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사진의 대가’ 김용관의 사진첩 [E-전시]
30년간 걸어온 ‘건축 사진’ 외길 인생, 하나의 장르로
틀에 박힌 증명사진 대신 대상 간의 ‘관계’ 담아내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드넓게 펼쳐진 눈밭 속에 파묻힌 미술관의 모습. 캔버스 가운데 매우 각지고 넓은 붓으로 획을 그어놓은 듯한 이 이미지는 놀랍게도 필름으로 찍어낸 풍경이다. 사진의 주인공인 건물의 이름은 석미술관이요, 이를 품에 안은 풍경은 제주다. 재일교포 건축가로 이름을 알린 건축가 이타미 준의 건축물로 그 이름을 알렸다.
이처럼 국내외 유명 건축가의 건축물 전속 사진가로 활동한 김용관 작가의 작품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전시되고 있다. 8월 6일까지 진행되는 전시 ‘관계의 기록, 풍경으로의 건축’에서는 한국 건축계 역사를 좇으며 건축 사진을 하나의 장르로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김 작가의 작품들을 40여 점 만나볼 수 있다.
작품들은 관람객이 각 사진에 담긴 질감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도록 얇은 유리판 안에 구성돼 있다. 전시장 안에 한데 모인 판자들은 그마저도 작품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김용관 작가는 지난 1999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건축가협회(AIA)의 건축사진가상을 받았다. 지난해 연말 현업 건축 사진가로서는 처음으로 자신이 남겨온 건축 사진 필름 1만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는 이타미 준 ‘제주 프로젝트’를 비롯해 미국 건축그룹 K.P.F의 ‘로댕 갤러리’, 그리고 장세양과 승효상의 작품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건축물을 모두 사진 속에 담아냈다.
작가의 대표작으로는 이타미 준의 ‘제주 프로젝트’ 사진이 꼽힌다. 제주에 각기 다른 매력으로 자리하면서도 나란히 산방산을 가리키고 있는 수,풍,석 미술관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세 사진은 전시장 중앙에 비치돼 그 존재감을 뽐냈다.
눈 속에 파묻혀 있는 석미술관 사진, ‘비오토피아 석뮤지엄’은 작가가 눈이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궂은 날씨에도 직접 미술관 주변을 파고들어가 촬영했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해, 김용관 작가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소환되는 작품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에 파묻혀 지붕의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는 수미술관 사진은 작가가 앞선 전시의 관람객으로부터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작품 중 하나다. 사진을 바라보고 있자니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가 미술관 안으로 관객을 끌어당기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김 작가는 이용자, 설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건물 하나를 찍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수십 장의 밑그림을 그려낸다고 설명했다. 단 의뢰자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 작가의 시선을 담아내는 것. 그것이 김 작가가 건축 사진을 찍을 때 반드시 지키는 철칙이다.
“사진 작가 특성상 특정 건물을 의뢰를 받아서 찍는 경우가 많았어요. 심지어 작가 활동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1,2,3 번호를 매겨 사진에 드러내고픈 건물의 모습을 묘사하는 분도 계셨죠. 그런데 작가에게 사진을 의뢰하는 이유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만이 아니라 작가의 크리에이티브를 원하는 거잖아요. 늘 뚝심 있게 제 시각을 녹여냈죠. 의뢰인의 반응도 좋았어요.”
이번 전시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낸 작품 중 하나는 바로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였다. 흔히 사진 작가의 ‘증명사진’이라 불리는 정형화된 구도를 벗어나 건물의 특징과 건축가의 의도,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 모두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특수 재료로 제작돼 건물 벽의 가장 얇은 두께가 17cm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사진 전면에 앞세우면서도 건물을 관통하는 곡선의 미를 고스란히 살려냈다.
김 작가가 이처럼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결은 바로 그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김 작가의 작업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 ‘관계’다. 건축물이 도시와 맺고 있는 관계, 땅과 마주하며 형성한 관계. 김 작가는 늘 사진에 담아낼 관계를 찾기 위해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김 작가의 사진이 단순한 기록이 아닌 해석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건축 사진을 찍으면서 맞이한 깨달음을 ‘이것이 나만의 사진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전문가와 동행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랬더니 건축물이 단순히 피사체로만 보이지 않고 주변과의 관계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건축가가 어떤 고민을 거쳤는지 인지하면서 제 시야가 넓어졌죠.”
김 작가는 이번 전시가 자신의 회고전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해서 강조했다. 앞으로도 활발히 건축사진 작가로서의 길을 걸어가며 장르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다는 의미다.
“손바닥 안에서 모든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잖아요. 이런 시대에 사진가로서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중에게 사진이 전해주는 본연의 질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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