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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작품 건드렸다가 '1억원 날벼락'...어떡할까 [백세희의 컬처&로(Law)]

3500년 항아리 깬 소년 용서한 박물관
전시회서의 예술품 파손, 관람객 책임은 어디까지

시민들이 특별 전시장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최근 “3500년 전 온전한 항아리 깬 4살... 박물관 너그러운 대처 ‘감동’”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보았다. 이스라엘 하이파에 있는 헤흐트 박물관에 전시된 청동기 시대 질항아리가 어린이 관람객의 손에 깨졌지만 박물관 측이 너그럽게 용서했다는 내용이다. 깨진 항아리는 거의 손상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던 매우 드문 유물이었다고 한다.

경매 최고가가 또 갱신됐다는 뉴스를 제외하면, 개별 예술품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대개 ‘도난과 파손’이다. 그중 파손에 대한 뉴스는 멀디먼 이스라엘의 질항아리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전해질 정도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곤 한다.

실수로 예술품을 파손했을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 또는 작가가 용서해줬다는 이야기는 종종 듣곤 했다. 그런데 우리가 너그럽지 않은 결말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있던가? 파손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면 어떤 책임일까? 

작품 훼손은 민사·보험의 문제

고의로 예술품을 파괴하는 반달리즘(vandalism)에 대처하는 각국의 태도는 다양하다. 예술품을 훼손하면 가중처벌을 하는 입법례도 있다고 하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반적인 물건의 파손과 마찬가지로 형법 제366조의 재물손괴죄가 적용된다.

객체가 ‘예술품’이라는 특수성은 형사가 아닌 민사, 즉 손해배상액의 산정 부분에서 고려한다. 일부러 남의 작품을 훼손하는 행위를 형사로 처벌한다는 것은 당연하게 들린다. 문제는 ‘실수로’ 예술 작품을 파손한 경우다.

형법 제366조 이하의 재물손괴죄는 고의범을 전제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과실범의 경우는 아예 형법상 처벌 규정이 없다. ‘과실재물손괴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수로 남의 물건을 파손하면 민사상의 문제만 남는다.

우리가 대형 전시회에 찾아가서 볼 만큼 유명한 그림들은 그 가치가 천차만별이긴 하나 대부분 고가다. 따라서 전시기관에서는 대개 책임보험에 가입한다. 보험은 작품 훼손에 대한 거의 유일한 경제적 대비책이다. 작품이 어떤 경위로 파손될지 미리 알 수도 없거니와, 파손 행위자가 금전적인 배상능력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3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하이파의 헤흐트 박물관에서 3500년 된 고대 항아리를 실수로 깨뜨린 4살 소년 아리엘. [사진 AP/연합뉴스]

전시기관이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직접 입은 손해를 보상받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전시기관은 대개 타인 소유의 작품을 대여해 전시를 개최한다. 이에 작품 소유자에 대한 전시기관의 손해배상책임을 보험사가 대신 해결해 달라는 내용의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처럼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짐으로써 입는 간접손해를 보상하는 것이 바로 ‘책임보험’의 목적이다. 내가 직접 입은 손해를 보상받는 일반 손해보험과는 다르다.

보험계약은 보험사와의 협상에 따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약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품의 진위와 가치를 감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체계적으로 잡히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 보험보다는 포괄적이며 단체의 구성원 전부를 피보험자로 하는 단체보험이 주를 이룬다.

미술품과 관련된 국내의 책임보험으로는 대형 보험사가 판매하는 ‘박물관 및 문화재단 종합보험’(Commercial Insurance Coverage For Museums and Cultural Institutions)이 있다. 이 보험은 ▲전시품 운송 과정에서의 파손 ▲전시를 진열하는 과정에서의 파손 ▲전시 중 관람객에 의한 파손 등 다양한 손해 유형을 모두 포괄한다.

