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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정치적 외풍 끊어낼까?…“기업 성장위해 정부가 손 떼야”

[KT CEO 잔혹사]②
정권 바뀌면 KT 대표도 함께 교체
유일하게 연임 성공한 황창규 회장도 외풍 시달려

지난해 7월 열린 ‘2022년 상반기 KT그룹 혁신성과 공유회’에서 구현모 KT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 KT]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윤경림 KT 대표이사 후보가 3월 27일 후보직을 공식 사퇴했다. 구현모 사장 이후 KT를 이끌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됐지만, 20일 만에 물러났다. KT는 “윤 사장은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기대 수준을 넘어서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새로운 CEO가 선출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보통신업계는 KT 수장의 사퇴를 “아름다운 퇴진이 아니다”고 평가한다. 형식상 자진 사퇴의 모양새를 만들었지만, 사실상 외압에 떠밀려 그만두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른바 ‘KT CEO 잔혹사’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민영화 이후 KT를 이끌었던 CEO 대부분이 연임에 실패하거나 수사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런 평가에 힘이 실린다. 임기가 끝나가는 KT 수장이 정권 교체기에 연임을 시도했다가 역풍을 맞은 사례도 있다. 정부가 손발이 맞는 인물을 낙점하기 위해 낙하산 인사를 단행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2002년 KT가 민영화된 이후 첫 CEO로 선출된 이용경 전 사장은 임기를 마치며 연임 도전 의사를 밝혔지만, 공모 과정에서 공식 철회했다. “민영화 초대 사장으로 전통을 만들겠다”는 다짐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묻혔다.

2005년 새로운 CEO로 선임된 남중수 전 사장은 2008년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자회사와 납품업체 등에서 정기적으로 금품을 상납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KT는 긴급 이사회를 열어 남중수 사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대표이사 사장 직무대행과 비상경영위원회를 만들었다.

두 사람의 내부 인사 출신 CEO가 연임에 실패하고 물러난 이후 외부에서 KT 수장이 된 이는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이석채 전 사장이다. 이석채 전 사장은 2009년 남중수 사장에 이어 KT CEO 자리에 올랐다. 같은 해 3월 회장으로 승진한 그는 “모든 것을 뜯어고쳐라”라며 ‘올 뉴 KT’를 선언했다.

그는 KT-KTF 통합, 아이폰 도입을 통한 국내 스마트폰 혁명 주도 등 성과를 인정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2012년 3월 주주총회에서 그는 “하락세를 보이는 (KT) 주가를 보면 속이 상하지만 KT 주식을 잘 샀다는 말이 나오도록 달라진 모습을 보이겠다”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3년 임기 중 1년 4개월여를 남겨둔 상황에서 결국 자진사퇴했다. 경영 부실 등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가 이어졌고 KT 사옥과 일부 임직원들의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이 벌어진 뒤 용퇴를 결단했다. 그는 전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아이를 위해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솔로몬 왕 앞의 어머니 심정으로 결정을 내렸다”며 사의 표명의 배경을 설명했다.

KT CEO 가운데 유일하게 연임 후 임기를 마친 인물이 황창규 전 회장이다. 황 회장은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깬 인물로 유명하다. 황창규 회장이 삼성전자 사장이던 시절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로 증가하는 시간이 1년으로 단축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이에 황 사장의 성을 따서 ‘황의 법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런 인물도 KT 회장으로 연임에 성공한 뒤에는 외풍에 시달렸다. 경찰에 따르면 KT가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법인자금으로 상품권을 매입한 뒤 되팔아 현금화하는 ‘상품권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 등에게 제공(정치자금법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황 회장 등 KT 임직원 일부가 쪼개기 후원을 했다는 것이다. 조사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황 회장은 임기를 마무리했다.

황창규 회장 이후 내부 인사로 CEO에 오른 구현모 사장은 재임 시절 경영성과를 바탕으로 연임에 도전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물러났다. 구현모 사장은 2022년 12월 이사회의 연임 적격 판단을 받았고 단일 후보로 연임에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KT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경선 과정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반발하면서 발목을 잡았다. 이후 윤경림 후보자가 다음 대표로 낙점됐지만, 윤 후보자는 CEO에 오르기도 전에 사퇴하는 결말을 맞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2019년 4월 마련한 KT 아현지사 화재 청문회 때 참석했던 황창규 당시 KT 회장 모습. [사진 연합뉴스]

정권 바뀌면 KT 수장도 교체

KT 민영화 이후 CEO 교체 시기가 새로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이후였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KT 사장에 오른 이용경 전 사장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5년 연임을 포기했다. 남중수 전 사장은 2008년 11월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 물러났고, 이석채 전 회장은 이명박 정권 아래 연임에 성공했지만, 박근혜 대통령 시절 자리에서 내려왔다.

황창규 전 회장만 연임에 성공하며 6년의 임기를 마쳤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 재임 기간인 현재 구현모 대표가 대표에서 물러나고, 후보자로 거론됐던 윤경림 사장마저 낙마했다. 정권 교체기 KT CEO도 함께 바뀌었다는 ‘공식’이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인 KT가 민영화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치적 외풍에 시달리고 있다”며 “실력과 성과를 바탕으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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