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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의 에너지 법안과 배터리 산업 미래 [조원경 글로벌 인사이드]

중국 의존 탈피 국내 산업의 숙제
각국 미래 배터리 기술 개발 총력

 
 
LG에너지솔루션 ESS 배터리. [사진 LG에너지솔루션]
사실상 에너지 법안인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nflation Reduction Act ‘IRA’)이 통과되었다. 이후 국내 배터리 3사의 미국 투자 확대의 잰걸음이 시작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 2025년까지 북미 시장 내 생산 역량을 현재 7%에서 4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삼성SDI는 이미 5월 미국 글로벌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와 손을 잡고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했다. SK온은 2030년까지 미국에서만 150GWh(기가와트시)의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에 따른 온실가스 규제를 위해 전기차 보급에 힘쓰고 있는 와중에 이차전지 산업은 더욱 발전할 전망이다.  
 
IRA는 큰 과제를 던졌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해외 기업과 협력하거나 투자에 나섰으나,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산을 쉽게 배제하지 못했다. 무역협회 등의 자료를 통해 중국 소재 의존도를 보자. 국내 배터리 업체의 중국 원재료 의존도는 망간(99%), 코발트(81%), 수산화리튬(84.4%), 흑연(89.6%)로 추정된다. 
 
국내 배터리 업체가 선제적으로 북미에 진출한 것은 적절했지만, 중국 의존을 낮추는 것은 숙제다. 유럽에서도 IRA와 유사한 개념의 원자재법(RMA, Raw Materials Act)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배터리 원자재인 리튬, 코발트를 위시하여 풍력발전용 영구자석 등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점을 우려한다. 원자재 공급망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수급 불안과 비용 상승으로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1차 전지는 사용 후 배터리가 방전되면 다시 충전이 불가능한 전지이다. 이에 반하여 2차 전지는 반복적으로 충전과 방전이 가능한 전지이다. 2차 전지의 대표적인 종류는 리튬 이온 전지이다. 전기차뿐만 아니라 노트북이나 핸드폰과 같은 대부분의 전자기기도 리튬이온 전지를 사용하고 있다. 리튬은 매장량이 한정적이고 가격이 점점 상승해 수요가 높은 배터리의 단가를 줄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사상 최대 가격을 쓰고 있는 리튬이 높은 비용에 배터리 업체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미 계약한 물량에 대해서는 손해를 보고 팔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포스코는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연간 2만5000t 규모(전기차 60만대 분)의 아르헨티나 리튬공장 투자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6월 '인터배터리 2021' 전시회에서 삼성SDI가 선보인 차세대 배터리 기술. [연합뉴스]
환경·경제 면에서 폐배터리 처리 문제 대두  
실제 물량 확보까지는 적지 않을 시간이 걸릴 것이다. EU가 원자재 공급망 문제의 대안으로 놓은 것을 보면 우리의 정책 방향도 읽혀진다. EU는 유럽 내 광물 생산, 폐배터리 재활용 같은 순환경제에의 투자, 공급망 다변화를 고려하고 있다. RMA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역내 자원 생산을 확대하는 법안인 만큼 이런 내용을 포함할 것으로 예상된다.  
 
IRA나 RMA가 제련 국가가 아니라 광물 생산지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문제점이 다소 줄어 들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중국이 리튬 57.6%, 니켈 35.3%, 코발트 64.6% 등 배터리 핵심 소재의 절반 이상을 제련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호주·인도네시아·콩고 등에서 수입한 광물이다. 중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비중은 리튬 14.1%, 니켈 4.1%, 코발트 2.9%이기에 기준이 어떻게 설정될 지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법안을 보면서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분야가 있다. 폐배터리에서 소재를 추출해 새 배터리를 제작하는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대표적인 폐배터리 사업 중 하나로 수명을 다한 배터리에서 주요 광물을 추출해 새 배터리 소재 제작에 사용하는 방식의 배터리 재활용(Recycle) 사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분석한다.  
 
각국의 전기차 보급이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다. 사용 연한이 다한 전기차 배터리 즉 폐배터리 처리 문제는 환경, 경제 양 측면에서 대두되고 있다. 배터리 매립이나 소각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는 일찍이 제기되어 왔다. 리튬, 코발트 등 배터리 소재 수요는 폭증하는 반면 채굴량은 한정되어 있어 핵심 소재를 둘러싼 신 자원 민족주의가 대두되는 사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지난해 개발한 차세대 배터리 기술 '전고체 이차전지' 내부 구조 모식도.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고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바꿔 화재·폭발 위험이 적은 점이 특징이다. [사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리튬이온 대체할 차세대 배터리 개발 활발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전기차를 양산한 후 10년이 넘으면서 폐배터리 회수·처리는 높은 원자재 가격으로 전망 좋은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 배터리 단가 중 원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 이를 재활용할 때 얻게 되는 경제적 이득이 상당하다. EU, 중국, 미국보다 늦었지만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사와 완성차 대기업이 유럽과 중국의 재활용 기업과 협력해 재활용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은 자국 내 배터리 제조기반이 미흡하지만 공급망 관리 차원에서 배터리 재활용 기업 육성을 위해 보조금 지원 등을 아끼지 않고 있다. EU는 환경정책의 일환으로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산업을 육성했으나 국제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각종 제도를 정비 중이다. 배터리가격은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핵심부품이다.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서는 배터리가격을 낮추는 게 필수적이며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리튬이온 전지를 대체할 차세대 배터리 후보군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리튬을 나트륨이나 칼륨 같은 다른 금속으로 대체하거나 폭발성이 큰 리튬이온배터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안전성이 떨어지는 액체 전해질을 다른 물질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나트륨 이온 배터리다. 소듐이온 전지라고도 한다. 리튬과 달리 바닷 속에 흔한 물질인 나트륨은 가격 면에서 특히 유리하다.  
 
리튬 이온 배터리를 대신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로 주목받고 있는 해수전지는 해수 속 나트륨을 이용하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이 없고 친환경적이며 생산 비용이 낮은 장점이 있다. 호주 퀸즈랜드 대학은 배터리 용량이 작아도 방출하는 전류가 많으면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알루미늄 이온 배터리 기술을 개발 중이다.  
 
리튬이온배터리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존 구디너프 미국 텍사스대 교수와 시더 교수는 칼륨이온배터리를 연구하고 있다. 칼륨은 싸고 풍부하며 리튬 못지않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연구의 진전으로 더 값싼 배터리가 상용화될 미래를 그려본다.  
 
※ 필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이자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이다. 국제경제 전문가로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울산 경제부시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앞으로 10년 빅테크 수업] [넥스트 그린 레볼루션]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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