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자 마음 흔든 여행지 40곳을 담다 [E-북]
강경록 여행기자의 사적인 여행기 담은 ‘내밀한 계절’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제법 가파른 산길을 두 발에만 의지해 들어갑니다. 산길을 걷는 데만 대략 1시간 30분, 폭포 하나 보러 가는 데 왕복 3시간 넘게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셈입니다. 그래도 아무도 없는 산속을 걷다 보면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마음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한참을 혼자 걷다 보니 풀벌레며 산새 등 여러 생명이 말을 걸어옵니다. 여럿이 걸을 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죠. 그렇게 숲속의 정령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임도의 끝이 보입니다.”
더 이상 차로 갈 수 없는 곳에 다다랐다. 차에서 내린다. 카메라 본체와 상황에 맞게 촬영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렌즈 2~3개가 들어있는 가방을 멘다. 햇빛이 부족한 산속에서 촬영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삼각대인 트라이포드도 배낭 한 켠에 꽂았다. 그것만으로도 등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여기에 더욱 좋은 풍경이나 사람을 찍기 위해서 드론도 챙겼다. 어느덧 등과 손은 촬영 장비로 가득하다. 이 장비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비를 둘러메고 산행을 시작한다. 아무리 산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해도 고행의 길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도 없는 산속을 걷다 보면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마음의 여유가 느껴집니다”라며 자신에게 속삭인다. 그에게 여행 취재는 고행과 깨달음, 그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냈을 때 느낄 수 있는 희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때는 사진 촬영 기자와 함께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홀로 움직인다. 그 무거운 사진 촬영 장비와 드론 촬영을 위한 장비까지 홀로 챙겨서 길을 떠난다. 그렇게 10여 년을 여행기자로 살았다. 강경록 이데일리 문화부장은 여행기자 시절 보고, 듣고, 맛보았던 한국의 숨은 여행지를 ‘내밀한 계절’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여행기자라는 매력적인 일과 함께, “여행기자는 쉽지 않겠구나”라는 것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숨을 고르고’, ‘눈이 열리고’ 등 각 장마다 특색있는 여행지 8곳 소개
여행기자의 숙명은 대다수의 사람이 아는 명소나 맛집, 관광지 등을 피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아니, 유명한 곳을 찾는다면 남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움이 있어야만 한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명소나 먹거리 소개에 그치면 여행 기사는 외면받기 때문이다.
‘내밀한 계절’은 여행 기자의 숙명을 잘 느끼게 해준다. 그는 광릉수목원에서 광릉 숲이 잘 보존된 이유를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설명을 해준다. 충주호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꾸역꾸역 제비봉에 올라가는 도중에 잠깐 뒤돌아 충주호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경남 남해 다랭이논을 본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만, 그는 “섬마을에서 억척스레 살아온 주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익숙한 명소를 찾아도 그는 새로운 눈으로 그곳을 볼 수 있게 사람들을 인도한다.
충남 태안에 있는 114개의 섬 중에 유인도는 가의도·옹도·격렬비열도·내파수도 등 4개에 불과하다. 그중 사람이 살지 않는 내파수도의 구석 방파제를 보여주기 위해 그는 고깃배를 타고 들어가기도 한다. 경북 군위에 있는 사유원의 모과나무밭에서 백팔번뇌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전북 무주의 노랑매미꽃 군락지, 전남 강진 백운동의 별서정원 등 덜 유명한 곳을 찾아 그곳만의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가본 곳이라도 “아 이런 곳이었네”라는 탄식이 나온다.
‘내밀한 계절’의 목차 또한 운치가 있다. 흔히 제1장, 제2장 이런 틀을 깨고 ‘숨을 고르고’, ‘눈이 열리고’, ‘피안에 깃들고’, ‘멀리 향기롭고’, ‘이야기를 만나고’ 등으로 여행지 40곳을 특성에 맞게 배치했다. 장마다 8곳의 여행지의 색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숨을 고르고’ 장에는 경기 남양주 국립수목원, 강원 평창 오대산 선재길, 충북 옥천 화인산림욕장, 경북 군위 사유원 등 여행지 8곳이 담겨 있다. 특히 경북 군위 사유원을 읽다 보면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 특별한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눈이 열리고’ 장에는 강원 삼척 응봉산 덕풍계곡, 강원 횡성 횡성호 둘레길, 강원 삼척 무건리 이끼폭포 등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산과 호수 그리고 바다와 섬의 풍광과 스토리가 이 장에 담겨 있다.
‘피안에 깃들고’ 장은 오래도록 걷고 머물고 싶은 풍경과 이야기가 담긴 곳을 소개하고 있다. 경북 상주 구수천 팔탄 천년 옛길, 전북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경북 안동 예끼마을, 경남 남해 다랭이논 등이 담겨 있다.
‘멀리 향기롭고’에서는 마음에 잔향을 남기는 꽃들의 속삭임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로 구성되어 있다. 경기 안산 풍도, 전북 완주 금낭화 군락지, 전북 무주 적상산 노랑매미꽃 군락지, 전남 구례 산수유마을 등에서 향기로운 꽃내음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장인 ‘이야기를 만나고’에서는 마을과 그 마을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쩌면 저자가 좋아하는 사람이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여행지를 묶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 강화 교동도, 충남 서천 판교마을, 부산 감천마을 등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장에서 들을 수 있다.
강경록 여행전문기자는 여행이 매력을 “자연은 말이 없어요”라고 표현한다. 자연은 거대한 노목처럼 늘 그 자리에 있고, 자연은 언제나 제자리에서 반겨준다고 설명한다. 그의 마음을 흔든 여행지 40곳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과 사람에 대한 그의 따스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그가 직접 촬영한 사진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이유다. 그는 드론과 카메라를 번갈아서 사용하면서 여행지의 내밀한 공간을 사진 속에 매력적으로 담았다.
가수 송가인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들이나 지나쳐왔던 순간들이 이 책으로 인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지면 좋겠습니다”라고 이 책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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