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화장품도 비건 열풍…비건 화장품 시장규모 28조원 전망
화장품업계에도 비건 바람이 불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슈타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 규모는 연평균 6.3%씩 성장해 2024년엔 220억달러(약 28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국내의 다양한 뷰티 브랜드들도 동물성 성분을 사용하지 않은 ‘비건 인증’을 받은 화장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020년 비건 화장품 브랜드 ‘이너프프로젝트’를 론칭했으며 LG생활건강은 빌리프, VDL, 더페이스샵 등에서 비건 라인을 선보이고 있다. CJ올리브영은 ‘비건 카테고리’를 신설해 비건 인증을 받은 제품과 브랜드를 한 곳으로 모았다. 이 중 국내 최초의 색조 비건 브랜드인 ‘디어달리아’도 포함돼있고, 스킨푸드, 딘토 등의 브랜드를 볼 수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비건 제품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는 국내 채식 인구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5만명이었던 국내 채식 인구는 2018년 150만명으로 늘어 10년 만에 10배가 늘었다. 지난해에는 200만명을 기록했고, 올해는 250만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문화가 생겼다는 점도 이유다. 과거에는 동물성 단백질을 먹지 않는 것에 그쳤던 비건 개념이 이제는 동물과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범위까지 확대됐다. 동물 복지와 환경보호에 민감한 젊은 세대가 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비건 열풍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트렌드 넘어 문화로 정착…단순한 기회요인으로 삼아선 안돼
식품업계부터 뷰티업계까지 비건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는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허태윤 한신대 교수는 “비건 열풍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라며 “기업들이 비건 열풍을 단기적인 유행 정도로 보고 하나의 마케팅 기회로만 파악한다면 지속가능한 브랜드 전략으로 삼을 수 없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이어 “앞으로 비건 시장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전망돼 진정성 없는 비건은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으며 브랜드에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며 “기업에서 비건 제품 하나 또는 비건 라인을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 이념 자체를 비거니즘화시킨다면 비건 문화가 정착한 이후에도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채영 기자 kim.chae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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