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사우디 성과 ‘비결 있었네’…네이버 R&D 투자, 영업익보다 많았다
‘기술 기업’ 네이버, R&D 투자 2조원 육박…영업익보다 5000억원 많아
매출 20% 안팎 R&D에 투입 ‘기술 내재화’…152건 첨단 기술 개발 중
‘디지털 트윈’ 기반 사우디 사업 확장…’생성형 AI’로 플랫폼 고도화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네이버가 2023년에 2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매출의 20.6%를 R&D에 쏟아부은 셈이다. 이는 2023년 연간 영업이익보다 큰 금액이다.
22일 네이버의 2023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이 기간 연간 R&D 비용으로 1조9926억원을 썼다. 네이버의 연결 기준 2023년 연간 매출은 9조6706억원, 연간 영업이익은 1조4888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간 남긴 돈보다 더 많은 금액을 R&D에 쏟아부었다는 의미다.
네이버는 2013년부터 ‘정보통신기술(ICT) 강화’를 주요 경영 방침 중 하나로 삼고 있다. 회사는 당시 사내 기술 연구조직 ‘네이버랩스’를 출범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플랫폼에 적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는 물론 로봇·자율주행·디지털 트윈(Digital Twin) 등 전방위로 첨단 기술 역량을 쌓아왔다. 현재는 네이버랩스와 함께 네이버클라우드를 ‘기술 자회사’로 두고 ICT 역량을 기반으로 사업 확장도 추진하고 있다.
네이버가 ‘매출 20% 안팎을 R&D에 투자’한 건 올해만 이뤄진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2016년 연간 R&D 비용이 1조원을 돌파 뒤로도 줄곧 규모를 늘려왔다. 사업 외연의 순차 확장과 함께 R&D 투자 규모를 늘린 점이 그간 실적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같은 기조 때문에 업계에선 네이버 R&D 비용이 2024년에는 2조원을 가뿐하게 넘으리라고 전망한다.
네이버의 연간 R&D 비용은 구체적으로 ▲2022년 1조8091억원(22.0%·이하 매출 대비 R&D 비용 비율) ▲2021년 1조6551억원(24.3%) ▲2020년 1조3321억원(25.1%) ▲2019년 1조959억원(25.2%) ▲2018년 1조4039억원(25.1%) ▲2017년 1조1302억원(24.2%) ▲2016년 1조96억원(25.1%) ▲2015년 8695억원(26.7%)으로 집계됐다. 사업연도마다 조직 개편·회계 산정 방식 변경 등의 이유로 수치가 일부 달라지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1조원이 넘는 금액을 R&D에 투자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성과도 뚜렷하다. 연구개발 실적은 ▲2019년 30건 ▲2020년 50건 ▲2021년 32건 ▲2022년 21건 ▲2023년 21건으로 집계됐다. 총 154건의 주요 기술을 내재화한 셈이다. 현재 진행 중인 R&D는 152건에 달한다. ▲초대규모 AI 한계 극복 및 고도화 연구 ▲실시간 동시 편집 기술 ▲모바일 이원 생중계 라이브 스트리밍 ▲광고 이용자 반응 예측 기술 연구 ▲내비게이션 소요 시간 예측 정확도 향상 ▲동영상 번역 기술 ▲대화형 검색 연구 ▲문맥 기반 통합검색 ▲대용량 데이터처리·학습 플랫폼 구축 등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기술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네이버는 지난해에만 ▲크로뮴 운영체제(ChromiumOS·구글이 개발 중인 리눅스 계열 OS) 관련 기술 개발 ▲증강현실(AR) 뷰티 메이크업 이펙트 필터 ▲저비용·고비용 이미지 처리 동기·비동기 전송 시스템 ▲숏폼 동영상 허브 ▲대규모 화상회의 플랫폼 구축 ▲네이버·웍스 아이맵(IMAP) 서비스를 위한 자체 서버 신규 개발 ▲비정형 데이터로부터 지식 추출 연구 ▲콘텐츠 창작자 어시스턴트 ▲장애 분석 및 복구 프로세스 추천 시스템 ▲이미지 테마 분석 기술 ▲모바일 게이밍 라이브 스트리밍 기술 향상 등을 이뤄냈다.
10년 R&D ‘내공’…세계서 통한 ‘네이버 기술’
이는 네이버 앞에 ‘기술 기업’이란 수식어가 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10년 넘게 이어진 적극적인 R&D 투자 기조는 최근 사업 확장이란 성과로 결실을 보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서비스 조기 도입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 사업 수주 등이 대표적이다.
