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투자와 지원의 상관 관계 [스페셜리스트 뷰]
투자 영역으로 확장하는 예술
기업이 나서 건강한 예술 투자 시장 견인
공공지원·투자의 끊임없는 순환 필요
[한지연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본부장] 알 랭드 보통(Alain de Botton)은 그의 저서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Art as Therapy)’ 에서 새롭게 문을 여는 다양한 미술관, 예술 창작 환경을 위해 상당한 투자를 하는 정부, 그리고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는 예술 관계자들의 다양한 방식 등을 보면서 우리 삶에 있어서 예술이 점점 더 중요하게 되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예술에 접근하는 다양한 교육 방식을 통해 과거 소수의 특권을 가진 사람들만이 예술을 배우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이제는 일상의 삶에서 함께 하는 취향의 영역이 되었고 지역사회 안에서는 가치재이자 공공재로서 사회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국민의 문화향유 실태 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을 가장 많이 즐기는 연령대로는 20대와 30대, 코로나 시기 이후로는 50대부터 70대까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물론 가구소득이 높고 대도시와 중소도시일수록 문화예술의 향유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환경과의 상관관계는 여전히 뚜렷해 보인다. 가장 많이 즐기는 문화예술행사로 “영화 관람”이라 답한 비율이 52.4%로 가장 높지만 “문화공간에서 가장 참여하고 싶은 문화예술프로그램”으로 연극, 무용, 음악 등의 공연과 미술전시 관람의 답이 큰 비중으로 나온 것은 미디어 매체를 벗어나 직접 현장에서 예술작품을 관람해 보고자 하는 열망이 높다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단순히 향유자로서 참여가 아닌 창작자로서 직접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 또한 낮지 않은 비중을 보여 현재 사람들은 예술에 대한 커다란 호기심과 강한 끌림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향유에서 투자의 관점으로 확장하는 예술시장
지난 9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에는 4일간 7만명의 사람들이 방문했다. ‘프리즈 서울’은 2022년 뉴욕, 런던, LA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개최한 대규모의 아트페어다. 현대미술 시장에서도 다른 K컬처 못지않게 역동적인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프리즈 서울’은 많은 방문객과 예상치 못한 다양한 미술 컬렉터들의 구매로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의 위상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는 니콜라스 파티의 2021년작 ‘커튼이 있는 초상(Portrait with Curtains)’이 250만 달러(한화 약 33억 4000만원)에 판매되며 최고가액을 기록했고, 국내 작가 작품으로는 한국 1세대 추상화가인 유영국의 작품이 20억원에 판매되며 주목받았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전시회 관람이 아닌 구매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아트페어의 현장에 몰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우선 예술에 대한 투자, 즉 재테크의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예술을 통한 재테크의 관점은 주로 미술 시장에서 일어나는데 작가와 작품을 유통하는 갤러리와 딜러,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가 주체가 되어 1차 시장을 움직인다. 그리고 작품을 보유한 컬렉터가 경매사를 통해 작품 가격을 재산정하고 이를 경매에 내놓으면서 미술시장은 2차로 확장된다. 2023년 12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발간한 ‘2023 미술시장조사’에 따르면 22년 한 해 동안 화랑(갤러리), 아트페어, 경매회사를 통해 판매 된 미술작품의 거래 총액은 무려 9903억 9400만원, 화랑(갤러리)과 아트페어를 방문한 총 관람객은 379만 5597명에 이른다. 또한 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한 관람객도 1581만 9146명이며 국내 미술전시 관람규모는 약 639억으로 추정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경매나 아트페어 등이 취소되자, 온라인으로 미술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초보자가 소액으로 투자를 시작할 수 있는 온라인 공동구매 플랫폼의 등장과 맞물려 젊은 층의 수요가 증가했다. 특히, 온라인 공동구매 플랫폼은 고가 미술품의 가격을 낮은 금액으로 분할해 구매할 수 있게 만들고 공동소유권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었다. 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인 ‘아트테크’의 신조어까지 등장시켰다.
