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고발’ 난무하는 바이오 기업들…소액주주와 경영권 다툼도
헬릭스미스·휴마시스 소액주주와 갈등 빚고 소송전
소액주주 지분율이 최대주주보다 높아…경영권 위협
주가는 ‘롤러코스터’…변변찮은 실적에 하락하기도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최근 ‘주인’들의 싸움에 홍역을 앓고 있는 국내 바이오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경영진은 소액주주를 고소하고, 소액주주는 경영진과 이사회를 검찰에 고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때 코스닥 시장에서 두 번째로 높은 몸값을 기록했던 바이오 벤처 헬릭스미스는 이달 사내이사 3명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이들이 이사회 개최를 앞두고 이사회 구성원과 공시업무 담당자만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특정 주주들에게 넘긴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헬릭스미스는 이들이 등기이사에게만 제공되는 대외비 자료를 외부에 직·간접적으로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회사 측은 “자본시장법 제174조에 따르면 상장 법인의 임직원과 대리인은 투자자의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타인이 이용하게 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헬릭스미스의 내부 자료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3명의 사내이사는 앞서 소액주주의 추천으로 선임됐다. 회사는 이들이 법규를 위반했는지 명확히 밝힐 계획이다. 헬릭스미스는 현재 소액주주와 경영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누군가 내부 정보를 활용해 추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헬릭스미스는 관계자는 “공시 사항이 포함된 안건을 논의하는 회의를 앞둔 날, 회사 주가가 종가 기준 10% 이상 급등했다”며 “유출된 내부 정보가 일부 투자자의 주식거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며 고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부 정보 유출뿐 아니라 경영권을 향한 적대적 행위는 모두 강경하게 법적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헬릭스미스는 1996년 서울대 학내 벤처로 시작한 국내 바이오 기업이다. 김선영 전 대표는 20년 이상 회사를 이끌며 유전자 치료제 후보물질 ‘엔젠시스’를 주력 파이프라인으로 개발해왔다. 김 전 대표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임상 3상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엔젠시스의 임상 총괄과 파이프라인 개발에 집중한다며 최근 사임했다.
김 전 대표의 사임에는 소액주주와의 갈등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헬릭스미스는 수년 동안 소액주주와 분쟁을 겪었다. 소액주주들은 헬릭스미스 김 전 대표가 신뢰를 떨어뜨리는 경영 행보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유상증자를 단행하고 고위험 자산에 투자해 손실을 보는 등 ‘딴짓’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소액주주들은 김 전 대표를 포함한 임원들을 해임하고 이사회에 새로운 인사를 채우려고도 했다.
헬릭스미스가 경영권을 다른 기업에 넘기려 하자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헬릭스미스는 지난해 카라니아바이오엠에 경영권을 넘기기 위해 350억원 규모의 신주를 발행했다. 이후 헬릭스미스는 카나리아바이오엠의 손자 회사인 세종메디칼이 발행하는 3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취득하기로 했다. 카나리아바이오엠이 사실상 50억원에 헬릭스미스를 인수하게 된 셈이다.
주주들은 헬릭스미스가 헐값에 회사를 처분하려 한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신주 발행 가격이 기준 주가보다 13% 낮았고 인수 과정도 석연치 않다는 이유다.
주주친화정책 요구하는 주주들…경영진 교체도 불사
코로나19 진단키트 기업인 휴마시스도 최근까지 소액주주와 경영권을 사이에 둔 다툼을 벌였다. 휴마시스와 소액주주의 분쟁은 당장 일단락된 분위기다. 기업이 주주들에게 사실상 ‘백기’를 들면서다. 차정학 휴마시스 대표는 올해 신년사를 통해 “주주들의 고견을 세심하게 담아 듣지 못해 죄송하다”며 “올해는 주주들에게 보답하는 주주친화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현금 배당을 확대하고 IR 활동을 강화해 주주들과 소통 창구를 만들겠다”며 신규 투자와 성장 동력 확보도 약속했다.
