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사이코패스를 품을 수 있을까[이코노 헬스]
인면수심 살인 사건, 흉악범 특징은 '공감결여'
사회성 회복한 A군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김상욱 샘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내담자의 입을 통해 뉴스거리를 들을 때가 있다. 2023년 5월 26일이 그런 날이었다. 부산시 금정구에서 당시 23세 여성 A씨가 일면식도 없는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토막살인 사건 얘기다.
이 사건을 마주했을 때 평범한 사람들이 받는 감정은 공포, 불안, 분노 등 다양하다. 또 무슨 죄목이 됐건 뒤에 따라붙는 첨언은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일 것이다. 이런 사건을 접하면 세상이 참 흉흉하단 생각이 들면서 우리 사회가 지옥에서도 심연 끝에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사이코패스, 아직도 불분명한 정의
‘인면수심’(人面獸心)과 관련해 필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건은 단연 '강호순 살인 사건'이다. 강호순은 2009년 부녀자를 연쇄살인한 데서 그치지 않고 집에 불을 질러 장모와 처를 살해했다. 흉악범죄라는 단어가 유독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유감이다.
그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겨준 이유는 단순히 범죄의 흉악성 때문만은 아니다. 겉모습으론 멀쩡한 그의 모습이 더 큰 충격이었다. 이웃 주민조차 그가 선량한 시민이었다고 평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자신이 기르던 시베리안 허스키 옆에서 웃는 표정으로 찍은 사진, 마치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인 것만 같던 그의 모습은 두려움을 넘어서 괴기스러움을 자아냈던 것 같다.
수감 생활에서 드러났던 모습도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경찰에 체포되고 사형이 확정된 이후에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수감된 동료 재소자들을 마치 노예처럼 부리며 왕처럼 생활하며 교도관들을 놀라게 했다. 담당 형사가 사건 관련 질문을 할 때는 피식피식 웃거나 능글맞은 표정으로 일관하면서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단어가 그처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나 싶다.
사이코패스는 흔히 생활 전반에 걸쳐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해하는 폭력적 성향을 지닌 사람을 지칭한다. 무엇보다 감정이 결여됐다는 점이 대중으로 하여금 사이코패스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론 사이코패스가 타인을 공격하고 착취할 때조차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은 채 논리적이고 계획적인 방식을 취할 수 있다는 공포겠다.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반인과 다르다는 판단이기도 하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다. 정의부터가 불분명하다.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PCL-R; Hare Psychopathy Checklist-Revised)조차 사이코패스가 '어떤 것'이라고 딱 잘라 설명하지 못한다. 대인관계, 정서 등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사이코패스 여부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다만 감동적인 것에 감동하지 못하며(감정결핍),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도 태연하며(죄책감결여), 매사에 냉담하고 남의 말에 공감을 못한다(공감능력결여)라는 항목은 유념할 만하다.
미국 정신질환진단및통계편람(DSM-V)에서는 관련 진단에서 사이코패스를 제외하는 대신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넣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중심으로 분류한다. 사이코패스보다 광범위하게 측정될 수 있다.
사이코패스, 주변인 도움으로 극복될까
사이코패스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제시된다. 일반적으로 전두엽 기능 저하, 도파민·세로토닌 등 호르몬 분비 이상 등 유전적 요인에 사회환경적 요인이 더해진 사람이 사이코패스가 된다고 알려진다.
또한 살인마 가운데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사람들의 뇌를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으로 검사하면 변연피질, 안와전두피질, 복내측전전두피질 모두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경우가 다수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변연피질은 감정을 조절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감정피질이라고도 불린다. 안와전두피질과 복내측전전두피질은 정서기억과 사회, 윤리, 도덕 등 ‘뜨거운 인지’(hot cognition)를 담당한다.
대조적으로 이들의 두뇌에서 배측전전두피질은 이상이 없었다. 지각, 단기기억, 실행기억, 계획, 규칙 등 ‘차가운 인지’(cold cognition)를 담당하는 영역이다.
