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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농협은행, 8년간 중소기업 SW 쓰고 ‘사용료’는 0원

IT업체 소프트웨어 700만건 이용하고도 사용료 미지급 논란
농협은행 측 “하청 주는 과정서 문제 발생한 듯” 해명

NH농협은행 본점.[사진 NH농협은행]
[이코노미스트 김정훈 기자] NH농협은행이 한 IT솔루션 중소기업의 ‘인터넷뱅킹 전자약정 소프트웨어(SW)’를 8년간 사용하고도 약 200억원의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이 업체는 ‘해결 촉구’ 내용증명을 농협은행에 발송했지만 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고 보고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다.

농협은행 측은 자회사인 농협정보시스템과 계약을 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알지 못했고 소프트웨어 사용료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지난 8년간 4억원 정도의 비용을 농협정보시스템에 지급한 내역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용료 이미 줬다?…캡소프트 측 “초기 구축비용일 뿐”

28일 ‘이코노미스트’ 취재에 따르면 IT솔루션 회사 캡소프트는 이달 중순 법무법인을 통해 농협은행이 자사 전자약정 소프트웨어인 ‘RX-다이렉트(DIRECT)’ 서비스를 2016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약 8년간 사용하고도 사용료 지불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해결책 모색 차원에서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캡소프트가 농협은행에 제공한 ‘전자약정 소프트웨어’란 고객이 인터넷, 모바일 등 전자매체를 통해 본인 인증 및 실명확인을 거쳐 온라인 거래를 할 때 필요한 기술이다. 

2015년 당시 IT솔루션 업체 캡소프트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및 국내 주요 금융사에 ‘RX-DIRECT’를 제공 중이었다. 이에 농협은행도 이 서비스 이용을 원했고 8년간 제공했으나 사용료는 받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허윤 캡소프트 대표는 “2015년 농협은행 측으로부터 추후에 사용료를 지급할테니 2016년부터 ‘RX-DIRECT’ 서비스를 제공해달라고 요청이 왔다”며 “국내 대형은행에서 들어온 제안이어서 추후 비용지급에 대해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농협은행은 캡소프트 측에 ‘2015년 9월 전자약정 소프트웨어 견적을 낼 당시 라이선스 비용을 이미 지불했다’는 답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가 입수한 양사의 전자약정 소프트웨어 견적서에는 ‘RX-DIRECT’의 사용료 관련 내용이 아닌 ▲인터넷약정 개발비 ▲금융센터 서식작업비 ▲E-뱅킹 고도화 서식작업비 등 개발인건비 약 5600만원에 대한 견적만이 명시됐다. 
2015년 9월 캡소프트와 농협은행간 인터넷 약정시스템 구축 견적서. 솔루션 라이선스 비용 관련 내용은 없고 개발인건비에 대한 내용만 표시돼 있다.

전자약정 소프트웨어 계약 방식은 크게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구매 ▲소프트웨어 이용 건당 비용 지급 등 두 가지다. 적어도 하나의 방식을 택해 이용 약정을 해야 하지만, 농협은행은 초기 구축비용을 라이선스 구매비용이라고 주장했다는 게 캡소프트 측의 설명이다.

8년간 건수 환산 시 사용료 '약 200억원' 추정

캡소프트에 따르면 지난 8년간 농협은행의 전자약정 소프트웨어 이용 건수는 약 700만건 이상이다. 캡소프트는 저축은행업계에도 소프트웨어를 제공 중인데 월별로 환산하면 건당 평균 3000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했다. 이를 농협은행 이용건에 대입하면 미지불한 건당 사용료는 약 200억원 수준으로 추정한다. 

허 대표는 “8년 동안 농협은행이 ‘곧 라이선스를 구매하겠다’고 말만 하며 사용료를 미납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농협은행이 차세대 시스템을 준비한다고 해 ‘이번엔 우리 제품 라이선스를 사달라’고 요청했는데 경쟁제품과 비교해보고 더 우위에 있는 제품을 사겠다고 통보해왔다”며 “8년간 공짜로 쓰고 계약은 다른 곳과 하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캡소프트의 전자약정 소프트웨어 서비스.[사진 캡소프트 홈페이지 캡처]

정당하게 개발비 지급했다는 농협은행…“사용료 문제 몰랐다”

이에 대해 농협은행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자신들은 캡소프트가 아니라 농협의 자회사인 농협정보시스템과 종합약정계약을 했고 꾸준히 비용도 지급해왔다고 해명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2015년 전자약정 소프트웨어를 도입할 당시 소프트웨어 개발 및 구매비용으로 8000만원을 지급했고 이후 유지보수 비용 등으로 매년 3000만원을 지급하는 등 8년간 4억원 상당의 비용을 농협정보시스템에 지급했다”고 밝혔다. 농협은행 측은 매년 비용이 발생하다보니 당연히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구매가 원만히 이뤄졌고 그에 대한 비용이 나간 것으로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캡소프트가 2015년 당시 제공한 전자약정 소프트웨어 1카피당 라이선스 가격은 2억원 수준이다. 지난 8년간 캡소프트가 농협은행 및 농협중앙회에 제공하는 전자약정 소프트웨어는 1카피에서 24카피로 확대됐다. 24카피 라이선스 구매 비용만 약 48억원인 셈이다.
 
또 캡소프트 측이 전자약정 소프트웨어 사용료와 관련해 소통해온 사람은 농협은행의 IT 부서 관계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허 대표는 “농협정보시스템이나 하청업체 직원은 만난 적도 없고 전자약정 소프트웨어 구매와 관련해 얘기를 나눠왔던 사람은 농협은행 사람들이었다”며 “사용료 문제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계약을 주는 과정에서 ‘하청에 하청을 주는 구조’를 감안하더라도 계약 주체는 사실상 농협은행이라는 것이 캡소프트의 주장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금융사들이 전자 소프트웨어 사용계약을 정식으로 체결하고 서비스를 운영한다고 지적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전자약정 계약 시 구축비용(인건비), 유지사용비, 라이선스 비용 및 건당 사용료를 당연히 개별로 봐야 한다”며 “농협은행도 IT업체와 계약을 여러 번 체결해봤을 텐데 관련 부서가 이를 몰랐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라고 말했다.

캡소프트 측은 향후 금융감독원 민원 신청 및 법적 조치에 나설 것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실제 농협은행이 공짜로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다면 법적인 문제로 확대될 여지가 있다.

라이선스 비구매 후 사용은 무단도용이다. 라이선스 구매 내역이나 월별 건당 결제 내역이 없다면 농협은행의 소프트웨어 이용이력은 법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 농협은행이 8년간 사용한 소프트웨어 구매를 거절하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부당한 거래거절행위’에 해당될 가능성도 있다.

이 밖에 캡소프트는 농협은행 측이 소프트웨어를 곧 구매할 것처럼 8년간 속여왔다며 형법상 ‘사기죄’에도 해당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농협은행이 8년간 특별한 구매약정 없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이득을 얻고 캡소프트는 사용료 손실을 입었다면 부당이득 반환청구가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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