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에 드리운 ‘탄소중립’ 그늘…갈 길 먼 ‘2050 탄소중립 시대’
[탄소중립 속도 내는 세계]②
‘2050 탄소중립’ 위해 ‘화력 발전 대폭 축소’ 불가피
단 기간 문 닫는 화력 발전소에 각종 부작용 우려도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탄소중립이 만든 그늘이 짙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2024파리올림픽이다. 앞서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탄소배출량을 2020도쿄올림픽 대비 50%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저탄소·친환경 올림픽을 위한 희생은 선수들의 몫이었다.
희생은 결국 또다른 차별을 낳았다. 미국 농구대표팀은 800개 객실을 보유한 파리의 특급호텔 전체를 대여했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미국 농구팀의 독단적인 행위는 차별의 단초가 됐다.
파리올림픽의 무리한 움직임은 이어졌다. 파리올림픽 주최측은 ‘친환경 올림픽’ 기조아래 육류 소비를 최소화 했다. 선수촌 식당 식단 60%를 채식으로 채웠다. 효과는 미비했다. 각국의 선수들은 단백질 보충을 위해 자체적으로 식사를 공수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성급한 탄소 줄이기가 시사한 부작용의 파편들이다. 국제 사회의 새로운 질서가 된 탄소중립이 피할 수 없는 과제임은 틀림없다.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 아래 우리나라도 덩달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다만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저탄소 정책’이 직면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리한 추진 과정이 전력수급난과 지역 격차 등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지난 2020년 10월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공개했다.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은 ▲경제구조의 저탄소화 ▲신유망 저탄소 산업 생태계 조성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전환 등 3대 정책방향에, ▲탄소중립 제도적 기반 강화를 더한 ‘3+1’ 전략이다.
‘2050 탄소중립 추진’을 위해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는 ▲에너지 전환 ▲산업 ▲건물 ▲수송 ▲농축수산 ▲폐기물 ▲수소 ▲이산화탄소 포집 및 활용·저장(CCUS) 등 부문별 키워드를 선정해 구체적인 방안이 담겼다.
해당 시나리오는 A안과 B안 총 두 가지로 구성됐다. A안은 화력발전 전면 중단 등 배출 자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B안은 화력발전이 잔존하는 대신 CCUS 등 제거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이다. A안과 B안 각각에는 공통적으로 ‘화력 발전 대폭 축소’ 내용이 포함됐다.
명분은 좋다. 두가지 안 모두 화력발전 대폭 축소 및 재생에너지·수소기반 발전 확대를 공통 목표로 둔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A안에서는 70.8%, B안에서는 60.9%로 확대된다. 현재는 상용화되지 않은 무탄소 가스터빈도 A안 21.5%, B안 13.8%까지 비중이 늘어난다.
이에 반해 원자력 발전은 각각 6.1%, 7.2%로 줄어든다. 석탄 발전은 두 안 모두에서 전면 중단되고, 액화천연가스(LNG)의 경우 B안에서만 5% 잔존한다. 사실상 화력 발전의 종말인 셈이다.
문제는 짧은 시간안에 화력 발전소가 문을 닫음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 정점부터 탄소중립까지 도달하는 시기를 살펴보면 ▲유럽연합(EU) 60년 ▲미국 45년 ▲일본 37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탄소 배출량의 정점이었던 2018년(6억8630만톤) 기준 32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시간이 부족한 우리나라다. 그럼에도 무리하게 탄소 중립을 강행할 경우 ▲전기요금 상승 ▲지역 격차 ▲고용 불안정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영국 산업단체 에너지인스티튜트(EI)에 따르면 한국의 전기 소비는 화석 연료에 크게 의존한다. 2023년 기준 전기의 61% 이상이 석탄·가스·석유 등 화력발전에서 생산됐다. 특히 석탄과 가스는 각각 32%와 27% 이상의 전기를 생산했다. 한국의 전력 절반이 화력발전을 통해 만들어지는 셈이다.
나머지 저탄소 및 청정 에너지원은 전기의 38%를 제공한다. 이 중 원자력이 전기의 약 29%를 생성한다. 이에 반해 태양열과 지열, 바이오 연료와 등과 같은 다른 에너지원은 전체적으로 약 8%를 차지한다.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대로 화력발전이 대거 문을 닫고, 원자력 발전 비중이 줄어들 경우 전력수급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전기료 인상 등에도 영향을 끼치는 부작용을 야기한다.
또 다른 문제는 지역 격차다. 석탄화력발전소의 단계적 폐지 등 탈(脫)탄소 정책이 지역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책 연구기관 국토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탄소중립의 역설: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지역 격차를 심화시키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당진 1∼4호기를 폐쇄할 경우 한국 국내총생산(GDP)는 2조3349억원 줄어들 것으로 관측됐다. 이 밖에 보령 5·6호기, 태안 1~6호기를 폐쇄할 경우 각각 1조5865억원, 1조5522억원 규모의 GDP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연구원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지역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보령 5·6호기 폐쇄 시,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전국 지니계수’는 기존 0.5106에서 0.5109로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충청 ▲수도권 ▲부산권 ▲대구권 등 다른 광역권 간 격차도 지니계수가 기존 0.4033에서 0.4035로 커진다는 결과도 나왔다. 다만 보령시가 속한 충청권 내 지니계수는 폐쇄 이후에도 0.1073로 큰 변화는 없었다.
발전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도 해결 과제다. 충남도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2036년까지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59기 중 28기를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정부의 계획으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갑작스레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충남의 경우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전국 59기의 석탄화력발전소 중 절반에 가까운 29기가 몰려 있다. 이 가운데 14기가 오는 2036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지된다. 대상은 ▲2025년 2기(태안) ▲2026년 2기(보령) ▲2028년 1기(태안) ▲2029년 3기(당진·태안) ▲2030년 2기(당진) ▲2032년 2기(태안) ▲2036년 2기(당진) 등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폐지 석탄발전소 활용방안 연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충남 지역 화력발전소 폐쇄로 인한 피해로 생산유발 감소액 19조2080억원, 부가가치유발 감소액 7조8300억원으로 조사됐다. 취업유발 감소인원은 1만7647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는 탄소 중립 전환 과정 속에서 우리의 속도가 아닌 EU, 미국 등 유리한 국가의 속도에 따르다 보면 자연스레 부작용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화석연료 기관에 의해 성장한 국가인 만큼, 산업 전반에 필요한 전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소재산업환경실장은 “우리나라는 화석연료 기관에 의해 성장한 국가다. 화석연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고 대량생산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뤄왔다”며 “탄소 중립 전환에 있어 유리한 국가가 주도하는 대로 따르다 보면 부작용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 탄소 중립을 단기간에 이뤄내야하기 때문에, 기존 목표를 바꾸기 보다 산업 전반에 필요한 사안들을 전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고 그에 맞는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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