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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_1668호(20230109)[82] 스트리밍 서비스의 겨울…일시적 위축일까? [한세희 테크&라이프]

후발 주자 월트디즈니 등 3사, 지난 3분기 25억 달러 손실

‘스트리밍 서비스’ 단어와 스마트폰 화면에 띄운 넷플릭스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테슬라, 아마존, 비트코인 등 다른 모든 테크 테마주와 마찬가지로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OTT)의 좋았던 시절도 급속히 저물고 있다. 코로나19 덕분에 급격히 가치가 올라간 것에 비례하듯 엔데믹과 함께 빠르게 가치가 내려앉고 있다.

1년 전 600달러 수준이었던 넷플릭스 주가는 지금 절반 이상 떨어져 295달러 안팎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는 1분기와 2분기 연속해 가입자가 20만명과 97만명 각각 감소했다. 가입자가 처음으로 줄었다. 3분기 들어 가입자가 다시 210만명 증가했지만, 유료 가입자 수는 거의 정점을 찍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넷플릭스가 기존 상품보다 싼 대신 광고가 들어가는 월 6.99달러(한국은 월 5500원) 상품을 내놓았다는 것 자체가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월트디즈니 CEO 복귀 밥 아이거, 성장보다 수익성 우선

후발 주자들의 상황은 더 안 좋다. 월트디즈니 역시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가는 1년 전 160달러 수준에서 현재 86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디즈니플러스 가입자는 작년 2분기 전기 대비 1440만명 늘어나며 1억 5210만명을 기록했고, 훌루와 ESPN+까지 합친 계열 OTT 가입자 수는 2억 2110만명으로 넷플릭스를 넘어섰다.

하지만 향후 가입자 증가세 전망치는 이전에 비해 보수적으로 수정했다. 디즈니플러스는 3분기에도 가입자 증가 추세를 이어갔지만, 손실도 14억7000만 달러(약 2조원)로 전년 같은 기간의 2배가 넘었다. 퇴임했다 최근 CEO로 복귀한 밥 아이거는 성장보다 수익성을 우선한다는 방침이다.

HBO맥스를 운영하는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도 드라마 다음 시즌 제작 계획을 대거 축소하고 인원 감축에 나섰다. 파라마운트도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지난 3분기 월트디즈니와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파라마운트 3사는 OTT에서만 25억 달러(약 3조 2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다우존스 미디어 지수에 편입된 30곳의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은 지난해 5500억 달러, 우리 돈 640조원의 시장가치를 허공에 날렸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거액을 투자했다. 신선하고 다양한 독점 콘텐츠로 구독자를 끌어들이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성공을 거두며 스트리밍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경쟁사들이 비슷한 전략을 쓰며 잇달아 시장에 뛰어들면서 제작비는 치솟았다. OTT 분야는 밑 빠진 독에 엄청난 물을 쏟아부어야 하는 시장이 됐다. 더구나 방송이나 영화 콘텐츠 시장은 사람의 머릿수와 시간은 유한하다는 근본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 시장에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 CJ ENM의 티빙이 KT의 시즌을 품었고, 웨이브는 SK텔레콤과 지상파 방송사 OTT의 합작사다. 왓챠는 LG유플러스에 매각을 타진했으나 불발되기도 했다. 업계는 콘텐츠 투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제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TV 시장 닮아가는 스트리밍 서비스

이런 어려운 상황에 대한 업계의 대응이 바로 개발도상국 시장으로의 확대, 구독료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저렴한 광고 기반 상품 출시, 콘텐츠 투자 축소 등이다. 일부 OTT는 서로 통합해 몸집을 불리려 하고 있고,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방송 권리를 확보하려는 노력도 더 커질 것이다.

대형 기업 몇 곳이 시장을 과점하고, 영상 중간에 광고를 봐야 하며, 대형 라이브 스포츠 이벤트를 중계한다면 그것은 기존 방송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방송국의 편성이 아니라 자신의 기호와 상황에 맞춰 보다 편리하게 콘텐츠를 찾아 즐기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일방향성이 강한 기존 TV와는 다른 개인화된 미디어이기는 하다. 하지만 TV 시장을 혁신한 OTT 간 경쟁으로 인해 스트리밍 서비스가 점차 TV와 닮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가 콘텐츠 산업 지형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넷플릭스가 2013년 첫 오리지날 드라마 성공작 ‘하우스 오브 카드’를 내놓은 후 지금까지 10년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새롭고 다채로운 콘텐츠가 경쟁적으로 쏟아졌다. K-드라마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를 타고 세계 주류 미디어 시장을 사로잡았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변방 국가들의 콘텐츠도 글로벌 유통망을 가진 OTT 덕분에 온 세계의 시청자를 만날 수 있었다. OTT 사업자들이 기존 시장을 뒤흔들 만한 독특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뭉칫돈을 쏟아부음에 따라 그간 주류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수많은 소재와 독특한 스토리텔링이 빛을 보았다.

연령대가 조금 높은 사람들이라면 과거 TV에서 ‘맥가이버’니 ‘전격 Z작전’, 조금 더 이르게는 ‘초원의 집’이나 ‘600만불의 사나이’ 같은 미국 드라마를 즐겨봤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미국 드라마가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다. 우리나라의 자체 콘텐츠 역량이 높아지고, 해외 콘텐츠가 우리의 까다로워진 입맛을 맞추기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2000년 들어 헐리우드에서 ‘소프라노스’나 ‘CSI’, ‘프리즌 브레이크’ 등 규모를 키우고 재미 요소를 확실히 채운 대형 기획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TV는 영화 못지 않게 중요한 콘텐츠 카테고리가 됐고, 우리나라에도 미디어 시장의 새 주류로 자리잡은 케이블 채널을 타고 파고들 수 있었다.

하지만 소수 대형 제작사들이 주도하던 이 시장은 외부자였던 넷플릭스가 뛰어들고, 아마존과 애플까지 가세해 판을 흔들면서 새로운 경쟁의 규칙에 휘말렸다. 더 많은 돈을 들여 더 흥미로운 블록버스터를 만들어야 하는 미디어 시장의 상시적 규칙에 더해 이젠 막강한 자금력과 소비자 접점을 가진 테크 기업과 디지털 환경에서 싸워야 한다. 치열한 경쟁의 결과, ‘카탈로그는 무한하지만 볼만한 것은 찾기 힘든’ 역설이 나타났다.

그 결과는 지금의 OTT의 겨울이다. 과점 사업자가 광고 상품으로 확대된, 그러나 구매력이 낮은 구독자 층을 줄어든 비용으로 만족시키려면 안전하고 검증된 스토리텔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지금 누리는 콘텐트 황금 시대가 어쩌면 조만간 끝나 당분간 다시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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