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車보험 적자는 '의료계' 잘못일까
[의료계vs보험사 전쟁] ① ‘과잉진료 그만’ 외치는 보험업계…제도 변경 막는 의료계
수천만 가입자 실손·車보험 두고 충돌
[이코노미스트 김정훈 기자] 의료기관과 보험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환자들이 병원에서 마음놓고 진료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가입한 실손의료보험, 자동차보험에서 치료비가 보전되서다. 의료기관은 ‘보험’ 덕에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고, 보험사는 치료비 보전을 명목으로 가입자를 유치한다. 서로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던 셈이다.
하지만 의료기관 지급 보험금이 크게 늘어나자 보험업계와 의료계간 갈등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보험업계는 지나친 의료쇼핑을 막기 위해 제도 변경에 나서려 하지만 의료계는 환자 의료권 침해를 이유로 ‘배수의 진’, ‘총력 투쟁’ 같은 격한 표현을 쓰며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삭발투쟁’ 의료계, “스스로 돌아보라” 보험업계도 맞불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양 측 갈등이 확대된 것은 국토교통부가 ‘교통사고 환자 한의원 첩약일수’를 조정하려 해서다. 국토부는 3월 30일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분쟁심의위원회를 열고 교통사고 경상환자(가벼운 부상·12~14급)의 첩약 1회 최대 처방일수를 현행 10일에서 5일로 축소하는 내용의 개선방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하지만 한의계 반발에 특별한 결론을 내지 못했고 4월 7일 분심위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의계는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장 및 서울시·경기도한의사회장 등이 삭발 투쟁에 나서는 등 ‘환자 진료권 침해’를 이유로 이번 방안에 절대 찬성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손해보험업계도 성명문을 통해 “한의계는 스스로의 행태를 돌아보라”고 반박하는 중이다.
양 측의 갈등은 실손보험을 두고도 치열하다. 환자가 병원 등 의료기관 이용 후 별도의 서류 제출없이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의료계 반대로 14년간 국회 문턱서 좌절 중이다.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통해 보험사가 환자 데이터를 집적하고 보험금 지급 거절 용도로 활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중개기관으로 둬 보험사의 데이터 축적을 보완하는 방안이 포함돼있다. 현 정권에서도 소비자 편익을 이유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기관이 중개기관을 맡는 것을 반대한다며 이 개정안 통과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보험업계가 정부와 함께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의료계가 막는 식이다.
보험업계가 제도 변경을 원하는 이유는 실손·자동차보험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적자 때문이다. 지난해 손보사 실손보험 적자액은 약 1조5000억원이다. 보험연구원은 현재와 같은 손해율이 지속되면 오는 2031년에는 연간 적자액이 2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미 다수의 생명보험사들은 적자를 이유로 실손보험 판매를 포기했다.
실손보험 적자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비급여 부분 과잉진료를 막기 위해선 청구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보험업계 입장이다. 병원이 재량으로 정할 수 있는 비급여 수가 자료가 쌓이면 가격이 표준화될 수 있어서다. 현재는 병원이 임의로 도수치료 등 비급여 가격표를 달다보니 적자가 심화됐다는 얘기다.
지난해 국내 손보사들이 지급한 실손보험금은 10조9335억원으로 사상 최대치였다. 이 중 도수치료만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한 50대 여성은 1년간 도수치료만 300회 이상 받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도수치료는 병원서 받는 안마서비스가 된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반면 의료계는 ‘보험사가 청구 간소화를 통해 집적한 환자 데이터를 보험금 부지급 근거로 활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기관을 의무적인 중계기관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민간업체에 자율적으로 맡겨야 하며, 정보유출과 진료정보 집적 문제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車보험 진료비↑…‘만족도 높다’는 한의계
최근 코로나19 확대로 차량운행이 줄고, 첨단안전장치 장착이 늘며 차 사고율이 떨어져 손해보험사들은 자동차보험에서 2~3년간 흑자를 냈다. 하지만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자동차보험 누적 적자가 약 13조원에 달해 당장 휘파람을 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보험업계는 최근 교통사고 환자만을 집중적으로 유치하는 한의원이 늘면서 적자가 커졌다고 주장한다. 현 자동차보험 제도상 교통사고 환자의 한의원 진료비는 보험사가 전액 부담한다. 한의원들이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보험에서 지급된 한방진료비는 지난해 1조4636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 대비 1조원이 증가한 수치다. 이 기간 양방진료비는 1조2000억원에서 1조500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특히 한의원서 지어주는 약재값인 첩약 진료비는 2016년 1237억원에서 지난해 2805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의료계는 병원 및 한의원이 환자들에게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높은 만족을 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한한의사협회 측은 양방의료기관 치료에 만족하지 못한 환자들이 한의원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한의협은 “현재 양방의료기관에서는 경상환자에 대해 물리요법과 진통제 정도의 치료만 이뤄지고 있다”며 “한의 진료에 대한 교통사고 환자의 진료 만족도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이는 이미 수 차례 진행된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에 잘 나타나 있다”고 강조했다. 2021년 8월 설문조사 결과, 교통사고 후 한의치료 경험이 있는 환자 91.5%가 치료에 만족했다는 설명이다.