작품을 소유하게 되면 이후 작품 임대 혹은 작품 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 차익을 통해서 수익을 얻게 되는데 작품을 구매 후 소장하게 된다면 소득세가 없다는 점, 아트테크를 통한 수익률은 평균 연 8% 내외 정도라는 점이 부각됐다. 아트테크 바람이 불면서 소액으로 예술에 투자 할 수 있다는 점은 MZ세대를 중심으로 미술작품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고 아트페어의 인기와 전시 관람객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시 관람객의 증가는 글로벌 메가 갤러리들의 국내 상륙과 해외의 우수한 전시들을 국내로 이끌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화문화재단이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 분관을 유치하게 된 것 역시도 한국이 아시아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미술시장으로서 무한한 성장의 문화예술 허브로 주목받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투자의 관점에서의 예술시장, 그것이 꼭 예술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면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발생한 ‘갤러리 K’의 관련사건은 예술에 대한 안목과 이해 없이 단순히 투자의 수단으로만 예술에 접근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실물 미술품을 확인하지 못한 채 투자에 참여하였고 주체적인 선택과 제대로 된 가이드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자산 증대를 위한 투자 활동으로 예술 시장이 커진 것은 사실이나 투자에 앞서 예술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환경 조성이 선행되어야 하며 예술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듯 예술은 단순히 재테크의 수단이 아니라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더욱 크게 하고 있기에 예술에 대한 지원이 우선하여 이루어질 때 건강한 투자 대상으로서 예술의 경제적 가치를 긍정적으로 설명 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예술 투자를 견인하는 예술 지원의 씨앗, 기업 메세나 활동
중세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이 예술가와 학자들을 후원해 르네상스 부흥에 기여한 것처럼 현대에는 경제력을 갖춘 기업들이 예술에 대한 지원을 통해 우리나라 예술성장의 한 축을 견인하고 있다. 물론, 현재 메세나 활동에는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기업의 사회공헌 성격이 강하지만 기업의 경영전략이 반영되기도 하며, 기업의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한 마케팅의 기능도 가진다. 기업의 예술 지원 영역은 마치 경제 활동의 생산과 유통, 소비 분야와 유사한 모습을 지닌다.
첫째로, 예술작품을 창작(생산)하는 다양한 장르 예술가에 대한 지원이다. 두 번째는 창작물이 유통되는 공간에 대한 지원이다. 기업이 직접 혹은 재단을 통해 운영하는 예술 공간을 통해 수준 높은 프로그램 기획과 대관으로 사람들에게 예술 향유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한다. 세 번째는 예술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이다. 예술 공간에서 예술을 소비하는 사람에 대한 서비스 측면 이외에 지역공동체에서 직접 예술을 체험하게 하면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예술교육을 통해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가능성 있는 미래의 예술가를 발굴하기도 한다. 같은 맥락으로 기업의 예술지원을 독려하고 있는 한국메세나협회도 ‘기업과 예술단체를 매칭하는 파트너십 지원’과 ‘지역, 사회계층간 문화격차를 해소하는 찾아가는 메세나’, ‘소외계층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예술교육사업’ 등의 영역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아쉬운 점은 기업이 문화예술에 지원하는 영역 중 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공연장, 복합문화공간, 미술관 등 예술이 유통되는 공간에서의 기획 프로그램 및 시설 운영에 지원이 편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메세나협회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2023년 기업이 문화예술에 지원한 금액은 총 2087억 8500만원으로 그 중 인프라 지원금액은 1205억 1500만원이며 문화예술지원 총액 중 57.7%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공공지원으로 부족한 예술창작의 場, 메세나의 협력으로 더 깊고 넓게 확장해야
사실 예술가들은 오래 전부터 후원을 통해 창작 활동을 이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 작품은 오랜 기간의 숙련 과정을 통해서 나올 수 밖에 없으며, 복잡한 예술 작품의 유통 과정과 함께 여느 직업인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예술가는 좀처럼 자립이 쉽지 않은 구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예술인복지법’에 의거, 예술을 업(業)으로 하여 활동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를 만들고 이를 지원의 기본적 기준으로 삼고 있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발행하는 예술인활동증명 현황 자료에 의하면 2024년 현재 기준 우리나라의 예술가는 신진, 장애예술인을 포함하여 총 18만 7612명으로 누적 집계된다. 단, 예술 활동이 지속되고 있는지 설정된 유효 기간 이후 재신청의 절차를 밟도록 되어 있는데 누적 집계 인원 중 10%정도인 1만 8327명은 활동을 지속하지 못한 이유 등으로 만료됐다. 전체 누계 인원 중 30대와 40대의 예술인 등록인원이 9만 6477명으로 가장 많으며 새롭게 예술을 시작하는 20대의 예술인 또한 3만 1833명으로 그 수치가 높다. 각자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은 직업인으로서의 예술가 활동을 이어나가지만 작업의 특성상 자립이 좀처럼 쉽지 않기에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국가기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을 통해 예술창작을 위한 지원금을 해마다 신청 하고 있다.
예술을 지원하는 국가기관 중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자체 중 서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서울문화재단의 창작 지원 규모가 가장 크다. 2024년 기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창작 지원은 약 588억,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창작지원은 약 190억 정도에 이른다. 장르별 예술가 1인의 프로젝트에서부터 예술단체의 프로젝트, 생애주기별 지원을 통해 청년예술인 지원, 원로 예술인 지원 등 그 방식은 다양하지만 모두 ‘예술창작’을 목표로 하는 지원이다. 하지만 예술창작을 위한 기반 지원에서부터 새로운 컨텐츠 창작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을 설계함에도 불구하고 이 지원 금액으로 수혜를 받는 예술 프로젝트는 총 신청 건수 대비 20% 이내에서 머무른다.
