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경력 관리가 곧 리더의 힘이다 [유웅환 반도체 열전]
리더는 소속 엔지니어들 지원 위해
다양한 서비스로 업무 보조해줘야
직장생활이 길어지면서 엔지니어들은 두 개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시니어 엔지니어를 거쳐 리더 급으로 성장하는 바로 그 단계에서, 엔지니어로서만 커리어를 이어나갈지 아니면 ‘피플 매니저’로서의 커리어를 선택할지를 골라야 한다. 기술적인 연구 및 개발에 집중하는 사람을 위한 길은 전자요, 후자는 인재들을 관리해서 전체 조직을 이끌어가는 사람을 위한 길이다. (피플 매니저를 편의상 ‘리더’라고 쓰겠다. 이 때 리더는 기술 리더와는 다른 의미이다.)
이 갈림길에서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은 자신이 고수해오던 길을 택한다. 반평생 이상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연구를 해온 이들이 태반이다. 그런 이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연구 개발을 뒤로 하고 사내 조직을 관리하라고 한다면 진땀부터 날 것이다. 단순한 업무 변화라고만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기존에 자기가 해오던 연구를 포기하라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곳에서는 회사들이 경력 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이 리더급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경력 관리 또한 리더의 임무이다. 리더는 직원들에게 계속해서 과제를 부여하고 그것을 관리하고 평가하면서 각 직원들이 정당한 보상과 승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한편 리더라는 새로운 경로를 선택한 엔지니어들을 위해 사내에서 운영되는 경영 수업을 지속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장려해주거나 전문가로부터 멘토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진로를 결정하는 최종 권한은 개인에게 있기에, 리더는 각 직원들과 오랜 시간 동안 미팅을 갖고 그들이 후회 없는 선택을 하게끔 배려해주어야 한다.
애플·인텔·IBM·HP·구글·시스코 등 상당수의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주기적인 미팅을 통해서 직원의 경력을 관리하고 있다. 리더는 직원에게, 엔지니어 경로로 갈지 리더 경로로 갈지 묻는다. 이후 미팅이 반복되는 가운데 직원은 본인에게 맞는 경로를 선택하게 되고, 직원이 경로를 정하게 되면 리더는 그 방향으로 모든 역량이 집중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특히 승진의 기회가 찾아오면 승진에 대한 자격을 갖추었는지, 스스로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면서 그가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배려해준다.
각자의 선택 존중하면 조직은 다양하고 풍성해져
물론 제도적인 안전장치가 있다고 해서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고향과 같은 연구실을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 또한 고민의 시기를 보냈다. 본격적으로 경력 관리를 시작할 적에 리더와 함께 주기적으로 미팅을 가졌다.
당시 리더는 필자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주었다. 이를테면, “너의 연구 업적은 결코 남들에 비해서 뒤처지지 않지만, 너의 평소 성격을 봤을 때는 사람들과 섞이길 좋아하므로 리더 경로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한계가 올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엔지니어 경로를 택해 기술 분야를 이끌게 되었을 때는 개인 업적에 따라서 보상과 승진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주어지지만, 피플 매니저가 되었을 때는 조직의 변화가 요구되어 개인의 능력이나 성과만으로는 승진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깊은 고뇌를 해야 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모른다. 늘 최종 선택은 내 몫이기에. 이 말은 회사 입장에서 보면 개인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뜻이자 다양성을 중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가 임원일 수는 없다. 천천히 오래 가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60~70의 나이가 되어서도 ‘만년 과장’인 것이 흉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 실리콘밸리였다.
리더에 대한 신뢰는 그의 기술적 리더십에 나와
당시 필자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확고한 신념이 하나 생겼다. 필자가 평상시에 선후배와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적 반응의 불꽃을 일으키고 있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필자는 각 개인을 개성을 존중하고, 그에 맞춰서 그들을 성장시키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필자의 선택은 ‘피플 매니저’였다.
그 이후로 엔지니어 경로로 갈지 리더 경로로 갈지 고민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는 한다.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과거에는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필자는 리더 경로를 걸으면서 꾸준히 개인 연구를 병행했다. 주변 환경상 연구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리더는 자신에게 소속된 직원들, 즉 많은 엔지니어들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면서 그들의 업무를 보조해주어야 한다.
이때 엔지니어들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장애물과 맞닥뜨리고는 하는데 그 부분에서 리더나 멘토로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후배 엔지니어가 풀지 못한 난제를 들고 찾아왔을 적에 주말 내내 머리를 싸맨 끝에 그에게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결국 리더가 되고서도 기술적인 연구를 게을리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엔지니어의 천직은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것이다.
또한 모든 리더에 대한 신뢰는 일정 부분 그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 리더십으로부터 나온다. 팀 전체의 방향을 제시할 때도 시장의 동향을 파악하거나 같은 회사 내 다른 부서의 전략을 벤치마킹해 팀원들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해주기도 해야 한다. 혹은 앞으로 시장을 이끌어 갈 기술 분야를 먼저 발굴해 팀원들에게 제시해줄 수도 있어야 한다. 필자는 엔지니어로 시작해 인텔의 수석매니저로서, 기술 발전에 이어 그 기술 발전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계발도 이끌 수 있었다. 더 좋은 조직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 필자는 27년 경력의 반도체 열사(烈士)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후 인텔에서 수석매니저를 지냈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스카웃돼 최연소 상무로 재직했다. 현대자동차 연구소 이사, SKT 부사장(ESG그룹장) 등을 거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반도체 정책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 반도체 분야 90여 편의 국제 논문과 Prentice Hall과 고속반도체 설계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다.
유웅환 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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