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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릿수로 뚝 떨어진 성장률...“전기차 시장 이렇게 얼어붙을 줄이야”

[힘 빠진 전기차 랠리]①
전기차 시장 성장세 급격하게 둔화 …비싼 가격·인프라 부족 등 지적
자동차세 개편·보조금 축소 등 정부 정책 변화도 한몫

서울 시내 한 전기차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인천에 거주 중인 사업가 김모씨(50세·남)는 최근 국내 브랜드의 전기차를 구매했다. 김 씨는 “운동, 마트, 자녀 등·하원용으로 아내에게 선물했다”면서 “장거리 주행이 많은 경우에는 쓰기 어려울 것 같다. 단지 내 충전기가 있지만 매일 전쟁이다. 전기차를 아직은 메인카로 쓰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에 거주 중인 하모씨(34세·여)는 전기차 구매를 고민 중이다. 하 씨는 “전기차가 좋다는 얘기가 많아서 고민하고 있는데, 충전이 어렵다는 주변의 불만이 많아 확신이 들지 않는다. 불이 나면 꺼지지 않는다는 뉴스도 많이 나와서 사실 불안하다”고 했다.

130여 년간 지속됐던 내연기관차의 시대가 가고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2035년 전후로 완전 전기차 시대를 열겠다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비전 발표가 이어지면서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올해 들어 국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등을 등에 업고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기세가 한풀 꺾였다. 내연기관차 대비 비싼 차량 가격부터 부족한 충전 인프라, 안전성(화재)에 대한 우려 그리고 정부의 보조금 축소 및 자동차세 개편까지 다양한 요인으로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꺼리고 있다. 

지자체 전기차 보조금 올해 절반가량 남아

“전기차 시장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국내에서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는 수입차 브랜드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던 국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최근 주춤하고 있어서다.

이 관계자는 “한국 시장은 타 국가와 비교해 전기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주목받은 지역”이라며 “다양한 메이커에서 새로운 전기차 출시를 준비 중이며, 올해 중국 비야디(BYD)의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분위기가 바뀌면서 메이커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는 계속되고 있지만, 성장 폭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1~8월 누적 전기차 신규 등록 대수는 10만1437대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5% 성장한 수치다. 성장세는 이어졌지만 지난해 연간 성장률(66%)과 비교하면 둔화세가 확연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정부가 추경에 나설 정도로 부족했던 전기차 보조금이 올해 절반가량 남아 있는 상황이다. 환경부의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에 따르면 9월 기준 서울의 전기차(승용) 보조금 소진율은 약 42%에 불과하다. 대전시의 경우에는 전기차 보조금 소진율이 20%도 되질 않았다. 울산(약 90%), 부산(약 70%) 등 전기차 보조금 소진율이 절반을 넘는 지역이 일부 존재하지만 주요 광역시(6개)의 평균 소진율은 50%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정부가 추가 보조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연말까지 전기차 보조금 지원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기존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유지하되 제조사 할인 규모에 비례해 추가 혜택을 주는 것이다. 국고보조금 100% 구간(5700만원 미만 전기차)에서 680만원(최대)이 지급되는 것은 기존과 동일하다. 여기에 제조사가 자사 전기차 가격을 500만원 인하할 경우 국고보조금 100만원이 추가된다. 이 경우 국고보조금 규모가 기존 680만원에서 780만원으로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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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국내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한 이유로 내연기관차 대비 비싼 전기차 가격·충전 인프라 부족·화재 우려·자동차세 개편 등을 꼽는다.

전기차는 동급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판매 가격이 1.5배에서 2배 정도 높다. 일례로 현대차 코나의 국내 판매 가격은 1.6 가솔린 터보 기준 2556만원부터 시작한다. 코나의 전동화 모델인 코나EV의 경우 시작 판매 가격이 4452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전기차 가격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최근 국내외 자동차 제조사들은 가격이 저렴한 중국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추세다. 기아는 니로EV에 중국 닝더스다이(CATL)의 LFP 배터리를 적용했다. KG모빌리티도 9월 출시한 두 번째 순수 전기차 토레스EVX에 중국 BYD의 LFP 배터리를 탑재했다. 미국의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도 CATL의 LFP 배터리를 탑재한 모델 Y의 국내 선보였다. 해당 차량은 기존 모델보다 약 2000만원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진입장벽이 낮아지자 국내 소비자들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테슬라코리아가 사전주문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2만명 이상이 계약을 체결했다.

서울 시내 한 전기차 충전소에 전기차들이 가득 들어선 모습. [사진 연합뉴스]
부족한 충전 인프라도 전기차 시장 성장세에 제동을 걸고 있는 원인 중 하나다. 충전 인프라는 전기차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들의 주요 고려 사항 중 하나다. 지난 3월 EV 트렌드코리아가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 2171명 중 19%(402명)가 전기차 구매 주요 고려 사항으로 충전시설 설치를 꼽았다.