IT업계 관계자는 “네이버 사업 영역은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글로벌 빅테크와 직접 경쟁을 벌이는 분야가 많다”며 “기술 격차가 ‘비교 불가’ 정도로 커 네이버의 R&D 투자 확대 기조는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업계에선 ‘무의미한 발버둥’이라고 여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 기조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세계 시장에서도 성과가 나오자, 네이버의 ‘뚝심’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기술로 세계 시장에서 돈을 버는 기업이 국내서 나왔다는 점에 ‘놀랍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8월 24일 생성형 AI 서비스를 구현하는 기반인 초대규모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 공개한 바 있다. 한국시간으로 2022년 12월 1일, 미국 기업 오픈AI(Open AI)가 챗GPT(Chat GPT)를 내놓으면서 생성형 AI 기술 경쟁 촉발한 데 따른 대응이다. 하이퍼클로바X은 엑사원 2.0(LG AI연구원 개발·7월 19일 공개·전문가 대상 모델)에 이어 국내서 공개된 두 번째 차세대 초대규모 AI 모델이다. 일반 서비스(B2C) 구현을 기준으로 하면 국내 첫 모델이기도 하다.
하이퍼클로바X는 초기 챗GPT에 접목된 GPT-3.5 모델보다 한국어 데이터를 6500배 더 많이 학습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빠르게 자사 플랫폼을 고도화했다. ▲‘네이버판 챗GPT’로 불리는 대화형 AI 서비스 ‘클로바X’(2023년 8월) ▲생성형 AI 검색 ‘큐:’(2023년 9월) ▲블로그 등에서 창작자가 활용할 수 있는 생산 도구 ‘클로바 포 라이팅’(2023년 10월) 등을 공개했다. 지난 20일에는 법무법인 대륙아주·넥서스AI와 함께 법률 Q&A 서비스 ‘AI 대륙아주’를 내놓으며 ‘전문가 영역’으로도 AI 사업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네이버는 빠르게 구축한 초대규모 AI 모델을 통해 ‘돈’을 벌고 있기도 하다. 이 기술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은 세계에서도 드물다. 회사는 ▲기업 전용 완전 관리형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서비스 ‘뉴로클라우드 포 하이퍼클로바X’ ▲AI 개발도구 ‘클로바 스튜디오’ 등을 통해 생성형 AI B2B 사업 외연을 지속 확장 중이다.
생성형 AI 기술 외에도 ‘디지털 트윈’ 역량을 통한 사업 확장도 최근 뚜렷하게 전개되고 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을 가상에 옮기는’ 기술을 말한다. 네이버는 이 기술을 기반으로 지난해 10월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로부터 1억 달러(약 1350억원) 규모의 사업을 따낸 바 있다. 사우디 사업엔 네이버는 물론 네이버클라우드·네이버랩스가 ‘팀 네이버’란 이름으로 함께하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네이버의 디지털 트윈 기술을 스마트시티 조성에 쓸 계획이다. 수도 리야드를 비롯해 메디나·제다·담맘·메카 등 5개 도시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네이버의 기술을 기반으로 구축 중이다.
네이버는 디지털 플랫폼 구축 사업 외에도 사우디에서 다양한 사업적 성과를 이루고 있다. 지난 7일 사우디 대중교통공사(SAPTCO·Saudi Public Transport Company)와 지능형 교통 시스템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점이 대표적이다. HD지도(차량용 고정밀지도)와 교통 상황 시뮬레이션 환경을 구축, 효과적인 교통인프라 개선에 협력하는 게 협약의 골자다. 양사는 이를 통해 ‘사우디 비전 2030’ 달성을 위한 새로운 교통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
‘비전 2030’ 경제 계획은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내놓은 구상으로 유명하다. 이 비전의 핵심인 ‘네옴시티’ 프로젝트는 홍해 인근 사막·산악지대를 인공도시로 탈바꿈하는 대형 도시 계획이다. 사업비만 5000억 달러(약 675조원)로 책정돼 있다.
또 지난 6일에는 아람코의 자회사인 ‘아람코 디지털’(Aramco Digital)과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MENA)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하기도 했다. 아람코는 사우디 국영기업이자 세계 최대 석유회사다. 네이버는 아람코 디지털과의 협약을 통해 향후 소버린 클라우드·슈퍼 앱을 구축하고, 아랍어 대형언어모델(LLM) 기반의 AI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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