차 대표가 연초부터 주주친화적 기업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다진 배경에는 소액주주가 있다. 휴마시스 소액주주들은 이 회사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벌어들인 돈을 주주들에게 제대로 분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휴마시스가 주주친화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코로나19 이후 경영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을 물색해야 한다고도 했다.
일부 주주들은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휴마시스의 지분을 보유한 한 ‘슈퍼개미’는 차 대표의 경영권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 슈퍼개미와 특수관계인의 휴마시스 지분율이 5%로 차 대표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 7%를 뒤따랐기 때문이다. 슈퍼개미는 휴마시스를 상대로 임시주주총회 소집허가와 주주 명부 열람 등 등사 허용 가처분을 신청하는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갈등 상황이 잠잠해진 것은 휴마시스가 경영권을 다른 기업에 넘기겠다고 밝히면서다. 소액주주들은 경영진이 바뀐다는 소식에 휴마시스를 상대로 낸 소송을 취하하기도 했다. 차 대표와 특수관계인들은 최근 화장품 기업 아티스트코스메틱에 보유 지분을 넘기는 주식 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 아티스트코스메틱은 이달 계약 잔금을 모두 납입했고 최대주주 변경 작업을 마쳤다. 2월 28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에서 새로운 이사진이 선임될 예정이다.
다만 휴마시스와 소액주주의 갈등이 완전히 봉합된 것은 아니다. 주주들은 아티스트코스메틱이 어떤 주주친화정책을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정채윤 휴마시스 소액주주 모임 대표는 “최대주주가 바뀌며 그동안 우려해온 ‘경영진 리스크’가 해소됐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인수자의 경영권 확보는 우리에게 달린 만큼 (소액주주의 요구가 미흡하게 반영된다면) 표 대결을 생각할 것”이라고 전했다.
기업과 갈등을 빚고 있는 소액주주들은 대부분 주주친화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다툼의 불씨인 만큼 경영진 교체를 추진할 때도 있다. 이들은 최대주주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해 경영진을 향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휴마시스는 지난해 3분기를 기준으로 소액주주가 78%에 달하는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소액주주가 기업 지분의 60% 이상을 보유한 바이오 기업 파나진도 소액주주와 마찰을 빚고 있다. 파나진의 소액주주들은 김성기 대표가 다른 기업에 주요 기술을 유출했다며 사외이사와 감사 등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김 대표의 아내 박희경 대표는 진단시약 업체 시선바이오머티리얼스를 세웠는데 이 회사가 파나진으로부터 기술을 받아 매출을 올렸다고 봤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파나진에서 진단제품 사업총괄 상무로도 근무한 바 있다. 주주들은 이런 정황이 명백한 배임 행위라고 지적했다.
소액주주들은 경영진 교체를 위해 임시주주총회 소집 허가를 신청했다.임시주주총회 소집이 받아들여지면 새로운 인사를 경영진에 포함시킨다는 계획이었다. 다만 법원은 임시주주총회 소집 요구를 최근 기각했다. 이 회사가 3월 정기주주총회를 열면 파나진과 소액주주들의 표 대결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김 대표보다 보유 지분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권 분쟁에 주가도 꿈틀…롤러코스터 탄다
경영권 소송에 휘말린 기업들은 주가도 흔들리고 있다. 소액주주와의 갈등도 영향을 줬겠지만 변변찮은 실적 등 하락 요인이 겹쳤기 때문이다. 파나진은 지난해 개별기준 매출이 142억원으로 전년 대비 9.16% 줄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은 16억원으로 같은 기간 62.05% 쪼그라들었다. 당기순이익도 전년 대비 57.87% 감소한 21억원이다. 회사는 핵산 추출 제품의 매출이 줄었고 연구개발 비용은 늘어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주가는 3000원대 후반에서 4000원대 초반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휴마시스도 소액주주와 분쟁과 경영권 이전을 거치면서 주가가 하락했다. 20일 종가를 기준으로 휴마시스의 주가는 한 달 전보다 14.6%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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