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달에도 정답은 사람이다 [유웅환 반도체 열전]
5차·6차 산업혁명이 와도 사람이 중심
사람의 가치 회복하는 기회가 산업혁명
혁신기술은 미래를 앞당긴다. 그러나 어떠한 기술 혁신도 사람 없이는 불가능하다. 보다 나은 기술로 무장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기업문화를 그대로 유지한 채 이뤄진다면 기업의 활로를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를 우리에게 열어줄 4차산업혁명의 미래에 냉소적인 반응들이 있다. 혁신기술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불안을 많이들 언급한다. 그런데 이 불안마저도 그 근원을 따지면 우리 사회와 기업에 전반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불합리와 병폐들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대로는 4차산업혁명 그 이상이 와도 창의와 혁신이 가능할지에 대한 회의다.
필자는 연재를 이어가며 사람(인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이를 위해 기업문화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선진 실리콘밸리의 경험에 비추어 독자들께 전달해 왔다. 모든 기업들은 그 기업의 기초를 이루는 사람의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 숫자의 경제는 사람의 경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의 미래는 그럴 때에라야 동력이 생긴다.
4차산업혁명이나 디지털 대전환이 그저 수사(修辭)에 그친다는 말도 많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술이 사람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든 터치할 것이고, 사람 또한 그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겐 구호나 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을 뒤흔든 혁명은 기실 이후에 이름 붙여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간의 염원과 행동이 선행된 뒤 도착한 미래에 주어진 월계관이 바로, 기술로 인해 사람이 누리는 윤택함이었다.
기술의 발달 속에서 그것이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 불안함을 느끼는 목소리도 많다. 그럴수록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이정표와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만한 선한 목적지이다. 갈림길에서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다. 기술을 만드는 것도 사람, 이를 상품으로 만드는 것도 사람, 이를 선택하고 소비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미래를 이끄는 것은 사람
수많은 기술이 뜨고 지는 가운데 사람의 환경을 바꿨지만 사람의 고유한 특성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인권이 경시되고 불공정이 판을 쳤던 산업혁명의 초창기를 거쳐 현대에 와서 그 모든 기술의 발달을 기어이 기회로 바꾸어낼 수 있던 것도 그 기술을 활용하는 주체가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4차산업혁명‧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대전환의 핵심이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다가올 대전환 속에서 선도기업, 퍼스트 무버만이 살아남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로 인해 소외되는 부문에 정부는 가장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경쟁과 플랫폼을 제공해 기업이 성장하는 데 있어서는 정부의 역할이 최소화돼야 하겠다. 허나 그로 인해 소외와 일자리 문제라는 부작용 또는 역작용이 발생한다면, 이를 개선시킬 수 있는 주체로서 정부의 역할은 최대화돼야 할 것이다.
일자리의 측면에서 미래를 바라보면 이렇다. 혁신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인구절벽에 대비하기 위한 산업 생태계의 자정 노력으로 읽혀질 수도 있겠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는 생산가능 인구가 부족해 임금이 뛰고 있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3D프린팅 기술 등 혁신기술의 발전으로 해외로 나간 기업이 자국으로 회귀하는 ‘리쇼어링’ 현상이 일어나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날 수도 있다. 점차 인간이 꺼려하는 일자리는 기술이 대체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당수의 일자리는 결국 사람이 바탕이 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을 이끄는 혁신기술이 인간과 대결하는 구도가 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은 로봇의 형태일 수 있고, 정말 인간의 모습을 닮은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 반면 고령화와 더불어 인구감소가 악화돼 일자리는 넘쳐나는데 오히려 일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기술 발전할수록 인간다움·인간욕망 이해 필요해
또한 임금은 제자리인데 주택 가격은 내려올 줄 모르는 현실 등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쳐두고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을 논할 수 있을까?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차별들, 여성과 장애인, 소수자들의 문제는 기술의 발달 속에서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뒤섞인 혼란상을, 우리는 이미 지금 목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남북통일이라는 변수가 이 모든 흐름을 다 뒤집을 수도 있다.
4차산업혁명‧AI 기반 디지털 대전환의 핵심은 융・복합이다. 다가올 세상은 단일 변수로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시대를 주도할 기술과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은 인간다움에 대한 사색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술과 산업의 발견과 성장은 사람 중심의 문화 속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제5차, 제6차, 그다음 산업혁명이 도래하더라도 결국 그 중심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치 않을 까닭이다. 아니 변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그 갈림길에 서 있다.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은 우리 경제가, 그리고 사회가 서로 연대하며 인간다움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수차례 혁명을 경험한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혁명은 정치나 기업이 아니라, 국민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동적인 참여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큰 힘은 긍정이다. 긍정은 어떤 비용도 필요하지 않는 최고의 무기이다. 긍정은 순진한 희망이 아니라, 결심과 끝까지 할 수 있다는 용기이다.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은 어떤 전문가가 분석하는 통계나 전망의 ‘멋진 신세계’가 아니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선사하는 스마트한 기술의 전시장도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사람의 가치를 회복하는 기회이자, 기술과 문화가 어우러진 흐름이다. 그 흐름을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그 누구보다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라. 그 사람이 바로 우리의 미래이다.
※ 필자는 27년 경력의 반도체 열사(烈士)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후 인텔에서 수석매니저를 지냈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스카웃돼 최연소 상무로 재직했다. 현대자동차 연구소 이사, SKT 부사장(ESG그룹장) 등을 거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반도체 정책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 반도체 분야 90여 편의 국제 논문과 Prentice Hall과 고속반도체 설계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다.
유웅환 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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