다만 두뇌 형태가 전부는 아니다. 사회환경적 요인은 유전적 요인만큼이나 중요해 보인다. 감정이 결여된 사람이더라도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 사회적 훈련을 거치면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지적 공감이란 타인에게도 욕구나 의도, 믿음 등 정신 상태와 심리가 있음을 아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타인을 자신에게 한번 비춰서 이해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구태여 비춰보지 않더라도 타인의 마음을 마치 내 일처럼 느끼는 감정적 공감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라면 <사이코패스 뇌과학자>의 저자 제임스 팰런이다. 지난해 작고한 그는 스스로를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라 불렀다. 그는 실험 과정 중 우연히 자신의 두뇌가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사람들과 대단히 유사함을 발견했고, 그가 지난날 자신의 공격성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방식을 통해 배출했음을 확인했다.
자신이 커가는 과정에서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신 나름의 윤리의식과 도덕원칙을 세운 덕이다. 도덕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최소한의 도덕성은 갖출 수 있는 셈이다.
내담자 가운데서도 헌신적인 가족들의 도움으로 감정 결여를 극복하는 사례가 매우 드물지만 간혹 있기도 하다. 여성 K씨의 아들 A군이 대표적이다. A군은 어릴 적부터 친구를 때리고 돈을 빼앗는 것은 물론, 담배를 피고 본드를 흡입하는 등 각종 문제를 일으켰다. 급기야 중학교도 그만뒀다.
그런 A군을 위해 K씨를 비롯한 그의 가족 모두가 십여년간 주치의와 협업을 하며 노력했다. A군을 엄하게 혼내면서도 좋아하는 물건을 사주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입원을 시키기도 했다. 바쁘고 힘든 가운데서도 온 가족이 함께 여행도 했다. 또 A군을 아는 지인의 회사에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고,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해주기까지 했다.
A군의 유일한 취미인 음악 작곡을 꾸준히 할 수 있게끔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정적 강화와 부적 강화를 통해 자식이 사회적 원칙을 세울 수 있도록 끈기 있게 유도한 셈이다.
물론 이 과정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변하지 않는 A군의 모습에 K씨는 '혹시 내 아들이 구제불능이 아닐까'하고 절망하기도 했다. 심지어 A군의 누나 B양은 동생을 돌보느라 한동안 구직활동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온 가족이 꾸준하게 헌신했고 최근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A군이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래서일까. 흉흉한 사회와 범죄에 대한 공포를 내담자로부터 전해들을 때면 마음 한편이 불편해진다. 만약 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유복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랐다면 지금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까. 어쩌면 우리 이웃들과 사회가 저 사람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보다 지지적인 환경 속에서 사이코패스조차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로 품을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해본다.
김상욱 샘정신의학과 원장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사건을 마주했을 때 평범한 사람들이 받는 감정은 공포, 불안, 분노 등 다양하다. 또 무슨 죄목이 됐건 뒤에 따라붙는 첨언은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일 것이다. 이런 사건을 접하면 세상이 참 흉흉하단 생각이 들면서 우리 사회가 지옥에서도 심연 끝에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사이코패스, 아직도 불분명한 정의
‘인면수심’(人面獸心)과 관련해 필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건은 단연 '강호순 살인 사건'이다. 강호순은 2009년 부녀자를 연쇄살인한 데서 그치지 않고 집에 불을 질러 장모와 처를 살해했다. 흉악범죄라는 단어가 유독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유감이다.
그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겨준 이유는 단순히 범죄의 흉악성 때문만은 아니다. 겉모습으론 멀쩡한 그의 모습이 더 큰 충격이었다. 이웃 주민조차 그가 선량한 시민이었다고 평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자신이 기르던 시베리안 허스키 옆에서 웃는 표정으로 찍은 사진, 마치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인 것만 같던 그의 모습은 두려움을 넘어서 괴기스러움을 자아냈던 것 같다.
수감 생활에서 드러났던 모습도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경찰에 체포되고 사형이 확정된 이후에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수감된 동료 재소자들을 마치 노예처럼 부리며 왕처럼 생활하며 교도관들을 놀라게 했다. 담당 형사가 사건 관련 질문을 할 때는 피식피식 웃거나 능글맞은 표정으로 일관하면서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단어가 그처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나 싶다.
