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미투’의 반란...‘레드불-몬스터’의 에너지 드링크 전쟁[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日 제품 미투 ‘크라팅 다엥’에서 출발한 ‘레드불’
레드불의 미투 상품인 ‘몬스터’의 창조적 게릴라 전략

미국의 한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에너지 드링크 제품들.[사진 연합뉴스]
[허태윤 칼럼니스트] 새벽 2시, 대한민국은 아직 깨어있다. 도서관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 마감에 쫓기는 직장인들, 넷플릭스 앞에서 다음 편을 기다리는 이들까지. 현대인의 일상이 된 ‘깨어 있어야만 하는 삶’ 속에서, 작은 알루미늄 캔이 그들의 동반자가 됐다.

부모들은 자녀의 방에서 이 캔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시험기간임을 직감한다. 또 야근하는 직장인들로 인해 사무실 쓰레기통은 이 캔들로 채워져있다. 심지어 러시아와의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밤을 지키는 병사들의 곁에도 이 음료가 있다. 이제 현대인의 ‘피로 사회’ 속 필수품이 된 에너지 드링크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Fortune Business Insights)가 발표한 보고서는 이 제품 카테고리의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준다. 2023년 기준 에너지 드링크 시장은 1410억 달러 규모로 올해부터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8.2%의 성장이 예상된다. 음료 카테고리 중 가장 가파른 상승세다.

이 거대한 시장의 중심에는 두 브랜드의 치열한 경쟁이 있다. 시장을 창조한 개척자 ‘레드불’과, 파격적인 도전으로 새 역사를 쓴 ‘몬스터 에너지’의 이야기는 브랜딩과 마케팅에 관심을 두는 이들에게 참고할 것이 많은 흥미로운 사례다.

출장지에서 만난 세상을 바꾼 음료

레드불은 세상에 없던 제품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일본의 자양강장음료 ‘리포비탄’의 성분을 유사하게 베낀 ‘미투’(MeToo) 제품(성공한 경쟁회사의 기능, 재료, 상품명을 유사하게 출시한 제품)에 새로운 가치를 입혀 리포지셔닝을 한 것이다.

레드불의 탄생은 출장지에서의 이국적 경험에서 시작된다. 1982년, P&G의 치약브랜드 브랜닥스의 마케팅 디렉터였던 오스트리아인 디트리히 마테시츠는 비즈니스 출장 중 방문한 태국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했다.
(위부터)크라팅 다엥, 레드불, 몬스터 에너지.[사진 각 사 홈페이지]

장거리 운전기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로컬 제약회사 TC제약이 만든 ‘크라팅 다엥’이라는 음료를 마신 후, 시차로 인한 피로감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박카스와 비슷한 일본 ‘리포비탄’의 원료를 이용해 만든 이 드링크에서 그는 서구 시장의 블루오션을 찾았음을 직감했다.

이후 ‘크라팅 다엥’을 만든 태국의 TC제약과 합작 법인을 만들고, 3년간의 제품 개발 끝에 1987년, 탄산을 첨가하고 서양인의 입맛에 맞춘 에너지 음료 레드불이 탄생했다. ‘붉은 황소’라는 의미의 태국어 브랜드명을 그대로 영어로 번역한 것이 지금의 ‘Red Bull’이다. 

또 다른 음료 몬스터 에너지의 탄생은 위기가 만들었다. 2002년, 캘리포니아의 작은 주스 회사 ‘한센 내추럴’은 파산의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최고경영자(CEO) 로드니 삭스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레드불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의 전략은 치밀했다. 레드불의 성공을 낱낱이 분석한 결과, 18세에서 20대 초반의 타깃을 위해 단순한 물리적 혜택인 ‘각성’을 뛰어 넘어 심리적 혜택인 ‘반항아적 이미지’와 ‘금지된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부여했다.

회사의 마지막 자금을 쏟아부어 개발한 몬스터 에너지는 레드불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두 배 큰 캔 사이즈, 강렬한 맛, 도발적인 디자인으로 무장한 이 도전자는 ‘저가 미투 제품’이라는 업계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20년 만에 세계 시장의 35%를 장악하는 기염을 토했다.

레드불과 몬스터의 전략, ‘메시지를 전달하다’

초기 레드불의 마케팅 전략은 카테고리를 만드는 전략이었다. 당연히 브랜드 이념은 ‘퍼포먼스를 향상시키는 에너지 드링크’라는 슬로건을 사용했다. 그리고 레드불의 에너지가 필요한 곳들을 찾아 다녔다. 특히 유럽의 힙한 클럽에 레드불 냉장고를 넣어 ‘마시면 밤새 피곤하지 않고, 취하지 않고 즐길수 있는 음료’로 입소문을 낸 것이다.