그렇게 선정된 예술 작품 안에서 다시 심화 지원하고 국내외적으로 유통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투자 대상으로까지 확장 될 수 있도록 키워낼 수 있는 예술의 영역이란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진주 찾기와도 같은 과정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한대로 예산을 확장할 수 없는 현실적 제한과 큰 예산을 통해서도 모두를 지원할 수 없다는 한계에서 기업의 메세나 활동은 그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주는 최고의 파트너이자 강력한 지지자이다. 앞서 설명한대로 기업의 예술 공간 인프라 지원, 지역사회 문화향유 기회 제공, 예술교육을 통한 예술 소비자 지원이 예술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그 수준을 높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지만 예술가의 창작 활동이 없다면 나머지 영역은 모두 빛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훌륭한 예술가를 육성한다는 것 즉, 예술가가 창작을 할 수 있도록 지원 하는 것이 가장 우선 되어야 한다. 창작에 대한 지원이 있고 난 후에 예술 시장이 생겨나고 투자도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이 예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목적은 예술의 순기능을 유지하면서 예술생태계의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공공의 지원에 더해 기업의 메세나 활동을 통한 예술가의 창작지원은 더 깊고 넓게 확장돼야 한다.
예술가의 활동과 역량에 직접 지원하는 전통적인 기업으로는 금호 그룹을 빼 놓을 수 없다. ‘금호 영재’ 프로그램을 통해 김선욱, 손열음, 선우예권, 조성진 등이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연극 분야 인재 발굴을 위한 고도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두산, 한국 미술계를 이끌어 갈 유망작가를 발굴해 지원하는 종근당, 신진 유망 연주자상을 만들고 국제음악콩쿨 출전 지원을 하는 ㈜면사랑, 성악가 혹은 오페라 인재를 선정하여 해외 오페라 스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세아재단 모두가 예술가를 직접 지원하고 성장시키는 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시작하는 신진 예술가를 발굴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유망 예술가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글로벌 예술가로 성장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메세나협회에서도 ‘기업과 예술단체를 매칭하는 파트너십 지원’에 큰 공을 들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나오는 성과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한국메세나협회가 보유한 예술단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기업에게 적합한 파트너를 추천하고, 기업과 예술단체가 장기적으로 파트너십을 이어갈 수 있도록 컨설팅하고, 기업이 예술단체에게 지원하는 금액에 비례하여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추가로 지원하는 사업으로 2006년부터 2023년까지 해당 사업을 통해 약 877억원의 기업후원이 유치됐다.
정부의 마중물 예산으로 기업의 예술지원 참여를 꾸준히 이끌어 낸다는 것에서도 의미가 있으며 이를 통해 성과를 낸 누적 결연건수는 2799건에 달한다. 하지만 기업이 참여하는 문화예술단체의 순수 창작 지원이 전체 지원 영역 중 29%에 머무른다는 점에서 좀 더 증액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지원과 투자, 끊임없이 순환하고 확장돼야
예술에 대한 지원은 손익관계를 벗어나 이해관계자들의 신뢰와 지지를 구축할 수 있는 고도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을 통한 가치 창출이 단순히 경제적 이익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가치 창출로 지속 확장되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의 가치가 경제적 인 이익으로 전환될 수 있을 때까지는 적지 않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선 예술적 역량을 수련하는 예술가의 시간, 예술가를 지원하며 기다려주는 인내의 시간, 다양한 예술 경험을 통해 예술 소비자로서 성장하는 시간. 이 세 가지의 시간을 필수적으로 견뎌내야 이 사회는 찬란한 예술의 성과를 맺을 수 있으며 시장이 성숙하고 예술의 경제적 가치가 발현되기 시작한다. 이때에 비로소 우리는 예술투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할 수 있다. 멋진 예술 공간이 있어도 예술가가 없다면, 예술가가 존재하여도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지지와 후원이 없다면, 예술 공간에 예술가의 창작물이 빛을 내고 있어도 이를 보고 공감하는 사람이 없다면 예술 시장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허의 세계와도 같다.
예술 지원을 통해 예술가를 키워내는 것에서부터 건강한 예술 투자의 가치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 투자를 통해 얻은 성과가 다시 지원의 과정으로 선순환 될 수 있을 때 그 가치는 무한하게 확장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지원과 투자의 관계는 그렇게 끊임없이 순환하고 확장돼야 하는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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