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투자금도 마른다…생존 게임 나선 바이오 기업들
[K-바이오 운명은]②
제약·바이오산업 혹한기…예산 줄고 투자 유치도 어려워
‘제2의 반도체’ 만든다더니… 정부 자금 투입 10%에 불과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한 데 산업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현재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경영 위기를 겪고 있어서다. 국내 산업의 특성과 기업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신약 개발 기업은 대부분 약물을 초기 단계까지 개발한 뒤 수출하는데 이들 기업이 약물을 끝까지 개발하지 않고 다른 기업에 권리를 일부 파는 것은 대다수가 ‘자금’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자금은 물론 정부 지원도 쪼그라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산업계에서는 내년까지 제약바이오산업이 혹한기를 견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바이오 의료 업종에 투자한 벤처투자 규모는 5961억원이다. 벤처투자 규모가 1조원을 넘겼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54.7%나 줄어들었다. 상반기를 기준으로 최근 몇 년간 벤처투자 규모의 현황을 살펴보면 2019년 1조160억원, 2020년 7892억원, 2021년 1조8101억원, 2022년 1조3159억원 등이다. 산업 대다수에 투입되는 투자금의 규모가 줄어들면서 바이오 의료 분야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도 줄어드는 모습이다. 2019년까지만 해도 30%에 육박했던 바이오 의료 분야 벤처투자 비중은 지난해 20% 밑으로 주저앉더니 올해 상반기 13.4%로 다시 하락했다.
특히 당장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의료기기 기업을 제외하면 신약 개발 기업의 경우 사실상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한 심사역은 “디지털 헬스케어나 의료기기를 비롯한 일부 영역을 제외하고선 신약 개발 기업들에 민간 자금 수혈이 끊긴 지 오래”라며 “추가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초기 임상만 마친 뒤 기술 이전을 추진하거나 이조차 잘되지 못해 수년 동안 다음 임상만 준비하는 기업들도 많다”고 했다. 또한 “투자자들도 상황이 좋지 않은 신약 개발 기업보다 의료기기를 비롯해 매출이 날 수 있는 곳에 더 주목하고 있다”며 “일부 심사역은 지난해부터 제약바이오 분야 대신 다른 분야 내 투자 기업을 물색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민간 투자가 메마른 가운데 정부의 내년도 R&D 예산도 크게 줄자 산업계에서는 본업은 R&D를 수행할 수 없는 껍데기 기업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신약을 개발 중인 국내 바이오 기업의 한 대표는 “투자사들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업들 위주로 살펴보고 있으나 사실 신약 개발 기업은 수년간 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한 “바이오 기술 기업들도 R&D가 어려운 최신 개발 접근 방식(모달리티)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 곳이 많아 R&D의 위험성을 고려했을 때 현재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국내 대형 기업과 특정 물질을 공동 개발하거나 이를 인수하는 등 기업들의 협력도 해외와 비교하면 활발하지 않다는 점”이라며 “최근 몇 년 사이 제약바이오 분야로 투자 자금이 쏠렸던 것을 고려하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고 했다.
“제조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돼…R&D 지원이 중요”
신약 개발 기업들이 부족한 자금에 허덕이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산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민간 투자 가뭄이 “10년 전과 같다”는 의견도 내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는 동안 제약바이오산업에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던 만큼 현재 산업계로 유입되는 자금이 크게 줄어든 것은 당연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기업들은 몇 년 동안 신약 개발 기대감만 앞세워서도 막대한 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고 일부 내실 좋은 기업은 해외 기업에 자사 기술을 수출하거나 이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등 실질적인 성과도 창출했다. 산업도 같이 성장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만들겠다며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도 약속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민간 수준에서 자금이 유입됐을 뿐 정부 차원의 투자와 지원은 미흡했다는 뜻이다. 북미와 유럽 등 제약바이오산업 내 선진 국가와 비교하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에 투입되는 정부 자금은 10%에 불과하다.
정부가 백신 등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R&D 자금 등을 지원했으나 자금 규모가 적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정부는 막대한 자금 투자와 지원을 약속한 ‘전략기술’에 바이오의약품을 비롯한 신약 개발 분야를 제외하기도 했다. 산업계 반발이 거세지자 지난 7월 바이오의약품을 전략기술로 추가했으나 수많은 바이오의약품 중 어떤 분야의 기업을 지원할 것인지 구체적인 지침은 발표하지 않았다.