바(bar)의 스탠드 위에, 클럽의 쓰레기통에 빈 캔을 넣어두고, ‘열심히 일하고, 잘 노는 젊음’에 맞는 음료로 포지셔닝 한 것이다. 심지어 레드불을 술에 섞어 마시면 취하지 않는다’는 바이럴 문구도 만들었다.

이후 레드불은 유럽의 모든 클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료수가 됐다. 또 레드불은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세계관을 확장하는 ‘미디어 제국’을 구축했다. 레이싱 F1팀을 직접 소유하고, 에어레이스를 창설했으며, 수많은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을 후원했다.
독일에서 열리고 있는 레드불 F1 대회에서 레이싱이 펼쳐지고 있다.[사진 AFP/연합뉴스]

선발 레드불에 도전하는 ‘미투’ 몬스터 에너지의 브랜드 전략은 마치 게릴라 전사와 같았다. 레드불이 F1이라는 귀족 스포츠를 장악했다면, 몬스터는 거리의 반항아들을 선택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도시의 난간을 활공하는 젊은이들, 지하 클럽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는 록 밴드들, 생명을 건 묘기를 선보이는 모터크로스 선수들 등 주류 문화가 외면한 ‘길거리의 영웅들’을 브랜드의 얼굴로 내세웠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몬스터의 e스포츠 진출이다. 2010년, 대부분의 기업들이 ‘컴퓨터 게임’을 시간 낭비로 치부하던 시절, 몬스터는 과감히 e스포츠에 뛰어들었다. 프로게이머들의 책상 위에는 어김없이 몬스터 에너지 캔이 놓여있었고, 이는 밤새 게임을 즐기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당신의 열정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몬스터의 제품 전략도 흥미롭다. 레드불이 단일 제품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고수했다면, 몬스터는 ‘맛의 해방’을 선언했다. 자바 몬스터(커피), 울트라(무설탕), 주스 몬스터(과일) 등 44가지의 다양한 맛은 마치 게임 캐릭터를 고르는 듯한 선택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분홍색 캔의 ‘파이프라인 펀치’는 에너지 드링크를 꺼리던 여성 소비자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캔 디자인에도 반항적 메시지를 담았다. 날카로운 발톱 자국 로고, 형광색 컬러, 고딕 폰트의 조합은 기존 음료들의 깔끔한 디자인과는 정반대였다. ‘Unleash The Beast’(야수를 깨워라)라는 슬로건은 단순한 각성 효과를 넘어, 억눌린 자아의 해방을 암시했다. 이는 사회의 규범과 틀에 지친 현대인들의 욕망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었다

이들 에너지 음료의 성공은 브랜딩의 핵심을 보여준다. 물리적 차별화가 어려운 제품도 브랜드 가치를 만들고 문화적 공감대 형성으로 충성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두 브랜드는 단순한 음료 회사를 뛰어 넘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독특한 문화적 세계관을 구축했다. 카페인 음료라는 단순한 제품을 넘어, 브랜드만의 강력한 문화를 창조한 것이다. 이는 치열한 경쟁 시장에서 브랜드가 어떻게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다.

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 교수)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젊은 대원에 1110만원 지원”…日 자위대 인력난 ‘허우적’

2권한대행 체제 속 韓美 외교장관 첫 통화…굳건한 동맹 재확인

3 블링컨 “美, 한덕수 대행과 동맹의 목표 위해 협력”

4“디스코드·나무위키 접속 안 돼요”…LG유플러스 “중개사업자 문제”

5“내년에도 엔비디아?”…모건스탠리가 찜한 2025년 추천주는

6‘바이든 삭감’ ‘트럼프 관세 선호’…삼성 반도체 투자 앞날은?

7부동산 ‘찐 고수’들이 만든 앱, 아직도 모르세요?

8‘미투’의 반란...‘레드불-몬스터’의 에너지 드링크 전쟁

9"코인 더 살 건데?" IMF 경고에도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법정 화폐' 유지

실시간 뉴스

1“젊은 대원에 1110만원 지원”…日 자위대 인력난 ‘허우적’

2권한대행 체제 속 韓美 외교장관 첫 통화…굳건한 동맹 재확인

3 블링컨 “美, 한덕수 대행과 동맹의 목표 위해 협력”

4“디스코드·나무위키 접속 안 돼요”…LG유플러스 “중개사업자 문제”

5“내년에도 엔비디아?”…모건스탠리가 찜한 2025년 추천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