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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동지가 적으로 만났다…고려아연·영풍 ‘경영권’ 쟁탈전 격화

[고려아연 vs 영풍 전쟁] ①
영풍, MBK 통해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
고려아연 반발 “기업사냥꾼과 결탁한 약탈적 M&A 반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고려아연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고려아연]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세계 최대 비철금속 제련업체인 고려아연에서 경영권 분쟁이 격화하고 있다. 고려아연 최대 주주인 영풍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필두로 한 고려아연 측이 대립하고 있다. 영풍은 지난 9월 13일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위한 지분 매입을 공식화했다. 고려아연 측은 지분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우군 확보에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이번 갈등의 결말을 쉽게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지분 대결을 벌일 경우 한 주라도 더 많은 주식을 확보한 쪽이 승자가 되는데,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지분은 현재 ㈜영풍 측이 33.13%, 우호 지분을 포함한 고려아연 측이 34.05%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7.83%)과 고려아연 자사주(2.39%)를 제외한 20%가량의 지분이 어느 쪽을 향하느냐에 따라 고려아연의 경영권이 결정되는 셈이다. MBK파트너스는 2조원가량을 투입해 한 주당 66만원에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주식시장에서 고려아연 주가가 70만원을 웃돌자 9월 26일 공개매수가격을 75만원으로 전격 인상했다.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고려아연을 인수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국내 대기업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우군을 확보해 이에 맞선다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영풍과 고려아연의 경영권 갈등은 왜, 어떤 이유로 시작됐을까. 고려아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자가 1949년 함께 창업한 ‘영풍기업사’를 찾을 수 있다. 최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동업하며 만든 영풍기업사가 영풍그룹으로 이어지고 1974년 영풍의 자매회사로 고려아연을 설립한다.

이후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과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각각 경영을 맡았다. 고려아연과 영풍의 관계는 공동창업주 2세인 장형진 영풍 고문과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대에도 유기적으로 이어졌다.

갈등은 오너 3세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을 이끌게 되며 시작됐다. 고려아연에서 약 40년을 근무한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은 9월 24일 기자간담회에서 “(40여년 간) 영풍과 고려아연의 관계를 지켜봐 왔다. 두 기업은 상당 기간 동업 관계가 잘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며 “(갈등은) 4~5년 정도 됐다”고 했다.

영풍과 장씨 일가가 고려아연의 지분을 30% 넘게 보유하며 최대 주주 지위에 있었던 반면, 실제 최고 경영자인 최윤범 회장과 그의 일가가 보유한 지분율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와 전문경영인체제도 소유와 경영을 완벽히 분리하기 어려운데, 동업 관계에서 이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 회장이 최대 주주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인 경영을 하기 위해 안정적인 지분 확보가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영풍 측과 관계가 소원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풍이 고려아연에 욕심을 낸 것은 그만큼 영풍그룹에서 차지하는 고려아연의 실적이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영풍의 2023년 연결재무제표를 보면 매출액은 3조7617억원, 영업손실은 1698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은 833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고려아연의 매출액은 9조7045억원,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6599억원, 5333억원이었다. 이 해에만 영풍이 고려아연에서 배당금 1607억원을 받았는데, 이는 영풍의 1년간 받은 배당 총액(1720억원)의 93% 수준이다. 영풍 입장에선 고려아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이를 분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장형진 영풍 고문.[사진 연합뉴스]

고려아연 의존 하는 영풍, 독립시 타격 전망

최윤범 회장은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고려아연을 이끌면서 자신의 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차전지 소재, 신재생에너지 및 그린수소, 폐기물 리사이클링 분야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며 ‘트로이카 드라이브’ 경영을 선언했다. 아연·납 생산량 기준 세계 1위 비철금속 기업에 오른 경쟁력을 기반으로 제련 기술력을 극대화하는 친환경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우군을 확보해 경영권을 안정화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수소와 신재생에너지, 이차전지 등 신사업 분야 진출‧협력을 위해 고려아연은 한화그룹을 우방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한화임팩트의 미국 투자 계열사인 한화H2에너지USA가 고려아연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5%를 4700억원에 확보했다. 한화임팩트가 이미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더해 한화그룹은 7% 가까운 고려아연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밖에 국내 대기업을 백기사로 끌어안으며 장씨 가문과 최씨 가문의 지분율이 점차 비슷해지면서 갈등이 표면화했고,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힘의 대결이 벌어졌다. 핵심 안건은 ‘현금 배당안(주당 5000원)’과 현행 외국 법인에만 허용하는 제3자 유상증자를 국내 법인에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정관 변경의 건’이었다. 고려아연이 제시한 두 안건 가운데 고려아연 측 원안(주당 5000원)은 참석 주주 62.74%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주당 1만원을 요구한 영풍 측 수정안은 부결됐다. 이에 따라 배당금으로 넉넉한 현금을 확보하려 했던 영풍의 계획이 주저앉았다.

그러나 ‘특별 결의’ 대상인 정관 변경 안건은 영풍 측의 의견이 관철되면서 부결됐다. 이 안건이 통과될 경우 유상증자를 통해 기존 지분이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풍 측은 장씨 가문 지분율이 줄어들고 최씨 집안 측은 우호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한 셈이다. 이후 영풍 측이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경영권 인수전을 확대하면서 현재까지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영풍과 고려아연 측은 지분 확보를 위한 싸움 이외에도 여론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월 24일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최고기술책임자·CTO)은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고려아연 본사에서 회사 핵심 엔지니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MBK파트너스라는 투기자본이 중국 자본을 등에 업고 고려아연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며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반대한다”고 했다. 

같은 날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임직원, 노동조합, 고객사, 협력업체, 주주, 지역사회,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께 올리는 글’을 통해 “고려아연의 1대 주주와의 협력하에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개선을 위해 본 공개매수를 진행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은 잘못된 주장”이라며 “우리는 장기간 투자하고,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이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투자 활동을 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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