특히 제약바이오산업은 기초연구가 탄탄해야 하는 만큼 연구기관에 대한 자금 지원이 중요하다. 정부가 내년도 R&D 지원을 줄인 것과 관련해 산업계가 우려를 내비친 이유다. 또, 제약바이오산업은 ‘실패’가 잦은 곳이기도 하다. 기업들이 수십년 동안 쌓아온 R&D 역량을 딛고 신약 개발에 성공한다는 뜻이다. 신약을 개발 중인 국내 한 바이오 기업 대표는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을 육성하겠다며 밝힌 정책은 백신이나 제조·생산 등에 대한 지원 방안”이라면서 “신약 개발 기업이 반길만한 정책은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는 있지만 신약 개발 측면에 제약바이오산업은 제조 관점에서 보면 안 된다”며 “R&D 지원을 절대적으로 늘려, 기업들이 기초연구부터 후기 임상까지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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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바이오 의료 업종에 투자한 벤처투자 규모는 5961억원이다. 벤처투자 규모가 1조원을 넘겼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54.7%나 줄어들었다. 상반기를 기준으로 최근 몇 년간 벤처투자 규모의 현황을 살펴보면 2019년 1조160억원, 2020년 7892억원, 2021년 1조8101억원, 2022년 1조3159억원 등이다. 산업 대다수에 투입되는 투자금의 규모가 줄어들면서 바이오 의료 분야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도 줄어드는 모습이다. 2019년까지만 해도 30%에 육박했던 바이오 의료 분야 벤처투자 비중은 지난해 20% 밑으로 주저앉더니 올해 상반기 13.4%로 다시 하락했다.
특히 당장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의료기기 기업을 제외하면 신약 개발 기업의 경우 사실상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한 심사역은 “디지털 헬스케어나 의료기기를 비롯한 일부 영역을 제외하고선 신약 개발 기업들에 민간 자금 수혈이 끊긴 지 오래”라며 “추가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초기 임상만 마친 뒤 기술 이전을 추진하거나 이조차 잘되지 못해 수년 동안 다음 임상만 준비하는 기업들도 많다”고 했다. 또한 “투자자들도 상황이 좋지 않은 신약 개발 기업보다 의료기기를 비롯해 매출이 날 수 있는 곳에 더 주목하고 있다”며 “일부 심사역은 지난해부터 제약바이오 분야 대신 다른 분야 내 투자 기업을 물색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민간 투자가 메마른 가운데 정부의 내년도 R&D 예산도 크게 줄자 산업계에서는 본업은 R&D를 수행할 수 없는 껍데기 기업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신약을 개발 중인 국내 바이오 기업의 한 대표는 “투자사들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업들 위주로 살펴보고 있으나 사실 신약 개발 기업은 수년간 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한 “바이오 기술 기업들도 R&D가 어려운 최신 개발 접근 방식(모달리티)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 곳이 많아 R&D의 위험성을 고려했을 때 현재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국내 대형 기업과 특정 물질을 공동 개발하거나 이를 인수하는 등 기업들의 협력도 해외와 비교하면 활발하지 않다는 점”이라며 “최근 몇 년 사이 제약바이오 분야로 투자 자금이 쏠렸던 것을 고려하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고 했다.
“제조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돼…R&D 지원이 중요”
신약 개발 기업들이 부족한 자금에 허덕이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산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민간 투자 가뭄이 “10년 전과 같다”는 의견도 내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는 동안 제약바이오산업에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던 만큼 현재 산업계로 유입되는 자금이 크게 줄어든 것은 당연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기업들은 몇 년 동안 신약 개발 기대감만 앞세워서도 막대한 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고 일부 내실 좋은 기업은 해외 기업에 자사 기술을 수출하거나 이들과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등 실질적인 성과도 창출했다. 산업도 같이 성장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만들겠다며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도 약속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민간 수준에서 자금이 유입됐을 뿐 정부 차원의 투자와 지원은 미흡했다는 뜻이다. 북미와 유럽 등 제약바이오산업 내 선진 국가와 비교하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에 투입되는 정부 자금은 10%에 불과하다.
정부가 백신 등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R&D 자금 등을 지원했으나 자금 규모가 적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정부는 막대한 자금 투자와 지원을 약속한 ‘전략기술’에 바이오의약품을 비롯한 신약 개발 분야를 제외하기도 했다. 산업계 반발이 거세지자 지난 7월 바이오의약품을 전략기술로 추가했으나 수많은 바이오의약품 중 어떤 분야의 기업을 지원할 것인지 구체적인 지침은 발표하지 않았다.
특히 제약바이오산업은 기초연구가 탄탄해야 하는 만큼 연구기관에 대한 자금 지원이 중요하다. 정부가 내년도 R&D 지원을 줄인 것과 관련해 산업계가 우려를 내비친 이유다. 또, 제약바이오산업은 ‘실패’가 잦은 곳이기도 하다. 기업들이 수십년 동안 쌓아온 R&D 역량을 딛고 신약 개발에 성공한다는 뜻이다. 신약을 개발 중인 국내 한 바이오 기업 대표는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을 육성하겠다며 밝힌 정책은 백신이나 제조·생산 등에 대한 지원 방안”이라면서 “신약 개발 기업이 반길만한 정책은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는 있지만 신약 개발 측면에 제약바이오산업은 제조 관점에서 보면 안 된다”며 “R&D 지원을 절대적으로 늘려, 기업들이 기초연구부터 후기 임상까지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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