양 측의 충돌을 단순 업계간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실손·자동차보험의 경우 국민 수천만명이 가입한 사실상 공공보험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보험금 누수는 결국 다른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을 야기하고 과잉진료 확대 시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 간소화는 21대 국회서도 통과가 어려워 보이고 첩약일수 문제도 한의계 반발이 워낙 심해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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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료기관 지급 보험금이 크게 늘어나자 보험업계와 의료계간 갈등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보험업계는 지나친 의료쇼핑을 막기 위해 제도 변경에 나서려 하지만 의료계는 환자 의료권 침해를 이유로 ‘배수의 진’, ‘총력 투쟁’ 같은 격한 표현을 쓰며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삭발투쟁’ 의료계, “스스로 돌아보라” 보험업계도 맞불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양 측 갈등이 확대된 것은 국토교통부가 ‘교통사고 환자 한의원 첩약일수’를 조정하려 해서다. 국토부는 3월 30일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분쟁심의위원회를 열고 교통사고 경상환자(가벼운 부상·12~14급)의 첩약 1회 최대 처방일수를 현행 10일에서 5일로 축소하는 내용의 개선방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하지만 한의계 반발에 특별한 결론을 내지 못했고 4월 7일 분심위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의계는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장 및 서울시·경기도한의사회장 등이 삭발 투쟁에 나서는 등 ‘환자 진료권 침해’를 이유로 이번 방안에 절대 찬성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손해보험업계도 성명문을 통해 “한의계는 스스로의 행태를 돌아보라”고 반박하는 중이다.
양 측의 갈등은 실손보험을 두고도 치열하다. 환자가 병원 등 의료기관 이용 후 별도의 서류 제출없이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의료계 반대로 14년간 국회 문턱서 좌절 중이다.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통해 보험사가 환자 데이터를 집적하고 보험금 지급 거절 용도로 활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중개기관으로 둬 보험사의 데이터 축적을 보완하는 방안이 포함돼있다. 현 정권에서도 소비자 편익을 이유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기관이 중개기관을 맡는 것을 반대한다며 이 개정안 통과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보험업계가 정부와 함께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의료계가 막는 식이다.
보험업계가 제도 변경을 원하는 이유는 실손·자동차보험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적자 때문이다. 지난해 손보사 실손보험 적자액은 약 1조5000억원이다. 보험연구원은 현재와 같은 손해율이 지속되면 오는 2031년에는 연간 적자액이 2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미 다수의 생명보험사들은 적자를 이유로 실손보험 판매를 포기했다.
실손보험 적자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비급여 부분 과잉진료를 막기 위해선 청구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보험업계 입장이다. 병원이 재량으로 정할 수 있는 비급여 수가 자료가 쌓이면 가격이 표준화될 수 있어서다. 현재는 병원이 임의로 도수치료 등 비급여 가격표를 달다보니 적자가 심화됐다는 얘기다.
지난해 국내 손보사들이 지급한 실손보험금은 10조9335억원으로 사상 최대치였다. 이 중 도수치료만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한 50대 여성은 1년간 도수치료만 300회 이상 받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도수치료는 병원서 받는 안마서비스가 된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반면 의료계는 ‘보험사가 청구 간소화를 통해 집적한 환자 데이터를 보험금 부지급 근거로 활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기관을 의무적인 중계기관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민간업체에 자율적으로 맡겨야 하며, 정보유출과 진료정보 집적 문제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車보험 진료비↑…‘만족도 높다’는 한의계
최근 코로나19 확대로 차량운행이 줄고, 첨단안전장치 장착이 늘며 차 사고율이 떨어져 손해보험사들은 자동차보험에서 2~3년간 흑자를 냈다. 하지만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자동차보험 누적 적자가 약 13조원에 달해 당장 휘파람을 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보험업계는 최근 교통사고 환자만을 집중적으로 유치하는 한의원이 늘면서 적자가 커졌다고 주장한다. 현 자동차보험 제도상 교통사고 환자의 한의원 진료비는 보험사가 전액 부담한다. 한의원들이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보험에서 지급된 한방진료비는 지난해 1조4636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 대비 1조원이 증가한 수치다. 이 기간 양방진료비는 1조2000억원에서 1조500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특히 한의원서 지어주는 약재값인 첩약 진료비는 2016년 1237억원에서 지난해 2805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의료계는 병원 및 한의원이 환자들에게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높은 만족을 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한한의사협회 측은 양방의료기관 치료에 만족하지 못한 환자들이 한의원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한의협은 “현재 양방의료기관에서는 경상환자에 대해 물리요법과 진통제 정도의 치료만 이뤄지고 있다”며 “한의 진료에 대한 교통사고 환자의 진료 만족도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이는 이미 수 차례 진행된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에 잘 나타나 있다”고 강조했다. 2021년 8월 설문조사 결과, 교통사고 후 한의치료 경험이 있는 환자 91.5%가 치료에 만족했다는 설명이다.
양 측의 충돌을 단순 업계간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실손·자동차보험의 경우 국민 수천만명이 가입한 사실상 공공보험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보험금 누수는 결국 다른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을 야기하고 과잉진료 확대 시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 간소화는 21대 국회서도 통과가 어려워 보이고 첩약일수 문제도 한의계 반발이 워낙 심해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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