결국 파손자가 ‘결자해지’

미술관에서 내가, 또는 우리 아이가 실수로 작품을 파손했다고 가정해 보자. 다행히 미술관, 더 정확히는 작품을 대여해 온 주관사가 ‘박물관 및 문화재단 종합보험’에 가입된 상태라고 한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이렇게 안심하고 끝날 문제일까? 아니다. ‘구상권’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구상권은 A가 B에 대해 진 빚을 C가 대신 갚아줬을 때, C가 A에게 자신이 갚아 준 만큼의 금액을 반환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보험사는 미술관을 대신해 내가 파손한 작품의 소유자에게 손해를 배상해 주지만, 보험사는 결국 사고를 친 당사자인 나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누구한테 돈을 물어야 하는지만 달라질 뿐 결국 내가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보험사는 대개 단순 실수일 경우 관람객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모든 경우가 다 그렇다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보험 약관에서 ‘관람객의 단순 실수에 의한 파손의 경우에는 보험사는 구상권을 포기한다’는 취지의 구상권 포기 조항을 두기도 한다.

구상권 포기 조항이 없다고 하더라도, 보험사가 작품의 소유자에게 지급한 손해액에서 미술관 측의 관리상의 과실 비율과 작품을 실제로 파손한 나의 과실 비율을 명백히 밝혀내는 과정이 쉽지 않아 실제로 많은 경우 관람객을 ‘봐준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모든 사건이 잘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2018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5살 아이가 실수로 지역 커뮤니티센터에 전시된 토르소 조형물을 잡고 넘어지며 이를 파손한 사건이 있었다.

보험사는 아이의 부모에게 13만2000달러(약 1억5000만원)의 구상금 지급 청구 서한을 보냈다. 보험사는 “당신은 아이를 관리할 책임이 있다”며,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의무를 태만히 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구상금 지급 청구의 이유를 밝혔다.

아이의 부모는 “조형물이 주요 통로에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고 관리하는 인력도 전혀 없이 무방비 상태에 있었으며, 만지지 말라는 경고 표시도 없었다”고 주장하며 지급을 거절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전시장 측과의 과실 분담 비율이 조정되기는 하겠지만, 전부 면책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만약 미술관이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설립과 운영을 규율하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있다. 이 법률에서 보험의 가입은 등록신청의 필수요건이 아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보험가입을 강제할 수 없으므로 사설 기관의 경우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곳이 많다. 법률상 의무사항이 아닐 뿐 아니라, 작품이 유명하지 않거나 전시 규모가 작은 곳은 전시품의 가치 산정이 어려워 보험가입을 원해도 실제로 보험계약이 체결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미술관의 작품을 파손한 경우라면, 보험이 있는 대형 전시와는 달리 미술관 측에서 파손 행위자에게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만약 전시된 항아리가 깨져버렸다면 금액 전부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까? 여기서부터는 일반적인 과실상계의 법리가 적용된다. 앞서 미국 미주리주의 5살 아이 사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시기관에서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통로로 사용되는 공간을 피하고 ▲작품을 고정하고 ▲작품 주위에 간단한 울타리를 두르고 ▲만지지 말라는 경고문을 붙이는 등의 노력을 충분히 기울였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전시기관의 과실이 드러난다면 파손자의 책임 범위도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어린아이가 항아리를 깬 경우라면 부모 또는 인솔자가 ‘감독의무’를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에 따라 책임 금액이 달라질 것이다. 학교에서 현장학습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간 것이라면, 피해 금액은 아이의 부모, 담임교사의 사용자(학교), 전시시설 운영자 사이의 과실 비율에 따라 나눠야 할 것이다.

선처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선처가 곧 아름다운 결말일까? 법대로 하면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커뮤니티센터의 경우처럼 금전적인 책임을 일부라도 져야 한다. 법대로 하는 것이 야박한 것일까?

이스라엘 헤흐트 박물관 측이 참으로 대인배의 품성을 지녔다고 칭찬받아야 할 일일 뿐, 엉뚱하게 미국의 보험사가 야박하다고 마냥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물론 예술품을 휴대폰이나 자동차 같은 소비재처럼 취급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금전적인 손해를 입는 보험사나 전시관 운영자의 관대한 처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진 말자. 몇 년 전부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이 꾸준히 유행인데, 예술품 파손의 경우에도 이 말이 적용될까 노파심에 하는 말이다.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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