사이코패스는 흔히 생활 전반에 걸쳐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해하는 폭력적 성향을 지닌 사람을 지칭한다. 무엇보다 감정이 결여됐다는 점이 대중으로 하여금 사이코패스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론 사이코패스가 타인을 공격하고 착취할 때조차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은 채 논리적이고 계획적인 방식을 취할 수 있다는 공포겠다.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반인과 다르다는 판단이기도 하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다. 정의부터가 불분명하다.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PCL-R; Hare Psychopathy Checklist-Revised)조차 사이코패스가 '어떤 것'이라고 딱 잘라 설명하지 못한다. 대인관계, 정서 등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사이코패스 여부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다만 감동적인 것에 감동하지 못하며(감정결핍),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도 태연하며(죄책감결여), 매사에 냉담하고 남의 말에 공감을 못한다(공감능력결여)라는 항목은 유념할 만하다.
미국 정신질환진단및통계편람(DSM-V)에서는 관련 진단에서 사이코패스를 제외하는 대신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넣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중심으로 분류한다. 사이코패스보다 광범위하게 측정될 수 있다.
사이코패스, 주변인 도움으로 극복될까
사이코패스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제시된다. 일반적으로 전두엽 기능 저하, 도파민·세로토닌 등 호르몬 분비 이상 등 유전적 요인에 사회환경적 요인이 더해진 사람이 사이코패스가 된다고 알려진다.
또한 살인마 가운데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사람들의 뇌를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으로 검사하면 변연피질, 안와전두피질, 복내측전전두피질 모두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경우가 다수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변연피질은 감정을 조절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감정피질이라고도 불린다. 안와전두피질과 복내측전전두피질은 정서기억과 사회, 윤리, 도덕 등 ‘뜨거운 인지’(hot cognition)를 담당한다.
대조적으로 이들의 두뇌에서 배측전전두피질은 이상이 없었다. 지각, 단기기억, 실행기억, 계획, 규칙 등 ‘차가운 인지’(cold cognition)를 담당하는 영역이다.
다만 두뇌 형태가 전부는 아니다. 사회환경적 요인은 유전적 요인만큼이나 중요해 보인다. 감정이 결여된 사람이더라도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 사회적 훈련을 거치면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지적 공감이란 타인에게도 욕구나 의도, 믿음 등 정신 상태와 심리가 있음을 아는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타인을 자신에게 한번 비춰서 이해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구태여 비춰보지 않더라도 타인의 마음을 마치 내 일처럼 느끼는 감정적 공감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라면 <사이코패스 뇌과학자>의 저자 제임스 팰런이다. 지난해 작고한 그는 스스로를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라 불렀다. 그는 실험 과정 중 우연히 자신의 두뇌가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사람들과 대단히 유사함을 발견했고, 그가 지난날 자신의 공격성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방식을 통해 배출했음을 확인했다.
자신이 커가는 과정에서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신 나름의 윤리의식과 도덕원칙을 세운 덕이다. 도덕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최소한의 도덕성은 갖출 수 있는 셈이다.
내담자 가운데서도 헌신적인 가족들의 도움으로 감정 결여를 극복하는 사례가 매우 드물지만 간혹 있기도 하다. 여성 K씨의 아들 A군이 대표적이다. A군은 어릴 적부터 친구를 때리고 돈을 빼앗는 것은 물론, 담배를 피고 본드를 흡입하는 등 각종 문제를 일으켰다. 급기야 중학교도 그만뒀다.
그런 A군을 위해 K씨를 비롯한 그의 가족 모두가 십여년간 주치의와 협업을 하며 노력했다. A군을 엄하게 혼내면서도 좋아하는 물건을 사주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입원을 시키기도 했다. 바쁘고 힘든 가운데서도 온 가족이 함께 여행도 했다. 또 A군을 아는 지인의 회사에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고,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해주기까지 했다.
A군의 유일한 취미인 음악 작곡을 꾸준히 할 수 있게끔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정적 강화와 부적 강화를 통해 자식이 사회적 원칙을 세울 수 있도록 끈기 있게 유도한 셈이다.
물론 이 과정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변하지 않는 A군의 모습에 K씨는 '혹시 내 아들이 구제불능이 아닐까'하고 절망하기도 했다. 심지어 A군의 누나 B양은 동생을 돌보느라 한동안 구직활동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온 가족이 꾸준하게 헌신했고 최근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A군이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래서일까. 흉흉한 사회와 범죄에 대한 공포를 내담자로부터 전해들을 때면 마음 한편이 불편해진다. 만약 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유복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랐다면 지금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까. 어쩌면 우리 이웃들과 사회가 저 사람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보다 지지적인 환경 속에서 사이코패스조차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로 품을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해본다.
김상욱 샘정신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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