국내 완성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전기차 보급 확대에 나서면서 보조금을 많이 풀었지만, 충전 인프라 등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면서 “이미 기보급된 충전소의 시설 관리도 명확하지 않아 방치된 곳이 많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보급된 전기차 충전기 대수는 지난해 말 기준 19만4081기다. 이 중 급속 충전기는 2만641기, 완속 충전기는 17만3440기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 누적 전기차 보급 대수는 38만9855대다. 충전 인프라 보급률(차충비)은 2대(급속 18.9대, 완속 2.2대) 수준이다.

국내 소비자들은 빠른 충전(30분~1시간)이 가능한 급속 충전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전력거래소가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의 정보를 토대로 충전 인프라별 이용 횟수 등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급속 충전기의 월평균 이용 횟수는 31.8회로 같은 기간 완속 충전기 이용 횟수(4.8회)의 약 7배에 달했다. 그럼에도 완속 충전기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급속 충전기의 경우 완속 충전기에 비해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은 탓에 민간사업자 진출이 더딘 편이다.

일부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체 인프라 구축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국내 자체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자동차 기업은 현대자동차그룹, 테슬라, BMW 등 소수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가장 적극적인 인프라 구축에 나선 현대차그룹도 9월 기준 41개소의 이핏(e-pit, 급속 충전소)을 운영 중이다. 오는 2025년까지 500기를 운영하겠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계획이지만 전체 전기차 수요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420만대의 전기차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월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충 방안을 발표하며 오는 2025년 59만기, 2027년 85만기 등 2030년까지 123만기 이상의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발표했지만 현재 소비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충전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아니다.

전기차 화재 관련 우려도 시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전기차 화재 발생 건수는 121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발화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례가 전체 31%(37건)로 가장 많았다. 이를 제외하면 전기적 요인에 따른 화재 건수가 24%(29건)로 가장 많았다. 올해 들어 6월까지 집계된 전기차 화재 건수는 42건에 달한다. 매년 2배가량 늘어나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의 화재 위험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소방청 등에 따르면 전기차의 화재 발생 비율은 0.01%, 내연기관차는 0.02% 수준이다. 그럼에도 전기차 화재에 대한 우려가 큰 이유는 진압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경우 화재 발생 시 배터리 온도가 1000도 이상으로 치솟고, 배터리 셀이 연쇄 폭발하는 열폭주 현상도 발생할 수 있어 단기간 화재 진압이 어렵다. 소방 당국은 최근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별도의 화재 대응 가이드를 마련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열폭주 현상의 원인은 제조 결함이나 과충전 또는 방전, 외부 충격 및 과열 등 다양하기 때문이다.
화재로 뼈대만 남은 전기차. [사진 연합뉴스]
정부 전기차 정책도 성장세 저하 요인?

정부의 전기차 관련 정책도 올해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를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정부의 보조금을 통해 가격 부담을 덜 수 있었는데, 이 혜택이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줄어든다. 환경부가 최근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전기차의 대당 보조금(승용차 기준)은 기존 500만원에서 100만원 줄어든 400만원이다.

전기차의 보조금 혜택이 줄어드는 것은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해 자국 전기차에만 보조금 혜택을 주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유럽의 사례를 봐도 전기차 보조금이 전기차 구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최대 6000유로(약 849만원)을 지급했던 독일은 올해 대당 보조금 지급 규모를 4500유로(약 637만원)로 1500유로(약 213만원) 줄였다. 보조금 축소는 곧바로 판매 감소라는 결과를 낳았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올해 1월 독일의 전기차 판매 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3.2% 감소한 1만8136대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기차 보급률이 높은 국가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판매 대수는 전월 대비 81.4% 줄었다.

정부가 30여 년 만에 자동차세 개편안을 준비 중인 것도 전기차 성장을 억제할 수 있는 요소다. 대통령실은 9월 13일 행정안전부 등 관계 부처에 신규 제도 도입의 검토를 권고했다. 개편안의 핵심은 자동차세 부과 기준을 엔진 배기량 대신 차량의 가격으로 새롭게 고치는 것이다. 내연기관차보다 더 가격이 비싼 전기차 소유주가 자동차세 개편에 따라 현재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내야만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국내에서 자동차를 보유한 사람은 매년 차량 수에 비례해 지방세 명목으로 자동차세를 내야 한다. 현재 자동차세는 엔진 배기량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비영업용 기준 1000cc 이하는 cc당 80원, 1600cc 이하는 140원, 1600cc 초과 시 200원이다.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고배기량차가 크고 비싸다는 공식이 성립했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전기차의 경우 별도 엔진이 없어 배기량 측정이 불가하다. 이에 따라 기타 승용차로 분류돼 13만원 내외의 자동차세만 내면 됐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비싸지만 세금은 더 적게 내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정부가 최근 자동차세 개편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이유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얼리 어답터(빠른 사용자)는 이미 전기차를 모두 구매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가성비·차량 가격·유지비 등을 따지는 고객층만 남았다고 본다”면서 “이런 고객 입장에서 지금의 전기차는 가격 대비 가치가 뛰어난 상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보조금 축소와 자동차세 개편 등도 마이너한 부분이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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