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지만 시장을 믿고 지켜보는 것이 정답이다 [전성인 퍼스펙티브]
23일 원-달러 환율, 2009년 4월 금융위기 당시 이후 최고치
불안감 자극한 정부…정부의 환율시장 개입 자제해야
지난 8월 23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달러 당 1345.5원을 기록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기준으로) 연고점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월 28일(1356.80원) 이후 약 13년 4개월 만의 최고치다.
문제는 이 수치가 대통령과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상당히 강력한 구두개입’을 뚫고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23일 아침,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에서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라는 단어를 언급했고, 오전에는 외환정책 담당자 입에서 “투기적 요인이 있는지에 대해 면밀히 점검”하겠다는 엄포가 나왔다. 심지어 이복현 금감원장까지 나서서 자본시장의 불법·불공정 행위에 대해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거들었다. 그래도 환율은 오후에 종전 고점을 돌파했다.
언론이 들썩였다. 핵심은 불안감이었다.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최고점을 돌파하는 모습도 그렇고, 대통령까지 나선 구두개입이 무력화되면서 ‘이러다가 큰일 나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향후 환율이 1400원을 갈지도 모른다는 비관적 전망도 이런 불안감에 기름을 끼얹었다.
환율의 기초체력 경상수지, 악화 징후 없어
필자는 현재의 환율 상승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 일은 모르는 것이고, 부정적인 전망이 긍정적인 전망보다 외부 훈수꾼의 입장에서 훨씬 더 안전한 선택이라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부정적인 전망이 틀리면 잘못은 금방 잊히고, 혹여 부정적 전망이 맞기라도 한다면 훈수꾼의 입장에서는 ‘대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현재 시점에서 환율 상승에 대한 우려는 과도하다.
필자가 이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환율을 결정하는 기초 체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경상수지가 특별히 급격하게 악화한다는 징후가 없다. 물론 국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에 수입액이 늘고 수출 회복도 더딘 측면이 있다.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반도체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부정적 요인만으로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기조적으로 악화 국면에 들어섰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둘째, 현재의 환율 급등은 기본적으로 범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에서 파생한 부차적 현상이다. 미국 연준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으로 금리 인상 폭을 통상의 ‘베이비 스텝’에서 ‘자이언트 스텝’으로 확대하였고, 그것도 수차례 연속으로 인상했기 때문이다.
셋째, 결국 이번 환율의 급등은 외환시장에서 내외 금리차와 향후 환율 변화에 대한 시장의 예상 간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내외 금리차에 비해 향후 원화 가치의 하락 가능성이 크다면 시장 참가자들은 원화를 버리고 달러화로 갈아탈 것이고, 반대로 내외 금리차가 우리나라에 불리하더라도 향후 원화 가치의 상승이 전망된다면 시장 참가자들은 원화를 계속 보유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환율 급등은 내외 금리차에 비해 원화의 하락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불균형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 것인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국내 금리를 해외 금리 수준에 일치시켜 내외 금리차를 없애는 것이다. 그럼 환율이 안정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내외 금리 격차를 그대로 유지한 채, 향후 환율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시장 참가자들의 예상이 이 금리 격차와 부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해법 중에서 우리나라 언론에 익숙한 방법은 첫 번째 방법, 즉 내외 금리차를 없애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미 간 금리 역전이 발생할 수 있으니 한은이 금리를 빨리 올리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내외 금리차를 없애는 방법은 외환시장의 균형을 달성하는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지만 적절한 방법은 아니다. 이것은 금본위제 또는 고정환율제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금본위제 또는 고정환율제에서 국내 화폐와 외국 화폐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동일한 화폐에 대해 이자율이 다를 수 없다. 그래서 내외 금리는 동일한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중대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통화정책의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금리 정책을 국내 경제 상황(그것이 물가건, 고용이건 또는 성장이건 간에)을 고려해서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없고 오직 해외의 금리 수준에 수동적으로 맞출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지금부터 반세기 전인 1970년대 초부터 주요 선진국들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역시 1980년대 이후 자본시장의 점진적 자유화 단계를 거쳐 오늘날에는 상당히 신축적인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게 된 것이다.
정부 환율 방어, 외환시장의 자생적 복원력 후퇴
변동환율제에서는 제도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환율은 변동한다. 변동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 외환시장의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 외환시장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파생금융 상품들은 환율의 변동을 전제로 ‘돈놓고 돈먹기’를 한다. 이는 투기적 과정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과정을 통해 시장 참가자의 예상은 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다.
최근 원화 환율이 급등하는 것 역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럴 때는 환율의 변동을 용인하고 시장 참가자들이 향후의 환율 변동성에 관해 적절한 기대를 형성하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한은이 금리 정책을 물가나 성장 등 국내 경제상황에 부합하도록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 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를 물가 안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환율 안정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물가안정을 통화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규정한 한은법 위반의 소지마저 있다.
8월 24일, 윤석열 대통령은 제2차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하면서 “외환위기 재발 방지”를 거론했다. 언론은 거침없이 “환율 방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뽑았다. 정부의 환율 방어선이 1350원임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도 관련 기사들에 포함되었다. 그 때문인지 24일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전일보다 3.4원 하락한 1341.1원을 기록했다.
과연 정부는 방어에 성공했는가? 또한 정부는 앞으로도 환율 방어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정부가 환율을 방어하면 외환시장의 자생적인 복원력은 후퇴한다. 주식시장이 떨어질 때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되듯이, 원화 환율이 급등할 때도 원칙적으로 개입해서는 안된다. 개입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부분 경우 개입이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불안하지만 시장을 믿고 지켜보는 것, 그게 정답이다.
* 필자는 현재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지내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미국 MIT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 강의하다 귀국한 후에는 한국금융소비자학회 회장, 한국금융정보학회 회장, 한국금융학회 회장, 한국금융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해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하는 지식인으로 꼽힌다. 저서로는 [화폐와 신용의 경제학] 등이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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