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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진정한 애국은 '기업 사랑'이다 [이근면의 시사라떼]

21세기 애국… 글로벌 경쟁력 갖춘 기업 얼마나 많이 만드냐로 귀결

제69회 현충일인 6월 6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참배객들이 묘역 사이를 걷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이근면 사람들연구소 이사장] 새해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시나브로 한 해의 가운데인 6월이다. 호국보훈의 달이다. 이 달만큼은 온 국민이 특별히 마음을 모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자는 것이다. 동생을 만나러 대전 현충원을 다녀왔다. 잘 정돈된 묘역을 보며 ‘우리나라도 이만큼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 시대 호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군 복무 시절에 생각했던 나라를 지키는 일과 글로벌 시대의 호국은 어떤 차이인가를… 그러나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정부와 언론에서 몇 가지 캠페인과 특집기사를 내놓을 뿐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6월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달일뿐이다. 달력에 빨간 날이 하루뿐이라며 툴툴거리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어쩌면 정부가 추진하는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호국보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애국, 국가에 대한 충성을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하는 시각을 극복하는 것일지 모른다. 과연 애국과 보훈이 이토록 등한시되어야 할 가치인가? 가치적 개념인 호국이 사랑받는 단어이며 진정성 있는 어휘일까?

실질적 애국은 나라의 힘 키우는 것

한때 권위주의 정부가 정권 연장을 위해 정권과 국가를 동일시하고 애국을 강요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니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애국주의를 청산해야 할 구시대의 잔재로 여기는 심리도 일견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나라의 명운으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나라가 약하면 평범한 국민들은 설움을 견뎌야 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자명한 이치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엔 해외에서 동포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고 삼성, 현대 간판만 봐도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나라가 부유해지고 힘이 세진 오늘날 되려 나라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는 이 역설을 극복하고 신세대의 애국과 국가관을 정립해야 할 때다. 오늘의 대한민국과 경제적 성취와 자강함은 공짜로 얻어진 것도 아니고 영원히 지속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수사로 동원하는 애국이 아닌 실질적 애국은 근본적으로 나라의 힘을 키우는 것이고 그 힘의 대부분은 경제력에서 나온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누리는 지금의 안녕과 넉넉함을 지키려면 충분한 국방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충분한 국방력은 나라의 곳간이 풍성해야 가능하며 나라의 경제적 힘은 기업의 성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라를 사랑한다면서 기업을 옥죄는 것은 앞과 뒤가 다른 것이고 표리가 부동한 것이다. 21세기의 애국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얼마나 많이 만들 것이냐 하는 문제의식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냉혹한 국제질서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AI 반도체 기업 하나가 국가 안보와 경제 흐름을 좌우하는 오늘의 세계이다. 

세계 경제의 변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제 웬만큼 좋은 제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자리를 빼앗기고 몇 년 뒤 먹거리를 미리 확보하지 않으면 대기업도 쉽게 도태 되는 환경이다. 앞으로 걷기만 해선 뒤처진다. 설렁설렁 뛰어도 뒤처진다. 빠르게 뛰어야만 유지하거나 조금 성장할 수 있다. 내가 변해도 주변이 더 빠르게 변하므로 결국 낙오되고 마는 ‘붉은 여왕의 가설’이 글로벌 경제를 지배하는 시대다.

세계는 팬데믹 이후에 인재 노동시장의 글로벌 보헤미안 시대가 활짝 열렸다. 언제 어디서나 일하며 누구나 국적 초월, 국적 선택의 시대가 되었다. 

십 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취업, 창업을 장려했을 때 세간의 조롱과 비난이 쏟아졌고 언론도 이에 부화뇌동해 비판적 기사를 쏟아낸 적이 있었다. “너나 가라”라는 조롱은 작금의 세계 인재 전쟁의 시대의 눈으로 보면 21세기의 쇄국이요 갈라파고스일 뿐이다. 우리는 늘 뒷북과 유행의 민감함에 숙고와 원모를 가볍게 보는 부분 또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십 년이 지난 지금 일하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그때 우리가 선제적으로 우리의 우수한 인재와 기업을 세계로 진출 시켰으면 어땠을까? 눈을 밖으로 돌리고 끊임없이 해외로 경제적 영토를 넓혀야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사실상 섬나라인 우리의 구조적 현실을 감안하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타당한 제언이었다.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유행가 읊듯이 합창할 것이 아니라 왜 우리가 해외로 끊임없이 진출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내용을 발전시키는 제안을 내놨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남북의 차이는 우리는 온갖 난관을 뚫고 해외로 나아갔고 북은 조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음에 있다고 한다. 글로벌 시대의 어떤 선택이냐가 낳은 결과물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애국은 외면할 수 없는 숭고하고 소중한 가치임에 틀림없다. 미국의 애국에 대한 상징적 가치는 바로 세계를 제패하는 원동력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메리카 First”와 “세계의 리더”의 산물이다.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을 지향하는 이들도 결국 부강한 국가의 보호가 있어야 자기의 신념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이상 애국심, 국가에 대한 충성을 촌스럽고 꼰대스럽다고 손가락질하지 말자. 삼성 같은 기업 백 개를 만들어 우리의 자손들도 설움 받지 않고 안전하게 풍요를 누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생각은 고리타분한 게 아니라 가장 세련된 애국이다. 아름다운 애국의 길은 글로벌을 이해하며 할 말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는 실천에 달려 있다. “애국” 가슴 뛰는 단어를 다시 재창조해야 한다.

이근면 사람들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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